제3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350

    

멈춤과 천천히의 의미

『천 개의 파랑』을 읽고

 


최은영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더 높은 성적, 더 빠른 성장을 향해 숨 가쁘게 달리며, 빠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더 멀리 가기 위한 연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단순한 위로의 말로 받아들였다. 빠르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문장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멈춰선 뒤 다시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그게 진짜 의미였다.

경주마 투데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빠르게 달려야 하는 존재였다. 느려지는 순간,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기수로 만들어진 로봇 콜리는 투데이를 빠르게 이끌도록 설계되었고, 둘은 함께 빨리 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콜리는 경주 중 하늘을 바라보다가 투데이에게서 떨어진다. 투데이가 자신을 힘겨워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도 문득 "왜 달려야만 하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콜리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데이는 경주마로서의 수명을 다해 멈춰야 했지만, 콜리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시작한다. 빠르게 달려야만 가치가 있던 존재였던 투데이가 처음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빠르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더 높은 성적, 더 빠른 성공. 그 속에서 멈추는 순간은 실패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멈춰서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과정이라면 어떨까?

작품 속 은혜는 장애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는 은혜의 선택을 도망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은혜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웹툰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서도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기 위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은혜 역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재의 엄마인 보경은 멈춰 있었던 사람이었다. 남편을 잃은 뒤, 보경의 시간은 멈췄다. 하루하루를 자신을 돌볼 시간 없이 가족을 위해 일하며 살아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과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보경은 콜리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콜리는 입력된 값대로만 반응하지만, 그 단순한 대화 속에서 보경은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몸살에 걸린 보경을 대신해 연재와 은혜가 식당일을 도우며, 보경은 자신만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보경의 시간은 다시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며, 보경은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나 역시 시간이 멈췄던 순간이 있었다. 연극 동아리와 미디어제작단 활동으로 바빴던 시기였다. 연극제 준비와 미디어제작단의 계획을 정하는 시기가 겹치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때 미디어제작단의 감독 역할을 맡은 부원과 의견이 충돌했다. 나는 단장으로서 "스토리를 정하기 전까지만 리더 역할을 맡겠다."라고 말했지만, 그 부원은 내가 작품까지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고 오해했다. 그 부원의 닫힌 태도에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나도 감정적으로 반응해 버렸다. 결국 "그럴 거면 나가라."라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그날 이후 친구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을 때, 친구는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생긴 일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그 부원도 나처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 살고 있었고, 나도 보경처럼 시간이 멈췄다 흐른 뒤, 나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책을 덮고 나는 내 삶을 돌아봤다. 우리는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등하굣길에서 친구와 나누는 대화. 잠시 쉬며 음악을 듣는 순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같은 '멈춤의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달리는 연습이란 결국,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때로는 멈추는 것이야말로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천 개의 파랑』은 빨리 달려야만 한다고 믿는 우리에게, 멈춤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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