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마음속에 그린 수채화 한 장 - "사람풍경"을 읽고
부산 진구 연지동 부산진여고 서지예
이 책을 읽고 난 후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내 무의식의 세계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 분노, 우울, 두려움, 질투 등의 감정이 모두 나의 어렸을 때 경험과 그로인해 억압되어야 했던 감정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과연 나의 어떤 경험이 나조차 알지 못한 무의식 세계를 만든 것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참 나빴다. 부모님은 어린 나를 유명한 의사선생님들께로, 바다 건너 일본의 큰 병원에 까지 데리고 다니셨다. 그때 나는 아직 어렸지만 어렴풋이 슬픔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눈이 나쁘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세상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또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여린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벽을 허물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무의식의 세계 속에 산다. 다들 그 나름의 경험으로 인해 억압된 감정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늘 밝고 명랑해보이는 사람이더라도 고독할 때가 있으며, 군자처럼 온화하고 이해심 넓은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자신도 알지 못했던 분노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즉 무의식의 세계를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나는 화를 잘 내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화를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애초부터 싸울 일을 만들지 않았고 나는 참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부추겼다. 늘 편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순교자와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의 내면에도 분노가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듯한 삶을 산다고 한다. 마음속에 품은 독을 내비추게 될까봐 지나치게 친절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것이리라. 아기는 엄마에게서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데, 엄마는 분노의 대상임과 동시에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채 내면 깊은 곳으로 억눌러 감춘다.
그렇게 해서 억압되고 내면화된 분노는 신경증의 원인이 되며 언젠가는 되돌아와 우리의 삶을 공격한다. 결국 화는 우리 내면속의 상처받은 `아기`라는 것이다. 이제는 화를 눌러 담기보다는 표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은 화를 다스리는 일이지,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적대감 없이 상대에게 표현하고, 그런 다음 그 감정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한다.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슬픔과 기쁨, 고통과 행복을 함께 공유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이타주의자 휴머니즘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과 맞서지 못한 채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방어적 태도였으며, 무엇보다도 억압된 의존성의 표출이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으면 으레 친구나 가까운 지인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같이 슬퍼하길 바란다. 또 그 사람이 자신을 현재의 상황에서 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를 가장 현명하게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작가는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상태가 바로 의존성이 극복된 상태라고 한다.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살면서 겪는 슬픔과 힘겨움은 스르로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크 투웨인은 용기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용기란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어떤 일을 해나가는 힘이 아니라, 절망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근 가장 두려움을 느꼈던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했을 때였다. 직행 항공편이 없어서 홍콩을 경유해 가야 했는데 홍콩공항에서 우연히 남아공에 산다는 한 가족을 만났다. 우리 일행을 보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택시를 절대 타지 말라!"였다.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 곳에 산다는 사람들조차 위험한 나라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다.
가이드언니도 수도인 요하네스버그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에 대해 직접 겪었던 일까지 들려주며 우리에게 당부를 했다. 그래서일까? 낯선 나라의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에게서 왠지 모를 위협감이 느껴졌다. 유전적인 차이겠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와 큰 키만으로도 내 기를 꺾는 그들이었다.
두려움으로 인해 한동안은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없었고 주위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지나칠 경우가 많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생각을 바꾸고 오직 `여행`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그랬더니 무섭다고 느껴졌던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정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알게 되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섰더니 나는 비로소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문화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깊이 통할 수 있는 마음, 주변의 시선이나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할 수 있는 마음가짐도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여행하는 동안 발견한 사실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함부로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과 닿아 있으며, 그 깊은 곳에서 나온 독특한 감성으로 세상을 느끼고 싶어하고 그 감성과 느낌을 항상적인 상태로 유지하고 싶어 한단다.
그리고 이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창조성`이 우리를 충만하게 할 것이다. 샤갈과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이 지닌 창조성의 비밀은 내면에 있는 자아의 다양한 국면을 인식하고 통합하고 표출하는 능력에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자기실현`이다. 억압이나 회피의 방어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 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본성의 자기와 만날 때에야 빛나는 지혜와 통찰력과 창조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작가는 우울증을 내 마음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난장판이며 정신의 착오라고 정의했다. 여러 생각들이 상충하고 결국 그 망상은 커다란 착각으로 변해서 나를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함을 느낄 때 우리는 사물이나 세계 전체를 어둡고 침울하게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커다란 왜곡이 포함되어 있단다. 무력감,절망감 등이 바로 인지 왜곡, 즉 마음의 착각이며 유아기의 환상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는 인생의 뚜렷한 목표나 동기가 확실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말하듯이 소위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살기엔 뭔가 삶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았다. 오래도록 내 꿈이 무엇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꾸 내 자신이 무기력해 보이고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해서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했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고 저 너머에 있는 희망과 밝은 세상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현실은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막막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에게도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나는 세상의 담고 싶은 모습과 이야기를 글로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삶이 얼마나 은혜로운지를 힘겨움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깨닫게 해 주고 싶기도 하다.
우울함은 내가 만들어낸 착각이자 늪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자기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슬프다고해서 주저앉아 버려서는 안 된다. 우울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새롭게 고쳐 나가야 한다. 작가는 내면의 불안감을 인식하고 수용하면 오히려 불안정하다고 느껴온 삶의 조건들을 파도타기 하듯 누를 수 있다고 말한다. 파도 위에서 얼마만큼이나 중심을 잘 잡고 있을 수 있는 지가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다.
사람의 마음은 이 책의 제목처럼 한편의 `풍경`이다. 풍경에는 담고자 하는 주제나 모티브가 있기 마련인데 바로 이것이 `자의식`이다. 풍경은 여러 가지 다양한 사물과 색채, 선과 모양들이 조화를 이루어 느낌과 감동을 자아낸다. 이러한 미술적, 색체적인 요소들이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감정`들일 것이다. 사랑, 행복, 즐거움, 분노, 비움, 슬픔, 질투, 우울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한 명의 자아, 즉 `풍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보기 추하고 흉측한 풍경이 있는 반면 아름답고 푸근한 풍경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쪽의 그림을 닮고 싶은가?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마음과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절제하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 아름답고 당당하게, 혹은 숭고하게까지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바라기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감정에 더 충실해져야겠다. 이기심이 아니라 단지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인간정신에 정상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풍경`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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