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7706

 

 

"마시멜로 이야기"을 읽고

동래여고 2학년 강민주

 

나는 돼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루라도 마시멜로를 안 먹은 날이 있었을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하루라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마시멜로를 먹어왔던 것 같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먹은 만큼 살이 찌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먹어치운 마시멜로가 다 살로 갔더라면 지금쯤 흐물흐물한 살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글을 썼을 것이다. 

 

친구들과 동네에 있는 서점이나 학교 도서관에 자주 간다. 그렇게 자주 가는 횟수만큼 열성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 나온 책들과 만나며 신선하고 산뜻한 느낌을 받는 것이 좋고,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손 때 묻은 책의 소박한 모습과 코를 마비시키는 특유의 찌릿한 구수함을 좋아해서 자꾸만 책 곁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책을 자주 접하고 보니 참으로 신간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보였다. 단지 내 생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신간은 물밀듯이 쏟아졌다. 서점에 가면 책들이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띄려고 자기네들끼리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다툼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표지무늬에 사로잡혀 책을 들었다가 다시 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책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처럼 더욱 번성을 이루는 것 같이 보인다. 서점에서 요즘 출간되는 책들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면 뻔하고 시시콜콜한 연애소설이나 거의 모든 책이 강조하는 바가 비슷한 방법이나 비법을 담은 책들이 표지만 바꾸어서 권수만 늘린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거대한 광고 전단지를 보는 것 같은 어리둥절한 느낌. 이것이 과연 나만이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일까? 그래서 그런지 ‘베스트셀러’라고 소개된 책들을 보면 다짜고짜 의심부터 품게 된다. 조금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탓일까? 우유부단하고 결단력과 의지력이 약한 성격을 가져서 그런지 ‘교훈서’나 남들의 합격수기, 성공사례, 이러쿵저러쿵 비법이 담겨있는 책들을 즐겨본다. 

 

집에 있는 책장에도 기적적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종류의 책들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이루어낸 것 같은 대리만족감에 빠질 때도 있고, 때때로 성공이 만만하고 쉽게 보이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선 흥분에 들떠 온갖 야심찬 계획을 세우며 자신감이 충만해있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역시 그들은 타고났거나 비범한 재주를 지녔고, 난 평범한 수준에도 못 미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좌절감에 휩싸여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읽은 책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다짐하고 좌절하는 횟수도 늘어갔다.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라면서 다시는 ‘교훈서’나 ‘비법서’따윈 안 읽겠다고 다짐하며 손에 들었던 책이 “마시멜로 이야기”였다. ‘이럴 수가!’ 마지막 다짐까지도 나약한 의지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이번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엔 과연 어떨까…….’라는 의구심을 먼저 품고 책을 펼쳤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앞서 나온 ‘개구리 이야기’에 벼락을 맞는 것과 같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개구리 이야기. 나를 어떻게 알고 내 이야기를 썼을까? 내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에게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고 두 볼이 화끈거렸다. 다짐을 말한 개구리, 시간이 지나도 변한 것이 없는 개구리. 눈알이 ‘봉긋’ 튀어나와서 못생기고 볼품없는 울음소리만 낸다고 깔보았던 개구리가 바로 나였다니! 내심 슬그머니 피해왔던 내 현실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 말았던 것이다.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찰리와 함께 교대로 운전하며 조나단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찰리는 성공한 사업가인 조나단의 운전기사이다. 찰리를 안타깝게 여긴 조나단은 차로 이동하는 동안 틈틈이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찰리는 안위적이고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 성공을 향한 걸음을 한걸음씩 내딛게 되고,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게 된다. 조나단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나는 찰리가 되었다. 조나단이 들려준 ‘아룬 간디와 아들에 관한 일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호르헤 포사다’, ‘조나단 자신의 이야기’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직접 읽지 않고서는 온 몸에 퍼져 울리는 자명종 소리를 아무도 들을 수 없다. “마시멜로 한 봉지 주세요!” 여태껏 눈앞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시멜로를 야금야금 먹으면서 미래도 조금씩 베어 먹었던 찰리는 조나단의 말을 듣고 마시멜로 한 봉지를 사서 늘 보면서 차근차근 습관들을 고쳐나간다. 

 

눈 앞의 욕구와 좀 더 큰 미래의 가능성과 만족을 시기하는 마시멜로. 누가 마약보다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위험한 것에 저리도 달콤한 이름을 지어줬을까? 마시멜로의 달콤한 이름을 떠올리다 문득 장미가 떠올랐다. 탐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장면도 욕심을 내면 가시에 찔려버린다. 그 고통에 허덕이는 동안 장미는 이내 시들어버린다. 또한 너무나 사고 싶었던 옷도 금방 싫증이 난다. 그만큼 마시멜로의 유혹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리 달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각자 쓰레기통에 빈 마시멜로 봉지가 버려져 있을 것이다 나의 마시멜로들 중에서도 ‘사르르’ 눈 녹듯 녹아버리는 가장 달콤한 마시멜로는 잠, 식탐, 컴퓨터이다. 잠은 자면 잘수록 더 자고 짚고, 식사를 할 때면 찬구 반찬이 더 맛있게 보이고, 한 밤중에 배가 좀 출출하다 싶으면 어느 새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컴퓨터를 켜면 그 순간부터 시간 개념을 잃어서 종종 약속시간을 어기게 된다. 마시멜로 하나하나의 이름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그것들을 더 이상 봉지에서 꺼내지 않는 일만 남았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까?’ 마시멜로 한 봉지를 책상 앞에 놓고 두고두고 봐야겠다. 거추장스러운 준비와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아는 것을 ‘실천’하는 힘을 발휘해서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고쳐나갈 것이다. ‘눈부신 성공을 맞이하기 위해 눈부신 유혹을 참고, 그 성공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글귀처럼 열심히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아득하게 높은 ‘마시멜로 산’의 정상에 우뚝 서서 보상으로 마시멜로 두 개 정도 여유롭게 맛 볼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때, 그 정상에서 맛보는 마시멜로의 달콤함이란……. 마시멜로 이야기는 학교 쉬는 시간 10분처럼 후다닥 지나갔다. ‘조나단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봐야지…….’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조나단의 이야기도 끝나고 옮긴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별다른 부담 없이 재밌게 읽혀서 기분이 좋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비법서나 교훈서들을 보면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 많아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메모하기 바쁘고, 다 지켜야겠다는 부담을 가지기도 하고, 수 많은 강조와 명령 어구에 짜증이 나고 쉽게 질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조나단이 들려준 이야기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고요한 자장가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굳이 메모하거나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깊이 각인되었다. 그 누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어머니의 자장가를 녹음해 두었다가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외우겠는가. 마시멜로 대신에 학생들에게는 야참이라든지, 떡이나 초콜릿, 다른 맛있는 과자들과 같이 ‘한국인들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면 더 좋았을 탠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번에는 한 층 더 성숙한 찰리가 되어서 조나단을 기다린다. 나도 조나단이 되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한 번 더 이야기를 듣고 확실히 기억해두기 위해 또다시 책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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