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7661

 

보다 향상되고 진화된 사랑을 꿈꾸며 -  "아내가 결혼했다"을 읽고

부산시 북구 만덕동 강경숙

 

  

 

인아씨에게 지금쯤 새로운 땅 뉴질랜드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창조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테지요. 아래층의 남편 덕훈씨는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툴툴거리고, 윗층의 남편 재경씨는 공동의 평화와 행복 위해 나긋나긋 조화를 발휘하나요?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아주 새로운 여성상 하나를 창조한 셈이 이요.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삼십대의 '쿨'한 주인공 인아씨에게 무한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긴 인아씨뿐만 아니라 덕훈씨나 재경씨도 전래의 남자들과는 다른 보다 개량된 종족 같았습니다. 자기는 마음대로 바람 피워도 아내의 한 번 바람은 용서할 수 없다며 이혼하는 병수같은 남자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남성상이니까요. 

 

남편이자 이 책의 화자인 덕훈씨를 사랑하면서도 새로 생긴 남자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중혼을 감행하는 인아씨. 그 도발적인 사고와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통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일부 일처제의 통념을 깨고 두 명의 남편을 거느리고 살면서도 복잡한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지 않 는 산뜻함이 좋았고, 축구에 빗댄 상황 설명과 갈등 표현도 흥미진진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덕택에 알만한 세계 유명 축구스타들의 에피소드나 한수 배우는 축구 이야기의 정보도 만만찮았지요. 다른 수많은 독자들도 인아씨의 그 발칙한 사고에 황당해하고 아내의 양다리 사랑에 끌려가는 덕훈 씨를 딱해하면서도 책의 흡입력에 저항하지 못했을겁니다. 사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지요. 

 

양반의 축첩제도나 남편의 외도 등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의 역할 바꾸기일 뿐인 데 말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친척아재 생각이 났어요. 소설의 상황이 내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도 아마 우리 아재 때문이었을겁니다. 먼 친척인 그 아재는 어릴적 유일하게 우리 형제 자매에게 용돈을 주시는 분이었죠. 

 

자수성가하여 조그만한 사업체를 꾸려 나가는 아재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두 여자와 결혼한 각각의 결혼사진이 우리 집 마루 방문 위 사진틀 속에 버젓이 있었거든요. 속속들이 사연이야 알 까닭이 없지만 아담한 체격에 당차 보이는 먼저 결혼한 아지매와 곱상한 외모에 서울 말씨의 뒤에 결혼한 아지매의 모습이 이 소설 읽으면서 불현듯 생각났어요. 

 

상상이란 무에서는 나오지 않는 법, 어쩌면 작가 주변에도 우리 아재같은 분이 계셨던건 아닐까요? 인아씨, 사실 제도라는 건 인간이 만든거잖아요. 아무도 위반하지 않는 규칙도 없는 것이고요. 사람이란 간단하게 평가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존재지요. 그러면 사랑에서도 인간심리의 다양함이 이해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독점욕이나 질투심 버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일텐데 그 점에서 인간은 보노보만도 못한 걸까요? 평화 지향적이고 이타적이며 협동하는 성격의 유인원 보노보말예요. 누군가가 미치거나 피바람이 불 상황이 그렇게 '쿨'하게 전개되다니! 매사 차분하고 논리 정연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면서 결정과 책임의 공은 상대에게 슬쩍 넘기는 인아씨의 능력이 놀라워요. 그리고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패배하여 끌려오는 남편을 감미롭게 어루만져 주는 데서는 가히 예술적인 조련술을 느꼈어요.

 

삶을 가볍고 자유롭게 살면서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인아씨의 인생관에 박수를 보냅니다. 축구선수 피구도 이렇게 말했다지요.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창조하고 싶다." 그래요. 나도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창조해야겠다는 각오가 일었습니다. 생활의 조그만한 틀 하나 깨트리고 뛰어넘는데 안간힘이 필요하고 그예 포기하기 일쑤인 삶을 살았어요. 

 

십만 팔천 리쯤 되는 생각과 행동간의 거리감만 인식한 채. 그런 나와 전혀 다른 점에서 인아씨의 매력을 봅니다. 세상의 인식과 제도에 대한 초월의식뿐만 아니라 프리랜스 프로그래머로서의 경제적 독립, 가족이나 친구 등 인간관계에 질퍽거리며 의존 않는 당당한 모습에서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바람을 느꼈습니다. 

 

경제적 가치에 모든 것이 쏠려 있는 이 시대에 부자로 사는 것 따위 안중에 없고 가난하게 살지라도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데에 행복의 의미를 두는 허허로움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또 한 사람의 남편인 재경씨와 사는 모습은 전혀 없어 재경씨에 대한 인아씨 마음을 짐작할 수 없는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정은 두 길로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두 남자에 대한 마음이 공평한지?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코란'에서도 아내들을 공정하게 대해주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규정과 현실사이엔 괴리가 있게 마련이죠. 본처같은 위세로 툴툴거리는 덕훈씨보다 가치관이나 사고의 공감대 일치하고 성품 조화로운 재경씨가 더 영혼의 동반자 같지 않나요? 

 

하긴 서로 연대하고 조화를 꾀하는 가치가 여성만의 것이 아니라면 세 사람은 공동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 같네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연계의 모든 것은 진화한다고 했습니다. 도무지 용인되지 않으면서도 과감하게 이혼하지 못하고, 스스로 쿨한 남편이 되어 가는 데에 자기 최면을 걸며 변모되는 덕훈씨 모습도 일종의 진화일까요? 

 

인간의 성격도 남녀간의 사랑도 보다 향상적으로 진화 할 필요가 있는것 아니겠어요. 오직 공동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그래도 이 땅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뉴질랜드로 떠나는 것은 아쉽네요. 처음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 위의 돌도 스스로 치우면서 가야하는 법. 나는 인아씨가 이 땅에서 새로운 문명의 풍속도 하나를 그리길 바랬거든요. 하긴 인아씨의 열린 사고에 지역의 경계쯤이야 문제도 아니겠죠. 사랑스러운 딸 지원이와 함께 네 가족이 좋아하는 축구 즐기며 오래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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