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677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 읽고

부산 남구 대연3동 부산외고 김소윤

 

  

 

이 시대의 화두는 단연 '어떻게 성공할까'이다.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집약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화두는 수많은 처세의 기교, 재테크방식, 교육 방식 동의 책을 쏟아내며 성공산업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만들어 내었다. 말하자면 성공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면서 여기에 매달려 먹고 사는 사람도 하나의 직업이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성공'이라는 단어를 '부와 명예'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성공 메커니즘에서는 일종의 조건반사처럼 되어버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은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성공에 걸신들린 이 시대에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고쳐 쓰고 있는 책이라서 매우 소중하다. 반기문 총장은 그간 우리가 믿고 있는 결과로서의 성공, 알맹이는 빠진 마케팅으로서의 성공에 일침을 가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수많은 TV의 성공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두 가지 요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 프로그램에서 은연중에 강조하는 성공학은 '결과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만일 발레리나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되지 못했다면, 소프라노 조수미가 세계무대를 누비지 못했다면, 일제시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면 우리는 과연 그래도 이들에게 환호할 수 있을까. 결과만이 강수진과 조수미, 그리고 손기정 선수가 남모르게 흘린 피눈물과 내면적 고통을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결과 없이는 이들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성공학은 결과주의라는 부끄러운 지적을 받아야 한다는 반성을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살아 왔었다. 명문대 진학과 외교관이라는 목표도 결과 중심주의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성공의 결과인 화려한 삶이 없다면 내가 과연 명문대에 진학하고, 외교관이 되려했을까. 성공의 결과인 화려함만을 꿈꾸었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가 나의 성공판과 이 시대의 성공관 속에는 없는 것 같다.

 

낙엽을 보면 아름답다. 다른 사람들도 아름답다고 한다. 울긋불긋 화려함에 감탄해서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낙엽은 인간에게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같다. 낙엽은 우리에게 바스락 말라버린 죽은 잎에 집중하지 말 것을 권한다. 파릇한 여름의 잎사귀가 말라죽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나의 인생의 결과가 이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울긋불긋한 모습 그 자체에서 멈추어 자신의 소멸을 오래도록 즐기는 이 과정의 미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결과중심주의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 없다. 오로지 소멸만이 있을 뿐인데도 소멸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과정 때문이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도 이처럼 과정에서 성공의 의미를 찾으라고 조용히 소리친다. 반 기문 총장은 우리에게 ‘즐길 것’을 권한다. 인간에게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쾌락을 찾으려는 유희의 본능이 있다. 호이갱가는 호모 루덴스, 즉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라고 했다. 모든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그 상황을 즐기려고 하는 놀이하는 존재이다. 이런 놀이에 대한 본능이 발가락이 짐승보다 못생긴 아름다운 발레리나 강수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조수미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흑독한 발성 연습을 감당하게 한 원동력도 바로 놀이에 대한 욕망이다. 우리가 조수미와 강수진의 성공을 결과로만 볼 때 이들이 성공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쾌감마저 맛보았던 사실은 망각되고 만다. 반 기문 총장은 시험의 결과가 아니라 책을 펴서 메모를 하기 위해 연필을 깎고, 줄을 긋고, 책장을 넘기는 그 모든 과정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조차 반기문의 성공신화에 기대어 기획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런 결과주의는 아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성공의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의 성공은 결코 사회적인 성공으로 제한되지 않게 된다. 결과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성공의 의미는 사회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출세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과중심주의는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 사회가 정해 놓은 가치기준에 나를 가장 잘 맞출 뛰어난 바보가 되는 것이 성공이다. 그러나 과정에서 유희하고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성공은 결코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성취하는 과정이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나됨’이 빠질 수 없다. 어떤 집단 속의 누군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과정의 미학이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의 성공을 말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나는 누구인가’로 와 버렸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수업의 연속이다. 쳇바퀴라는 말 외에는 적절한 비유가 없는 이 생활에서 나는 오로지 한 장의 성적표로 평가된다. 결과에 대해 과정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학생의 현실이다. 성적표는 사회적 인간이 될 것을 소리 없이 강요하고, 오직‘결과로만 말하라’라고 꾸짖는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이 꾸짖음에 저항하고 사회적 인간이 아닌, 과정에서 놀이하는 새로운 자아롤 찾으라고 속삭이고 있다. 

 

가을이다. 낙엽을 찾는다. 작은 낙엽 하나에서 죽음조차 비극이라는 결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정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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