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894

 

진실한 언어는 삶의 희망을 남기고 -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경북 경주시 성건동 강창오

 

  

 

완연한 가을이다. 밤늦게 도서관에서 걸어오며 옷깃을 여미는 손끝에 경주의 가을바람이 느껴진다. 어느새 여름은 가고 새로운 계절이 성큼 다가선다. 단지 반복. 회귀하는 계절의 도래 일뿐이라면 딱히 무슨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한층 성숙해 가는 내 영혼의 눈으로 나는 이 계절의 변화에 새로운 삶의 의미를 느껴본다.

 

이 가을을 맞이하여 새삼 ‘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는다. 글에 관해 큰 의미를 부여해본 것은 내 나이 스물여섯 되던 해의 일이다.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고시공부에 매진하던 그 해. 홀로 고독감과 싸워가며 책을 붙잡고 언어의 끝에 매달려 내 나름의 미래를 개척하려 할 때, 어느 순간 캄캄한 어둠처럼 정신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딱히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수험생활에서 ‘진정한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철학적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종일 붙들고 있는 法書에서 그 희망을 찾기엔 내 심장은 너무도 뜨거웠고 나의 가슴은 아이처럼 설레었다. 그에 반해 그 당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두운 회색빛으로 실망을 안겨주었고 나는 절실히 “희망”이란 단어를 찾고 싶어 했다.

 

그때 우연히 모교의 교수님의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헨리데이빗 소로 글을 인용하며,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있음을 말하는 글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걸음과 삶의 리듬이 있으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라는 내용이었다. 그 분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던 여러 문제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느낀 것만으로도 그렇게 고민해가던 내 모습이 남과 비교되어질 필요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희망에 차 웃을 수 있었고 하루하루를 더욱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꽤 흘렀다. 2OO6년 겨울, 속리산의 작은 암자로 들어가며 진정 내가 가야할 길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다. 세속의 번잡한 일들을 떠나 깊은 산중의 자연에서 기쁨과 진리를 발견하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과정 가운데 나는 ‘글’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면서도,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글’을 멀리 하리라 다짐하며 가능한 글을 읽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한 새로운 모습으로 세속을 멀리하며 산에서만 지내다 얼마 전 경주로 내려온 것은 동생의 수능시험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경주에서 ‘글’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금씩 읽던 중에서도 감정이나 감상을 초월하고자 하였고 글을 멀리하려 하는 마음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차마 짧은 시간에 다 읽어 내지 못했다. 잠시 읽다가 상념에 젖곤 하며 내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여러 생각들과 감정을 정리해갔다. 한 달 남짓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며 이 책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박목월과 박동규라는 두 부자의 애틋한 이야기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이 가을을 맞이하였다.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혼과 영혼 간의 교감이라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러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박목월 시인의 진살된 삶이 투영된 글을 읽으며 감상에 젖지 않으리란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들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값싼 감상의 소비가 아닌, 영혼의 교감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임을 알기에 나의 가슴은 아리고 저려왔고 또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스물여섯 때 느꼈던 그때의 반가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책은 박목월 시민의 아들인 박동규님의 머리말부터 시작된다. “침착하게 써야지”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못하는 그는 항상 조심스럽고 부끄러워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지내다, 자신 또한 이미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 이제 “떠남”을 준비해야함을 느끼며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말한다. 이 책의 시작에서부터 나는 ‘만남’과 ‘떠남’과 그리고 ‘남김’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단지 생존만을 위해 살다가 가는 존재가 아니라면 분명 살아있는 동안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또 무언가를 남기고 갈 것이다. 그가 살다간 그 발자취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며 우리의 삶의 방향을 더욱 올곧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자취들 중, 가장 인간적인 유대감을 많이 느끼고 작은 몸짓과 마음 하나하나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정이라는 공간이다. 이 책은 그 “가정”이라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신적 가르침과 영혼의 교감, 그리고 인간적 연민을 통해 참된 삶은 어떤 것이며 참사랑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두를 추억하며 자신의 삶으로 투영시킨 아들의 글을 통해 그러한 가르침과 교감과 연민이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지를 보여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그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식상한 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사랑과 그리움의 모습에 한없는 존경의 마음과 또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유행하는 그 어떤 처세술이나 경영과 관련된 서적들보다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

 

목월의 산문은 詩的이며 생명의 따스함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현실 삶의 애틋함을 녹아낸다. 아버지 박목월의 글들에서 나는 단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만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고뇌와 연민을 느꼈다. 고단한 현실의 와중에서도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현실에서의 고난을 극복하며 진실되고 절제된 글로 그 순간순간들을 글로 남겼다.

 

'슬픈 족속들.'이라 말하는 그의 어조에서 체념이나 비하의 감정이 아닌, 그저 무한한 연민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어 갈 무렵에는, 비록 가난한 현실로 인해 ‘슬 픈 족속들’이 되었지만 결코 그들은 슬픈 영혼이 아닌, 축복되고 행복한 영혼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 정신과 사랑의 아름다움은 더욱 영 롱하게 빛나 보였다.

 

만년필을 분실하는 사건을 통해, 그의 평생은 失物의 연속임을 깨닫고, “인간에게 부여된 영원한 소유라곤 한 가지도 없다는 이 한 마디를 배우는데 측은하게도 5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었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만년필을 통해 만년필 한 개쯤에 겨눌 수 없는, 청춘, 사랑, 그 빛나는 눈동자, 부드럽고 팽창한 음성을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존재’ 그 자체는 영원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느냐이다. 나는 이 대목을 통해 목월 시인의 인생관을 배울 수 있었다.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그리고 작은 사건 하나를 통해서도 진정 내가 안타까워해 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성찰해보는 자세를.

 

"여보 샐비어가 아름답군요"하는 아내의 말에서 生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마음 아파하는 모습0|나, 아내가 뜰에 핀 白菊을 몇 다발 꺾어 이웃에 나눠주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콧잔등이 시큰하게 눈물이 돌았다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아내의 모습 하나하나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며 자신의 아내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려 하고 깊은 연민을 느끼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애정의 눈길과 연민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고 진실로 누군가를 옆에서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마음을 글로 표현 하고 남기는 것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지........많은 생각을 하였다.

 

나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아내의, 내 아이들의 일상의 작은 부분에도 소홀하지 않으리라. 그들의 기쁨과 아픔과 슬픔을 나도 같이 느끼려 노력하리라. 그리고 그 모습들을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 소중히 남기리라.......

 

그리고 이번 <아버지와 아들>을 읽는 그 시간 동안 내 부모님의 마음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글쓴이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통’은 가정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경험도 정신적 성숙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섯 시까지는 아직도 세 시간-아침이 얼마나 고맙다는 사실을 어린것이 앓으면 알게 된다. 꿈자리가 어수선했다. 눈을 뜨자, 환한 햇빛-어린것은 조용히 자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감사로운 생각이 가슴에 넘친다."는 대목에서 목월 시인의 애틋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았고 나를 ‘어린것들’로 키우던 때의 내 부모님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여름이 끝나갈 무렵, 동생이 감기를 앓게 되었는데 그때 밤새 머리 위에 젖은 수건을 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고, 잠시 외출하러 나갔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올 때에도 이 책의 내용이 떠오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살아있는 느낌으로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나이 서른에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다시 수능 준비를 하는 동생과 훌륭한 법조인이 되는 꿈을 위해 아직까지 고시공부를 하는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 평생 희생과 고난의 삶을 살아 오신 나의 부모님....... 작년 2차 시험에 낙방했을 때, 아버지는 "걱정 말아라. 아직 아버지 건강하다." 하셨고, 어머니는 "모두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정신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 하단다"하셨다.

 

겉으로는 흥성흥성한 척하면서 마음속으로 일일이 셈을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어린 것들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리라’ 하면서도, ‘너희들은 살필 필요도 없고 너희들은 무턱대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노고에 대한, 너희들이 내게 베푸는 즐거운 보답이다’ 하는 목월의 독백에서 그 한 없이 희생하고 퍼주는 “부모의 사랑”에 눈자위가 뜨거워지고, 다시 내 부모님들의 모습들이 생각나서 눈가가 젖어들었다. 이 책이 내 마음에서 더욱 빛나는 것은, 아버지 목월이 단지 눈물과 감동만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식들, 특히 책에서는 장남 동규에게 너무도 큰 정신적 유산과 삶의 지혜와 용기를 남기고 전해준 사실이다.

 

아버지 목월은 자신이 중학 시절에 겪은 어려움 속에서, "가마니때기 위에 누워 별을 본 마음"을 아들에게 전해주며 그 어떤 문학서적보다 감명 깊게 문학에 대한 감성을 깨워준다. 구두를 사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에게 형편상 구두를 사줄 수 없지만, "이놈아, 구두 때문에 울어. 이 그림을 봐라. 신다가 닮아지는 것보다 언제나 그대로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야지"하며 아들에게 자연스레 "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감동의 원천을 찾게 한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물질만은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후 아들은 문학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과 그리고 문학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에 대해 깨닫고 국문학과로 가기로 한다. 자식들이 가난을 물려받는 것이 두려워 "연세대 상과도 좋은 곳인데"하시던 그의 어머니도 그의 손을 잡으며 “꼭 합격해라” 하며 흔들어주게 된다.

 

끝으로, 이 책에서 나는 스물여섯 때 느낀 희망에 이어 다시금 삶을 헤쳐 나갈 희망을 만났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핏줄”을 강조하지만 핏줄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핏줄끼리의 연대감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한 줄기 빛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 책이 주는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인문학의 위기의 시대라 한다. 국문학과의 폐지라는 위기감마저 드는 시대라 말들 한다.

 

경제, 경제, 또 경제를 강조하고 첨단과학만이 살 길이라 한다. 그러나 정신적 유산과 가치를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승은 일방적인 훈시가 아닌, 삶의 체험이 진실 되게 녹아든 참사랑을 통해서 서로가 보듬어지고 안아지며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져야 할 것이다. 나는 목월의 글의 마지막에 있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빛은 스스로 우리의 가슴 속에서 뻗쳐 나와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어설픈 글이 비록 한 포기의 잡초와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새벽을 향한 기원 속에 빛을 바라는 것이 되어야 하리라.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작년 겨울, 고요하고 갚은 산속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며 벅찬 감격을 느꼈던 것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올 4월 어느 날, 겨울 내내 앙상한 나뭇가지들로 한 겨울을 버터 내던 그 나무들에서 새순이 돋아나오던 그 경이로운 순간을 또한 잊지 못한다. 물질적이고 외향적인 성장만이 아닌 본질적인 존재인 인간의 참다운 성장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지은이의 마지막 말처럼 한 겨울 마른 나무의 살아 숨 쉬는 꿈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온전해야 세상을 바르게 살 수 있다" 하시던 그의 부모님과 "너희들이 올바른 정신으로 삶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다" 말씀하시는 나의 부모님. 이 모두 다시 그와 그의 자식들에게 또 나와 내 자식들에게 새 생명으로 봄꽃같이 다시 필 것이라 믿으며 이 소중하고 감사한 체험을 가슴 깊이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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