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681

 

내가 그리는 소방관 아버지 -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부산시 남구 대연4동 박문혁

 

  

 

# 인연 그리고 우연 #

 

구름은 이제야 묵은 때를 벗겨 땀을 흘리고, 햇님은 오랫동안 화가 나서 온몸의 모든 열을 지금에야 발산시켜 버렸다. 하늘은 수없이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자신을 원망하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한없이 부족하기에 그지없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요즘은 선물해 주신다. 창가 사이로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을 쐬이며, 책상서랍을 열어 본다. 찢어지고 나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편지들 속에 문구 하나를 발견한다. “추억할게 있다는 건 기억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하고 말이다. 학교 선배와 맺어진 작고도 크나큰 소중한 만남.

 

정말 우연찮게 알게 되어 그것을 인연으로 남기고 싶었다. 사람들은 남녀 간의 인연은 대개 사랑이라는 쉽고도 어려운 보이지도 않는 것에 치부해 버리곤 한다. 나의 주위에 있는 나를 알아주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같이 인연인데 말이다. 내가 2007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도 우연이고, 현재 살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밥 먹고 잘 살고 있는 것도 우연이자 인연이다.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어 정해져 있지 않는 시간과 싸워 가며 하얀 종이에 글을 써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지언정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라는 전공을 하고 있는 덕으로 진정 오고자 했던 길에 발을 들여 많은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 짜릿함을 느껴보고자 나에게는 하얀 표지의 깔끔하고도 따뜻한 책 한권이 주어졌다.

 

에세이 “아버지와 아들” 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 채 수학공식처럼 외웠던 청록파-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시인 중에 한 사람. 그러면 지은이는 왜 두 명일까? 제목처럼 아버지와 아들인가? 그렇게 가슴속에서는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섰다.

 

# 내 마음속의 다짐

 

아내의 만성 갑상선 질환을 바라보는 박목월 시인의 이야기. 일기체 형식으로 쓴 짧은 글들이 어찌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가슴 속에 와 닿는지.. 갑상선 질환...목이 붓고 피곤하기가 일쑤이고 저하증, 항진증이라는 구분에 따라 살아 찌고 빠지는 차이 요즈음은 수술이 보편화되어 레이저로도 가능하고 치료를 하지 않을시 갑상선 암으로도 진행 될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여자들이 대개 앓고 있는 병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외할머니의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외삼촌, 사촌동생, 이모, 어머니, 사촌 누나들 그리고 나... 외가쪽으로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몸의 기능 중 일부이다.

 

굳이 혈액검사나 유전자 확인올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건 수술을 하고 약을 먹고 있다 하며 서로서로 얘기하시는 모습에 건강을 챙기고 안부를 물어 가는 점에서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하나의 끊어지지 않는 끈인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있으면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살아가면서 절대 다치거나 아프지 마라. 아프면 누가 알아줄 사람도 없고 자신만 힘들다”라고…

 

그러한 물림을 어머니와 내가 이어가는(?) 도중에 뒤에서 사회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시고 가정에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표 하나로 한가운데 꿋꿋이 서 계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이시다. 한 달 동안 토요일, 일요일 구분 없이 몸에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담배 한 개피에 의지하여 벌어 오시는 월급의 일부가 어머니와 나의 약값에 들어가도 불평..불만에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시지 않는 모습, 오히려 꼬박꼬박 챙겨 먹어라는 자상함에 마음속에서 나중에는 내가 갚아드려야겠다는 의지가 자라게 만든다.

 

언젠가 가족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눌 때였다. 며칠 전 아버지 생신을 개인의 사정으로 못 챙겨 드린 점이 서운하셨는지 “나는 돈 벌어 주는 기계다”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응수하여 “나는 하숙집 이모”라고 농담같이 말씀하시지만 괜스레 살아가는데 있어 아들로서 재밌게 해드리지 못해 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나를 비롯한 다른 수많은 아들들은 이런 것에 있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보답해드리고 몸 건강히 그리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보여 드리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라는 인연으로 살아가면서 100년 200년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주어진 삶에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 그리고 추억

 

어렸을 때 책상 앞에 앉아 책 읽기를 누구보다도 싫어했던 자식에게 어느 날 아버지는 퇴근을 하시고 오시며, 양손에 쥐어진 건 향긋하고 신선한 과일이나 생크림이 잔뜩 발라져 부풀어진 빵이 아닌 딱딱하고도 씹을 수 없는 책 꾸러미였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쬐는 주말이었다. 밖에 나가 공을 차고 야구를 하며 한창 뛰어 놀 시기에 아버지는 책을 하나 건네시며 ‘이걸 읽고 느낀 점을 아빠한테 얘기하면 나가서 놀아도 좋다’라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것을 해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수수께끼를 하나 내 주셨다. 눈앞에는 먹구름이 끼고 뒤에서는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한 데 어쩔 수 없이 울상을 지으며 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읽었던 책이 이순신, 윤봉길, 한석봉.. 한권, 두 권 읽어가며 내용을 파악하고 느낀 점을 아버지 앞에서 말하다 보니 생각한 게 있었다. ‘그냥 저 스스로 책을 읽을 테니 느낀 첨 말하는 거 하나만 빼주세요’

 

아버지는 자식에게 스스로 책을 읽는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보면 모든 과제가 하나같이 글을 쓰는 것이기에 하루같이 펜을 잡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들을 읽는 생활을 하게 만드신 게 아버지로 인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전 동생이 군대에서 선임병으로서 후임병에게 꾸지람을 몇 마디 한 이유로 영창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쉬며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핏줄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하고 말이다. 이전에 아버지의 군생활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것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주위에 아는 분들에게 사무실에 근무를 하시면서도 쉴 때에는 수없이 전화를 하시어 아들이 어떻게 되는 건지? 조금이라도 약한 처벌을 받게 하려고 노력하신 점은 그 뒤에 휴가를 나온 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혼자가 아닌 몇 명이서 같이 처벌을 받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낙담을 하시며 지금은 지난 얘기를 아버지와 아들들은 마음이 사그러진 듯 그때의 얘기를 웃으며 할 수 있었다. 단, 어머니는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현재도 군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을 더 걱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우리들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 바라볼 수밖에 없던 아버지 사랑

 

가정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 박목월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면, 아들 박동규의 글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을 느낄 수 있다. 삼촌의 노트에 적힌 아버지의 시를 보며, “찔레꽃처럼 쑥대밭처럼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해 다오”라는 이야기를 남들이 보지 않아도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자전거 사건’을 통해서 참다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진로결정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지나친 간섭을 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한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비싸고 귀한 선물이 아닌, 작고 소박한 조금은 다른 일상을 통해서 특별한 날을 축하했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란 이름표를 살아가며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니?’ 하고 물으면 대답은 언제나 ‘소방관입니다’하고 약속처럼 대답했던 것 같다. 소방차를 타고 다니며 현장에 나가 불을 끄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나는 실감할 수 없었고 말로만 아버지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동생과 내가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곳에 가게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나를 아버지는 당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TV중계를 보여 주셨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나고 화재신고라는 방송이 귓가에 들린다. 한마디의 얘기도 못 나눈 채 아버지는 TV보고 있어라 하고 급하게 달려 나가신다. 30분이 지나 돌아오신 아버지의 얼굴은 검은 재로 뒤덮여 엉망이 되어 있었다. 생사를 가늠하지 못한 채 하늘에만 운명을 맡긴 채 남의 목숨을 살리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과 함께 헌신적인 모습을 느낀 나로서는 나의 본분에 충실하게 다잡아 주었던 것 같다.

 

# 아버지 나무

 

세월이라는 조용하고도 매섭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나의 모든 것이 커져간다. 나의 뒤에서 그늘막이 되고 쓰러질 땐 붙잡으며 기댈 수 있게 힘이 되어 주시는 나만의 나무는 고개 숙여 가고 작아지기만 한다. 하나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려웠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뤄내어 지금까지 살아 갈 수 있게 베푸시는 사랑에 나도 그 어떤 일을 하던지 마음먹은 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부끄러워질 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아버지의 아버지를 하늘에 보내시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내시는 어머니 곁에서 손잡아 주시던 그리고 눈가에 고였던 눈물을 보면서 아버지라는 우리 가정의 기둥을 옆에서라도 항상 붙잡아 드릴 거라는 마음도 되새겨 본다.

 

인연이라는 이름 하에 소방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제의 아버지로 아내의 남편으로 하늘이 이어주셨는지 누가 맺어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것에 만족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라는 말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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