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바보는 바보로 현자는 현자로 늙는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니? 노인과 어른은 분명히 엄연히 달라.”
엄마와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박완 〈디어 마이 프렌즈〉
요양원에 들어간 첫날 엉덩이가 예쁜 간호사 마릴린을 만난 레옹은 오랜만에 ‘혈기’를 느낀다. 또라이는 또라이로 현자는 현자로 늙는 법. 사람이 나이 먹는다고 크게 바뀌지 않는다. 젊어서 막되 먹게 살았던 레옹 파네크는 늙어서도 거침없는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거죽만 늙었을 뿐 젊어서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만난다.
‘늙은이 한 묶음’으로 치기엔 인생도 성격도 제각각인 이들은 레옹의 현실인 동시에 독자의 미래다. 레옹의 말마따나 그들이 처음부터 “의존적인 늙은이였던 것은 아니”며 젊은이들은 자신의 “육체가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 등이 철없고 어리석고 엉뚱한 7080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배우지 않고도 안다는 것
“폭포는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워. 그래서 이 사진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 거고.
나는 자네가 바닥과 선반에 뒹굴고 있는 책들로 잘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네.”
변증법적 유물론자 레옹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의 손자이자 노동자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의 아들인 떠돌이 범죄자 레옹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가리지 않고 엮여 살아왔고 “세상의 모든 여자를 갖기 위해 세상의 모든 남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 덕에 그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비상한 재주”를 갖춘 데다 “평생 책 한 권 펼쳐 보지 않”고도 “훌륭한 변증법”을 구사하며 “아무리 위대한 문학작품이라 해도 불이나 감자 같은 생필품보다 중요하진 않다”는 진리를 깨쳤다.
‘좀 살아도 봤고 놀만큼 놀아도 본’ 레옹은 일흔여덟의 나이에도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삶의 내연을 넓혀 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신도 젊고 아름다운 간호사 마릴린이나 잭과 로제 등 늙은 친구들의 새로운 기회가 되어 준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의 작가 알렉상드르 페라가는 ‘노인의 기억은 역사책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깨달음을 얻었거나 말았거나 노인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좀 아는 법이니까.
잘 죽는well-dying 일 잘 사는well-being 까닭
“엄마처럼 요양원에 갇혀 죽을 날 기다리지는 않아야지.
죽을 때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어야지.”
엄마·남편·딸들 수발에 바쁜 정아 〈디어 마이 프렌즈〉
레옹은 어느 날 익명의 쪽지를 받는다. “당신이 불에 타 버리도록 내버려 뒀어야 해.” “당신을 정말로 원해.” 증오와 욕망의 발신인들 말고도 그는 궁금한 게 많다. 많아야 60대 초반밖에 안 된 ‘젊은’ 놈은 왜 한껏 멋을 부린 채 요양원에 들어앉아 있는 건지 정신 나간 카뮈 부인은 대체 왜 자신을 붙잡지 못해 안달인 건지 잭은 왜 허구한 날 춤을 춰 대며 한번 가 본 적도 없는 이구아수폭포 사진을 붙여 둔 로제는 대관절 무슨 생각인 건지…….
나이를 먹어도 욕구는 변치 않는다. 인류의 오랜 꿈 더 나은 삶과 내 맘에 쏙 드는 죽음은 노인들에겐 더욱 절실한 현실이다. 레옹은 젊은 날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런 나를 나 자신의 신으로 추대했으며 내가 벌이는 하찮은 짓거리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도 이제 자력으로는 단 두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고 삶은 끝장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젊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나이 든 삶의 격렬한 몸부림을 치밀하게 보여 준다.
소설 속 청춘과 노년의 대비는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내는 동안 마침내 그 자신의 가장 내밀한 속내마저 마주한 레옹은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삶은 끝나지 않았다. 늙음은 때로 젊음을 말하고 죽음은 삶을 비추며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본질을 파헤치는 법이다.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그들은 결코 늙지 않았다
“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맞아. 그런 걸 두고 우리는 인생이라 부르지.”
바보와 현자-잭과 레옹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파산시키기도 하고 먹여 살리기도” 하는 시대 “죽어야 하지만 죽을 수 없는 노인들과 살아야 하지만 살 수 없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젊은이들은 ‘보고 배울 어른이 없다’고 탄식하고 늙은이들은 “우리 자식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간 걸까?”라고 묻는다.
자식 없이 떠돌아다닌 레옹이나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카뮈 부인이나 요양원에 갇혀 있기는 한 가지다. 부모나 자신의 노후를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왔고 1인 가구와 딩크족은 날로 늘어 간다. 수명은 늘었고 노년기는 자꾸 늦춰지고 길어진다. 100세 전후의 삶을 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는 그 고민의 답과 함께 생의 본질을 탐구한다.
등장인물
“앞으로 노인들은 시사 면의 고갈되지 않는 주제가 될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해결하지 못한 애물단지 노인이 한 명쯤은 있으니까.”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
레옹 파네크 “이봐 늙는 것도 기술이야”
관습과 규칙을 파괴하며 살아 온 전직 강도 사기꾼 포주 뱃사람. 아파트 화재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후 요양원에 들어와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삶을 시작한다.
잭 “자네는 누구인가 레옹?”
보이지 않는 여인과 매일 춤을 추는 현학적 독서가. 요양원의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 속으로 레옹을 끌어들인다.
로제 “나는 암이 없이도 존재해.”
와인 시가 야한 잡지와 콘돔 등 요양원 ‘고객’들에게 뭐든 조달하는 만물상. 한 손에는 복막 투석기를 다른 한 손에는 소시지와 치즈에 와인을 곁들이며 행복한 자살을 실천 중이다.
마릴린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그걸 즐기는 분이셨어요.”
오랜만에 레옹의 욕망을 일깨운 간호사. 솜씨 좋은 직업인이자 행복한 아이들의 어머니이다.
피에르 “기억은 창조가 아닙니다.”
빈 캔버스만 노려보는 말하지 않는 화가. 놀랍게도 그는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아니다.
카뮈 부인 “당신이 기억을 되찾을 시간을 줄게요.”
궁금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는 자신과 남편의 과거를 읊어 대는 여인. 게다가 레옹을 붙잡지 못해 안달이다!
라빌 부인 “부탁이니 제발 그 입 좀 닥쳐.”
단정히 차려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성. 외투 없이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과거에서 온 사람들
세골렌 파네크 “이 훈장은…….”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레옹의 할아버지. 어린 레옹에게 생애 최초의 기억을 만들어 준다.
앙드레 파네크 “학교는 계속 다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적 긍지로 살아가는 레옹의 아버지. 연약한 아들을 위해 헌신한다.
자닌 파네크 “네가 되어야 할 건 남자이지 노상강도가 아니란다.”
레옹의 목석같은 어머니. 남편을 잃은 후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의 삶을 산다.
이고르 “잘생긴 엉덩이는 한밑천이야.”
레옹에게 여자를 가르쳐 준 남자.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는 어둠의 큰손 몰토로프의 부하이자 레옹의 선배 격이다.
임레 “우리의 마음은 결핍된 곳이 아니라 가구와 같아요. 채워 가야 할 빈 공간이 있을 뿐이죠.”
항해 중 닥친 죽음의 늪에서 레옹을 구해 준 가짜 의사. 전 세계는 도청당하고 있고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
제니 “…….”
보스턴 상류층 출신의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레옹은 춤으로 대화하고 금욕의 사랑을 추구하는 이 아름답고 지적인 독재자에게 빠져든다.
마르가리타 “나는 사람들을 진열대 위에서 과일 고르듯 평가하지 않아요.”
브라질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재산과 삶 전체를 거리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여자. 레옹은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며 그녀의 고아원에 머문다.
마르트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실망하게 될 거예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음악 교사. ‘지금 이 순간’만을 살기로 약속한 레옹의 마지막 사랑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알렉상드르 페라가
1979년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났다. 회계학을 공부했지만 숫자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후 10년간 ‘신념과 현실을 잇고자’ 지적장애인을 위한 교육자로 일했다. 아마추어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록과 재즈 뮤지션으로도 활동한 그는 꾸준한 습작과 공모전을 통해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냈다.
알렉상드르 페라가의 첫 소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는 불멸하는 인간 존재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인간의 삶은 늘 새롭고 리드미컬하면서도 날카로운 데다 잔혹할 정도로 괴이하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느라 ‘정맥염’이라는 단어를 익혀야 했다. 게다가 쭈글쭈글한 피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끝에 비가 오리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 작가의 그리고 언어의 세계에 들어선 대가였다.”라고 말한다. 노인성 질환 환자를 위한 요양원에서의 꾸준한 봉사활동과 인터뷰의 결과로 완성된 이 소설은 2011년 전자책으로 출간됐고 2014년 5월 플라마리옹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5년에 출간된 페라가의 후속작 『혜성의 여자』(가제)도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역자 : 이안
서울에서 태어나 파리8대학에서 조형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파리에서의 생활과 여행을 주제로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으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화가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남은 생의 첫날』을 우리말로 옮겼다.
바보는 바보로 현자는 현자로 늙는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니? 노인과 어른은 분명히 엄연히 달라.”
엄마와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박완 〈디어 마이 프렌즈〉
요양원에 들어간 첫날 엉덩이가 예쁜 간호사 마릴린을 만난 레옹은 오랜만에 ‘혈기’를 느낀다. 또라이는 또라이로 현자는 현자로 늙는 법. 사람이 나이 먹는다고 크게 바뀌지 않는다. 젊어서 막되 먹게 살았던 레옹 파네크는 늙어서도 거침없는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거죽만 늙었을 뿐 젊어서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만난다.
‘늙은이 한 묶음’으로 치기엔 인생도 성격도 제각각인 이들은 레옹의 현실인 동시에 독자의 미래다. 레옹의 말마따나 그들이 처음부터 “의존적인 늙은이였던 것은 아니”며 젊은이들은 자신의 “육체가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할배〉 등이 철없고 어리석고 엉뚱한 7080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배우지 않고도 안다는 것
“폭포는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워. 그래서 이 사진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 거고.
나는 자네가 바닥과 선반에 뒹굴고 있는 책들로 잘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네.”
변증법적 유물론자 레옹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의 손자이자 노동자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의 아들인 떠돌이 범죄자 레옹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가리지 않고 엮여 살아왔고 “세상의 모든 여자를 갖기 위해 세상의 모든 남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 덕에 그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비상한 재주”를 갖춘 데다 “평생 책 한 권 펼쳐 보지 않”고도 “훌륭한 변증법”을 구사하며 “아무리 위대한 문학작품이라 해도 불이나 감자 같은 생필품보다 중요하진 않다”는 진리를 깨쳤다.
‘좀 살아도 봤고 놀만큼 놀아도 본’ 레옹은 일흔여덟의 나이에도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삶의 내연을 넓혀 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신도 젊고 아름다운 간호사 마릴린이나 잭과 로제 등 늙은 친구들의 새로운 기회가 되어 준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의 작가 알렉상드르 페라가는 ‘노인의 기억은 역사책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깨달음을 얻었거나 말았거나 노인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좀 아는 법이니까.
잘 죽는well-dying 일 잘 사는well-being 까닭
“엄마처럼 요양원에 갇혀 죽을 날 기다리지는 않아야지.
죽을 때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어야지.”
엄마·남편·딸들 수발에 바쁜 정아 〈디어 마이 프렌즈〉
레옹은 어느 날 익명의 쪽지를 받는다. “당신이 불에 타 버리도록 내버려 뒀어야 해.” “당신을 정말로 원해.” 증오와 욕망의 발신인들 말고도 그는 궁금한 게 많다. 많아야 60대 초반밖에 안 된 ‘젊은’ 놈은 왜 한껏 멋을 부린 채 요양원에 들어앉아 있는 건지 정신 나간 카뮈 부인은 대체 왜 자신을 붙잡지 못해 안달인 건지 잭은 왜 허구한 날 춤을 춰 대며 한번 가 본 적도 없는 이구아수폭포 사진을 붙여 둔 로제는 대관절 무슨 생각인 건지…….
나이를 먹어도 욕구는 변치 않는다. 인류의 오랜 꿈 더 나은 삶과 내 맘에 쏙 드는 죽음은 노인들에겐 더욱 절실한 현실이다. 레옹은 젊은 날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런 나를 나 자신의 신으로 추대했으며 내가 벌이는 하찮은 짓거리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도 이제 자력으로는 단 두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고 삶은 끝장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젊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나이 든 삶의 격렬한 몸부림을 치밀하게 보여 준다.
소설 속 청춘과 노년의 대비는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내는 동안 마침내 그 자신의 가장 내밀한 속내마저 마주한 레옹은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삶은 끝나지 않았다. 늙음은 때로 젊음을 말하고 죽음은 삶을 비추며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본질을 파헤치는 법이다.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그들은 결코 늙지 않았다
“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맞아. 그런 걸 두고 우리는 인생이라 부르지.”
바보와 현자-잭과 레옹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파산시키기도 하고 먹여 살리기도” 하는 시대 “죽어야 하지만 죽을 수 없는 노인들과 살아야 하지만 살 수 없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젊은이들은 ‘보고 배울 어른이 없다’고 탄식하고 늙은이들은 “우리 자식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간 걸까?”라고 묻는다.
자식 없이 떠돌아다닌 레옹이나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카뮈 부인이나 요양원에 갇혀 있기는 한 가지다. 부모나 자신의 노후를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왔고 1인 가구와 딩크족은 날로 늘어 간다. 수명은 늘었고 노년기는 자꾸 늦춰지고 길어진다. 100세 전후의 삶을 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는 그 고민의 답과 함께 생의 본질을 탐구한다.
등장인물
“앞으로 노인들은 시사 면의 고갈되지 않는 주제가 될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해결하지 못한 애물단지 노인이 한 명쯤은 있으니까.”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
레옹 파네크 “이봐 늙는 것도 기술이야”
관습과 규칙을 파괴하며 살아 온 전직 강도 사기꾼 포주 뱃사람. 아파트 화재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후 요양원에 들어와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삶을 시작한다.
잭 “자네는 누구인가 레옹?”
보이지 않는 여인과 매일 춤을 추는 현학적 독서가. 요양원의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 속으로 레옹을 끌어들인다.
로제 “나는 암이 없이도 존재해.”
와인 시가 야한 잡지와 콘돔 등 요양원 ‘고객’들에게 뭐든 조달하는 만물상. 한 손에는 복막 투석기를 다른 한 손에는 소시지와 치즈에 와인을 곁들이며 행복한 자살을 실천 중이다.
마릴린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그걸 즐기는 분이셨어요.”
오랜만에 레옹의 욕망을 일깨운 간호사. 솜씨 좋은 직업인이자 행복한 아이들의 어머니이다.
피에르 “기억은 창조가 아닙니다.”
빈 캔버스만 노려보는 말하지 않는 화가. 놀랍게도 그는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아니다.
카뮈 부인 “당신이 기억을 되찾을 시간을 줄게요.”
궁금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는 자신과 남편의 과거를 읊어 대는 여인. 게다가 레옹을 붙잡지 못해 안달이다!
라빌 부인 “부탁이니 제발 그 입 좀 닥쳐.”
단정히 차려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성. 외투 없이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과거에서 온 사람들
세골렌 파네크 “이 훈장은…….”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레옹의 할아버지. 어린 레옹에게 생애 최초의 기억을 만들어 준다.
앙드레 파네크 “학교는 계속 다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적 긍지로 살아가는 레옹의 아버지. 연약한 아들을 위해 헌신한다.
자닌 파네크 “네가 되어야 할 건 남자이지 노상강도가 아니란다.”
레옹의 목석같은 어머니. 남편을 잃은 후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의 삶을 산다.
이고르 “잘생긴 엉덩이는 한밑천이야.”
레옹에게 여자를 가르쳐 준 남자.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는 어둠의 큰손 몰토로프의 부하이자 레옹의 선배 격이다.
임레 “우리의 마음은 결핍된 곳이 아니라 가구와 같아요. 채워 가야 할 빈 공간이 있을 뿐이죠.”
항해 중 닥친 죽음의 늪에서 레옹을 구해 준 가짜 의사. 전 세계는 도청당하고 있고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
제니 “…….”
보스턴 상류층 출신의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레옹은 춤으로 대화하고 금욕의 사랑을 추구하는 이 아름답고 지적인 독재자에게 빠져든다.
마르가리타 “나는 사람들을 진열대 위에서 과일 고르듯 평가하지 않아요.”
브라질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재산과 삶 전체를 거리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여자. 레옹은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며 그녀의 고아원에 머문다.
마르트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실망하게 될 거예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음악 교사. ‘지금 이 순간’만을 살기로 약속한 레옹의 마지막 사랑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알렉상드르 페라가
1979년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났다. 회계학을 공부했지만 숫자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후 10년간 ‘신념과 현실을 잇고자’ 지적장애인을 위한 교육자로 일했다. 아마추어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록과 재즈 뮤지션으로도 활동한 그는 꾸준한 습작과 공모전을 통해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냈다.
알렉상드르 페라가의 첫 소설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는 불멸하는 인간 존재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인간의 삶은 늘 새롭고 리드미컬하면서도 날카로운 데다 잔혹할 정도로 괴이하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느라 ‘정맥염’이라는 단어를 익혀야 했다. 게다가 쭈글쭈글한 피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끝에 비가 오리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 작가의 그리고 언어의 세계에 들어선 대가였다.”라고 말한다. 노인성 질환 환자를 위한 요양원에서의 꾸준한 봉사활동과 인터뷰의 결과로 완성된 이 소설은 2011년 전자책으로 출간됐고 2014년 5월 플라마리옹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5년에 출간된 페라가의 후속작 『혜성의 여자』(가제)도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역자 : 이안
서울에서 태어나 파리8대학에서 조형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파리에서의 생활과 여행을 주제로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으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화가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남은 생의 첫날』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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