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곧 다가올, 우리에게 조금 먼저 도착한 목소리
소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주인공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인 ‘코피노’다. ‘코피노의 아빠 찾기’나 양육비 소송과 같은 최근의 이슈는 코피노가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할 때 독자로 하여금 몇가지 예측 가능한 상황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소설은 코피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 소재에 따르는 통상적인 기대치를 가뿐히 지나친”(심사평)다.
주인공 ‘하퍼’의 한국인 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어머니와 삼겹살 가게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재혼하여 후꾸오까에 살고 있다. 하퍼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난에 노출되어 생계를 위해 망고스퀘어에서 마약 배달, 소매치기, 불법 영상 업로드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하지만, 이는 코피노이기 때문에 하퍼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하퍼가 직면하고 있는 삶은 코피노라는 단어에 가둬두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치열하며, 파란만장한 스무살 청년의 홀로서기의 과정은 현실감 있게 드러난다. 돈을 많이 벌고, ‘미인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평범한 세부의 스무살 하퍼는 우연히 ‘베렌’을 만나게 되는데, 하퍼와 베렌이 함께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로 일본을 선택하고 서울을 경유하는 장면에서는, 말하자면 코피노 주인공에게 갖는 예상을 다시 한번 가뿐히 지나친다.
“엄마가 살고 있다는 후꾸오까로 가기 위해선 마닐라나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 서울을 선택했다. 다른 짐은 없습니까? 검색대 직원이 물었다. 짐이 될 만한 건 없었다. (…) 공항 안에서 30분 정도 걷다가 후꾸오까로 날아올랐다. 아버지가 살던 나라와는 한시간 정도 스칠 인연밖에 없었다. 인간은 몇살 때부터를 기억하는 걸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130면)
독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전개는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맛깔나게 하고, 캐릭터들에 신선한 느낌을 부여하며, 소설이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한다. “소설 저변에 흐르는 뿌리 없는 인물, 문화와 조응하며 새로운 세대의 디아스포라 혹은 노마디즘의 구현”(전성태)마저 느껴진다. 특히 대부분 국가 분단 및 가난, 정치적 망명과 같은 배경 위에서 타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정체성을 다루어온 한국문학 속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필리핀 세부섬의 망고스퀘어에서 현실을 견디는 코피노 청년의 목소리는 어쩌면 곧 다가올, 그러나 우리에게 조금 일찍 도착한 목소리”(강영숙)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하프야. 아버지가 한국인이었어. 하프란 중간, 혹은 반반 이런 뜻은 아닌 거 같아. 샌드위치 두개 중 하나는 치즈, 하나는 야채 하는 식으로 구별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벽에 가만히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내 행동이나 생각 같은 걸 하프로 나눌 수 있을까?”(149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세련된 감수성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서 처음 가족을 만나다
하퍼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단절되어’ 친구들과 함께 살다가 스무살을 맞아 혼자 독립한다. 소매치기를 하면서도 고급 참치의 맛을 아는 하퍼에게는 부모와의 단절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가명으로 원룸 계약서를 작성하고, 불법 영상 업로드로 번 돈으로 월세를 지불하는 모습은 비극적인 감상에 젖은 것이 아니라 무심한 듯한 균형마저 보인다. “계획과 인내와 규범에 매이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드물게 분방하고 담백”(심사평)한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미덕은 후반부에서 하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일본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하퍼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가 재혼한 일본인 남편을 만나러 간 하퍼와 베렌은 이제껏 망고스퀘어에서 홀로 서 있던 ‘단독자’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변모한다. 베렌은 하퍼의 어머니와 세부의 추억을 공유하고, 하퍼는 일본인 새아버지와 매일 대나무숲을 산책하며 새아버지를 받아들인다. 한편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하퍼에게 친아버지는 이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하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 종국에는 베렌의 가족까지 포함하게 된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인물들 특유의 상큼하고 담백한 모습과 삶의 방식 덕분에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까지 모두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작가가 “세련된 감수성과 놀라운 장악력을 발휘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강영숙)는 평가는 이 부분에서 유효할 것이다. 앞으로 금태현 작가가 한국문학에 들려줄 새로운 목소리와 세련된 감수성이 자못 기대된다.
“아들과 잠시 만났다 헤어지면서 즐겁게 웃을 엄마는 드물 테니까. 열차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헐렁한 물방울 무늬 치마를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자꾸 나타났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 있어서 고마워. 엄마랑 살고 싶어.
당장이라도 엄마가 뒤따라올 것 같았다. 엄마가 응답했다.
-나도 고맙다. 언젠가, 꼭 같이 살자.”(225면)
심사평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잇고 끊는 고유한 리듬을 조성하며 담담한 듯 노련하게 서사를 이끈 점이 돋보였다. ‘코피노’의 삶을 다루지만 이 소재에 따르는 통상적인 기대치를 가뿐히 지나친 점도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계획과 인내와 규범에 매이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또한 드물게 분방하고 담백한 것이어서 이 작품을 읽는 과정은 곧 다른 ‘문화’의 체험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가 한국문학의 지평을 얼마나 넓힐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 작가가 보여준 서사의 역량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앞으로 만나게 될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강영숙 백지연 심진경 은희경 전성태 정홍수 한기욱 황정아
▣ 작가 소개
저 : 금태현
1963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6년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주요 목차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007
작가인터뷰 강영숙 260
심사평 271
수상소감 273
곧 다가올, 우리에게 조금 먼저 도착한 목소리
소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주인공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인 ‘코피노’다. ‘코피노의 아빠 찾기’나 양육비 소송과 같은 최근의 이슈는 코피노가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할 때 독자로 하여금 몇가지 예측 가능한 상황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소설은 코피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 소재에 따르는 통상적인 기대치를 가뿐히 지나친”(심사평)다.
주인공 ‘하퍼’의 한국인 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어머니와 삼겹살 가게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재혼하여 후꾸오까에 살고 있다. 하퍼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난에 노출되어 생계를 위해 망고스퀘어에서 마약 배달, 소매치기, 불법 영상 업로드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하지만, 이는 코피노이기 때문에 하퍼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하퍼가 직면하고 있는 삶은 코피노라는 단어에 가둬두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치열하며, 파란만장한 스무살 청년의 홀로서기의 과정은 현실감 있게 드러난다. 돈을 많이 벌고, ‘미인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평범한 세부의 스무살 하퍼는 우연히 ‘베렌’을 만나게 되는데, 하퍼와 베렌이 함께 떠나는 여행의 목적지로 일본을 선택하고 서울을 경유하는 장면에서는, 말하자면 코피노 주인공에게 갖는 예상을 다시 한번 가뿐히 지나친다.
“엄마가 살고 있다는 후꾸오까로 가기 위해선 마닐라나 서울을 경유해야 한다. 서울을 선택했다. 다른 짐은 없습니까? 검색대 직원이 물었다. 짐이 될 만한 건 없었다. (…) 공항 안에서 30분 정도 걷다가 후꾸오까로 날아올랐다. 아버지가 살던 나라와는 한시간 정도 스칠 인연밖에 없었다. 인간은 몇살 때부터를 기억하는 걸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130면)
독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전개는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맛깔나게 하고, 캐릭터들에 신선한 느낌을 부여하며, 소설이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한다. “소설 저변에 흐르는 뿌리 없는 인물, 문화와 조응하며 새로운 세대의 디아스포라 혹은 노마디즘의 구현”(전성태)마저 느껴진다. 특히 대부분 국가 분단 및 가난, 정치적 망명과 같은 배경 위에서 타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정체성을 다루어온 한국문학 속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필리핀 세부섬의 망고스퀘어에서 현실을 견디는 코피노 청년의 목소리는 어쩌면 곧 다가올, 그러나 우리에게 조금 일찍 도착한 목소리”(강영숙)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하프야. 아버지가 한국인이었어. 하프란 중간, 혹은 반반 이런 뜻은 아닌 거 같아. 샌드위치 두개 중 하나는 치즈, 하나는 야채 하는 식으로 구별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벽에 가만히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거야. 내 행동이나 생각 같은 걸 하프로 나눌 수 있을까?”(149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세련된 감수성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서 처음 가족을 만나다
하퍼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단절되어’ 친구들과 함께 살다가 스무살을 맞아 혼자 독립한다. 소매치기를 하면서도 고급 참치의 맛을 아는 하퍼에게는 부모와의 단절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가명으로 원룸 계약서를 작성하고, 불법 영상 업로드로 번 돈으로 월세를 지불하는 모습은 비극적인 감상에 젖은 것이 아니라 무심한 듯한 균형마저 보인다. “계획과 인내와 규범에 매이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드물게 분방하고 담백”(심사평)한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미덕은 후반부에서 하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일본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하퍼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가 재혼한 일본인 남편을 만나러 간 하퍼와 베렌은 이제껏 망고스퀘어에서 홀로 서 있던 ‘단독자’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변모한다. 베렌은 하퍼의 어머니와 세부의 추억을 공유하고, 하퍼는 일본인 새아버지와 매일 대나무숲을 산책하며 새아버지를 받아들인다. 한편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하퍼에게 친아버지는 이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하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 종국에는 베렌의 가족까지 포함하게 된다.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인물들 특유의 상큼하고 담백한 모습과 삶의 방식 덕분에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까지 모두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작가가 “세련된 감수성과 놀라운 장악력을 발휘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강영숙)는 평가는 이 부분에서 유효할 것이다. 앞으로 금태현 작가가 한국문학에 들려줄 새로운 목소리와 세련된 감수성이 자못 기대된다.
“아들과 잠시 만났다 헤어지면서 즐겁게 웃을 엄마는 드물 테니까. 열차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헐렁한 물방울 무늬 치마를 입은 엄마의 뒷모습이 자꾸 나타났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 있어서 고마워. 엄마랑 살고 싶어.
당장이라도 엄마가 뒤따라올 것 같았다. 엄마가 응답했다.
-나도 고맙다. 언젠가, 꼭 같이 살자.”(225면)
심사평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잇고 끊는 고유한 리듬을 조성하며 담담한 듯 노련하게 서사를 이끈 점이 돋보였다. ‘코피노’의 삶을 다루지만 이 소재에 따르는 통상적인 기대치를 가뿐히 지나친 점도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계획과 인내와 규범에 매이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또한 드물게 분방하고 담백한 것이어서 이 작품을 읽는 과정은 곧 다른 ‘문화’의 체험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가 한국문학의 지평을 얼마나 넓힐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 작가가 보여준 서사의 역량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앞으로 만나게 될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강영숙 백지연 심진경 은희경 전성태 정홍수 한기욱 황정아
▣ 작가 소개
저 : 금태현
1963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6년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주요 목차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007
작가인터뷰 강영숙 260
심사평 271
수상소감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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