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멍청한 여자들에 대해 들어왔다.
위험한 남자들보다, 멍청한 여자들에 대한 경고를 더 많이 들어왔다.”
불안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신예, 강화길 첫 소설집!
태평성대에 사람들은 목가를 부른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스러져가는 세계,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웅크린 채 끝을 노래하는 사람들. 편안한 소진[安盡]의 노래. 절망이 희망보다 안락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불안하다면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바로 그 안락을 뒤흔드는 힘이 강화길 소설에는 있다. 그것을 읽으며 우리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불안이 전염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 너는 병들었는데 아프지 않으냐는 질문이 더 아프다. 서서히 모로 눕는 배에서 가장 먼저 불안에 떠는 것은 쥐떼가 아니라 작가들이다. 환멸과 허무와 도피와 무시와 냉소와 분노가 다 지나간 후, 이제 뭔가가 다시 시작되었다. _황현경(문학평론가)
독자의 시야를 가림으로써 구현되는 ‘여성’ 스릴러
일상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기원을 천착하는 신인작가 강화길의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이 출간되었다. 그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황석영, 최인석으로부터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가는 작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갓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점에 이미 “주제를 장악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던 믿음직한 소설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강화길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86년생 여성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가상현실’로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장면들은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아 있다. 밤늦은 귀갓길, 뒤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위협적인 기척이라거나 좀처럼 실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새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소문, 통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항을 포기한 채,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무기력한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강화길은 주로 스릴러의 문법을 활용하여 이러한 경험들을 소설화하는데, 이 장르가 소설 속에 형성된 불안감을 추체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직접 느껴왔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화길은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설정하는 장기를 발휘한다. 문학평론가 황현경은 이 소설집의 해설에서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놓치고 있다는 직감, 불안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강화길 소설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1인칭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독자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맹점, 즉 화자의 주관적 서술로 인해 상황을 전지全知할 수 없다는 한계는 화자의 불안감을 야기하는 다른 인물들이 미처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한 이면의 사건을 짐작해보게 한다. 화자의 서술이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독자는 지금껏 소설 속에 설치되어 있던 정교한 함정에 무심코 빠져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화자에게 습관적으로 보내왔던 신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인식 전환의 순간 분출되는 쾌감은 강화길 소설이 선사하는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이 정교하게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며 비로소 실감되는 것은
명징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 타자他者에의 폭력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은 아들을 좋은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백방으로 노력하는 여성 ‘나’를 화자로 내세운다. 내 아이가 뭔가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 기분이 좋고, 그것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은 부모로서는 응당 가질 만한 것이므로, ‘나’는 아들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 여자들의 시기와 폭력적인 시선을 애써 무시한다. 그녀의 과한 교육열이 아들을 혹사시킨다는 소문은 다른 애엄마들의 질투에 의해 퍼진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일축해버리면서. 하지만 사실 ‘나’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데 대한 비틀린 열등감을 감추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아들에게 거는 ‘나’의 기대가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아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를 ‘귀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인가, 스스로 ‘귀한 사람’이 되려는 것인가.
이렇듯 타인에게(혹은 독자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상황을 왜곡하여 들려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부디 ‘괜찮은 사람’이기를 공포에 떨며 바라고 있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강화길은 부수적인 사건들을 통해서라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의식적/무의식적 폭력을 작품 속에 드러내왔는데, 특히 남성의 폭력은 그녀들에게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도드라져 읽힌다. 「벌레들」과 「눈사람」에는 여자친구/아내에 대한 남성의 신체적 학대가 그려져 있으며,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소연하는 여동생 ‘타니 칸’에게 쏟아지는 오빠의 무자비한 구타는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명예 살인을 떠올리게 한다. 「방」에서 ‘재인’의 하루 일당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희롱하려는 팀장의 행위는 직장 내 성폭력으로도 읽힌다. 「당신을 닮은 노래」 중 한 장면, 운전을 하는 여성 화자 ‘수진’에게 내뱉어지는 남성 운전자의 욕설 또한 여성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들어왔던 것인가.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정말 위험한 것은 명징하지 않은 폭력이 아닐까. 실체가 없으니 의식하기 어려울뿐더러, 그런 폭력은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예민한 존재’로 뭉뚱그려 취급한다. 이러한 타자화를 통해, 가해자는 여성이 느낀 공포의 원인을 이해할 필요 없다는 면죄부를 제공받는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인 여성마저 본인에게 어떤 잘못이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저항을 유보함으로써 이러한 폭력을 일상 속에 침투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이후 여성들은 남성의 행위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 사실을 묵인하거나 회피하며 살아간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괜찮은 사람」과 「호수―다른 사람」 속에 무섭도록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표제작 「괜찮은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함께 살 집을 보러 떠나는 ‘나’의 이야기로, 공간적 배경이 시종일관 남자의 차 안으로 고정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며칠 전, 남자는 ‘나’를 (실수로) 밀쳐 다치게 했는데 상처를 돌봐주려는 남자의 배려는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마저 위협적으로 느낌에도, ‘나’는 왠지 남자에게 거절을 할 수 없다. ‘나’를 다치게 했던 그의 행위가 정말 실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 역시 ‘나’가 다쳤던 경험 때문에 훌륭한 연인의 배려를 곡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 없다. 과연 그는 괜찮은 사람인가.
「호수」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가사상태에 빠진 친구를 둔 ‘나’가 친구의 연인 ‘이한’과 함께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이야기이다. 친구가 쓰러져 있던 호숫가로 향하는 중, ‘나’는 자꾸만 ‘이한’이 친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친구로부터 그의 혐의를 증명할 만한 발언을 들은 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그와 단둘이 걷는 일이 두려워진다. ‘나’의 공포감은 일면 타당한데, 그녀가 예전부터 여성에게 일어나곤 하는 위험한 사건들에 대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피해자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남성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수용했다. “그래야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에. 뒤이어 ‘나’는 폭력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실마리일지도 모를 호수 속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물건을 마주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나’는 ‘이한’에게서 어떤 위협을 느끼며 다시 한번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이후 벌어진 일은 드러나지 않은 채 작품은 끝을 맺는데, 그렇다면 대체 ‘나’가 행한 일이란 무엇일까.
강화길 소설은 대부분의 경우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을 해하려 했든 아니든, 그녀들이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강화길은 타인에게 ‘유난스럽다’고 여겨지거나 스스로를 예민한 상태라고 검열하는 여성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녀들에겐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학습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를 고민해보도록 유도한다. 이를 숙지한 뒤 「호수」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어보자. 화자 ‘나’가 해야 했던 일이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이한’에게도 순응하는 것이었을까? 이 “그래야 할 것 같았다”의 의미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왔던 폭력에 항거할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 고인 안락을 뒤흔드는 소설의 힘
강화길이 2012년 발표한 등단작 「방」은, 무너져내리는 세계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연인 곁을 지키는 한 인물의 처절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흘렀지만, 세계는 복구될 가망 없이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혐오 발화가 우리의 언어를 채우고 있고, 드러난 폭력의 충격에 더해 감춰진 폭력이 우리를 학습된 무기력에 빠뜨린다. 파국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개인의 삶만이 아니다. 우리가 주권을 위임하며 그것을 올바로 행사해주길 바랐던 이들마저도 거대한 파국을 현실로 당겨오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소설 속 개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신뢰해야 마땅한 자들의 목소리마저 믿을 수 없는 세계 속에 놓였다.
그리고, 불안해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희망을 버리고 안락한 절망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은 ‘괜찮다’고 애써 믿으며. 강화길 소설 속 화자들은 그런 이들을 투영하고 있다고 읽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집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세계를 찢고 나오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머무는 쪽을 택하므로. 황현경은 해설에서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절망이 희망보다 안락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불안하다면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에 따르면, 강화길의 소설은 그런 우리의 안락을 뒤흔드는 경고다. 여러 편의 소설에서 거듭 등장하는, 아마도 편안한 소진[安盡]을 의미하는 듯한 ‘안진’이라는 지명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깨닫도록 작가가 던지는 힌트이기도 하다.
순진한 믿음에 균열을 내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번 더 의심해보게 함으로써, 강화길 소설은 우리에게 무너져가는 세계를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뒤 우리는 안락 속에 애써 묻어두었던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작가의 말
“I am the captain of my fat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Shirley Jackson
* 강화길이 이 지면에 통상적인 ‘작가의 말’을 적는 대신 셜리 잭슨의 문장을 인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강화길 소설이 셜리 잭슨의 작품들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화길이 소설가로서 목표하는 바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문구가 남편으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하던 셜리 잭슨이 남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던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강화길 소설을 관통하는 ‘여성해방’이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 작가 소개
저자 : 강화길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주요 목차
호수 - 다른 사람 _007
니꼴라 유치원 - 귀한 사람 _043
괜찮은 사람 _079
벌레들 _107
당신을 닮은 노래 _137
방 _165
눈사람 _193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_221
해설 | 황현경(문학평론가)
모르는 사람 _255
작가의 말 _273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멍청한 여자들에 대해 들어왔다.
위험한 남자들보다, 멍청한 여자들에 대한 경고를 더 많이 들어왔다.”
불안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신예, 강화길 첫 소설집!
태평성대에 사람들은 목가를 부른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스러져가는 세계,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웅크린 채 끝을 노래하는 사람들. 편안한 소진[安盡]의 노래. 절망이 희망보다 안락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불안하다면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바로 그 안락을 뒤흔드는 힘이 강화길 소설에는 있다. 그것을 읽으며 우리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불안이 전염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왜 너는 병들었는데 아프지 않으냐는 질문이 더 아프다. 서서히 모로 눕는 배에서 가장 먼저 불안에 떠는 것은 쥐떼가 아니라 작가들이다. 환멸과 허무와 도피와 무시와 냉소와 분노가 다 지나간 후, 이제 뭔가가 다시 시작되었다. _황현경(문학평론가)
독자의 시야를 가림으로써 구현되는 ‘여성’ 스릴러
일상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기원을 천착하는 신인작가 강화길의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이 출간되었다. 그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황석영, 최인석으로부터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가는 작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갓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점에 이미 “주제를 장악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던 믿음직한 소설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강화길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86년생 여성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가상현실’로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장면들은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아 있다. 밤늦은 귀갓길, 뒤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위협적인 기척이라거나 좀처럼 실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새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본인에 대한 소문, 통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항을 포기한 채,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무기력한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강화길은 주로 스릴러의 문법을 활용하여 이러한 경험들을 소설화하는데, 이 장르가 소설 속에 형성된 불안감을 추체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직접 느껴왔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화길은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설정하는 장기를 발휘한다. 문학평론가 황현경은 이 소설집의 해설에서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놓치고 있다는 직감, 불안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강화길 소설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1인칭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독자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맹점, 즉 화자의 주관적 서술로 인해 상황을 전지全知할 수 없다는 한계는 화자의 불안감을 야기하는 다른 인물들이 미처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한 이면의 사건을 짐작해보게 한다. 화자의 서술이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독자는 지금껏 소설 속에 설치되어 있던 정교한 함정에 무심코 빠져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화자에게 습관적으로 보내왔던 신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인식 전환의 순간 분출되는 쾌감은 강화길 소설이 선사하는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이 정교하게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며 비로소 실감되는 것은
명징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 타자他者에의 폭력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은 아들을 좋은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백방으로 노력하는 여성 ‘나’를 화자로 내세운다. 내 아이가 뭔가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 기분이 좋고, 그것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은 부모로서는 응당 가질 만한 것이므로, ‘나’는 아들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 여자들의 시기와 폭력적인 시선을 애써 무시한다. 그녀의 과한 교육열이 아들을 혹사시킨다는 소문은 다른 애엄마들의 질투에 의해 퍼진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일축해버리면서. 하지만 사실 ‘나’가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데 대한 비틀린 열등감을 감추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아들에게 거는 ‘나’의 기대가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아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를 ‘귀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인가, 스스로 ‘귀한 사람’이 되려는 것인가.
이렇듯 타인에게(혹은 독자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상황을 왜곡하여 들려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부디 ‘괜찮은 사람’이기를 공포에 떨며 바라고 있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강화길은 부수적인 사건들을 통해서라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의식적/무의식적 폭력을 작품 속에 드러내왔는데, 특히 남성의 폭력은 그녀들에게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도드라져 읽힌다. 「벌레들」과 「눈사람」에는 여자친구/아내에 대한 남성의 신체적 학대가 그려져 있으며,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소연하는 여동생 ‘타니 칸’에게 쏟아지는 오빠의 무자비한 구타는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명예 살인을 떠올리게 한다. 「방」에서 ‘재인’의 하루 일당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희롱하려는 팀장의 행위는 직장 내 성폭력으로도 읽힌다. 「당신을 닮은 노래」 중 한 장면, 운전을 하는 여성 화자 ‘수진’에게 내뱉어지는 남성 운전자의 욕설 또한 여성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들어왔던 것인가.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정말 위험한 것은 명징하지 않은 폭력이 아닐까. 실체가 없으니 의식하기 어려울뿐더러, 그런 폭력은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예민한 존재’로 뭉뚱그려 취급한다. 이러한 타자화를 통해, 가해자는 여성이 느낀 공포의 원인을 이해할 필요 없다는 면죄부를 제공받는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인 여성마저 본인에게 어떤 잘못이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저항을 유보함으로써 이러한 폭력을 일상 속에 침투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이후 여성들은 남성의 행위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 사실을 묵인하거나 회피하며 살아간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괜찮은 사람」과 「호수―다른 사람」 속에 무섭도록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표제작 「괜찮은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함께 살 집을 보러 떠나는 ‘나’의 이야기로, 공간적 배경이 시종일관 남자의 차 안으로 고정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며칠 전, 남자는 ‘나’를 (실수로) 밀쳐 다치게 했는데 상처를 돌봐주려는 남자의 배려는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마저 위협적으로 느낌에도, ‘나’는 왠지 남자에게 거절을 할 수 없다. ‘나’를 다치게 했던 그의 행위가 정말 실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 역시 ‘나’가 다쳤던 경험 때문에 훌륭한 연인의 배려를 곡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 없다. 과연 그는 괜찮은 사람인가.
「호수」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가사상태에 빠진 친구를 둔 ‘나’가 친구의 연인 ‘이한’과 함께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이야기이다. 친구가 쓰러져 있던 호숫가로 향하는 중, ‘나’는 자꾸만 ‘이한’이 친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친구로부터 그의 혐의를 증명할 만한 발언을 들은 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그와 단둘이 걷는 일이 두려워진다. ‘나’의 공포감은 일면 타당한데, 그녀가 예전부터 여성에게 일어나곤 하는 위험한 사건들에 대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피해자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남성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수용했다. “그래야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에. 뒤이어 ‘나’는 폭력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실마리일지도 모를 호수 속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물건을 마주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나’는 ‘이한’에게서 어떤 위협을 느끼며 다시 한번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이후 벌어진 일은 드러나지 않은 채 작품은 끝을 맺는데, 그렇다면 대체 ‘나’가 행한 일이란 무엇일까.
강화길 소설은 대부분의 경우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을 해하려 했든 아니든, 그녀들이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강화길은 타인에게 ‘유난스럽다’고 여겨지거나 스스로를 예민한 상태라고 검열하는 여성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녀들에겐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학습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를 고민해보도록 유도한다. 이를 숙지한 뒤 「호수」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어보자. 화자 ‘나’가 해야 했던 일이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이한’에게도 순응하는 것이었을까? 이 “그래야 할 것 같았다”의 의미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왔던 폭력에 항거할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 고인 안락을 뒤흔드는 소설의 힘
강화길이 2012년 발표한 등단작 「방」은, 무너져내리는 세계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연인 곁을 지키는 한 인물의 처절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흘렀지만, 세계는 복구될 가망 없이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혐오 발화가 우리의 언어를 채우고 있고, 드러난 폭력의 충격에 더해 감춰진 폭력이 우리를 학습된 무기력에 빠뜨린다. 파국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개인의 삶만이 아니다. 우리가 주권을 위임하며 그것을 올바로 행사해주길 바랐던 이들마저도 거대한 파국을 현실로 당겨오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소설 속 개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신뢰해야 마땅한 자들의 목소리마저 믿을 수 없는 세계 속에 놓였다.
그리고, 불안해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희망을 버리고 안락한 절망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은 ‘괜찮다’고 애써 믿으며. 강화길 소설 속 화자들은 그런 이들을 투영하고 있다고 읽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집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세계를 찢고 나오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머무는 쪽을 택하므로. 황현경은 해설에서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절망이 희망보다 안락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불안하다면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에 따르면, 강화길의 소설은 그런 우리의 안락을 뒤흔드는 경고다. 여러 편의 소설에서 거듭 등장하는, 아마도 편안한 소진[安盡]을 의미하는 듯한 ‘안진’이라는 지명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깨닫도록 작가가 던지는 힌트이기도 하다.
순진한 믿음에 균열을 내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번 더 의심해보게 함으로써, 강화길 소설은 우리에게 무너져가는 세계를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소설집을 읽은 뒤 우리는 안락 속에 애써 묻어두었던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작가의 말
“I am the captain of my fat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laughter is possible.”
?Shirley Jackson
* 강화길이 이 지면에 통상적인 ‘작가의 말’을 적는 대신 셜리 잭슨의 문장을 인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강화길 소설이 셜리 잭슨의 작품들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화길이 소설가로서 목표하는 바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문구가 남편으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하던 셜리 잭슨이 남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던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강화길 소설을 관통하는 ‘여성해방’이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 작가 소개
저자 : 강화길
198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주요 목차
호수 - 다른 사람 _007
니꼴라 유치원 - 귀한 사람 _043
괜찮은 사람 _079
벌레들 _107
당신을 닮은 노래 _137
방 _165
눈사람 _193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_221
해설 | 황현경(문학평론가)
모르는 사람 _255
작가의 말 _273
01. 반품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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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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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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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