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최일남 소설집 - 아주 느린 시간
아주 천천히 노년의 시간을 저작하는 작가 최일남의 원숙한 손길,
경이로운 문학적 광경으로 피어나는 삶의 숨은 갈피들!
▣ 주요 목차
고도는 못 오신다네
아주 느린 시간
힘
사진
그들은 말했네
풍경
속삭임 외로움
띠
작가 최일남의 소설적 균형감각은 절묘하게 유지되어오고 있다. 그 끝에 매달린 붉은 열매, 작가 스스로 '노을지경'이라 부르는 이번 작품집이 지울 수 없는 증거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절묘한 균형감각의 소중함은 수시로 점검되고 강조되어 마땅하다. 번번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가곤한 이 나라 문학판을 봐온 사람이라면 최일남식 글쓰기의 절묘한 균형감각이 지닌 진가를 확인하고도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최일남의 소설을 읽다 보면 옹기가 떠오른다. 불가마에서 다시 태어난 옹기의 재질은 완강하지만, 그 형태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어디 그뿐이랴, 옹기는 숨을 쉬는 것이다. 최일남의 소설들은 옹기와 같은 문체로 숨을 쉬며 살아 있다. 그의 옹기들은 요즘 늙음과 죽음을 담고 있다. 늙음과 죽음을 비위생적인 것, 부도덕한 것으로 보는 이 경박단소한 세상 한가운데 그의 옹기가 놓여 있다.
덩그러니 '놓여있음'으로 인간과 세상의 천박함을 질타한다.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가 장악한 이 썩지 않는 시대에 옹기와 같이 엄연한 우리 문장은, 느림과 더불어 늙음과 죽음이 가까운 미래의 키워드가 될 것임을, 아니 이미 되어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아주 느린 시간 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처에 이렇게 노인들이 몰려오는 장관을 아무튼 눈 크게 뜨고 보라'
- 이문재 시인
▣ 신문 서평
최일남 4년만에 신작
“그저 그냥 그렇게 써 줏시요. 안 써도 상관없고.” 작가 최일남(68) 씨와 통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작품집을 내놓고는, “늙어가는 노인이 그냥 하나 썼다고 해놓으시오”라고 말하며 하냥 쑥쓰러워한다.
원로의 그 쑥쓰러워함이 까만 전화줄을 타고 건너와 전화를 건 쪽의 얼굴까지 물들이는 듯하다. 1953년 ‘쑥 이야기’로 등단했으니, 언론사 논객으로서의 경력과 더불어 어느덧 반세기를 헤아리는 글쓰기다.
그의 글이 주는 재미는 누가 뭐래도 우선은 문체일 듯하다. 낭창낭창하게 휘늘어지며 독자의 가슴을 헤집는 대목을 읽다보면, 참기름같이 구수한 “남도의 서정”까지도 손에 잡혀 올 것만 같다.
그가 4년만에 12번째로 엮어 내놓는 작품집 [아주 느린 시간](문학동네)도 최일남의 매료점을 한껏 맛보게 해준다. 이 책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첫작품 ‘고도는 못 오신다네’는, 친구가 산다는 술 한잔을 기다리고 있는 두 노인과 그들의 추억담을 그리고 있다. 노년의 고집은 외로움을 동반하고, 시간은 흐름과 정지를 반복한다.
표제작 ‘아주 느린 시간’은 신도시에 사는 다섯 노인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전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이들의 모습과 대화를 ‘죽음 끼고 살기’의 센티멘털리즘으로 해석한다.
‘힘’도 역시 노인 얘기다. 체력 증강과 운동회를 통한 노인들의 힘 자랑, 그러나 그보다는 무력감이나 노추의 쓸쓸함을 더많이 돌아보게 만든다. ‘사진’은 죽음에 대한 얘기이고, ‘그들은 말했네’는 이사를 앞두고 책 짐을 정리하는 한 노인의 당혹스러움이 엮어져 있다.
김윤식은 이 작품을 두고 “절묘한 소설적 균형감각”을 획득한 최일남에게 “작가의 글쓰기의 모든 비밀이 들어 있는” 걸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작품 ‘풍경’은 사회 지도급 지위에서 한 평생을 머물다 정년퇴직한 사람의 일상이다. 직함이 없어지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완장을 벗으면 팔에 힘이 빠진다.
‘속삭임 외로움’은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발사와, 또 자기 글을 읽는 독자와 나누는 대화들이 서술돼 있고, 마지막 단편 ‘띠’는 평생 백면서생이었던 주인공이 어떤 조직의 위원장 자리를 맡으며 벌어지는 얘기다.
이번 작품집은 ‘노을지경’으로 통칭되는 작가의 근작들이 모인 것이고, 그 안에 실린 작품들은 여일하게 인생의 후반부를 그려내고 있다. 시인 이문재는 “최일남의 소설들은 옹기와 같은 문체로 숨을 쉬며 살아 있다”고 말하고, “플라스틱과 스테인레스가 장악한 이 썩지 않는 시대에 옹기와 같이 엄연한 우리 문장은, 느림과 더불어 늙음과 죽음이 가까운 미래의 키워드가 될 것임을, 아니 이미 되어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작가는 단편 [아주 느린 시간]의 말미에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도처에 이렇게 노인들이 몰려오는 장관을 아무튼 눈 크게 뜨고 보라.’
[2000.11.06 김광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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