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역사에서 진실은 가릴 수 없다!
이화여대 역사학관련 교수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통해 “역사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학문이 아니다. 사실이 있으면 쓰고, 지도자의 공과는 엄정하게 평가한다. 이것이 사관史官의 정신이고,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 세운 기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관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해 왔을까? 사관은 붓 한자루에 목숨을 거는 사람, 그들에 의해 조선왕조실록은 쓰여졌던 것이다.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담당한 춘추관의 관직은 전임專任 없이 모두 다른 직과 겸하였지만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한 예문관의 사관 8명(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은 역사 기록에 관련된 직무만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존재로 이들을 일컬어 한림翰林이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정7품에서 정9품까지 직위는 매우 낮았지만 항상 임금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만인지상조차 눈치를 살피는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자격 조건이 매우 엄격해 기개가 높고 올곧아야 할 뿐 아니라 학문과 문장과 문벌까지 좋아야 했다. 그러므로 대개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사람 중에서도 문벌이 좋은 사람을 사관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결원이 있을 때에는 예문관 사관들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경사經史와 문장文章을 시험하고 문벌을 조사하여 흠이 없는 사람을 임명하였으므로 엘리트 코스에 접어든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의 초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관 제도는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사건, 임금의 언행, 관리들의 공과, 그 시대의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관이 기록한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조차 볼 수 없었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권력의 눈치를 실펴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일종의 면책권을 주었다.
하지만 사관들이 쓴 사초로 인해 필화를 겪은 일이 없지는 않았다.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는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기 위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장史章에 올렸다가 일어난 것이며, 또 명종 때에는 을사사화 당시의 시정기時政記를 집필한 안명세를 죽이고 시정기를 고친 일도 있었다.
《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은 죽음이 멀지 않음을 예감한 수양이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켰던 계유정난과 단종의 선위와 죽음을 정당화 하고 역사 속에서 성군으로 살아남고자 노심초사하는 과정에서, 수양을 아예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자 하는 의문의 무리 그리고 후세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관들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소설이든 드라마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폭풍의 시대를 살았던 사관들은 어떤 존재인지, 진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관들의 맨얼굴과 역사가 갖는 의미를 이 소설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직접 혹은 행간에 진실을 담았던 사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결국 거짓을 부식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실록청에 불을 지르려는 은후에게 세주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역사란,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지.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라네. 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 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일세.”
▣ 작가 소개
저 : 박준수
소설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 관련 일을 했으며, 전작으로 장편소설 《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재상의 꿈》이 있다.
▣ 주요 목차
폭풍속의 실록청 - 8
사초납입 - 64
춘추필법 - 128
필화筆禍 - 184
재회 - 244
Epilogue - 318
역사에서 진실은 가릴 수 없다!
이화여대 역사학관련 교수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통해 “역사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학문이 아니다. 사실이 있으면 쓰고, 지도자의 공과는 엄정하게 평가한다. 이것이 사관史官의 정신이고,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하면서 세운 기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관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해 왔을까? 사관은 붓 한자루에 목숨을 거는 사람, 그들에 의해 조선왕조실록은 쓰여졌던 것이다.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담당한 춘추관의 관직은 전임專任 없이 모두 다른 직과 겸하였지만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한 예문관의 사관 8명(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은 역사 기록에 관련된 직무만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존재로 이들을 일컬어 한림翰林이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정7품에서 정9품까지 직위는 매우 낮았지만 항상 임금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만인지상조차 눈치를 살피는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자격 조건이 매우 엄격해 기개가 높고 올곧아야 할 뿐 아니라 학문과 문장과 문벌까지 좋아야 했다. 그러므로 대개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사람 중에서도 문벌이 좋은 사람을 사관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결원이 있을 때에는 예문관 사관들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경사經史와 문장文章을 시험하고 문벌을 조사하여 흠이 없는 사람을 임명하였으므로 엘리트 코스에 접어든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의 초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관 제도는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사건, 임금의 언행, 관리들의 공과, 그 시대의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관이 기록한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조차 볼 수 없었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권력의 눈치를 실펴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일종의 면책권을 주었다.
하지만 사관들이 쓴 사초로 인해 필화를 겪은 일이 없지는 않았다.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는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기 위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장史章에 올렸다가 일어난 것이며, 또 명종 때에는 을사사화 당시의 시정기時政記를 집필한 안명세를 죽이고 시정기를 고친 일도 있었다.
《왕을 기록하는 여인, 사관》은 죽음이 멀지 않음을 예감한 수양이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켰던 계유정난과 단종의 선위와 죽음을 정당화 하고 역사 속에서 성군으로 살아남고자 노심초사하는 과정에서, 수양을 아예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자 하는 의문의 무리 그리고 후세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관들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소설이든 드라마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폭풍의 시대를 살았던 사관들은 어떤 존재인지, 진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관들의 맨얼굴과 역사가 갖는 의미를 이 소설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직접 혹은 행간에 진실을 담았던 사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결국 거짓을 부식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실록청에 불을 지르려는 은후에게 세주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역사란,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지.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라네. 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 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일세.”
▣ 작가 소개
저 : 박준수
소설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 관련 일을 했으며, 전작으로 장편소설 《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재상의 꿈》이 있다.
▣ 주요 목차
폭풍속의 실록청 - 8
사초납입 - 64
춘추필법 - 128
필화筆禍 - 184
재회 - 244
Epilogue - 318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