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2011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의 국내 첫 출간작
끝없이 새로운 문을 열며 독자를 매혹하는 이야기의 성채
소설의 신세기를 열다!
뉴욕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선정 ‘주목할 만한 책’
시카고 트리뷴, 캔자스시티 스타, 로키마운틴 뉴스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동시대 가장 중요한 미국 작가, 제니퍼 이건을
고딕소설과 메타픽션을 넘나드는 『킵』으로 만난다
2011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이 장편 『킵』(2006)을 통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인 제니퍼 이건은 “냉철하고 명쾌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을 쓰는 작가이자 오늘날 미국인의 삶에 관한 흥미로운 이슈들을 다뤄온 작가이다. 매번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어떤 정형화된 접근도 거부해온 그녀는 『킵』에서 고딕소설의 틀을 빌려 이미지에 대한 미국적 강박관념, 현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역할을 그리고 있다.
『킵』은 고성古城과 환영이 등장하는 고딕소설인가 싶다가도 뉴욕의 힙스터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메타픽션의 구조를 띠며 한 수감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마치 소설 속 수많은 계단과 복도, 미로로 이뤄진 9백 년 된 성처럼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의 문을 열며 독자를 매혹한다. 장르와 클리셰를 아찔할 만큼 현란하게 전유하면서도 시종일관 상황을 코믹하게 이끌어가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결국에는 인간 본성과 도덕에 대한 통찰에 다다른다. 메타픽션으로는 드물게 이야기와 이야기를 엮는 뛰어난 솜씨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인 진실성까지 성취하는 『킵』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유별나게 재미있고 심오하게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문학동네는 『킵』에 이어 2011년 퓰리처상 수상작인『깡패들의 방문』도 출간할 예정이다. 가장 현재적인, 그래서 더없이 실험적인 언어를 통해 시간의 비가역성과 그 부조리와 비애를 그린 『깡패들의 방문』은 제니퍼 이건이 일관되게 다뤄온 주제와 형식이 정점에 이른 작품일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끝없는 미궁의 입구,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
호텔 ‘킵’입니다.
문화의 최첨단을 누린다는 자부심에 젖어 세월을 흘려보낸 뉴요커 대니는 동유럽 어딘가에 있는 고성을 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사촌 하위의 부탁을 받는다. 마침 식당의 바지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곤란한 지경에 빠진 터라 서둘러 그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대니와 하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어린 시절의 외상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얄궂게도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입양아에 놀림감의 대상이었던 하위는 채권 트레이더로 변신해 엄청난 부를 쌓고 삼십대 중반에 은퇴한 반면, 촉망받는 고등학교 축구선수였던 대니는 서른여섯이 되도록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것이다.
대니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곳은 폰 아우스블링커 가문이 대대로 9백 년이나 살았었다는 성으로, 폐허나 다름없는 모습에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잠시라도 사람들과, 바깥세상과 접속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대니는 힘겹게 이고 간 위성안테나가 무용지물이 되자 점점 편집증적 망상에 빠져든다. 이 모든 게 하위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치밀하게 짜놓은 덫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그것이다.
오래전 수영장에 빠져 죽었다는 쌍둥이, 아성의 창가에 얼핏 보이는 아름다운 처녀의 실체인 백 살 가까운 남작부인이 있는 성 안에 고립된 대니의 상황은, 알고 보면 한 남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도소의 작문 워크숍에서 수감자인 레이가 발표하는 글인 것이다. 감방 동료 데이비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수업을 신청했던 레이는 선생 홀리를 통해 글쓰기와 상상의 세계로 인도되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간신히 일어선 홀리는 레이를 통해 어린 시절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속삭이던 목소리를 되찾는다. 레이의 어설프지만 힘 있는 글은 동료 죄수들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먼지 구덩이 신발상자를 유령과 통혼하는 라디오라고 믿는 데이비스까지 사로잡는다. 그러나 사물이 본래의 용도 이상으로 얼마든지 활용되고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감옥에서 레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치명적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원초적 상상과
지적 퍼즐의 세계로 이끄는 소설
제목인 ‘킵The Keep’은 성이 침략당할 경우 사람들이 숨는 최후의 보루, 아성牙城을 가리킨다. 『킵』은 제니퍼 이건이 남편과 생후 8주째인 아들과 함께 벨기에를 여행하던 중 제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성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오갈 데 없는 가련한 처지의 여인이 성이나 저택에서 초자연 현상에 시달린다는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설정은 『킵』에서 배경이 현대로, 주인공이 남자로 바뀌면서 작가가 의도했던 얄팍하고 인위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미지에 대한 미국적 강박관념, 즉 이미지를 통한 자기 발명이야말로 미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니퍼 이건(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모델로 일했던 경험으로 이를 잘 알고 있다)은 고딕소설의 기괴하고 폐쇄적인 특성이야말로 이미지 문화에 오도된 고스족 대니를 그리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대니는 뉴욕 힙스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뉴욕에서의 생활이라는 게임에서 늘 신참으로 남고자 한다. 어른이 되기로 하는 순간 그의 삶은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는,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304개의 인터넷 메신저 아이디와 180개의 버디 리스트가 있으며 무선 네트워크가 가능한 곳을 피부로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통신 중독자이자, 어디를 가든 순식간에 서열을 파악하고 권력자의 곁에 비집고 들어가는 법을 터득한 권력 중독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눈앞의 무전기에 “단식농성을 하는 사내의 눈앞에 구운 쇠고기가 담긴 쟁반이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하늘만 봐도 눈이 내릴 것을 아는 사람들처럼” 권력자를 알아보고 권력자 옆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니퍼 이건은 대니의 얄팍하면서도 현실적인 면모를 시종일관 블랙코미디의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킵』에서 캐릭터들은 무언가에 갇혀 있다. 감옥이든 아성이든 미로든 그리고 중독이든. 레이는 감옥에, 대니는 타인과의 접속에 중독된 상태에 갇혀 있다. 하위는 어린 시절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상상력은 이들에게 전혀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대니는 타인과의 연결로 분주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에 무지하다. 그러기에 통신이 원천 봉쇄된 성에서 그는 자신과의 대면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편집증과 망상에 빠져든다. 반면 글쓰기에 아무 흥미가 없었던 레이는 홀리가 “머릿속의 문”을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새로운 열망에 사로잡힌다. 비참한 어린 시절을 상상력에 의지해 극복한 하위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일절 거부하고, 성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관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킵』은 인간의 삶에서 상상력이 차지하는 원초적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위에게 상상력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고, 레이에게는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문이다. 대니에게 그것은 한밤중 성 안에서 그의 뒤를 쫓는 헛것이자, 그가 만들어낸 어휘로는 “벌레”에 다름 아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목소리에 대한 가장 대담한 소설
21세기에 당도한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제니퍼 이건은 무섭도록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며 마음을 뒤흔드는 소설을 쓰는 작가다. 대단히 명쾌하면서도 독자들을 캐릭터의 내밀한 풍경으로 끌고 가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도 『킵』에서는 죄수인 레이가 화자라는 점을 빌려 의도적으로 어설픈 글쓰기를 선택한다. 따옴표와 인용부호가 종종 생략된 채 묘사와 대화가 뒤섞이고, 은유나 직유 따위는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데 최대한 집중한다. “단단해야 해. 하지만 아름다울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니 아주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는 이건의 말처럼 글쓰기의 관습에 무지한 레이의 미숙함은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그의 글은 동료 죄수들뿐만 아니라 독자들까지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고딕소설과 블랙코미디가 어우러진 『킵』은 레이와 홀리의 관계를 통해 독특하고 애틋한 로맨스로까지 뻗어나간다. 글을 선물해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그들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결국 언어에 대한 사랑과 다르지 않고, 결국 예술과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치유 수단임을 보여준다. 하이퍼 리얼리티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상징되는 가짜 욕망과 가짜 관계가 실재를 위협하는 시대에 상상이라는 긍정적 욕구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 『킵』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목소리에 대한 가장 대담한 소설이다. 건조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지성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제니퍼 이건의 독특한 정서는 21세기에 당도한 이야기의,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일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제니퍼 이건은 너무도 참신해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 _뉴욕 타임스
스마트폰에 중독된 도시인을 위한 무시무시한 치료법. _뉴요커
제니퍼 이건은 보기 드물게 지적인 작가다. 옥중 수기부터 고딕 유령 이야기까지 장르와 클리셰를 전유해 전복시키는 쾌감을 선사한다. 매순간 아찔할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 _워싱턴 포스트
카프카의 요제프 K와 루이스 캐럴의 앨�聘�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마도 제니퍼 이건의 ‘대니’일 것이다. _보스턴 글로브
믿기 어려운 허구적 이야기 50%, 문학적 실험 50%. 그러나 결과적으로 『킵』은 그 둘의 합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_디 오리거니언
환영을 본 것 같다. 극도로 사실적인 동시에 어두운 꿈 같은 소설. _엘르 매거진
제니퍼 이건에겐 전형적인 소설이란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소설들이 지닌 하나의 공통점 아닐까. 플롯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느새 독자들은 놀라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_빌리버
이 소설에 고딕이니 미스터리니 호러니 사변소설이니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이다. 나는 그저 이렇게만 말하겠다. 『킵』은 비범함 그 자체라고. _아마존 독자
▣ 작가 소개
저 : 제니퍼 이건
Jennifer Egan
1962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의 세인트존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89년 「뉴요커」에 실린 단편 「스타일리스트」을 비롯한 일련의 단편들로 주목받았고, 이 작품들은 1996년 소설집 『에메랄드 시티』로 출간되었다. 1994년 첫 장편 『보이지 않는 서커스』를 발표했다. 이 책은 2001년 카메론 디아즈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2001년 가을, 9·11 테러 직후 출간한 『나를 봐』로 그해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후 벨기에를 여행하던 중 제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성에서 영감을 얻어 『킵』(2006)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큰 호평을 받으며 고딕소설의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2010년 『깡패들의 방문』을 발표했다. 파격적인 형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비가역성과 그 부조리와 비애를 이야기하는 『깡패들의 방문』은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소설’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1년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퍼블리셔스 위클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타임 매거진」 등 25개가 넘는 매체에서 2010년 최고의 소설로 꼽혔다.
역 : 최세희
국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전문번역가,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EBS 라디오 「English Bookcafe」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공저)를 썼고, 『발칙한 한국학』, 『커밍 홈』, 『에미넴의 고백』, 『예술가를 학대하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1부
2부
3부
옮긴이의 말
2011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의 국내 첫 출간작
끝없이 새로운 문을 열며 독자를 매혹하는 이야기의 성채
소설의 신세기를 열다!
뉴욕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선정 ‘주목할 만한 책’
시카고 트리뷴, 캔자스시티 스타, 로키마운틴 뉴스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동시대 가장 중요한 미국 작가, 제니퍼 이건을
고딕소설과 메타픽션을 넘나드는 『킵』으로 만난다
2011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이 장편 『킵』(2006)을 통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인 제니퍼 이건은 “냉철하고 명쾌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을 쓰는 작가이자 오늘날 미국인의 삶에 관한 흥미로운 이슈들을 다뤄온 작가이다. 매번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어떤 정형화된 접근도 거부해온 그녀는 『킵』에서 고딕소설의 틀을 빌려 이미지에 대한 미국적 강박관념, 현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역할을 그리고 있다.
『킵』은 고성古城과 환영이 등장하는 고딕소설인가 싶다가도 뉴욕의 힙스터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메타픽션의 구조를 띠며 한 수감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마치 소설 속 수많은 계단과 복도, 미로로 이뤄진 9백 년 된 성처럼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의 문을 열며 독자를 매혹한다. 장르와 클리셰를 아찔할 만큼 현란하게 전유하면서도 시종일관 상황을 코믹하게 이끌어가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결국에는 인간 본성과 도덕에 대한 통찰에 다다른다. 메타픽션으로는 드물게 이야기와 이야기를 엮는 뛰어난 솜씨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인 진실성까지 성취하는 『킵』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유별나게 재미있고 심오하게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문학동네는 『킵』에 이어 2011년 퓰리처상 수상작인『깡패들의 방문』도 출간할 예정이다. 가장 현재적인, 그래서 더없이 실험적인 언어를 통해 시간의 비가역성과 그 부조리와 비애를 그린 『깡패들의 방문』은 제니퍼 이건이 일관되게 다뤄온 주제와 형식이 정점에 이른 작품일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끝없는 미궁의 입구,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
호텔 ‘킵’입니다.
문화의 최첨단을 누린다는 자부심에 젖어 세월을 흘려보낸 뉴요커 대니는 동유럽 어딘가에 있는 고성을 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사촌 하위의 부탁을 받는다. 마침 식당의 바지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곤란한 지경에 빠진 터라 서둘러 그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대니와 하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어린 시절의 외상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얄궂게도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입양아에 놀림감의 대상이었던 하위는 채권 트레이더로 변신해 엄청난 부를 쌓고 삼십대 중반에 은퇴한 반면, 촉망받는 고등학교 축구선수였던 대니는 서른여섯이 되도록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것이다.
대니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곳은 폰 아우스블링커 가문이 대대로 9백 년이나 살았었다는 성으로, 폐허나 다름없는 모습에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잠시라도 사람들과, 바깥세상과 접속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대니는 힘겹게 이고 간 위성안테나가 무용지물이 되자 점점 편집증적 망상에 빠져든다. 이 모든 게 하위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치밀하게 짜놓은 덫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그것이다.
오래전 수영장에 빠져 죽었다는 쌍둥이, 아성의 창가에 얼핏 보이는 아름다운 처녀의 실체인 백 살 가까운 남작부인이 있는 성 안에 고립된 대니의 상황은, 알고 보면 한 남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도소의 작문 워크숍에서 수감자인 레이가 발표하는 글인 것이다. 감방 동료 데이비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수업을 신청했던 레이는 선생 홀리를 통해 글쓰기와 상상의 세계로 인도되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간신히 일어선 홀리는 레이를 통해 어린 시절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속삭이던 목소리를 되찾는다. 레이의 어설프지만 힘 있는 글은 동료 죄수들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먼지 구덩이 신발상자를 유령과 통혼하는 라디오라고 믿는 데이비스까지 사로잡는다. 그러나 사물이 본래의 용도 이상으로 얼마든지 활용되고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감옥에서 레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치명적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원초적 상상과
지적 퍼즐의 세계로 이끄는 소설
제목인 ‘킵The Keep’은 성이 침략당할 경우 사람들이 숨는 최후의 보루, 아성牙城을 가리킨다. 『킵』은 제니퍼 이건이 남편과 생후 8주째인 아들과 함께 벨기에를 여행하던 중 제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성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오갈 데 없는 가련한 처지의 여인이 성이나 저택에서 초자연 현상에 시달린다는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설정은 『킵』에서 배경이 현대로, 주인공이 남자로 바뀌면서 작가가 의도했던 얄팍하고 인위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미지에 대한 미국적 강박관념, 즉 이미지를 통한 자기 발명이야말로 미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니퍼 이건(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모델로 일했던 경험으로 이를 잘 알고 있다)은 고딕소설의 기괴하고 폐쇄적인 특성이야말로 이미지 문화에 오도된 고스족 대니를 그리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대니는 뉴욕 힙스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뉴욕에서의 생활이라는 게임에서 늘 신참으로 남고자 한다. 어른이 되기로 하는 순간 그의 삶은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는,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304개의 인터넷 메신저 아이디와 180개의 버디 리스트가 있으며 무선 네트워크가 가능한 곳을 피부로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통신 중독자이자, 어디를 가든 순식간에 서열을 파악하고 권력자의 곁에 비집고 들어가는 법을 터득한 권력 중독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눈앞의 무전기에 “단식농성을 하는 사내의 눈앞에 구운 쇠고기가 담긴 쟁반이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하늘만 봐도 눈이 내릴 것을 아는 사람들처럼” 권력자를 알아보고 권력자 옆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니퍼 이건은 대니의 얄팍하면서도 현실적인 면모를 시종일관 블랙코미디의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킵』에서 캐릭터들은 무언가에 갇혀 있다. 감옥이든 아성이든 미로든 그리고 중독이든. 레이는 감옥에, 대니는 타인과의 접속에 중독된 상태에 갇혀 있다. 하위는 어린 시절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상상력은 이들에게 전혀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대니는 타인과의 연결로 분주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에 무지하다. 그러기에 통신이 원천 봉쇄된 성에서 그는 자신과의 대면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편집증과 망상에 빠져든다. 반면 글쓰기에 아무 흥미가 없었던 레이는 홀리가 “머릿속의 문”을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새로운 열망에 사로잡힌다. 비참한 어린 시절을 상상력에 의지해 극복한 하위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일절 거부하고, 성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관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킵』은 인간의 삶에서 상상력이 차지하는 원초적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위에게 상상력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고, 레이에게는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문이다. 대니에게 그것은 한밤중 성 안에서 그의 뒤를 쫓는 헛것이자, 그가 만들어낸 어휘로는 “벌레”에 다름 아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목소리에 대한 가장 대담한 소설
21세기에 당도한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제니퍼 이건은 무섭도록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며 마음을 뒤흔드는 소설을 쓰는 작가다. 대단히 명쾌하면서도 독자들을 캐릭터의 내밀한 풍경으로 끌고 가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도 『킵』에서는 죄수인 레이가 화자라는 점을 빌려 의도적으로 어설픈 글쓰기를 선택한다. 따옴표와 인용부호가 종종 생략된 채 묘사와 대화가 뒤섞이고, 은유나 직유 따위는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데 최대한 집중한다. “단단해야 해. 하지만 아름다울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니 아주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는 이건의 말처럼 글쓰기의 관습에 무지한 레이의 미숙함은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그의 글은 동료 죄수들뿐만 아니라 독자들까지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게 만든다.
고딕소설과 블랙코미디가 어우러진 『킵』은 레이와 홀리의 관계를 통해 독특하고 애틋한 로맨스로까지 뻗어나간다. 글을 선물해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그들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결국 언어에 대한 사랑과 다르지 않고, 결국 예술과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치유 수단임을 보여준다. 하이퍼 리얼리티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상징되는 가짜 욕망과 가짜 관계가 실재를 위협하는 시대에 상상이라는 긍정적 욕구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 『킵』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목소리에 대한 가장 대담한 소설이다. 건조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지성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제니퍼 이건의 독특한 정서는 21세기에 당도한 이야기의,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일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제니퍼 이건은 너무도 참신해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 _뉴욕 타임스
스마트폰에 중독된 도시인을 위한 무시무시한 치료법. _뉴요커
제니퍼 이건은 보기 드물게 지적인 작가다. 옥중 수기부터 고딕 유령 이야기까지 장르와 클리셰를 전유해 전복시키는 쾌감을 선사한다. 매순간 아찔할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 _워싱턴 포스트
카프카의 요제프 K와 루이스 캐럴의 앨�聘�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마도 제니퍼 이건의 ‘대니’일 것이다. _보스턴 글로브
믿기 어려운 허구적 이야기 50%, 문학적 실험 50%. 그러나 결과적으로 『킵』은 그 둘의 합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_디 오리거니언
환영을 본 것 같다. 극도로 사실적인 동시에 어두운 꿈 같은 소설. _엘르 매거진
제니퍼 이건에겐 전형적인 소설이란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소설들이 지닌 하나의 공통점 아닐까. 플롯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느새 독자들은 놀라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_빌리버
이 소설에 고딕이니 미스터리니 호러니 사변소설이니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이다. 나는 그저 이렇게만 말하겠다. 『킵』은 비범함 그 자체라고. _아마존 독자
▣ 작가 소개
저 : 제니퍼 이건
Jennifer Egan
1962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의 세인트존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89년 「뉴요커」에 실린 단편 「스타일리스트」을 비롯한 일련의 단편들로 주목받았고, 이 작품들은 1996년 소설집 『에메랄드 시티』로 출간되었다. 1994년 첫 장편 『보이지 않는 서커스』를 발표했다. 이 책은 2001년 카메론 디아즈 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2001년 가을, 9·11 테러 직후 출간한 『나를 봐』로 그해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후 벨기에를 여행하던 중 제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성에서 영감을 얻어 『킵』(2006)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큰 호평을 받으며 고딕소설의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2010년 『깡패들의 방문』을 발표했다. 파격적인 형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비가역성과 그 부조리와 비애를 이야기하는 『깡패들의 방문』은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소설’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1년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퍼블리셔스 위클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타임 매거진」 등 25개가 넘는 매체에서 2010년 최고의 소설로 꼽혔다.
역 : 최세희
국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전문번역가,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EBS 라디오 「English Bookcafe」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공저)를 썼고, 『발칙한 한국학』, 『커밍 홈』, 『에미넴의 고백』, 『예술가를 학대하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1부
2부
3부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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