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고객평점
저자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판사항동서문화사, 발행일:2016/11/30
형태사항p.772 국판:23
매장위치문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49715209 [소득공제]
판매가격 10,000원   9,000원  (인터넷할인가:10%)
포인트 450점
배송비결제주문시 결제
  • 주문수량 

총 금액 : 0원

책 소개

▣ 출판사서평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로

1775년 괴테는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대로 바이마르로 옮겼다. 그 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10년은 정치가, 관리로서 바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는 고문관이 되어 귀족 대열에 들어선 뒤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괴테가 왜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갑자기 이탈리아로 떠났을까? 그 무렵 괴테는 모든 부문에서 벽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슈타인 부인과의 육체가 따르지 않은 사랑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있었다. 젊을 때의 괴테는 정력이 강한 사람으로, 바이마르에 왔을 무렵에는 같은 나이인 카를 아우구스트 공과 함께 여성을 유혹하기도 하고 거친 방탕의 날들을 보냈다. 그 뒤 궁정 마두(馬頭)의 아내, 슈타인 부인을 만나고 나서 궁정인으로서의 몸가짐 등 가르침을 받으면서 균형잡힌 인격을 서서히 몸에 지녀 갔다. 이것은 문학으로 말하자면 괴테의 ‘질풍노도의 시대’에서 고전주의에의 이행기에 속한다. 괴테는 외할아버지로부터 여성을 좋아하는 성격을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베츨러에서 법률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에, 남의 아내와의 정사가 드러나 가발을 내팽개친 채 황급히 달아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능하여 뒷날 프랑크푸르트 시의 시장까지 지냈다.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 욕정

괴테는 외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여성을 사랑하고, 사랑한 여성과 헤어질 때마다 아름다운 시를 창작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사랑을 한 프리디케 브리온과의 사랑에서는 명작 『들장미』·『5월의 노래』, 마리안네 빌레머와의 사랑에서는 『서동시집』이 탄생했고,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에서는 『이피게니에』·『슈타인 부인에게』, 72세 때 17세 소녀 빌리케 폰 레보초와의 사랑과 실연에서는 『열정』 3부작을 썼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슈타인 부인을 만나 많은 시와 편지를 그녀에게 바쳤다. 어떤 시에서는 부인을 ‘아, 전생에서 당신은 나의 누이, 나의 아내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괴테는 슈타인 부인을 더없이 사랑해 평생 동안 17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탈리아 기행』 또한 그녀에게 보낸 편지가 바탕을 이룬다. 슈타인 부인은 평생 7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괴테와 육체관계 맺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바이마르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녀 자신만 아닌 괴테에게도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괴테는 슈타인 부인을 사모하고 번민하며 겸양, 체념, 인내를 배웠지만, 자기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유부녀에 대한 감정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더욱 복잡미묘해졌다. 그녀와의 교제를 더 이어가도 육체적 채움은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괴테는 이탈리아로 떠날 것을 마음먹는다. 이탈리아 여행은 슈타인 부인과의 애틋한 이별이기도 했다.

둘째, 그는 스스로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괴테는 본디 자신을 시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바이마르에 오고 나서 정무에 바빠, 긍정적으로 볼 만한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완성한 대작은 없고, 뛰어난 서정시도 그리 많지 않다. 오직 하나의 예외는 이탈리아를 향한 동경을 적은 시 [미뇽] 뿐이었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차츰 무뎌져 갔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시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나리라는 위기감을 품은 괴테는 시재(詩才)와 영혼의 재생을 위해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결심했다.

셋째,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정치가로서 광산 개발, 도로 건설, 토목공사 등을 지휘하고 계획 입안 등을 하고 있었는데, 좁은 땅 바이마르에서는 괴테가 생각한 것만큼 성과가 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안정을 가져다준 바이마르가 이제는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쌓인 그는 정치가로서의 자신에게 한계를 느끼고 건강마저 해쳤다. 이렇게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괴테를 남쪽으로 내모는 인연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그로 하여금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버리게 만든 것이다.

로마 하늘 아래 대문호로 거듭 태어나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같은 시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괴테는 37세 때인 1786년 9월 3일 독일 땅을 떠난 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이 여행은 괴테 자신의 인간적 성숙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괴테가 조화와 균형의 고전미에 눈을 돌리게 된 이탈리아 여행 이후의 시기를 우리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독일 미학자 빙켈만이 로마를 ‘온 세계를 위한 위대한 학교’라고까지 규정했듯이 그리스와 더불어 이탈리아 로마는 유럽 문명의 발상지로서 오래전부터 세계인이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특히 알프스 이북 지역의 유럽인들은 그들의 음울한 잿빛 하늘을 벗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의 이탈리아로 떠나고픈 갈망을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산다. 괴테 또한 유년 시절부터 이탈리아를 동경해 왔다. 그러나 여행자의 발길을 이탈리아로 유혹하는 것은 단지 그 땅의 수려한 경관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인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 함양과 자기 수양을 위해서 그들 문명의 고향, 그 영원한 수도 로마를 찾는 것이다.

괴테는 도덕이나 세간의 평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과 예술을 동경했다. 밝고 넓은 하늘이 주는 자연과 사랑의 선물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다. 신체 노출을 극도로 싫어하는 종교가 가로막고 있던 북쪽 작은 세계에서는 고대 그리스 ? 로마의 나신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행자 괴테는 너무나 사소한 형식에 구애된 딱딱하고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빠져나와 대자연 속에서 땀을 흘리며 참된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소박하고 자연스런 관능적 사랑, 흘러넘치는 순수한 관락의 표출, 생활과 의사 결정의 자유. 시인의 생각의 날개는 그런 세상을 날고 있었다. 괴테는 로마에 도착한 날을 자신의 ‘제2의 탄생일’이자 ‘참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괴테는 고독하며 자유로웠다.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생활하든, 떠돌든, 사랑을 하더라도 바이마르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위선적인 생활에서 인간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가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눈부시게 빛나는 관능적인 사람으로 돌아오게끔 했다. 괴테는 자연 속에 예술이 있고 예술 속에 자연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정치가도 화가도 아니라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여행의 고독은 괴테에게, 오랜 세월 바랐던 작가 생활을 되돌려주었다. 괴테는 전부터 쓰려 했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해 두는 걸 잊지 않았다.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깊이 몰두한 대상은 자연, 인간, 사회, 예술이었다. 그는 로마의 유적지를 찾아다녔고 인류의 유산인 건축, 조각, 그림을 감상하면서 문학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 『이피게니에』를 운문 형식으로 고쳐 썼고, 『에그몬트』를 마침내 탈고했으며, 15년이나 묵혀두었던 『파우스트』를 다시 꺼내 몇 장면을 덧붙이기도 했다. 대문호 괴테 문학의 완성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 작가 소개

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연모했는데, 이 체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거의 사실 그대로 담겨 있다. 부프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괴테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3년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학적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 기존의 무미건조한 형식미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할 것과 인습적에 것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절정을 이룬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1775년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괴테는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를 마감하고 추밀참사관에 임명되어 행정적인 활동을 했다. 다망한 정무 생활 틈에서도 지리학, 식물학, 광물학 등 자연에 대한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나 창작 면에서는 침체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1786년(37세)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름으로써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788년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정무에서 떠나 고독 속으로 숨었다. 이때 나중에 정식 부인이 된,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실러와도 처음으로 만났다. 1794년부터 실러와 깊은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괴테는 실러가 발행하던 문학 잡지인 『호렌』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805년부터 1815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나폴레옹을 세 번이나 만난 한편,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는 『친화력』를 완성했고, 자서전의 백미로 꼽히는 『시와 진실』 1∼3부도 완성했으며, 『서동시집』 집필에도 착수했다. 1821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완성했으며, 죽기 1년 전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으며 1832년 바이마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역자 : 곽복록
郭福祿
조치(上智)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수학.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독문학과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독문학과 졸업(독문학박사). 서울대학교?서강대학교 독문과 교수 역임.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한국괴테학회초대회장. 지은책 『독일문학의 사상과 배경』, 옮긴책 요한 볼프강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수업시대』 『친화력』 『헤르만과 도로테아』 『이탈리아 기행』 『괴테 시전집』 『괴테 인생론』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프리덴탈 『괴테 생애와 시대』 토마스 만 『마의 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 『즐거운 지식』 그리고 평생을 바친 한국최초『완역판 안데르센동화전집』이 있다.

▣ 주요 목차

[컬러화보]

제1부 칼스바트에서 로마까지(1786년 9월~1787년 2월)
칼스바트에서 브레너까지 … 41
브레너에서 베로나까지 … 59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까지 … 81
베네치아 … 116
페라라에서 로마까지 … 166
로마 … 200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1787년 2월~1787년 6월)
나폴리 … 285
시칠리아 … 347
나폴리 … 461

제3부 두 번째 로마 체류기(1787년 6월~1788년 4월)
6월의 편지 … 491
티슈바인이 괴테에게 보내는 편지 … 500
7월의 편지 … 513
8월의 편지 … 536
9월의 편지 … 552
10월의 편지 … 574
11월의 편지 … 597
12월의 편지 … 612
1월의 편지 … 643
2월의 편지 … 685
3월의 편지 … 695
4월의 편지 … 713

괴테와 이탈리아 … 728
요한 볼프강 괴테 연보 … 781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반품 배송비 부담자
단순변심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불량 또는 오배송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환불안내
진행 상태 결제완료 상품준비중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어떤 상태 주문 내역 확인 전 상품 발송 준비 중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환불 즉시환불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환불시점
결제수단 환불시점 환불방법
신용카드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신용카드 승인취소
계좌이체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계좌입금
휴대폰 결제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포인트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환불 포인트 적립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환불불가
상품군 취소/반품 불가사유
의류/잡화/수입명품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계절상품/식품/화장품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가전/설치상품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용품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CD/DVD/GAME/BOOK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내비게이션, OS시리얼이 적힌 PMP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