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아무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어떤 사람들…
삶에 붙잡혀 자신을 놓쳐버린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
표제작인 「휘」는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를 찾아나선 소년의 이야기다. 아니 사람들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다.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은 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만 떠올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집 안의 냉장고이거나 선풍기이거나 식칼이거나 양파망처럼 그 자체로 고유명사”니까. 소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속엔 휘― 휘― 바람이 통하는 구멍이 있다고 전한다. 누구나 있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각자의 슬픔을 어쩌면 바람만이 알아주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저자가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어디에도 내보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는 「종」은 단연 눈에 띈다. “누구든 누이를 쳤다. 뒤에서 혹은 앞에서 그녀를 칠 때마다 내 방 벽에 짓눌린 누이의 입술에서는 깨질 것 같은 울림이 흘러나왔다.” 강렬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자 모두의 종이 된 누이를 그려낸다. 누구든 누이를 종처럼 치고 특히나 아버지는 “계집은 요물”이라며 매일 밤 누이를 침실로 끌고 간다. 누이의 삶은 그녀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순간 달라지는데, 그녀는 ‘자신만의 방’을 만들려 한다. 남성에게는 비현실적이지만 여성에게는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질 이야기이다.
「홈」은 책상 위의 작은 홈이면서 집을 뜻하는 영어 홈(home)이기도 하다. 시체 냄새가 나는 학교, 자살로 결론 내려지는 ‘11등’과 ‘10등’의 죽음, 점점 커지는 책상의 까만 구멍……. 알 수 없는 증오가 가슴에 깊은 홈을 새긴 아이들, 차라리 아주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소설로 형상화되었다.
개 같은 인생은 무엇이고, 사람 같은 인생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저 삶의 비밀을 안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밖에!
‘개 같은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개」는 “외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안다”고 말하는 개 백구가 화자가 되어 만난 여러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머나먼 나라에서 늙은 남자에게 시집와 “나 사람 아니야”라고 마당의 개들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젊은 여자, 부모의 품을 벗어나 가출하는 소년, 단속반에게 쫓기며 “나는 사람이 아니야. 개야. 이 망할 놈들아.” 외치는 노점상 할머니, 연인과 헤어지고 많은 유기견을 키우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사회부적응자’라고 말할지도 모를 인물들이 백구의 눈을 통해 선입견 없이 보인다. 백구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눈에도 ‘사람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아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 베란다에 한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빨대로 물방울을 톡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톡」은 소녀의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해 삶의 비밀로 확장된다. 톡 치면 부스스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은 마른 어깨의 엄마가 새아버지들을 데려오는 동안에도 소녀의 행동은 계속된다.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소녀의 물방울은 엄마의 비밀을 지켜주려 애쓰며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는 놀이였음을, 그 상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눈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삶의 비밀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은 더 있다. 「못」은 비밀스러운 연애를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사이에 박혀 있는 마음의 못을 그렸고, 「잠」은 불면증을 앓고 있는 두 남녀가 밤 산책하면서 만나 보낸 비밀 같은 시간을 담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 소설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초」는 이 책의 마침표로서 적절하다. 단편집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나’는 ‘초’를 떠올린다. 짧지만 긴 시간, 초(second)와 어둠을 내쫓아 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초(candle). 환상적 요소가 있었던 이전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현실에 발을 딛고 꼿꼿이 서 있다. 3년 전 봄에 일어났던 여객선 참사 이후 “내가 쓰는 문장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내고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던 ‘나’는 “뭘 하고 있어? 이제 나가야지.” 하는 말에 문 밖으로 나선다. 잔잔하고 단단한 화자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작가 스스로의 다짐을 엿보고, 함께 생각해보고, 소설 밖 세상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손솔지
1989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문학나무] 봄호에 참여했다.
남성 중심적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드러낸 등단작 「한 알의 여자」를 통해 탄탄한 문장력을 지닌 작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심리적 거리 확보와 상징·은유와 같은 미학적 장치에 능숙한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2016년에 출간된 첫 장편소설 『먼지 먹는 개』를 통해 부도덕한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유전자 조작 약물이 이 사회를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가를 낱낱이 파헤치며 날카로운 시선과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아무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어떤 사람들…
삶에 붙잡혀 자신을 놓쳐버린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
표제작인 「휘」는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를 찾아나선 소년의 이야기다. 아니 사람들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다.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은 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만 떠올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집 안의 냉장고이거나 선풍기이거나 식칼이거나 양파망처럼 그 자체로 고유명사”니까. 소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속엔 휘― 휘― 바람이 통하는 구멍이 있다고 전한다. 누구나 있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각자의 슬픔을 어쩌면 바람만이 알아주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저자가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어디에도 내보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는 「종」은 단연 눈에 띈다. “누구든 누이를 쳤다. 뒤에서 혹은 앞에서 그녀를 칠 때마다 내 방 벽에 짓눌린 누이의 입술에서는 깨질 것 같은 울림이 흘러나왔다.” 강렬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자 모두의 종이 된 누이를 그려낸다. 누구든 누이를 종처럼 치고 특히나 아버지는 “계집은 요물”이라며 매일 밤 누이를 침실로 끌고 간다. 누이의 삶은 그녀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순간 달라지는데, 그녀는 ‘자신만의 방’을 만들려 한다. 남성에게는 비현실적이지만 여성에게는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질 이야기이다.
「홈」은 책상 위의 작은 홈이면서 집을 뜻하는 영어 홈(home)이기도 하다. 시체 냄새가 나는 학교, 자살로 결론 내려지는 ‘11등’과 ‘10등’의 죽음, 점점 커지는 책상의 까만 구멍……. 알 수 없는 증오가 가슴에 깊은 홈을 새긴 아이들, 차라리 아주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소설로 형상화되었다.
개 같은 인생은 무엇이고, 사람 같은 인생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저 삶의 비밀을 안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밖에!
‘개 같은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개」는 “외로운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안다”고 말하는 개 백구가 화자가 되어 만난 여러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머나먼 나라에서 늙은 남자에게 시집와 “나 사람 아니야”라고 마당의 개들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젊은 여자, 부모의 품을 벗어나 가출하는 소년, 단속반에게 쫓기며 “나는 사람이 아니야. 개야. 이 망할 놈들아.” 외치는 노점상 할머니, 연인과 헤어지고 많은 유기견을 키우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사회부적응자’라고 말할지도 모를 인물들이 백구의 눈을 통해 선입견 없이 보인다. 백구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눈에도 ‘사람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아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 베란다에 한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빨대로 물방울을 톡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톡」은 소녀의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해 삶의 비밀로 확장된다. 톡 치면 부스스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은 마른 어깨의 엄마가 새아버지들을 데려오는 동안에도 소녀의 행동은 계속된다.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소녀의 물방울은 엄마의 비밀을 지켜주려 애쓰며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는 놀이였음을, 그 상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눈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삶의 비밀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은 더 있다. 「못」은 비밀스러운 연애를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사이에 박혀 있는 마음의 못을 그렸고, 「잠」은 불면증을 앓고 있는 두 남녀가 밤 산책하면서 만나 보낸 비밀 같은 시간을 담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 소설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초」는 이 책의 마침표로서 적절하다. 단편집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나’는 ‘초’를 떠올린다. 짧지만 긴 시간, 초(second)와 어둠을 내쫓아 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초(candle). 환상적 요소가 있었던 이전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현실에 발을 딛고 꼿꼿이 서 있다. 3년 전 봄에 일어났던 여객선 참사 이후 “내가 쓰는 문장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내고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던 ‘나’는 “뭘 하고 있어? 이제 나가야지.” 하는 말에 문 밖으로 나선다. 잔잔하고 단단한 화자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작가 스스로의 다짐을 엿보고, 함께 생각해보고, 소설 밖 세상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손솔지
1989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문학나무] 봄호에 참여했다.
남성 중심적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드러낸 등단작 「한 알의 여자」를 통해 탄탄한 문장력을 지닌 작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심리적 거리 확보와 상징·은유와 같은 미학적 장치에 능숙한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2016년에 출간된 첫 장편소설 『먼지 먹는 개』를 통해 부도덕한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유전자 조작 약물이 이 사회를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가를 낱낱이 파헤치며 날카로운 시선과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휘
종
홈
개
못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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