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국 선불교의 시작 원효대사, 신라의 마음을 빚다.
소설 속 원효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타인’이다. 어려운 불법을 남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화엄경의 해설을 쓰고, 경전 한 줄 염불 한 마디를 외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명한 선사로서의 명예를 버리고 파계하여 요석공주와 아이를 갖는 것도, 요석공주의 마음을 건지려는 시도에서였다.
그는 무애(無碍), 즉 “아무 데도 구애받지 않는 마음”으로 어디든 간다. 전염병과 수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거지 떼를 이끌거나 도적의 무리에 섞여들어 같이 먹고 놀면서 부처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러한 원효의 마음은 파벌과 신분제, 전쟁과 가난에 묶여 있던 신라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사람과 공동체의 힘이 된다. 백제와 고구려의 끊임없는 침략에 고통받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함은 물론 당나라까지 이 땅에서 쫓아내어 융성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에서 원효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화랑정신, 그리고 신라 고유의 선 수련법이다. 요석공주의 전남편 거진랑, 세속오계를 가르친 원광법사, 김유신의 비술 등 다양한 설화와 일화를 섞어 이야기에 풍미와 재미를 더함은 물론 불교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가 지향할 만한 가치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 땅의 옛 모습, 특히 자연과 신라인들의 삶에 대한 묘사도 일품이다. 힘과 멋이 넘치는 문장들은 마지막으로 옛 조선을 산 세대이자 현대문학 첫 세대로서 이광수가 남긴 특별한 유산이다.
모두가 길을 모를 때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원효
후대에 역사를 배운 우리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았던 서기 600년대를 신라가 승리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신라에게 있어 백제와 고구려의 수없는 침략에 고통받고 당에게 외교 간섭을 받으며 쩔쩔매던 시기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내가 살 길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깨울 방법을 찾아 여정을 떠난 원효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신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도약할 수 있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 때는 남보다 먼저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나은 공동체란 어떤 곳인가. 이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 소설 속 원효와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 작가 소개
저 :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3월 4일 평북 정주 출생으로 일찍이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으며,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개척자』,『선도자』,『재생』,『마의태자』,『단종애사』,『군상』,『흙』,『유정』,『이순신』,『그 여자의 일생』,『이차돈의 사』,『그의 자서전』,『사랑』,『원효대사』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세?의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편자 : 방남수
方南秀
1958년 경북 울진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 박사를 취득했다. 청담선사 중창도량인 삼각산 도선사에 입산. 『문예한국』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 중이며, 월간지 『여성불교』 편집주간, 화남출판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청담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청담순호선사 평전』 시집 『보탕』이 있다.
▣ 주요 목차
방랑 … 7
재회 … 78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 167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는가 … 278
원효 당대 연표 … 284
한국 선불교의 시작 원효대사, 신라의 마음을 빚다.
소설 속 원효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타인’이다. 어려운 불법을 남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화엄경의 해설을 쓰고, 경전 한 줄 염불 한 마디를 외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명한 선사로서의 명예를 버리고 파계하여 요석공주와 아이를 갖는 것도, 요석공주의 마음을 건지려는 시도에서였다.
그는 무애(無碍), 즉 “아무 데도 구애받지 않는 마음”으로 어디든 간다. 전염병과 수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거지 떼를 이끌거나 도적의 무리에 섞여들어 같이 먹고 놀면서 부처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러한 원효의 마음은 파벌과 신분제, 전쟁과 가난에 묶여 있던 신라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사람과 공동체의 힘이 된다. 백제와 고구려의 끊임없는 침략에 고통받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함은 물론 당나라까지 이 땅에서 쫓아내어 융성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에서 원효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화랑정신, 그리고 신라 고유의 선 수련법이다. 요석공주의 전남편 거진랑, 세속오계를 가르친 원광법사, 김유신의 비술 등 다양한 설화와 일화를 섞어 이야기에 풍미와 재미를 더함은 물론 불교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가 지향할 만한 가치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 땅의 옛 모습, 특히 자연과 신라인들의 삶에 대한 묘사도 일품이다. 힘과 멋이 넘치는 문장들은 마지막으로 옛 조선을 산 세대이자 현대문학 첫 세대로서 이광수가 남긴 특별한 유산이다.
모두가 길을 모를 때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원효
후대에 역사를 배운 우리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았던 서기 600년대를 신라가 승리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신라에게 있어 백제와 고구려의 수없는 침략에 고통받고 당에게 외교 간섭을 받으며 쩔쩔매던 시기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내가 살 길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깨울 방법을 찾아 여정을 떠난 원효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신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도약할 수 있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 때는 남보다 먼저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나은 공동체란 어떤 곳인가. 이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 소설 속 원효와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 작가 소개
저 :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3월 4일 평북 정주 출생으로 일찍이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으며,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개척자』,『선도자』,『재생』,『마의태자』,『단종애사』,『군상』,『흙』,『유정』,『이순신』,『그 여자의 일생』,『이차돈의 사』,『그의 자서전』,『사랑』,『원효대사』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세?의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편자 : 방남수
方南秀
1958년 경북 울진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 박사를 취득했다. 청담선사 중창도량인 삼각산 도선사에 입산. 『문예한국』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 중이며, 월간지 『여성불교』 편집주간, 화남출판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청담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청담순호선사 평전』 시집 『보탕』이 있다.
▣ 주요 목차
방랑 … 7
재회 … 78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 167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는가 … 278
원효 당대 연표 …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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