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인간의 위선과 야만 풍자!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펏?블레프스큐, 거인국 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 말의 나라 후이넘을 방문하다. 그의 행로를 통해 인간의 위선과 야수성, 정치 부패, 민생은 뒷전인 정당들의 이전투구, 영국 제국주의,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을 풍자한다.
먼저 소인과 거인은 신체적 크기만이 아니라 내적인 ‘그릇’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소인국에는 소인배들만 산다. 그들은 ‘외줄 위에서 춤을 춰 고위직을 얻거나, 막대기 아래로 기어 다니며 국왕의 총애를 받는 관습’을 오랫동안 지켜온 자들이다. 한동안 소인배들과 어울리던 걸리버가 거인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인배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달걀 둥근 쪽과 뾰족한 쪽 가운데 어디를 깨먹을까 하는 문제로 전쟁까지 벌이는 소인배들 앞에서는 큰 사람이었었던 걸리버가 거인국에서는 어린 소녀의 놀잇감이 되고, 왕궁 난쟁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거인국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약 제조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국왕은 “네 조국의 원주민들이란 대자연이 지상에 기어 다니도록 만든, 지겹고도 작은 벌레들로 구성된 가장 해로운 인종”이라며 경멸한다. 걸리버의 작은 마음으로는, 손안에 들어온 무기를 거부하는 권력자를 이해할 수 없다.
라퓨타에는 ‘너무나 깊은 사색에 몰두해 있어서, 입과 귀가 외부의 어떤 사물과 접촉하여 자극을 받지 않으면 말을 하지도 못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산다. 라퓨타 사람들은 수학과 음악에 뛰어나면서도 비합리적이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기를 좋아하지만, 그들에겐 상상력이나 발명과 같은 단어조차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관심과 외부 세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무장한 라퓨타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움은 그들의 아카데미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 걸리버는 그곳에서 본 것을 이렇게 말한다.
“교수들은 유럽인들이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뼛속에 가득 차 있는 결체질의 물질로 만든 잉크를 사용하여 여러 명제와 증명을 얇은 과자 위에 쓰면, 학생은 그것을 먹어 배를 채웠다.”
수학적이고 실험적인 지식만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라퓨타 사람들의 모습은 18세기 계몽이성에 대한 스위프트식 비판이지만, 도구적 이성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 또한 남들 시선을 의식하여 요란하게 권위의 탑을 세우는 아카데미의 풍경 또한 라퓨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긴 여행의 끝, 새로운 깨달음!
걸리버 여행의 대미는 후이넘이 장식한다. 말들이 지배하는 이 섬에서 걸리버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쾌한 짐승들’을 만나는데, 불결한 생활 습관과 탐욕으로 가득 찬 그 짐승들의 이름은 ‘야후’ 즉 인간이다. 인간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신 말고는 있을 수 없다. 서유럽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는 특히 그렇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삶이 그 자신의 이성에 의해 유지, 개선되어 간다고 하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이 동물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야후의 흔적을 지우는 것, 그리고 후이넘과 같은 고귀한 덕성을 갖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
여행은 끝났고, 걸리버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이미 떠나기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앎을 습득했고, 낯선 삶의 방식을 배웠으며, 그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걸리버의 여행, 혹은 진정한 여행이란 장식적 교양과 과시를 배후에 두는 관광과는 다르다.
『걸리버 여행기』는 놀랄 만큼 근대적이다. 비록 허구이지만 풍성한 사실을 제공하며 어떤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설교조도 아니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영국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성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비교하지 않고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는 것을 어린아이들까지 마음속에 담게 되었다. 영국이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시대에 영국에 필요한 것은, 풍자보다는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낱낱이 밝혀지는 허위와 위선!
『통 이야기』를 쓸 무렵 스위프트의 처지는 어려웠다. 이름 높은 템플 가문에서 하인과 다름없는 비서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생계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시골 목사가 되었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템플 밑으로 돌아온다. 학창 시절 친구의 여동생에게 순정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그동안 써온 시를 먼 친척뻘인 시인 드라이든에게 보이지만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혹평을 받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하찮은 인물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가슴에는 뜨거운 야망이 불타오르고 머릿속은 독서로 얻은 지식으로 넘쳐났다. 『통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고 출세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결심에서 쓰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앤 여왕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그는 성직자로서의 출셋길이 막혀 버리고 만다.
『통 이야기』의 동기는 ‘허위를 폭로하고 위선을 조롱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실 천박한 현세적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점잖은 체재는 그것을 감추기 위한 교묘한 가면에 불과하다. 스위프트는 그 허상을 발가벗겨 낸다. 피터, 마틴, 잭 삼형제는 저마다 로마구교, 영국국교회, 비국교도를 상징하며, 아버지가 물려준 외투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 유언장은 신약성서다. 성서 해석을 둘러싸고 모든 종파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과 갈등의 역사를 이 삼형제의 삶으로 나타냈다.
청춘의 희망과 열정!
『통 이야기』는 이솝우화처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므로 함부로 바꿀 수 없으며, 따라서 풍자의 자유에 제한이 생긴다. 『걸리버 여행기』처럼 자유로운 문학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제약 속에서도 스위프트는 풍자의 펜을 멋지게 휘둘렀다. 칼라일보다 앞선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상철학론(제2장), 도시로 나간 형제가 도시 난봉꾼들처럼 물들어 가는 모습(제2장), 구교의 화체설을 풍자한 대목(제4장), 풍신파라는 가공의 종파를 들어 청교도의 오만함과 가식, 위선을 조롱한 제8장 등이 그것이다.
총11장 가운데 6장이 이른바 여담이며, 처음 〈헌정사〉와 〈서문〉과 함께 주로 학계나 문단의 문제를 자유롭게 풍자한 장이다. 그 주제는 그 무렵 학계에 대한 풍자, 문단의 폐쇄성, 당대 유명인(시인 드라이든, 철학자 우턴, 벤틀린 등 수많은 사람이 표적이 되었다)에 대한 독설, 그즈음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구 논쟁의 되새김 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주제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스위프트의 문학 재능과 날카로운 풍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스위프트가 평생 품었던 염세적이고 인간을 혐오하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으나, 그것은 풍자와 해학으로써 역설적으로 쓰여 있으며 쾌활하고 밝은 웃음으로 채색되어 있다.
젊음에서 오는 희망과 정열, 풋풋한 자신감이 넘치며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여유를 준다. 『걸리버 여행기』에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 작가 소개
저 : 조나단 스위프트
1667년 11월 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7개월 전에 아버지가 사망해 백부 고드윈 스위프트의 보호 아래 자랐다. 더블린의 킬케니 스쿨을 마치고 1682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 1686년에 졸업했다. 학교를 마친 스위프트는 1688년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로 당시는 정계에서 은퇴한 윌리엄 템플 경의 개인비서로 들어갔다. 그후 1694년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집안의 전통에 따라 성직을 얻어 킬루트 성당의 녹봉을 받아 생활했다. 1696년 다시 템플 경에게 돌아왔고, 템플 경이 세상을 떠난 뒤 또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1710년까지 더블린 근처 라라카의 교회 목사로 일했다.
1710~1714년에 스위프트는 삶의 절정기를 맞는다. 토리당의 기관지 격인 신문 「이그재미너」의 편집장을 맡아 마음껏 붓을 휘두르며 정치평론 ‘동맹국의 행위’ 등으로 필명을 높였다. 그러나 1714년 앤 여왕이 죽고 토리당이 집권에 실패하자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칩거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영국 정부의 그릇된 정책 때문에 궁핍에 빠지자 아일랜드의 구제와 부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1724년 「드레이피어의 서한」과 함께 1726년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런던에서 출간해 드디어 확고하게 그의 이름을 떨쳤다. 1730년대 말엽부터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나, 1742년에는 발광상태에 빠졌다. 1745년 10월에 세상을 떠나 성 패트릭 성당의 묘지에 묻혔다. 주요 저서로 『통 이야기』 『책의 전쟁』 『스텔라에게의 일기』 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는 국내에서 주로 아동소설로 분류돼 왔고, 전체 내용 중 소인국 과 거인국 편만 축약된 채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원작은 소인국 과 거인국 편 외에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의 나라 등이 포함된 전 4부작으로, 18세기 영국의 정치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성인용 대작이다. 인간성의 기본적 모순인 이성적 억제와 동물적 충동 사이의 대립을 토대로, 자유와 전제국가, 진정한 신앙과 환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역자 : 유영
柳玲
시인, 영문학자. 호는 운향(雲鄕). 서울대 영문과 졸업. 연세대 교수 및 명예교수 역임. 1939년 「문장」지에 소설 「조갯살」을 발표하여 등단. 이후 시로 전향하여 「백묵」「자화상」「산정」「부채」 등을 발표했다. 1983년 국민훈장 동백상 수상. 지은책 시집『일월』『천지서(天地序)』『인간별곡』, 산문집『나의 대학의 오솔길』『인생의 향기를 가슴에 가득히』, 연구서『밀턴의 서사시 연구』『밀턴문학의 심층구조 연구』『현대문학의 가는 길』 등, 옮긴책 호머『일리아드』『오디세이』 밀턴『실낙원』『복낙원』 단테『신곡』 제임스 조이스『젊은 예술가의 초상』 칼릴 지브란『예언자』 등 다수가 있다. 그의 영문학 번역 업적을 기리는 유영학술재단은 2007년 유영번역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인간의 위선과 야만 풍자!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펏?블레프스큐, 거인국 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 말의 나라 후이넘을 방문하다. 그의 행로를 통해 인간의 위선과 야수성, 정치 부패, 민생은 뒷전인 정당들의 이전투구, 영국 제국주의,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을 풍자한다.
먼저 소인과 거인은 신체적 크기만이 아니라 내적인 ‘그릇’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소인국에는 소인배들만 산다. 그들은 ‘외줄 위에서 춤을 춰 고위직을 얻거나, 막대기 아래로 기어 다니며 국왕의 총애를 받는 관습’을 오랫동안 지켜온 자들이다. 한동안 소인배들과 어울리던 걸리버가 거인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인배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달걀 둥근 쪽과 뾰족한 쪽 가운데 어디를 깨먹을까 하는 문제로 전쟁까지 벌이는 소인배들 앞에서는 큰 사람이었었던 걸리버가 거인국에서는 어린 소녀의 놀잇감이 되고, 왕궁 난쟁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거인국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약 제조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국왕은 “네 조국의 원주민들이란 대자연이 지상에 기어 다니도록 만든, 지겹고도 작은 벌레들로 구성된 가장 해로운 인종”이라며 경멸한다. 걸리버의 작은 마음으로는, 손안에 들어온 무기를 거부하는 권력자를 이해할 수 없다.
라퓨타에는 ‘너무나 깊은 사색에 몰두해 있어서, 입과 귀가 외부의 어떤 사물과 접촉하여 자극을 받지 않으면 말을 하지도 못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산다. 라퓨타 사람들은 수학과 음악에 뛰어나면서도 비합리적이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기를 좋아하지만, 그들에겐 상상력이나 발명과 같은 단어조차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관심과 외부 세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무장한 라퓨타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움은 그들의 아카데미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 걸리버는 그곳에서 본 것을 이렇게 말한다.
“교수들은 유럽인들이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뼛속에 가득 차 있는 결체질의 물질로 만든 잉크를 사용하여 여러 명제와 증명을 얇은 과자 위에 쓰면, 학생은 그것을 먹어 배를 채웠다.”
수학적이고 실험적인 지식만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라퓨타 사람들의 모습은 18세기 계몽이성에 대한 스위프트식 비판이지만, 도구적 이성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 또한 남들 시선을 의식하여 요란하게 권위의 탑을 세우는 아카데미의 풍경 또한 라퓨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긴 여행의 끝, 새로운 깨달음!
걸리버 여행의 대미는 후이넘이 장식한다. 말들이 지배하는 이 섬에서 걸리버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쾌한 짐승들’을 만나는데, 불결한 생활 습관과 탐욕으로 가득 찬 그 짐승들의 이름은 ‘야후’ 즉 인간이다. 인간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신 말고는 있을 수 없다. 서유럽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는 특히 그렇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삶이 그 자신의 이성에 의해 유지, 개선되어 간다고 하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이 동물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야후의 흔적을 지우는 것, 그리고 후이넘과 같은 고귀한 덕성을 갖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
여행은 끝났고, 걸리버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이미 떠나기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앎을 습득했고, 낯선 삶의 방식을 배웠으며, 그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걸리버의 여행, 혹은 진정한 여행이란 장식적 교양과 과시를 배후에 두는 관광과는 다르다.
『걸리버 여행기』는 놀랄 만큼 근대적이다. 비록 허구이지만 풍성한 사실을 제공하며 어떤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설교조도 아니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영국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성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가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비교하지 않고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는 것을 어린아이들까지 마음속에 담게 되었다. 영국이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시대에 영국에 필요한 것은, 풍자보다는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낱낱이 밝혀지는 허위와 위선!
『통 이야기』를 쓸 무렵 스위프트의 처지는 어려웠다. 이름 높은 템플 가문에서 하인과 다름없는 비서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생계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시골 목사가 되었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템플 밑으로 돌아온다. 학창 시절 친구의 여동생에게 순정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그동안 써온 시를 먼 친척뻘인 시인 드라이든에게 보이지만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혹평을 받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하찮은 인물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가슴에는 뜨거운 야망이 불타오르고 머릿속은 독서로 얻은 지식으로 넘쳐났다. 『통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고 출세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결심에서 쓰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앤 여왕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그는 성직자로서의 출셋길이 막혀 버리고 만다.
『통 이야기』의 동기는 ‘허위를 폭로하고 위선을 조롱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실 천박한 현세적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점잖은 체재는 그것을 감추기 위한 교묘한 가면에 불과하다. 스위프트는 그 허상을 발가벗겨 낸다. 피터, 마틴, 잭 삼형제는 저마다 로마구교, 영국국교회, 비국교도를 상징하며, 아버지가 물려준 외투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 유언장은 신약성서다. 성서 해석을 둘러싸고 모든 종파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과 갈등의 역사를 이 삼형제의 삶으로 나타냈다.
청춘의 희망과 열정!
『통 이야기』는 이솝우화처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므로 함부로 바꿀 수 없으며, 따라서 풍자의 자유에 제한이 생긴다. 『걸리버 여행기』처럼 자유로운 문학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제약 속에서도 스위프트는 풍자의 펜을 멋지게 휘둘렀다. 칼라일보다 앞선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상철학론(제2장), 도시로 나간 형제가 도시 난봉꾼들처럼 물들어 가는 모습(제2장), 구교의 화체설을 풍자한 대목(제4장), 풍신파라는 가공의 종파를 들어 청교도의 오만함과 가식, 위선을 조롱한 제8장 등이 그것이다.
총11장 가운데 6장이 이른바 여담이며, 처음 〈헌정사〉와 〈서문〉과 함께 주로 학계나 문단의 문제를 자유롭게 풍자한 장이다. 그 주제는 그 무렵 학계에 대한 풍자, 문단의 폐쇄성, 당대 유명인(시인 드라이든, 철학자 우턴, 벤틀린 등 수많은 사람이 표적이 되었다)에 대한 독설, 그즈음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구 논쟁의 되새김 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주제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스위프트의 문학 재능과 날카로운 풍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스위프트가 평생 품었던 염세적이고 인간을 혐오하는 사상이 함축되어 있으나, 그것은 풍자와 해학으로써 역설적으로 쓰여 있으며 쾌활하고 밝은 웃음으로 채색되어 있다.
젊음에서 오는 희망과 정열, 풋풋한 자신감이 넘치며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여유를 준다. 『걸리버 여행기』에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 작가 소개
저 : 조나단 스위프트
1667년 11월 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7개월 전에 아버지가 사망해 백부 고드윈 스위프트의 보호 아래 자랐다. 더블린의 킬케니 스쿨을 마치고 1682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 1686년에 졸업했다. 학교를 마친 스위프트는 1688년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로 당시는 정계에서 은퇴한 윌리엄 템플 경의 개인비서로 들어갔다. 그후 1694년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집안의 전통에 따라 성직을 얻어 킬루트 성당의 녹봉을 받아 생활했다. 1696년 다시 템플 경에게 돌아왔고, 템플 경이 세상을 떠난 뒤 또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1710년까지 더블린 근처 라라카의 교회 목사로 일했다.
1710~1714년에 스위프트는 삶의 절정기를 맞는다. 토리당의 기관지 격인 신문 「이그재미너」의 편집장을 맡아 마음껏 붓을 휘두르며 정치평론 ‘동맹국의 행위’ 등으로 필명을 높였다. 그러나 1714년 앤 여왕이 죽고 토리당이 집권에 실패하자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칩거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영국 정부의 그릇된 정책 때문에 궁핍에 빠지자 아일랜드의 구제와 부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1724년 「드레이피어의 서한」과 함께 1726년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런던에서 출간해 드디어 확고하게 그의 이름을 떨쳤다. 1730년대 말엽부터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나, 1742년에는 발광상태에 빠졌다. 1745년 10월에 세상을 떠나 성 패트릭 성당의 묘지에 묻혔다. 주요 저서로 『통 이야기』 『책의 전쟁』 『스텔라에게의 일기』 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는 국내에서 주로 아동소설로 분류돼 왔고, 전체 내용 중 소인국 과 거인국 편만 축약된 채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원작은 소인국 과 거인국 편 외에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의 나라 등이 포함된 전 4부작으로, 18세기 영국의 정치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성인용 대작이다. 인간성의 기본적 모순인 이성적 억제와 동물적 충동 사이의 대립을 토대로, 자유와 전제국가, 진정한 신앙과 환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역자 : 유영
柳玲
시인, 영문학자. 호는 운향(雲鄕). 서울대 영문과 졸업. 연세대 교수 및 명예교수 역임. 1939년 「문장」지에 소설 「조갯살」을 발표하여 등단. 이후 시로 전향하여 「백묵」「자화상」「산정」「부채」 등을 발표했다. 1983년 국민훈장 동백상 수상. 지은책 시집『일월』『천지서(天地序)』『인간별곡』, 산문집『나의 대학의 오솔길』『인생의 향기를 가슴에 가득히』, 연구서『밀턴의 서사시 연구』『밀턴문학의 심층구조 연구』『현대문학의 가는 길』 등, 옮긴책 호머『일리아드』『오디세이』 밀턴『실낙원』『복낙원』 단테『신곡』 제임스 조이스『젊은 예술가의 초상』 칼릴 지브란『예언자』 등 다수가 있다. 그의 영문학 번역 업적을 기리는 유영학술재단은 2007년 유영번역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