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는 어렸을 때 죽었어야 했다.”
사랑, 죄책감, 상실과 고독…
운명에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여인의 전설
1921년 아일랜드 독립 전쟁 상황, 코크 카운티의 라하단 저택에 살고 있는 에버라트 골트 대위 가족은 군인이자 잉글랜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밤, 골트 대위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려는 무리 중 한 청년의 어깨에 총상을 입힌다. 상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기에 자신이 쏜 청년의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그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그의 불안은 깊어진다. 결국 골트 대위와 그의 아내는 하나뿐인 딸 루시를 위해서라도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여덟 살 루시는 ‘자신들이 여기 있는 걸 사람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숲속에 숨어 있으면 부모님이 이사를 포기하리라는 생각에 몰래 집을 나간다. 하지만 일련의 우연이 겹쳐 루시는 바다에서 익사했다고 여겨지고, 골트 부부는 딸이 죽은 줄로만 알고 큰 슬픔에 잠겨 아일랜드를 떠나고 만다. 그 후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된 루시는 부모님을 괴롭게 했다는 후회 속에 평생을 살아간다. 그녀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조용히 외로움을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오래된 소설을 읽으며 꿀벌을 키우며 살아가던 루시는 성장하여 레이프라는 청년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며 부모님에게 용서받을 때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을 보류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게 루시의 삶은 이어지는데…
그러나 그녀가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들이 『루시 골트 이야기』의 끝은 아니며, 심지어 요점도 아니다. 루시에게 닥친 것은 예기치 않은 재난이었지만 그것은 70년 넘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삶을 만들어낸다.’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구원을 얻은 루시의 이야기는 민담으로, 전설로, 신화로 바뀌어가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트레버는 냉혹하지만 부드럽게, 인간의 온기와 슬픔의 깊이를 묘사하며 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생명력 넘치게 만들고 있다.
작가 소개
저 :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안톤 체호프와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뉴요커》는 트레버에 대해 “영어로 단편소설을 쓰는,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가톨릭교도가 국민의 대다수인 아일랜드에서 중산층 개신교 집안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배척받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또한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를 따라서 아일랜드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무려 13군데 학교에서 공부했고,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켜봐야 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떠밀려 조국을 떠나서 1954년 이래로 줄곧 영국에 머무르고 있지만 자신은 뼛속까지 아일랜드인이라고 말해 온 트레버는 한평생 이방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외로움과 슬픔에 젖은 사람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 무시당하거나 오해받는 사람들, 버림받거나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트레버 콕스’란 이름의 조각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한 그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쓴 두 번째 소설 『동창생들』로 호손덴상을 수상하면서 1964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소설집 15권에 달하는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단편소설의 아름다움과 힘을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 왔다. 트레버는 단편을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길”이라고 정의한다. 작품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인간관계를, 그 관계를 이루는 사람을 확장된 사회라는 큰 틀로부터 분리시켜 섬세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최소한의 단어만을 사용하여 여백에서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읽어 내게 만드는 독특한 심리 묘사를 통해 현대인의 분열된 삶과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한편 트레버는 장편소설 18권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어쩌다 장편소설을 쓰는 단편소설가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단편과 장편 두 분야 모두에서 찬사를 받는 이례적인 작가이다. 오헨리상을 네 번 수상하고 맨부커상 후보에 다섯 번 올랐으며 휘트브레드상, 아이리시 펜상, 래넌상 등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상을 수상했고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는『비 온 뒤』등이 있다.
“내 소설은 때로 인간 삶의 여러 면을 비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의식해서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이야기꾼이다.”
역 :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제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역서로는 『사람과 상징』,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불안』,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감성과 이성』, 『마르크스』, 『신의 가면 III:서양신화』,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제스처 라이프』, 『도시의 과학자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돌뗏목』, 『흉내』, 『펠리컨 브리프』, 『쥬라기 공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호치민 평전』,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죽음의 중지』, 『로드』, 『서재 결혼시키기』, 『책도둑』, 『메신저』,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에브리맨』,『포트노이의 불평』,『미국의 목가 1, 2』,『척하는 삶』,『영원한 이방인』,『비 온 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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