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 하

『정율도활빈자. 正律道活貧者.』
법과 도를 바르게 세워 가난한 이들을 살게 하라

그 겨울, 혈은 조선의 왕이 되었다.
붉은 안개 자욱하던 그날, 그곳.
홍이를 잃었던 열세 살, 그 겨울의 끝에서.

1476년, 조선.
백성들이 칭송하는 의적, 활빈당.
백성들의 경시를 받는 병들 뢰(?), 허수아비 뢰(?). 뢰뢰왕.

“꽃도둑이라. 재미있는 말이로구나.”

스무 살 조선의 왕.
이제 막 친정을 시작한 혈에게 활빈당은 유용한 패였다.
하지만 언제고 잡아들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했다.

“어휴. 그렇게 꽃을 다 따 버리면 어떡합니까. 바보입니까?”

햇볕에 그을린 까만 살결. 끝이 올라간 커다란 눈동자.
그리운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오밀조밀한 얼굴.
그를 모른다는 사내가, 홍이 같은 생김을 하고 홍이 같은 행동을 했다.

“주어도 주는 줄 모르고, 받아도 받는 줄 모르는 사이. ……그런 관계다.”
“허면…… 벗이란 말씀입니까?”

노을빛 붉은 세상에서, 홍이와 꼭 같은 얼굴로 그리 물었다.

평생 유일했던 아름다운 그의 벗.
지키고 싶었으나 지키지 못했던 그 아이.

그리워서 꽃을 따고, 그리워서 매를 날렸다.
하여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다시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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