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를 만났다

고객평점
저자최옥정
출판사항예옥, 발행일:2017/12/18
형태사항p.294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324156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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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번 창작집에 실린 작품들의 남다른 시선!

하나. 유니크한 문체와 장치

「일요일의 달팽이」
ㅡ자전거를 향해 말을 거는 여자

「감쪽같은 저녁」
ㅡ자석 도마뱀이 사라질 수 있을까?

「당신의 손은 당신의 입보다 가깝고」
ㅡ손 때문에 이별을 통보받는 남자

 둘. 삶에 대한 탐구

「늙은 여자를 만났다」
ㅡ“화분의 흙을 손가락으로 파고 뼈를 안에 묻었다. 흙에 제 살을 문질러 싹을 틔우고 있을 씨앗이 다치지 않게 흙을 살살 덮었다. 뼈에서는 싹이 날 리 없지만 주목 뿌리가 뼛조각을 친친 감고 멀리 뻗어나갈 것이다.”

「분명한 이웃」
ㅡ“나보다 육백 살도 더 먹은 여인이 거기서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요일의 달팽이」
ㅡ“나는 달려야 해. 살아야 하니까. 이젠 넘어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 네 덕분에 다리도 굵어지고 팔뚝도 튼튼해졌거든.”

「감쪽같은 저녁」
ㅡ“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든 내 인생에 속지 말자고 다짐한다. 좋은 것, 나쁜 것을 따로 정하지 말자. 그래야 인생에 휘둘리지 않는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난다. 놀랄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놀라게 되어 있다. 누군가의 죽음은 충격이지만 나도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는 걸로 비기면 된다. 실연도 실직도 그 순간만 엄청나다. 중요한 게 하나 빠져나간 내 인생에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다가 곧 적응한다. 나빠진 것도 좋아진 것도 아니다. 이 한 잔의 와인은 그렇게 새로 시작되는 내 인생에 대한 축배다. 도마뱀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도마뱀이 나를 찾아올 차례다.”

죽음과 싸우다!

하나.
「늙은 여자를 만났다」
ㅡ아버지의 유골 조각을 들고 그녀는 왜 먼 곳으로 떠났나?
ㅡ이 소설집에는 삶을 감싸고도는 죽음에 대한 사유가 있다.

둘.
「분명한 이웃」
ㅡ“나는 절망 앞에서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살아남는 일밖에 없을 때 악착같아지는 사람이었다.”
ㅡ이 문장은 마치 작가 자신을 향한 말 같다.

셋.
「감쪽같은 저녁」
ㅡ“이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여 너무 좋구나.”
ㅡ인생의 밑바닥에 처한 남자의 심리를 그린 이 소설에 담겨 있는 작가의 자기 위안과 평화!

이 작가 최옥정을 보라

“이 사람을 보라!”고 말한 것은 니체였다.

“이 사람을 좀 보시지요.”라고 말한 것은 이상이었다.

최옥정 작가는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 작가의 의지와 투혼!

■ 늙은 여자 되기의 아름다움!

1. 일상의 잔잔하지만 아름다운 무늬

 최옥정은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소설집 『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을 출간했고,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매창』을 발표했다. 최옥정의 작품 세계는 무엇보다도 인물의 내면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매창』은 임진왜란을 주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창이란 인물의 삶과 그 내면의 드라마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이 아우르는 여러 가지 국제적·역사적 문제는 별다른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번 소설집 『늙은 여자를 만났다』에서도 장삼이사들의 내면에 대한 탐구는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소소한 일상의 세목들에 대한 조명은 매우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분명한 이웃」의 주인공은 “원전사고가 나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연쇄살인이 일어”나지만 “그런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반찬을 죽어도 만들기 싫을 때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먹을 만하고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한 공기의 물을 넣었을 때와 한 컵의 물을 넣었을 때의 밥맛이 전혀 다르다는 것”에 놀란다. 이러한 ‘나’의 고백은 이번 소설집을 창조해 낸 작가적 특성에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옥정이 관심을 갖는 것은 각종 미디어에서 24시간 볼 수 있는 사회적 사건·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쉽게 지나치지만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파편화된 일상의 단면들이다. 「일요일의 달팽이」는 자전거를 ‘너’라는 청자로 설정하여 일상의 이모저모를 발화하는 것만으로도 밀도 있는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될 정도이다.
소설은 다양한 색깔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시대의 총체적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소설의 기능일 수 있다면, 언어와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의 성채를 쌓는 것도 소설의 본업일 수 있다. 또한 소설은 삶의 자세와 기본적인 태도를 성찰하게 이끌어 갈 수도 있으며, 시대의 급소를 곧바로 가격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번 소설집 『늙은 여자를 만났다』에 수록된 작품들은 종래의 소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독자들은 이번 작품집을 통해 작가가 현미경적 시선으로 수놓은 일상의 다양한 무늬를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허방의 기원

 이번 소설집을 일관하는 사유의 지평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근거 없음 혹은 의미 없음에 대한 수용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그가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허공을 걷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최옥정의 소설에서 인간은 온전한 삶의 의미나 목적 없이 생존을 이어갈 뿐이다. 이러한 허공 위의 삶은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제일 처음 존재의 정체성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가정의 파탄에서부터 비롯된다. 「늙은 여자를 만났다」는 모든 권위와 의미의 입법자인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는 평생 아버지에게 결박된 삶을 살았다. 아버지와의 세월은 “당신 때문에 나는 어떤 것은 할 수 없었고, 어떤 것은 해야만 했다. 거기 나는 없었다.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서로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차곡차곡 쌓아온 세월뿐이다”라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 때문에 “그동안 발바닥에 본드를 붙인 것처럼 붙박여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나는 평생 한 사람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처럼, ‘나’는 자기만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전혀 만들지 못한다.
「늙은 여자를 만났다」에서는 아버지가 ‘나’를 꽁꽁 얽어맨 모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의 원인과 결과의 끔찍함을 다양한 이미지의 파편적인 나열을 통해 축조해 나갈 뿐이다. 일테면 “그중 한 조각을 집어 자해를 시도하는 엄마랑 아버지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방바닥은 온통 피와 깨진 유리로 뒤덮였다”, “나는 보이지 않았다”, “몸집이 큰 남자가 긴 머리카락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녹슨 전지가위로 마구 잘랐다. 꿈속의 나는 언제나 어린 소녀였다”, “아버지는 참새의 꼬리 부분을 잡고 날개부터 씹어 먹기 시작했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의 정도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체코까지 간다. 이것은 “당신을 여기에 두고 나는 혼자 돌아갈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서 고유한 자기만의 삶을 찾으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동화책에서 본 성과 집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 아름다운 나라”에서 “세상과 분리되어 자기네들끼리만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으로 사는 집시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집시 여자를 만나 발바닥에 못이 박힌 채 살았던 한 남자 얘기를 하고 싶다는 건 한갓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러한 실패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준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모든 주체(subject)는 신민(subject)이듯이, ‘나’ 역시 그동안 아버지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보해왔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을 결박한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에, “악몽과 불안과 조바심을 물려준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안도”하지만, 다음에는 “서러웠고 지금은……. 지금은 막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막막하다. 손에 든 지도를 누가 빼앗은 것처럼 넋이 나가 서 있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늙은 여자에게서 배운 슬픔을 불러오는 제스처(반지를 세 바퀴 돌리는 것)을 취하는 것이다. ‘나’의 홀로서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소년은 죽지 않는다」는 혼자 사는 열세 살 소년의 하루를 찬찬히 따라가는 소설이다. 「소년은 죽지 않는다」에서 소년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지금 노인병원에 입원해 있다. 엄마는 메일로 “너를 사랑하다. 미정아”라는 말을 하는 남자를 따라 일 년 전 집을 나갔다. 가출하는 날 어머니는 “나를 모욕하는 것이라면 태양도 쳐부수겠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가출 이전의 삶이 모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부하를 다루듯이” 아무한테나 “명령조로 말하는 게 버릇”인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어머니가 받았을 상처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소년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르쳐줄 어른이 없기 때문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알아서 챙겨야 한다. 소년은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자신이 지금 혼자 집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애쓴다. 지금 집에는 먹을 음식조차 떨어져 “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허기”에 시달린다. 산불이 난 뉴스를 보며, 소년이 차라리 우리 동네에 불이 났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소년은 “세상에 중요한 게 별로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라는 말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따뜻한 보호와 지도 속에서 꿈을 키워야 할 소년이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는 어둠 속의 존재가 되도록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이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성격이 여러 대목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는 엄마랑 외출할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엄마와 싸울 시간밖에 없다. 가족이 스트레스 해소용 펀치인 줄 안다. 아버지는 어떤 일에도 따지지 않는 여자가 필요했다.(149쪽)

어릴 때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는 나를 몇 시간씩 어두운 방에 가두었다.(151~152쪽)

아버지가 있었으면 새로 바뀐 아나운서에 대해 한마디 했을 것이다. 저렇게 눈 끝이 올라가고 입술이 얇은 여자는 말이 많아. 볼에 살 붙은 거 봐라. 어지간히 고집 세게 생겼다. 어떤 여자든지 보기만 하면 한눈에 트집거리를 찾아낸다. 나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하면서도 즐거운 대화로 이어진 적이 없다. 왜 여자랑 잘 해보려고 노력은 안 하고 욕하고 싸울 줄밖에 모를까. 나까지 기분이 나빠져서 장단을 맞춰줄 맘이 안 생긴다. 따지고 보면 진짜 불쌍한 사람은 아버지다. 고생해서 돈 벌어다 주면서도 자기편 하나 없이 대화법도 모르고 친구 사귀기 불리한 성격은 고루 갖췄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무지막지하긴 마찬가지다.

“아버지라고 불러라.”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첫 번째 말이다. 네 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빠라고 부르면 그 큰 손이 사정없이 날아왔다.(155~156쪽)

아버지와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 걸핏하면 주먹이나 방석, 책, 찻잔이 허공을 날아다니게 하는 사람과 억센 사투리에 귀가 따가운 동네에서 사는 건 나도 엄마 못지않게 싫어한다.(157쪽)

아버지는 권위적이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못한다. 이러한 아버지가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아버지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담임선생 당나귀는 “소동이 일어나면 아무나 한 명을 희생양 삼아 족치면 그만”인 것이 당나귀의 교육방식일 정도로 폭력적이다. “학생이란 죄에, 학교란 교도소에, 선생이란 교도관의 말에 따라, 교실이란 감옥에 가서, 공부란 벌을 받는다”라는 낙서가 모든 아이들에 의해 공유되고 공감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위층에 사는 할아버지와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이 동일시되고 있다. 둘 다 혼자지내며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할아버지가 기르는 새장 속의 새도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이들과 동일시된다. 마지막에 할아버지는 혼자서 죽고, “새는 자지러질 듯 두어 번 더 울고 나서 숨을 죽”인다. 그렇다면 제목처럼 소년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일까? 그러나 소년이 한 번도 온전하게 태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소년은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어떠한 희망도 떠올릴 수 없는 지독한 반어라고 할 수 있다.
「늙은 여자를 만났다」와 「소년은 죽지 않는다」는 서로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아버지의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아버지라는 괴물로 인해 자신의 존재근거를 잃어버린 왜소한 인간의 불우한 초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소년은 죽지 않는다」라면, 「늙은 여자를 만났다」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 아버지의 실재를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분명한 이웃」과 「헬로」는 엇나간 부부관계가 인간을 어떻게 허방 위로 내모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분명한 이웃」에서 아내는 “돈을 벌고 돈을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의 관계에서 ‘갑’이다. 공무원인 아내에게 ‘나’는 등단은 했지만 밥벌이도 못하는 “고급룸펜일 뿐”이다. “당장 육 개월 후 거지가 된다는 것이 확실하다 해도 육 개월 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인간이 나”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아내에게 버림받”는다. 아내가 ‘나’를 버린 건 “내가 돈을 못 버는 작가라서가 아니라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없어서일지도 모”르며, ‘나’는 “가짜 목표라도 정하고 거짓으로라도 부지런한 척 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부관계의 파탄을 아내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강렬하게 지향하고 있었으며, 이것이야말로 관계의 파탄을 만들어낸 주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무렵, 건너편 아파트에서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한 남자와 여자가 저 속에서 어른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서는, “아득하게 멀지만 언젠가는 내 손아귀에 잡힐, 아니 내 목을 움켜쥘 것들의 기미를 직관적으로 감지했던 것”이다. “내 목을 움켜쥘 것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평범한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돈 벌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거절했을 뿐이다. 아내가 주는 용돈은 넉넉했고, “불편함이 없는데 생활을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쁘게 말하자면 “의욕도 추진력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사람이며,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룸펜의 면모”를 완성해간다.
「헬로」는 “메마를 대로 메마른 중년 부부의 삶”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의 집은 “필요 이상 점잔을 빼며 약점을 은폐하려는 남편과, 트집 잡아 봤자 득 될 일 없다고 지레 포기한 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집”이다. 그것은 비유컨대 “실제로는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지만 벽지를 뜯어내면 벽 한 귀퉁이가 헐고 곰팡이 냄새가 온방에 퍼질 것 같은 집”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나’가 “저 아래 까마득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한발을 허공에 내딛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전에 동거를 하기도 했으며, 새롭게 관계를 맺고 있는 그를 따라 영화 촬영 현장에 간다. 그가 쓴 영화의 시나리오는 ‘나’의 부부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영화 촬영 현장은 ‘나’의 삶이 시현되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연기하고 있는 여배우의 사소한 버릇(일테면 코를 찡긋하거나 뺨을 손으로 문지르는 버릇)은 ‘나’의 버릇이기도 할 정도이다. 세 장짜리 단편영화 시나리오 〈메리 크리스마스〉의 내용은 라캉의 실재계에 해당한다고 할 정도로 ‘메마를 대로 메마른 나의 삶’을 그대로 실연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와 축복을 누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남편은 아내에게 저녁 약속에 가자고 제안하지만 아내는 이를 거절한다. 남편이 나가자마자 아내는 폰섹스를 하고 딸은 혼자 그림을 그린다. 밤에 잠자리에 들었던 남편은 아내 몰래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남편은 불도 켜지 않은 채 〈동물의 왕국〉을 보며 자위를 하고, 딸은 해맑은 얼굴로 그 장면을 훔쳐본다. 이러한 삶이란 그야말로 허방 위의 삶이고, 언제 추락과 죽음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삶이다. “반지하 셋방에서 몇 년째 실업자로 지내고 있는 서른세 살의 남자”인 그도 뚜렷한 의미의 중심이 부재한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변화를 믿지 않”으며, “하루하루가 그저 때워야 하는 빈 시간, 써서 없애야 하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마지막은 건너편 베란다의 남자를 향해 수화로 헬로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허방 위의 존재들이 서로 소통과 교감을 나눈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손가락은 정확하게 움직이지만 시선을 집중해서 표정을 읽어야 할 사람은 너무 멀리 있다”는 마지막 문장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손은 당신의 입보다 가깝고」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이기적 초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잦은 야근에다 과잉 충성”하며, 상사의 말이 “지상명령이라는 표정”을지을 줄도 아는 그는 회사에서 시쳇말로 ‘잘 나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유능함이 그들의 열등함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시기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어디를 가도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작은 실수에도 말을 험하게 하는 사람이다.
여자 친구는 이러한 그에게 “당신 손이 싫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이별을 선언하는 순간 그녀는 “깊은 환멸, 존재에 대한 멸시 같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냉소”를 보여주었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그녀가 그토록 싫어한 손의 의미가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된다.

“난 당신의 음식 먹는 태도를 지적했고 당신은 인상을 찌푸렸어요. 이해해요. 그건 사실 좀 곤란한 거잖아요. 아무리 친해도 노골적으로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거. 당신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어질러진 식탁이 창피했을 거예요. 밥그릇 주변에 널려 있는 생선뼈와, 헤집어진 김치, 말을 하면서 수저를 흔드는 버릇. 더는 참을 수 없었어요. 입을 벌리고 큰 소리를 내면서 밥을 먹는 당신. 그래서 일 년 만에 말한 거예요. 미안해, 조심할게, 딱 두 마디면 될 일을 당신은 버럭 화를 냈잖아요. 까다롭게 굴지 말라면서. 나는 밥그릇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다시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식탁을 치우고 커피를 끓이는 동안 당신도 나도 입을 닫고 있었죠. 당신이 설거지를 하다 나를 한번 돌아본 게 전부예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전화기를 귀에 바짝 갖다 댔다. 참을성을 발휘해 최대한 대꾸를 자제했다. “내가 식탁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설탕그릇을 찾고 있는데 당신이 나한테 다가왔어요. 달콤한 게 그렇게 좋아? 물으면서 내 어깨와 팔을 쓰다듬었죠. 마치 우리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게 당신의 방식이에요. 아마 당신은 몰랐을 거예요. 언제나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게 내 입을 막았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만해, 알았어, 됐어. 그리고는 약간의 침묵을 견딘 후 내게 손을 내밀었어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손에게 시키고 숨어버려요. 이제 그 손이 싫어졌어요. 다시는 당신 손이 내 몸에 닿는 걸 원치 않아요.”(262~263쪽)

누드모델인 그녀의 몸은 구석구석이 모두 아름다웠다. 그는 그녀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육체만을 탐해왔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당신의 손’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모습에 ‘당신의 입’은 타인의 마음을 쓰다듬으려는 윤리적 태도에 해당한다. 그런 그에게도 자신을 위한 ‘손’이 아닌 타인을 위한 ‘손’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왕따인 성국의 짝이었던 적이 있는데, 성국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 속에 자신을 던지기도 했던 것이다. 자살한 성국의 일기에는 자신을 구해주던 그의 모습이 다음처럼 기록되어 있다.

애들이 너를 곤죽으로 만든 건 아닐까, 혼자 먼저 도망친 내가 죽이고 싶게 한심했다. 그때 저 앞에서 네가 손으로 교문을 가리키면서 뛰어왔다. (중략) 내 어깨에 얹은 네 손은 떨고 있었다. 파닥거리는 뜨거운 손이 내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넌 남자답고 당당했는데 네 손을 보고 있으면 쩔쩔맨다는 느낌이 들었어. 잠시도 손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꼼지락대잖아. 몇 분 후 너는 그 손으로 내 등을 툭 치며 내리라고 했어.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너의 손과 놀란 표정, 고르지 못한 숨소리, 멀리서 우리한테 보내는 애들의 야유.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253~254쪽)

성국이의 어깨에 얹었던 손은 그의 일반적인 손과는 매우 다른 성격의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성국의 유서에도 창고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앞을 지나던 그가 창고로 뛰어 들어와 애들과 대신 싸우면서 성국한테 도망가라고 했던 것이 자신이 살면서 받았던 “가장 큰 친절”이라고 쓰여 있다. 무엇이 타인을 향해 펼치던 손을 자신의 욕망만을 위한 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친절하게도 「당신의 손은 당신의 입보다 가깝고」에는 그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잔뜩 겁먹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누군가 자신을 공격해온다는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공격적이며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늙은 여자를 찾아서

「늙은 여자를 만났다」와 「소년은 죽지 않는다」의 자식들은 문제적인 아버지로 인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분명한 이웃」과 「헬로」의 어른들은 엇나간 부부관계로 인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 「당신의 손은 당신의 입보다 가깝고」의 그는 세상의 공격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이기적인 인격의 소유자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물들은 ‘늙은 여자’를 통해 나름의 구원을 시도한다. 이 지점이야말로 이번 소설집의 가장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늙은 여자를 만났다」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두고 오기 위해 간 체코에서 늙은 여자를 만난다. 늙은 여자는 큰 나무로 성장하는데 수천 년이 걸리는 주목의 씨앗을 심은 화분을 ‘나’에게 보여준다. ‘나’는 그 화분을 보며, “내가 노파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태울 연료를 만드는 끈질김이다. 아버지는 세상과 싸울 칼도 없었고 자신의 에너지를 태울 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허방 위의 힘겨운 삶에서 ‘나’는 늙은 여자를 통해 삶의 진실을 한 자락 배우는 것이다.
「분명한 이웃」에서는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사는 ‘나’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만난 그를 통해 살아가는 힘을 다시 얻게 된다. ‘나’의 단골식당에서 만난 그는 혼자 사먹는 밥 한 끼도 “종교의식 같은 경건함”으로 대하고, 응급환자도 침작하게 다룰 줄 아는 믿음직한 사람이다. 그는 1960년대에 건설된 사 층짜리 스카이아파트를 비롯하여 동네의 여기저기를 ‘나’에게 가르쳐준다. 그가 최종적으로 가르쳐주는 동네의 장소는 다름 아닌 정릉이다. 흥미롭게도 정릉은 이 작품에서 “육백 살 여인이 사는 큰 집”으로 의미부여 된다. 그리고 ‘육백 살 여인의 집’은 다음처럼 그에게 커다란 삶의 위로와 의미가 있는 성소聖所로 그려진다.

“그때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나보다 육백 살도 더 먹은 여인이 거기서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도 아니면 뭐든 다 알 것 같은 나이 먹은 여자 앞에서 울고 싶어 이곳을 그렇게 많이 지나다닌 건가.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지. 어차피 옆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마음 놓고 울었어요. 한참을 울고 났는데 몸살을 앓고 난 것처럼 몸이 가벼운 거예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진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어요.”(63쪽)

정확히 “육백 살 여인이 사는 큰 집”이 그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의 말을 송두리째 알아듣는다. 그리고 다음의 인용문처럼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다시 자신을 채운다.

나는 그의 말을 송두리째 알아들었다. 그 기분을 속속들이 알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을 버릴 때, 이혼하고 단출한 짐만 챙겨 나올 때 그랬었다. 스무 살 때처럼 가난했지만 힘이 났다. 내가 쓸 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절반쯤 되찾았다. 나머지 절반이 설령 공포일지언정 그때만큼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절망 앞에서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살아남는 일밖에 없을 때 악착같아지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이 남자처럼 뭔가를 선택하고 더 늦기 전에 움직여볼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정릉에 가자. 육백 살 먹은 여인이 사는 큰 집이 궁금했다.(63~64쪽)

‘늙은 여자’는 아버지나 ‘젊은 여자’에 상처받은 인물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고, 나아가 세상을 살아갈 진실의 등불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크게 주목받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인식의 코드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최옥정 작가의 고유한 인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소년은 죽지 않는다」에서도 소년의 유일한 보호자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노인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도, 혼자 된 소년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4. 알아듣기 쉬운 외국어

「나일라」는 해외에 입양된 나일라(한국명 오선미)가 자신의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로서, 지금까지 살펴본 이번 소설집의 특징이 모두 응축된 작품이다. 허공에 뜬 뿌리 없는 존재(입양아), 그 존재 없음의 기원으로서의 가족(친부모와 양부모), 상상적 해결로서의 ‘늙은 여자’(친모 만나기), 그러나 해결될 수 없는 잔여로서의 실재(해소되지 않는 삶의 허방)라는 최옥정 소설의 기본적인 규칙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일라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인물로서, 보통의 미국인과는 구별되는 외모로 인해 과거에 결박될 수밖에 없다. 나일라와 마찬가지로 입양아인 신시아는 우울증을 앓다가 스물세 살에 혼자 아이를 낳고서는, 그 아이가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해한다. “백인 양부모도, 친척도, 이웃도 신시아와 다르게 생겼”던 것이다. 또 한 명의 입양아인 제레미는 생부를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왔지만, 생부가 만남을 거절하자 “I am ending my pain. Loneliness kills me.”라는 두 줄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이러한 허방 위의 삶은 나일라 역시도 마찬가지이며, 그러한 사정은 다음의 인용에 잘 나타나 있다.

진실을 털어놓자면 그녀의 인생은 온전히 과거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주 짧은, 인생 최초의 몇 달. 줄곧 돌아보며 곱씹어온 과거는 그녀에게 현재를 겪지 못하게 했다. 현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도록 길을 막았다. 미래를 향해 뻗은 손을 치우라고 했다. 모든 과거의 시간들은 풍부한 은유와 상징들로 가득하다. 미로와 수수께끼와 퍼즐이 풀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입양서류 파일에 적힌 그녀의 과거는 이제 죽었다. 그녀는 그것을 안다. 알지만 버리지 못한다. 단 몇 줄에 불과한 과거는 그녀의 몸이 되었다. 살과 피와 뼈를 이룬 이 몸이 그녀 과거의 현신이다. 어찌할 수 없는 진실. 검은 머리와 갈색 피부.(74~75쪽)

과거가 “그녀의 몸”과 하나가 되어버렸기(incorporation) 때문에 그녀가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나일라의 직업이 “기록하는 일”인 것도 과거에 속박된 그녀와 잘 어울린다. 나일라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카메라를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 눈에 걸리는 건 전부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과거와 한 몸이 된 나일라가 현재와 조화롭게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일라는 “양엄마와도 세상과도 무관해지는 전략”을 택했으며, 그것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나일라가 찾고 싶은 것은 자신의 존재근거일 것이다. 나일라는 “왜? 라는 질문”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그 질문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나일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해외 입양아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미국인 양부모의 눈빛에는 “장래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부모의 눈빛이라기엔 그녀가 겪는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이 결여되어 있었”고, 그 눈빛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외 입양아들인 그렉과 제레미와 나일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간다고 해서 존재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일라가 “가는 곳마다 한국말과 검은 머리칼의 사람들과 마주쳐도 자신과 그들이 같은 종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역시도 나일라에게는 엄연한 타국인 것이다.
홀트 재단에서 나일라는 드디어 스무 살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만난다. “이때껏 그녀의 출생은 성장을 방해해왔”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제 나일라는 엄마를 만나고 ‘왜? 라는 질문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과거가 아닌 현재에, 저곳이 아닌 이곳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동시에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인할 수 있을까? 다음의 인용문에는 희망의 가능성이 조금 엿보인다.

나는 옳았어요. 한 번만 만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였군요. 사람들이 평생 가지고 사는 것, 제레미가 그토록 원했던 것,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 엄마랑 딸.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만남조차 망설였는데,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건데 이상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 당신한테 이 마음을 받으러 왔나 봐요.(98쪽)

단 한 번의 만남에서 나일라는 “이상하게 보호받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낀다. 그러나 「나일라」는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두 모녀는 미소를 교환하지만, 나일라는 “생모의 미소”를 “다른 한국인의 것보다는 알아듣기 쉬운 외국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쉬운 외국어’라는 표현에는 나일라가 평생 짊어져야 할 치유 (불)가능성과 소통 (불)가능성이 오롯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5. 이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여 너무나 좋구나

「감쪽같은 저녁」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밝은 색조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한복판에는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있다. 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곧 실직하고 “어차피 망한 거 당분간 여기서 놀다” 가자는 심정으로 피피섬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도마뱀을 만나 함께 지낸다. 피피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지낸다.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은 도마뱀의 이미지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나’는 도마뱀 모양의 냉장고 자석 두 개를 가지고 귀국한다. 이후 모든 일은 이전과 달리 잘 풀려나간다. 번듯한 회사는 아니지만 다시 취직을 하고, 회사의 여직원과 달콤한 연애도 하는 것이다. 여직원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작은 새가 푸득거리는 느낌”과 “눈 오는 날 마시는 코코아 맛”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냉장고의 도마뱀 자석이 없어지자 “기분이 나빴다. 밤새워 한 방학숙제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고 할 정도로 불안에 빠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녀가 왔다 간 날마다 도마뱀이 없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왔다 간 다음 도마뱀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는 문장이다. 이것은 그토록 달콤한 그녀가 도마뱀의 분실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녀가 도마뱀과는 거리가 먼 존재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온몸으로 벽의 표면을 밀고 다니며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봐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지만, 그녀는 이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는 트라우마와도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연결된다. “신경질적이고 사납고 참을성 없는 어머니”와 살면서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보내는지 ‘나’는 매일 생중계로 보았던 것이다. ‘내’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 부류에서 살짝 비켜 있게 된 것도 “어머니 덕분”이다. 이런 ‘내’가 “적어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여자, 못마땅해도 삼 초쯤은 생각해 보고 화를내는 여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쪽같은 저녁」에서 도마뱀으로부터 배운 삶의 진리는 아무래도 도마뱀의 “감쪽같이 꼬리를 자르는 모습”에 있을 것이다. 도마뱀의 가장 큰 특징은 감쪽같이 꼬리를 잘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우리 삶의 본질과는 무관한 꼬리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꼬리를 ‘감쪽같이’ 잘라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인생의 행복은 좌우되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자신이 말을 하면 도마뱀의 꼬리처럼 어머니한테 붙잡혀 잘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꼬리를 잘라버렸다. 그것은 “신경질적이고 사납고 참을성 없는 어머니”와의 결혼생활을 견뎌내는 아버지의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도마뱀으로부터 배운 삶의 진리가 있기에,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도 도마뱀 꼬리에 불과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에게도(「늙은 여자를 만났다」와 「소년은 죽지 않는다」), 아내나 남편에게도(「분명한 이웃」과 「헬로」), 생모에게도(「나일라」) 결박되지 않은 채 온전히 ‘지금-이곳’에 충실할 수 있다.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은 사실 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 그녀와 헤어져도 곧 잊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살기 위해 몸뚱이 대신 꼬리 하나를 떼어낸 셈이니까”라는 말에는 ‘내’가 깨달은 도마뱀의 지혜가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다. 「감쪽같은 저녁」은 다음과 같은 대긍정의 철학으로 끝난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든 내 인생에 속지 말자고 다짐한다. 좋은 것, 나쁜 것을 따로 정하지 말자. 그래야 인생에 휘둘리지 않는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난다. 놀랄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놀라게 되어 있다. 누군가의 죽음은 충격이지만 나도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는 걸로 비기면 된다. 실연도 실직도 그 순간만 엄청나다. 중요한 게 하나 빠져나간 내 인생에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다가 곧 적응한다. 나빠진 것도 좋아진 것도 아니다. 이 한 잔의 와인은 그렇게 새로 시작되는 내 인생에 대한 축배다. 도마뱀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도마뱀이 나를 찾아올 차례다.(227~228쪽)

당나라 시대 임제선사가 말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진리가 쉽게 풀이되어 있는 위의 인용문에서 허방을 걷는 자의 불안과 고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한 불안과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이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여 너무나 좋구나” 라는 오도송이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늙은 여자를 만났다」에서 체코까지 가서야 ‘늙은 여자’를 만났던 주인공은 「감쪽같은 저녁」에 와서는 스스로 ‘늙은 여자’의 경지가 되고 있다. 그녀와 사귀던 일 년 동안 ‘나’는 요리사 수준으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고,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라지 못한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꼭 내 엄마 같다.”는 말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늙은 여자’는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늘 그렇듯이 희망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온다.

― 이경재(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저 : 최옥정 
 196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영어교사를 하다가 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했다. 등단 후에는 번역과 어린이 책 집필로 생활했다. 소설집으로 『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로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으로 『On the road』, 에세이집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로 『소설창작수업』, 번역서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을 수상했으며, 한문 고전읽기 모임인 이문학회에서 9년여 동안 수학했다.

그리고 작가는 “소설과 인생은 등을 맞댄 한 몸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거기서 창작의 모티브를 찾고자했다. 인간은 엄청난 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작은 돌부리에도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얼핏 터무니없는 것 같은 이 말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왔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다. 내가 발견한 '인물'은 끝까지 나의 분신이라 여기며 책임을 지는 게 작가의 일이라 믿는다”고 한다.

목 차

늙은 여자를 만났다 007
분명한 이웃 037
라일라 067
일요일의 달팽이 101
소년은 죽지 않는다 131
헬로 165
감쪽같은 저녁 197
당신의 손은 당신의 입보다 가깝고 231

해설 / 늙은 여자 되기의 아름다움 / 이경재 265
작가의 말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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