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모두가 우연일 수도 치밀한 계획일 수도 있었다
석양이 내릴 무렵 도성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효종 즉위년(1649년), 조선 사회를 뒤흔든 괴이한 사건의 실체
1649년 음력 10월,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다. 석양이 내릴 무렵의 오후, 도성 한복판에서 살인이 벌어진 것.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인 사인(死因)은 묘연하고, 동행하던 무관(武官)은 입을 열지 않는다. 본래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던 이 기이한 사건은 당대 미제를 해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형조 좌랑 전방유의 손에 맡겨진 뒤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베스트셀러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별아 작가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뒷골목의 살인 사건에 작가 특유의 세밀한 상상을 더해 소설화한 열네 번째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을 출간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태 속에서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결과에 다다를 수 있을까. 전체를 꿰뚫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이 작품은 사건의 주범과 그를 돕는 조력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건 이면의 진실을 좇는 이의 시선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조선왕조실록』 효종 1년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 당했다’는 내용에서 출발한 역사적 상상력은 『승정원일기』에 언급된 39개의 기사를 거치며 작가에게 ‘구월의 살인은 살인 사건이되 단순한 살인 사건 이상의 무엇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10년에 처음 등장하는 반사회 조직 ‘검계(劍契)’의 흔적 역시 사건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읽어내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 소설은 기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으로 되살아난 역사 속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건은 한 개인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뒤 복수를 향한 열망만으로 이어가던 삶의 끝에서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강(晝講)에서 조정의 대신들이 주목하는 것은 ‘왜 죽였는가’가 아닌 ‘살인자의 신분은 무엇인가’였다. 겉으로는 조정의 기강을 외치지만 이는 호란 이후 흔들리던 신분 사회를 공고히 다지려는 욕망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해득실을 위해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산 사람의 말 대신 죽은 자의 말에 귀 기울여온 전방유만이 유일하게 진실에 다가가고자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검험을 거듭할수록 살인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사건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알게 되지만 뒤늦게 깨달은 진실은 선문답을 나눈 뒤 홀연히 사라져버린 사내처럼 위태롭고 희미하다.
역사 속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해온 김별아 작가의 작업은 『구월의 살인』에 이르러 다시 시작된다. 추리 기법을 가미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것도 물론이지만 오직 개인의 안위와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품고 끝까지 걸어가는 범인과 진실을 향한 의심을 놓지 않는 추적자가 그리는 묵직한 궤적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일깨워줄 것이다.
등장인물 소개
전방유 : 전도유망했던 소년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거듭 과거에 낙방하여 뒤늦게 문음을 통해 형조의 좌랑이 된다. 거칠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형조 일에서 빼어난 소질을 발견하고 미제로 남았던 사건들을 처리해 나간다.
김태길 : 탐욕스러운 성격으로 이익이라면 인륜도 무시하는 처세로 ‘각다귀’로 불리는 여주의 토호. 길거리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구월 : 사랑하는 이와 함께 속량을 통한 면천을 꿈꾸었으나 주인인 김태길의 변덕으로 연인이 억울하고 잔혹한 죽음을 당하며 좌절을 겪는다.
노장 : 계의 수장. 본래 궐 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자신의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술도장을 운영하며 저마다 복수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구성된 계의 자금을 댄다.
윤 선달 : 노장의 오른팔이자 계의 일원. 주인 양반에게 겁간을 당해 자신을 낳고 애티증을 앓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며 계에 몸을 담는다.
작가 소개
저 :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데뷔 초기 사회변화와 함께 불어닥친 혼란을 개인적 감성으로 써내려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을 발표해 젊은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후 소재의 다각화에 몰두한 『축구전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미실』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에 되살린 소설이다.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 영웅호걸들을 녹여내고 신라왕실의 권력을 장악해 간 미실의 일대기를 통해 현대와 같은 성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여성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요녀로 전락하지 않은 자유로운 혼의 여인과 그런 여인이 가능했던 신라를 그려낸다.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이 작품은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준다.
『가족 판타지』에서 작가는 아이와 그녀의 사랑이, 그가 중심이 되어 이루고 있는 가족 관계가,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확장된 관계로서의 가족이 인류애와 박애주의로 연대하는 것을 꿈꾸고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 혼자서도 행복하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고, 다시 만나서도 행복하고, 상처와 장애와 실패와 절망 속에서마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그가 희망하는 가족 판타지를 넘어선 가족의 참모습을 제시하였다.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조선 청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치명적 사랑을 그린 『열애』에서 작가는 『미실』에 이어 다시 한 번 가열 차게 벼린 내공 풍부한 역사소설을 선보인다.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관계, 일본 내의 식민지였던 가네다 후미코, 일본 사상사에서 후미코의 의미,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이며, 테러리스트이자 시인인 박열의 투쟁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버무려 그저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일본인 아내'라는 한 문장으로 일축되었던 이들을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국경, 이념, 죽음까지도 초월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인류의 숭고한 가치인 휴머니즘이 발로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에세이집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에서는 상처와 시련이 바닥을 치는 고통 속에서도,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저자는 자신이 책과 시를 읽으며 삶과 사랑을 사유하고 길을 찾아간 경험을 토대로 눈물 흘리고 힘을 얻고 닫힌 마음을 열었던 그의 지난한 기억들을 글로 담아냈다.
소설집으로는 『꿈의 부족』, 장편소설 『미실』『열애』『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축구전쟁』『영영이별 영이별』,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식구-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가족 판타지』,『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등이 있다.
목 차
죽은 자의 말
바다의 도장
처음의 풍경
수사
뜨겁고 독하고 맑은
도깨비 자식
비밀과 거짓말
대군궁의 궁노
고통을 묻다
호홀지간
금을 얻다
십자 모양 칼자국
검은 강 붉은 놀
관노와 사노
살을 먹이다
지박령의 비밀
꽃의 순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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