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소설은 쓰는 자에게도 위안을 주지만 독자에게는 기꺼이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독자의 분신이 되어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고 더 나아가 타인의 공감까지 얻어준다면 그 독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군을 얻는 동시에 한풀이가 되는 것이다. 그거 영락없이 내 이야기 같더라, 라고 말하는 독자를 위한 소설의 치유능력이다.
이 소설을 통해 이제 전주 한옥마을을 내 고향으로 느낄 분들이 늘어날 것이다. 고향이란 꼭 거기서 태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자랐다고 해서 반드시 고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정서에 공감하고 애정을 심어둔 곳이 고향일 것이다. 어떤 이가 말했다. 육자배기 한 대목이라도 흥얼거릴 줄 알면 그가 남도사람이다, 라고.
작가는 이 말을 작가가 자란 전주에 옮겨 보았다. 남고산성, 견훤, 초록바위, 녹두장군, 용머리고개, 치명자산, 풍남문, 싸전다리, 남천교, 오목대, 한벽루, 전동성당 등에 얽힌 이야기들 중 어느 것 한 가지라도 기꺼이 풀어놓을 수 있다면 그는 전주를 고향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연간 천만 명이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간단다. 근대와 현대가 한 호흡으로 부딪히는 현장을 부각시키다보니 누군가 조금은 과장법을 쓴 듯하다. 하지만 관광객의 수를 세어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바로 그곳에 소설가가 원하는 이야기보따리가 있었으므로 그거면 되었다.
아직 전주사람이 되기엔 좀 뭣한가. 그렇다면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을 일독하고 나서 자기점검을 해도 좋을 성싶다. 당장에 소설가가 될 수는 없지만 하루만이라도 소설처럼 살고 싶다면 소설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소설 속 인물이 되어보는 것도 차선책은 될 것이다.
소설이 되자면 적어도 세 가지는 갖춰야 한다. 재미있을 것. 보편성을 갖춰 누가 읽어도 말이 될 것. 그리고 의미심장하여 책장을 덮은 뒤에도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당신에게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이 재미있고, 말이 되고,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기 바란다.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을 읽다보면 기구에 올라 전주한옥마을을 내려다보는 착시를 느낀다. 지자체에서 발 벗고 나설 홍보작업을 소설가 한 사람이 깔끔히 해결해준 느낌도 든다. 도랑물이 휘어져 흐르는 한옥마을의 중심지를 주말에 걷다보면 어깨가 부딪힌다. 연간 천만 명이 다녀간다는 말도 허언이 아닌 성싶다. 이 동네가 느닷없이 인기 관광지로 부상했다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긴 세월 그 가능성을 숨겨왔음을 인정하게 된다.
소설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동네 모습과 그 뒤에 숨겨진 애환을 좇는다. 한옥마을은 토박이들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서글픈 현장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동학혁명의 피비린내와 식민지 민초들의 땀내가 여전히 배어있다. 작가는 전주천 남쪽 서학동 골목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전근대와 현재진행형이 뒤섞인 동네에서 저자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구석구석을 잘도 찾아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소설이 다큐로 읽히는 이유는 저자가 전주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해보이 않는다.
소설가는 서울로 올라가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삼류감독을 귀향시켰다. 그의 눈과 귀를 빌려 한옥마을 남쪽에 펼쳐놓은 열 개의 단막극은 마침내 하나의 맥락을 가진 장편서사로 아퀴를 맞춘다. 어느 이야기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각 부품만으로도 온전한, 조립하여 쫙 펼쳐놓으면 온 동네가 한눈에 잡히는 조감도, 땀내 물씬 풍기는 병풍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선말기 종으로 팔려간 소녀 곱덕과 한옥마을에 뿌리내린 필리핀여성 미야의 신기한 데칼코마니.
돌아온 고향에서 비극을 선택한 미혼모 순옥과 그녀의 아들 동학의 기행.
40년 전에 두고 온 아들을 찾아 베트남을 다녀온 후로 날마다 죽어가는 집수리공 봉수.
일본인 마름이던 선친 덕에 건물주가 되어 미야를 농락하며 갑질을 일삼는 두식.
두식의 음모에 잘 나가던 가게를 빼앗기고 뒷골목 옷수선공으로 되돌아간 한복집 여자 .
귀향한 절세의 춤꾼 송갑석과 그를 사랑한 책방여자.
책방여자를 짝사랑하다 전람회 도중에 실종된 화가 진식.
삼청교육대에서 입은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을 얻은 페인트공 호규.
개척교회 김 장로의 여자였다가 진식의 여자가 되었다가 결국 페인트공 호규와 맺어지기까지 사랑을 찾아 헤맨 춘화.
한옥마을 토박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나의 세헤라자드가 되어주는 감나무카페 여주인 성자의 사연까지.
작가 소개
지은이 : 권행백
정읍 내장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한방부인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개업의 생활과 국제의료봉사단장직을 병행, 일중독으로 고생하다 캐나다로 갔다. 십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진화생물학에 기초한 『이기적 유전자 사용매뉴얼』 등 네 권의 과학철학서를 썼다. 2015년 단편소설 「샤이레이디」(한국소설 신인상)로 등단했다. 2016년 신춘문예 2관왕(불교신문, 광남일보)을 했다. 2017년 신예작가(한국소설가협회)로 뽑히고,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2018년 장편소설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을 출간했다.
목 차
2. 사진 한 장
3. 마름
4. 왜 나를 피하지?
5. 눈 쌓이는 하루
6. 책방여자
7. 귀
8. 표충비
9. 낫
10.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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