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결혼식 멤버』는 열두 살, 너무 커 괴물처럼 보이는 꺽다리 소녀 프랭키의 성장 이야기이다. 프랭키는 자신이 누군지, 이 세상에 왜 왔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두려움에 떤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프랭키의 현실은 미국의 답답한 남부 마을, 가정부 베레니스 아줌마와 사촌동생 존 헨리와 음식을 먹고 트럼프 카드를 하며 라디오를 통해 2차 세계대전의 소식을 듣는 집의 부엌이 전부다. 그러나 그녀는 작디작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언제나 낯선 세계를 꿈꾼다.
“그녀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은 맹렬한 속도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보다 더 속도를 올려서, 더 뿔뿔이 흩어지고,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다양한 전쟁의 정경이 튀어나와 그녀의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그녀는 선명한 색깔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섬을 보고, 회색 파도가 밀려오는 북쪽 해안 지대를 보았다. 폭격을 받은 눈, 비틀거리며 걷는 병사들의 다리. 전차와 비행기. 비행기 한 대는 날개를 파괴당해 불이 붙은 채 사막의 하늘에서 추락한다. 세상은 시끄러운 전투 탓에 계속해서 금이 가고, 1분 동안 1,000마일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프랭키의 머릿속에서 여러 지명이 소용돌이쳤다. 중국, 피치빌, 뉴질랜드, 파리, 신시내티, 로마. 회전하는 거대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두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미칠 듯이 답답한 현실에 절망하던 프랭키에게 멀리 알래스카에서 근무하던 군인 오빠의 결혼식 소식은 낯선 세계로 향할 절호의 기회다. 오빠와 새언니의 손을 잡고 결혼식 멤버, 즉‘우리’가 되어 동경하던 세상으로 나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나는 윈터힐에 갈 거야. 결혼식에 가는 거야. 그리고 이 두 눈을 걸고 예수님께 맹세해. 가서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결혼식이 끝나도 나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프랭키, F. 재스민, 프랜시스로 바뀌는 이름을 통해
1940년대 미국 남부 고딕문학의 대표작가 카슨 매컬러스가 그리는 열두 살 소녀의 성장통
『결혼식 멤버』는 소녀의 불안한 심리를 1부 2부 3부로 나누며, 각 부마다 프랭키, F. 재스민, 프랜시스로 이름을 바꾸는 독특한 구성을 띤다. 이는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뜨거운 열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미칠 듯이 푸르던 여름 열두 살 꺽다리 소녀에게 찾아온 오빠의 결혼 소식, 결혼식을 통해 낯선 세계로 나아가길 꿈꾸던 소녀의 열망과 좌절, 사촌 동생 존 헨리의 죽음과 마지막으로 감행한 어설픈 가출의 실패까지. 한여름 소나기 같던 혼돈의 시기가 끝나고 열세 살이 되며 끝나는 소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 모두가 한때 열병처럼 겪었던 사춘기적 고민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소녀의 내밀한 심리를 병적이랄 만큼 집요하게 그려내는 카슨 매컬러스의 문체 앞에서 소설은 단순한 성장 이야기를 넘어 “우리에게도 이런 소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 것입니다’라는 단순한 인생의 통과 의례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상처럼 ‘나’라는 정체성과 내가 아닌 세계와의 끝없는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즉 『결혼식 멤버』는 결코 한때의 성장통이 아닌, 언제나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카슨 매컬러스
1917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태어났다. 15세 때까지 전문 피아노 교육을 받다가 독서와 글쓰기에 심취해 첫 단편 「잘 속는 사람」을 집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줄리아드음대 진학을 위해 뉴욕에 왔다가 등록금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뉴욕대 야간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36년 19세 때 피아노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의 불안한 심리를 그린 자전적 단편 소설 「천재」를 잡지에 발표하고, 1940년 23세 때 발표한 첫 장편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 ‘미국 문단의 기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메리트 상을 수상했다. 15세 때 겪은 심각한 열병 이후 1967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뇌졸중, 흉막염, 유방암 등을 앓으며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다. 작가 지망생 리브스 매컬러스와 결혼해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다시 이혼을 겪고, 이혼한 남편의 자살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서른 살 이후로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며 ‘남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문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금빛 눈의 그림자』, 『슬픈 카페의 노래』, 『결혼식 멤버』, 『바늘 없는 시계』 등의 작품을 남겼다.
옮긴이 : 채숙향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고려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강사를 지낸 바 있으며, 현재 백석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이다.
『약해지지 마』, 『신의 카르테』, 『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어중간한 밀실』, 『마법사와 형사들의 여름』, 『삶의 힌트』, 『대하의 한방울』, 『타력』, 『명탐정이 되고 싶어』, 『말하고 생각한다 쓰고 생각한다』, 『마법사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가』, 『바람에 날리어』, 『쓸쓸함의 주파수』, 『사자가 사는 거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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