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임성순 첫 소설집 출간
블랙코미디, 디스토피아, 오컬트, 패러디……
유쾌하고, 강렬하고, 절절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향연
과감하고 독창적인 문장과 서사,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서늘한 시선 등 굵직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을 집필해왔던 작가 임성순의 첫 소설집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018년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로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임성순은 이번 소설집에서 자본과 부조리에 잠식되어 무감해진 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 군상을 풍자한다. 표제작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을 포함해 총 여섯 편의 단편으로 묶인 이 소설집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임성순만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가득하다. 유쾌하고, 강렬하고, 절절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향연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과 잊혀져가는 아픈 기억들을 끌어올린다. 블랙코미디, 디스토피아, 오컬트, 패러디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집약된 다채로운 단편들은 감각적인 위트와 풍자로 무장한 가운데 피할 수 없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며 독자들의 뇌리에 강렬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부조리한 사회와 시스템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신열한 스케치
“손을 펼쳐보았다. 백화점이 무너졌다. 무너진 건물 아래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막을 수 없었을까? 정말 구할 수 없었던 걸까? 누구도 구하지 못한 손이 거기 있었다. 침묵의 오랏줄에 묶인 채 쓰레기 산 아래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이들을 함께 묻었던 공범의 손이 거기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승합차 창에 기대 눈을 감았다. (……)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_〈몰:mall:沒〉에서
임성순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를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게 하는 〈몰:mall:沒〉을 시작으로, 재벌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몰락해버린 한 미술평론가의 삶(〈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인간 영혼을 에너지원 삼아 살아가지만 죄를 지은 인간들이 지옥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결국 사태 수습을 위해 인간계로 파견 나온 악마의 아이러니(〈사장님이 악마예요〉), ‘인류 낚시 통신’이라는 비밀결사대의 은밀한 초대를 받아 신분을 위장하고 광화문으로 향한 한 백수의 사연(〈인류 낚시 통신〉) 등을 신랄하게 그려냈다.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온 국가적인 재난 상황 속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거나(〈계절의 끝〉), 관보다도 더 좁은 방에 곡예사처럼 뒤틀린 자세로 열쇠를 깎으며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습(〈불용(不用)〉)은, 오래되어 말라붙어버린 슬픔을 문장으로 새겨넣는 임성순의 소설적 화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의 향연
장편 같은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
“비둘기들의 붉은 눈이 날 향해 다가오는 동안 등 뒤로 검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소리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 때마다 소름이 몸을 따라 역병처럼 퍼졌다.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암흑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미뤄온 운명이 비로소 날 따라잡을 차례였다.” _〈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에서
그의 전작들에서 알 수 있듯, 임성순은 주로 장편소설을 통해 사회 시스템이나 인간의 폭력성과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뤄왔다. 단편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단편의 얼개로 써내려갔다는 점이다. 덕분에 위트와 유머는 더욱 경쾌해졌고 슬픔과 탄식은 더욱 깊어졌다. 직접적인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몰:mall:沒〉의 ‘mall(상점)’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沒(가라앉다)’은 세월호 사고를 떠오르게 한다. 또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전반에 깔린 그로테스크함은 예술(미술)과 자본이 공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더욱 공포스럽고 기괴하게 만든다. 암흑 속에 갇혀 두려움에 떨면서도 오로지 재기만을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마저 그 숨 막히는 암흑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장님이 악마예요〉와 〈인류 낚시 통신〉은 임성순의 작가적 재치가 한껏 발현된 작품들로, 사회의 주류가 아닌 인물들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야기적 재미에 흠뻑 빠져 읽다 보면 종국에 드러나는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인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특히 〈인류 낚시 통신〉은 윤대녕의 〈은어 낚시 통신〉을 패러디한 소설로, 작품 자체가 가진 새로운 색채와 원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문학 독자들에게 인상적인 소설적 유희를 선사할 것이다.
“짧은 글이 오히려 큰 덩어리의 이야기나 주제를 다루기 유리하다”는 임성순의 말처럼, 마치 장편을 읽는 듯한 그의 단편들은 장편과 단편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짧은 단편 속에 장편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서사, 형식, 주제를 자유자재로 구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여러 권의 장편을 읽는 듯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덧붙여 작품 해설 대신 넣은 긴 분량의 ‘작가의 말’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종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개성 있는 필치와 과감한 전개를 보여주는 임성순의 첫 소설집은 분명 한국 문학장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것이다.
“아마 모르셨겠지만 이 소설집의 콘셉트는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준비했어’입니다. 쓰는 사람은 재밌게 썼던 글이니 어쨌거나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2010년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극해》 《자기개발의 정석》 《우로보로스》와 에세이 《잉여롭게, 쓸데없게》를 출간했다. 단편소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로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목 차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 041
계절의 끝 · 083
사장님이 악마예요 · 123
불용(不用) · 159
인류 낚시 통신 · 189
작가의 말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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