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문학계의 주성치,
‘웃음 해방꾼’ 김홍 첫 소설집!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하고 2020년 첫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를 발표하며 재미와 작품성을 겸비한 반가운 소설세계를 보여준 작가 김홍의 첫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이 지닌 재기발랄한 서사와 유머 코드는 주성치 영화와 닮았고, 주제의식은 스페인 문학의 걸작 『돈키호테』에 빗대어진다. 받아들여질지 말지 두려워하지 않고 내뱉는 발화에서 풍기는 후련함, 차마 스스로는 내뱉을 수 없었던 그 발화를 읽으며 분출되는 쾌감은 박민규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느껴진 신선한 저항성을 떠올리게 한다. 섣부른 요약이나 해석으로 작품의 의의를 평면화하기가 아쉬워 비유를 동원하게 만드는데, 그 보조관념으로 독보적인 반열에 오른 대가들을 호명하게 되는 소설집이라니. 김홍 소설은 대체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가.
김홍의 가장 큰 무기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이야기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구사하려는 유머가 A급인지 B급인지, 서사의 진행이 ‘문학적’인지 아닌지를 검열하지 않음으로써, 김홍은 한국문학의 영역을 다시금 확장하고 그 최전선에 선다.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모두를 자신의 문학으로 만드는 필력을 보여준 김홍은 그 힘을 ‘루저’들에게 기꺼이 넘겨준다. 김홍의 인물들은 성공과 실패 중에서라면 실패에 한없이 가깝지만,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내던지는 돈키호테와 같은 이들이다. 이 미약한 존재들이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코믹한 혁명을 일으킬 때, 주성치가 얻은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라는 칭호는 김홍에게도 부여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통쾌함과 진한 페이소스를 안겨주는 김홍식 위로는 억제되어 있던 독자의 웃음을 무장해제시키고야 만다.
현실을 환상적으로 전복하려는 예측불허의 상상
풍자, 해학, 폭소와 뒤섞여 전달되는 부드러운 독설
김홍의 상상은 현실 문제를 환상적으로 전복해보려는 열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상상이 지나치게 거창하거나 진지해지지 않도록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다. 김홍은 신랄한 비판을 유머로 포장해 전달하는 세련된 독설가다. 독자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폭소하는 동안 작가의 비판의식을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699.77」의 화자는 자본주의에 잠식된 도심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현실을 견디는 인물이다. 그는 하루의 반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상차 아르바이트 직원인데, 스스로를 기계가 인간을 착취하는 가상세계 속 주인공으로 상상하며 고통을 납득해보려 한다.
「곳에 따라 소나기」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여름을 배경으로 삼는다. 자신이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날이 개는 통에 비를 전혀 맞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은 전국적인 불운에서 혼자만 배제되어 오히려 어쩔 줄 모른다. 「싱가포르」에는 ‘중국은 없다’라는 명제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한’ ‘정’ ‘명’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나라인 중국이 사실은 실존하지 않으며, 중국에 관한 기억은 주입된 것이라는 ‘정’의 주장은 얼토당토않아 보인다. 그러나 현실이 상상보다 감흥 없고 “살아 있는 기분이 들지 않”는 세계임을 그들은 안다.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그 생생한 기억은, 정말 현실일까.
「어쨌든 하루하루」는 달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찬 국정 과제를 내걸었던 정부가 자발적 해체를 선언하는 진풍경을 그린다. 달 표면에는 정부의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한, 보행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값싼 기계인 ‘벼룩’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벼룩’을 터뜨릴 수 있는 리모컨이 주인공의 손에 쥐어진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응원하는 야구팀이 안타를 맞을 때마다 ‘벼룩’을 터뜨리며 즐거워하고, 프로야구 사상 최다 연패를 웃어넘기기에 이른다. 김홍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현실에 대한 환멸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김홍식 블랙코미디의 시작을 보여준다.
인쇄된 활자의 무게만큼 애잔하고,
실패해서 더욱 사랑스러운,
아무것도 아닌 혁명들이 꽃피우는 ‘0’의 미학
그리고 김홍 소설은 환멸을 웃어넘기는 데에서 나아가 환멸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태도를 보인다. 세상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에서도 정신을 놓고 어울려주겠다는 듯이, 무아지경에 빠져 환멸을 즐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창한 대의를 품고 있던 단어들이 보잘것없고 우스운 것으로 비꼬아지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던 일들이 중대한 사안으로 과장된다.
이를테면 「신년하례」에서 ‘혁명’은 더이상 뜨겁고 절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파타야로 도피한 ‘이동진 과장’이 즐기는 “따듯한 것” “넘나 좋은 것”이다. 대학 시절 혁명을 꿈꿨던 ‘영주’에게 지금 절박한 임무는 몸담고 있는 회사의 회장을 위한 장기자랑 행사를 이동진 대신 맡아 무사히 치르는 것이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장기자랑 행사에 전 직원이 사활을 거는 난장판 속에서 장렬히 망해가는 무대는 환멸의 페스티벌이나 다름없다.
「이인제의 나라」에 이르러 김홍의 풍자와 해학은 절정에 달한다. 이 단편의 화자인 소설가는 오랜 세월 꾸준히 정치활동을 했지만 애매한 포지션과 다소 아쉬운 존재감을 보여온 정치인 ‘이인제’를 한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운 소설을 구상한다. 별다른 성취가 없음에도 번번이 선거에 출마한 끝에 놀림감이 되어버린 정치인을 희화화한 소설이지만, 묘하게도 ‘이인제’에 대한 화자의 애정 또한 느껴지는 듯하다. 화자가 ‘이인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하면서도 그에 대해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알고 그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고자 정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한 애정은 김홍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다. 「실화」는 맹목적이고도 공허한 믿음을 상징하는 게르마늄 목걸이를 소재로 삼아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추구하는 듯한 단편이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현수’와 동업하려다 배신당한 후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정기’는 어느 날 우연히 게르마늄 원석의 힘으로 좌절을 극복한다. 그뒤로 정기의 일생은 신화적으로 흘러간다. 정기가 시도하는 모든 일이 잘 풀린 끝에 소소한 행복을 손에 쥔다는 이 비현실적인 서사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이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그들을 위로하려면 서사가 얼마나 무모해져야 하는지 역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표제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의 주인공 ‘해수’는 아무것도 아닌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진다. 고아가 된 해수를 돌봐준 동네 아저씨 ‘크리스 해밀턴’은 생전 트럼펫을 불어본 적 없으면서 트럼펫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소중한 존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한 해수는 오류가 생성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연방 트럼펫 주자 관리 위원회’의 압박에 맞서 자발적 디아스포라가 되어 일본으로, 다시 태국으로 망명해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해수의 존재 자체가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크리스 해밀턴의 삶을 증거하기에 이른다. 분명 우리는 트럼펫 주자를 관리하는 일 따위가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알고 있는데, 왜 이 소설을 읽은 후 뻐근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김홍은 해묵은 가치체계를 조소하고 역전시키면서, 소설 속 세계에도 소설 밖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리 없는 애잔한 혁명을 일으키고 또 무너뜨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온 것들을 한껏 과장해 부각시킨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소설이 허황되고 유치한 웃음거리로 오해될 위험도 기꺼이 감수한다. 작가의 이러한 분투 덕분에 한바탕 웃어젖혀 가벼워진 독자의 마음 한편에 애틋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여운이 남는다. 김홍이 써낸 별난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더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기를 현실에서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나아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0’의 미학이 담긴 이 소설집은 훗날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할 김홍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지금부터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에 부치는 글에 스페인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돈키호테』 운운하는 것이 참아주기 어려운 과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홍 소설이 그렇듯이 어떤 발화가 우스꽝스러운 과장이 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서 혹은 그렇게 되는 것을 즐기면서 나의 개인적인 찬탄과 애정을 담아 이 소설집을 축성祝聖하는 것을 부디 용서하시길.
_권희철(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가 있다.
목 차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_037
신년하례 _065
699.77 _095
곳에 따라 소나기 _121
싱가포르 _147
어쨌든 하루하루 _177
이인제의 나라 _203
해설|권희철(문학평론가)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 _229
작가의 말 _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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