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머니가 죽는다. 그 어머니가 죽는다. 드디어 죽는다.”
남다른 여성 삼대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현대 일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즈무라 미나에의 장편소설 『어머니의 유산』이 출간되었다. 어머니가 사망한 날, 실버타운에서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따져보는 자매의 통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문 연재 당시 모녀관계와 나이듦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냈다. 제39회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너는 우리 세대의 신데렐라야.”
어머니가 남긴 뜻밖의 유산으로 삶을 구하다
현실을 소설처럼 살고자 했던 외할머니, 서구의 귀족 문화를 동경하며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기를 열망했던 엄마. 그런 엄마의 욕망대로 유학을 떠났다가 유부남과의 연애가 발각되어 강제 귀국을 당했으나 당당하기만 한 언니.
가쓰라가의 여성은 남다르다. 평생 ‘뭐라 말할 수 없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고 고상하고 향기로운 세계를 부나방처럼 좇는다. 분수도, 만족도 모른다. 도리나 사회적 규범이 그들의 욕망을 막을 수 없다.
미쓰키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선택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미쓰키는 불행할 권리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 파리 유학도 다녀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다가 교수인 남편과 부자 언니, 팔십대에도 여전히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엄마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끈적한 실처럼 온몸을 친친 감아온다.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주르르 내버리고 있”는 기분이지만 차분히 성찰할 여유도 없다. 병원에 홀로 내팽개진 채 쓸쓸히 숨을 거둔 아버지에 이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엄마의 병간호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골절로 병원에 실려간 날에 남편의 불륜까지 발견하지만 그 문제를 숙고할 시간조차 없다. 당장 닥친 엄마 일이 우선이다. 엄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런 다음에…..
드디어 ‘기적처럼’ 엄마의 죽음이 찾아오고 미쓰키는 해방되었다는 흥분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떠난 여행지에서 외할머니-엄마-자신으로 이어지는 운명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데……
독창적 스토리텔링과 서늘한 문장으로 운명을 지배하는 숨은 힘을 찾아나선다
첨단의 글쓰기로 문제작을 선보이며 발표하는 소설 모두 문학상을 수상한 미즈무라 미나에가 ‘죽어가는 엄마를 간병하는 위기의 딸’이라는 설정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을 때 뻔한 전개로 흘러가리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과연 작가는 근대 가장 유명한 신파소설을 배음으로 깔고 일체의 감상주의를 걷어낸 ‘가족 서사’를 펼쳐보인다. 가차 없는 시선은 엄마와 남편뿐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향할 때에도 예외가 없다. 삶의 근원적 슬픔에 닿아 있으면서도 노화, 이혼, 죽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는 금전적 문제를 꼿꼿이 직시하는 서술에는 위엄마저 서려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소설은 뒤로 갈수록 결이 달라지며 독자들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간다. 그동안 이야기 위의 이야기, 이야기 바깥의 이야기를 써온 미즈무라 미나에의 야심은 『마담 보바리』와 『이방인』 그리고 우리에게 ‘이수일과 심순애’로 알려진 신파소설 『금색야차』를 연결하면서 여성 삼대를 지배해온 ‘이야기’의 정체를 깊숙이 파고드는 데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역자인 송태욱은 미즈무라 미나에의 소설을 “근대 일본문학사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과 같다고 말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미완성작 『명암』을 이어서 다시 썼던 데뷔작 『속 명암』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새로 쓴 『본격소설』처럼 『어머니의 유산』 역시 문학사의 정전(들)을 이어서 또는 새로 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품 표면에는 물론 어머니의 간병과 죽음을 둘러싼 여성 삼대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서사적 심층에는 서구의 고전들, 예컨대 『마담 보바리』 『이방인』 『적과 흑』 등의 소설과 오페라 <라보엠> 같은 이야기들이 번역 또는 번안을 통해 근대 이후 동아시아인들의 내면을 형성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런 점이야말로 미즈무라 미나에의 독특한 소설적 세계이자 작법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유산』은 지금 여기,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과 작가 특유의 작법이 만나 겹겹이 풍요로운 눈부신 작품이 되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미즈무라 미나에
미즈무라 미나에는 현대 일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대담한 실험정신과 빼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첨단의 글쓰기를 선보여왔다. 195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열두 살 되던 해 미국으로 가 예일대학 불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프린스턴대학에서 객원 조교수로 일본 근대문학을 강의했다. 1998년 스탠포드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작품으로는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인 『본격소설』을 비롯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미완성 소설을 이어쓴 야심찬 프로젝트 『속 명암』, 그밖에 『사소설 from left right』 등이 있다.
옮긴이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금수』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등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다.
목 차
제1부
1. 경야의 긴 전화 11
2. 꽃밭 같은 티슈 케이스 19
3. 이동식 변기 29
4. 사케를 홀짝이는 남편 36
5. 마침내 파는 집 43
6. 녹아내린 전두엽 51
7. ‘오미야 씨의 피’ 58
8. 살아 있는 망령들 65
9. 마른 들판에 앉아 있는 어머니 74
10. 향기로운 꿈의 잔해 81
11. 여자와의 G메일 89
12. 체리 열매 97
13. 빈털터리 105
14. ‘요코하마’의 레슨 111
15. 고지대에 있는 집 120
16. 호적등본 128
17. 고맙습니다의 ‘고’ 136
18. 하늘이 바뀌어 145
19. 기적의 도시 153
20. 다락방에서의 고백 161
21. 자매의 명암 169
22. 가쓰라가의 붕괴 177
23. 다소 부족한 남자 184
24. 인생의 계절 192
25. 정중한 사례 201
26. 목숨이 달린 생선회 209
27. 저칼로리 수액 217
28. 연기된 임종 224
29. 묘석 밑의 백골 232
30. 잠 못 드는 밤 240
31. 엄마가 싫어? 247
32. 꿈은 마른 들판을 255
33. 장례식장의 메뉴 262
제2부
34. 로맨스카 273
35. 어둠에 잠기는 호수 281
36. ‘쓰레기’ 289
37. 세세한 숫자 296
38. ‘우연’한 만남 304
39. 장기 체류객의 저녁 모임 312
40. 드라마틱 320
41. 사랑받지 못했다 327
42. 72.3제곱미터 335
43. 좀 괜찮은 이야기 342
44. 데쓰오의 불장난 348
45. 텔레비전과 신의 눈 356
46. 부부용 밥공기 364
47. 이렇게나 멀리 372
48. 『금색야차』 381
49. ‘바보 같으니라고’ 390
50. 외할아버지의 등 397
51. 슬라이드 쇼 405
52. 모두 수상하다 413
53. “아빠, 엄마 좋아?” 421
54. 가루타 놀이 429
55. 두 가지 가능성 439
56. 가난인가 남편인가 446
57. 별이 쏟아지는 밤 455
58. 아타미 해변 462
59. 소설도 안 된다 470
60. 폭우의 밤 480
61. 해저의 빛 488
62. 루비콘강을 건너다 497
63. 하룻밤 지나고 505
64. 구름 위에서 현실로 513
65. 긴자에서의 ‘세설’ 520
66. 벚꽃이 핀 날 529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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