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신을 태운 대리운전 기사 풍 이야기
― 김도연 우화소설 『풍의 여행』
강릉단오제 신목에 선발된 대관령 단풍나무의 생애 첫 강릉 여행기!
때론 티격태격 때론 알콩달콩, 성황 부부의 사랑과 전쟁!
사람과 신을 섬기는 애기무녀 단이 춤추고 노래하는 산신굿 한 마당!
1991년에 등단한 후 삼십 년 넘는 동안 소설집, 장편소설, 산문집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온 김도연 소설가가 이번에는 자신의 첫 번째 우화소설 『풍의 여행』(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한국소설 19번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써온 소설과 달리 우화의 성격을 빌린 이번 소설에 대해 김도연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수많은 인공위성들이 하늘에 떠 있다. 더 먼 우주로 가기 위해 인간들은 첨단과학을 동원해 우주선을 만들고 있는 세상, 그런 21세기다. 그뿐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까지 넘보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인간은 왜 멀고 먼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는 걸까. 무엇을 얻으려고 그러는 걸까. 하여튼 지금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의 대관령 산골짜기에 모여 징과 꽹과리, 장구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이들은 누구인가? 저들은 무엇을 찾으려고 한겨울에도 폭설을 헤치고 찾아와 굿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저들의 직업은 세칭 무당인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 한다. 저 직업은, 그러니까 무당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바로 인간들이 여태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운명에 대해서다. 신들까지 동원해 운명의 정체를 캐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으려는 것일 터. 그것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인류의 오래된 숙제다.
어느 날 대관령 국사성황당에 갔다가 무당들, 즉 무속인들의 제의를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첨단의 과학을 운용하는 이들이 우주선을 쏘아 먼 우주를 향하는 것도, 과학적이나 산업적인 어떤 새로운 것도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고리타분해 보이는 대관령 성황 숲이 밝아졌고 무속인들이 마치 인간의 운명을 풀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인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돌아와 소설을 구상했다. 신과 중개자인 무당과 신목 그리고 인간. 우주와 우주선 그리고 인간. 그러니까 이 소설의 소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사실은 최첨단의 SF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도연의 소설에는 늘 두 마리 토끼가 함께한다. ‘쏠쏠한 재미와 뭉클한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 우화소설에는 하나를 더했다. 바로 ‘곡진’이다. 이를 김별아 소설가는 이렇게 말한다.
“신비를 믿는 일은 거룩하다. 두려움으로 스스로 삼가고, 따라 좇으며 스스로 드높인다. 어린 날 단오장의 굿판에서 만났던 신비의 추종자들은 과연 그러했다. 쪽진 백발에 정갈한 한복을 떨쳐입고, 팥죽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며 온종일 비손하던 시골 노파들은 신비의 거룩한 추종자였다. 『풍의 여행』은 그들이 시간을 따라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다. 한 달의 짧은 여행 끝에 재가 되기를 마다치 않은 단풍나무 풍과 세습무 단의 우정은, 운명과 자유라는 오래된 질문을 상기시킨다. 소설가 김도연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진 축제 뒤안의 풍경은 쓸쓸하지만 슬프지 않다. 신비를 믿는 이들의 낮은 호흡처럼, 곡진하다.”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을 터전으로 줄곧 시를 써온 이홍섭 시인은 이번 우화소설이 ‘강릉단오제’를 소재로 한 점에서 남다르게 읽혔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오늘날 대관령은 행정구역상 면 단위가 되어 평창으로 귀속하였지만, 대관령은 강릉 사람들의 심리적 구역에서는 여전히 강릉 땅에 속해 있다. 작가가 그동안 대관령이 축이 되는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살펴볼 때, 그에게 대관령은 상상력의 원천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우화소설의 형식으로 강릉단오제를 녹여낼 수 있는 것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라면서 길러온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도연 작가가 강릉단오제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장대한 서사를 녹여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우화소설의 형식으로 신과 인간의 교감, 성과 속의 만남을 풀어내는 것을 읽고 무릎을 쳤다. 특히 신과 인간, 성과 속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기 위해 자진해서 신목이 된 ‘풍’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소설을 다 읽고 나자 문득 「영산홍가」가 듣고 싶어졌다. 소설에서도 소개되고 있듯이 「영산홍가」는 무녀들이 신목을 모시고 대관령을 내려오면서 무녀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꽃밭일레 꽃밭일레 사월 보름날 꽃밭일레 기화자자 영산홍
이야에 에헤야 에이야 얼싸 기화자자 영산홍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만나는 우리 연분 기화자자 영산홍
이야에 에헤야 에이야 얼싸 기화자자 영산홍
여태까지 왔다는 게 이게 겨우 반쟁이냐 기화자자 영산홍
이야에 에헤야 에이야 얼싸 기화자자 영산홍
노래의 가사는 표면적으로 남성황신이 여성황신을 만나러 가는 과정과 느낌을 담고 있지만, 자꾸 듣다 보면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노래로 다가온다. 굿당에서 신과 무녀 그리고 할머니들의 어울림 속에서 추체험했던 그 희로애락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문득 「영산홍가」가 듣고 싶어진 것은, 아마도 김도연 작가가 우화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낸 세계 역시 여기서 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왜 태어났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독자들의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김도연 작가가 우화소설 『풍의 여행』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신을 무사히 모셔야 하는 대리운전 기사가 되겠다고 자진하여 길을 나선, 한 달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한 단풍나무 ‘풍’ 그리고 그런 풍과 영혼으로 교감하는 애기무녀 ‘단’의 이야기에 풍덩 빠져보기 바란다.
작가 소개
김도연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콩 이야기』 『빵틀을 찾아서』,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아흔아홉』 『산토끼 사냥』 『누에의 난』 『마지막 정육점』 『마가리 극장』, 산문집 『눈 이야기』 『영』 『자연은 밥상이다』 『강릉 바다』 『패엽경』 『강원도 마음사전』 등을 펴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명실상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김했다. 그의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목 차
1. 길 떠나는 풍
2. 신들의 사생활
3. 입장
4. 단의 슬픔
발문 _ 강릉단오제와 영산홍가 ․ 이홍섭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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