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당신 스스로가 노년의 삶을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거의 100세가 되신 할머니 한 분은 98세 생신에 이렇게 적으셨다. “나는 방금 자식들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아흔여덟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포도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이 좋았다. 98세 생일은 더 이상 68세 생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99세 생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 나이가 되면 이젠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47~48쪽)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는 ‘꽃할배’ ‘꽃할매’가 대세다. 구닥다리 늙은이 힘 없고 쭈글쭈글한 늙은이 훈계하는 어른 등 기존의 노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는 달리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새로운 것을 즐기고 자기를 관리할 줄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멋진 노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멋지고 활력 있다고 할지라도 청춘의 그것은 아니며 중년의 그것도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년-노년기는 전체 인생의 길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계속 연장되고 있고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들 한다. 인생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게 될 이 장년-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이 앞에 두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구도 나이 들어가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다. 노년에 대한 경제적인 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적절하게 대비를 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선 불안하게 느낀다. 청년기나 중년기와는 삶의 조건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함께 삶을 나누던 반려자들이 먼저 떠나고 홀로 남을 수도 있고 가깝게 교류하던 친구들도 역시 먼저 떠나 홀로 남을 수 있다. 젊었을 때의 아픈 기억들과 상처들이 여전히 노년의 삶도 괴롭힐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방식의 성공적인 노년을 위한 방법론은 애초에 없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반기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으며 물리치려고 애쓰지만 받기 싫은 편지를 끝까지 문틈으로 밀어 넣는 집배원처럼 노쇠와 죽음은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온다.
솔직해지자. 삶의 의미도 관계를 맺을 주변 사람들도 없고 여기저기 아프기만 한 노년은 저주다. 운이 좋다면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인생의 한 단계인 노년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어떤 암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가 전체 인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데도 노년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년기나 사춘기보다 덜 연구되고 있다. 게다가 규격화된 사회의 사고방식은 노년기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정립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정밀하지 못하고 거칠게 그려진 노년이라는 지도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서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13~14쪽)
누구나 기적처럼 길어진 노년의 삶을 즐기기를 바란다. 하지만 과연 스스로 그것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노년의 풍요로움을 한껏 즐기는 데 있어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26~27쪽). 저자는 심리 상담치료 교육자로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 만난 상담자들의 사례에서 그리고 스스로 나이 들어가면서 느꼈던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만든 그 걸림돌들을 제거하면서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현실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어느 누구도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늙어가는 것 자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늙은이처럼 사는 것’은 어떨까?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라는 말 속에 박혀있는 늙은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캘리포니아의 놀이공원인 ‘패러마운트 그레이트 아메리카’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삶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내가 늙어간다고 생각했을 때’라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자신이 자라오면서 봐왔던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의 모습에서 혐오스러운 노년이라는 이미지를 발견했을 것이기도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연금만 축내며 청년들에게 기대는 늙은이이자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늙은이라는 관념처럼 경쟁사회 성과주의 사회라는 사회구조적인 이유에서 형성된 것일 터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성과주의가 ‘늙어가는 것 =가치 없어지는 것’의 도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스스로의 내면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마주보고 결핍이나 결함의 이미지를 떨쳐 버릴 때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일 때 이미 지나간 것 혹은 잃어버린 것을 받아들일 때 노년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온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는지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이 뭘 하고 싶었는지 잊지 않고 계십니까?
이젠 당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시간입니다.
새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없다. (…) 노년에도 종종 유년기와 같은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 마! 뭔가 분별 있는 일을 하라고!” (…) 자기 리듬 속의 삶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원래 어떤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가? 완벽한 가정주부의 프로그램인가 근심 많은 어머니의 프로그램인가 책임감으로 가득한 직장인의 프로그램인가 늘 호의적인 친구의 프로그램인가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도 기분이 좋은 일 중독자의 프로그램인가 나는 그 프로그램 속에서 내 여생을 보내고 싶은가?’
새장의 감각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위반하면 새장의 창살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요컨대 수다를 위한 시간을 내고 며칠에 걸쳐 업무를 분할하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피곤하면 앉는 것이다.(89~90쪽)
중요한 것은 나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 안에서 모든 가능성은 나온다. 나라는 사람을 제약하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가두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던 새장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만 풍요롭게 열린 노년의 가능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노년의 성장은 크기 길이 넓이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깊이의 증가를 의미한다. 깊이의 증가란 삶이 더 세분화되고 더 정확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향한 성장이며 나만의 것 지극히 개인적인 것 혼동할 수 없는 것의 지속적인 발전이다. (…)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외부와 단절된 방 안에서 지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결국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어왔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내 안에서 누가 더 자라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들은 우리 안에 감추어진 잠재성의 길로 잠자고 있는 가능성의 길로 우리 안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인물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노년에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관계이며 우리가 이미 발전시켜왔고 더욱 발현시키고 싶어하는 부분들과의 더 섬세하고 더 의식적인 관계이다. 이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과의 합일 현재 우리인 것과의 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77~78쪽)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가게 해줬던 삶을 기쁨으로 빛나게 해줬던 자신의 힘의 원천과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힘의 원천은 자신의 보물창고와 같은 것으로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누구의 기준이 아닌 다른 누구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의 열정과 기쁨이 향하는 지점인 그곳에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에게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
놀랍게도 유년시절의 힘의 근원들과 현재의 힘의 근원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년시절로부터 하나의 끈이 뻗어 나와 삶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는 요소들과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설령 삶이 그렇지 않다 해도 그러니까 현재 삶의 근원이 유년시절의 삶의 근원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해도 둘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내 삶의 보물창고에서 여전히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성공적인 노년을 위한 근본적인 전제는 자기만의 힘의 근원들을 깊이 있게 그러면서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연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힘의 근원을 신뢰하게 된다. 그 힘의 근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분명해질수록 그만큼 더 의식적으로 그 근원들과 관계를 맺고 우리 삶을 위해 그것들을 쓸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어느 방송에서 노년의 여성 청취자가 쇼팽의 곡을 듣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67년 전에 쇼팽의 그 즉흥곡을 직접 연주했다고 말했다. “난 이미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지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그 곡을 다시 한번 듣고 싶군요.” 그 말에는 자신이 상실한 능력에 대한 유감은 들어 있지 않았다. 곧 듣게 될 음악에 대한 기쁨만이 배어 있었다. 이는 우리가 나이에서 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년시절의 힘의 근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다.(50~51쪽)
하지만 여전히 삶은 살아온 삶의 기억은 고통스러운 것도 있고 기억하기조차 힘든 상실과 아픔이고 뼈아픈 자책으로 점철된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라고 명제화하면서 과거의 청구서를 지불하되 찢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질질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 과거의 청구서들을 이젠 가볍게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는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오래된 청구서―아직도 청구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삶을 비참하게 보이게 한다―를 지불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삶에서 성공을 이룬 것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삶의 발목을 잡는 모든 실패한 것들과 화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잘한 것을 인정하고 만족스러워하기보다는 실패한 것을 고백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러나 자신의 삶과 화해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둘 다 필요하다.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했던 실수를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했던 모든 일을 받아들이면 된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박함에서가 아니라 인정하고 유감스러워하고 그리고 마침내 놓아버린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받아들이게 되면 질질 끌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워진다. 관계를 부담스럽게 했거나 해묵은 원한 드러나지 않았던 곪은 상처들이 문제가 될 경우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늘이 너무 깊다면 용서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일어난 일을 그대로 그냥 놓아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된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오래된 청구서? 그것은 우리가 유년시절부터 지니고 다닌 우리 행동의 표본으로 굳어져 삶을 제한하는 덮개라고 할 수 있다. 부주의하게 거듭 빠져들어 화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끌려드는 함정이다. 내가 그것을 오래된 청구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르는지 그것이 늘 다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청구서를 찢어서 휴지통에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루기만 한다면 청구서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54~56쪽)
또한 노년이기에 더욱 중요한 ‘관계’의 문제 아니 노년이기에 더욱 힘들어지는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만들어나가야 할지 노년의 관계는 어떻게 다르고 유지될 수 있는지 충실하게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운이 좋다면 배우자와 함께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그냥 안온하고 풍요로운 것이 되지는 않는다. 해묵은 상처들이 언제나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로 경청하고 수용해야 할 사항들을 ‘양쪽의 주어진 한계들’ ‘견디기 어려운 것’ ‘허용할 수 있는 것’ ‘오래된 상처들’의 항목으로 묶어 갈등에 대처하고 노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남아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관계와 소통에의 요구는 간절하다. 그것이 양로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이든 귀여운 손자손녀이든 말이다. 젊었을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타입의 사람과 젊은 세대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 것도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놓는다면 말이다.
나는 노년에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유일하게 행복한 삶의 형태일 거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 나는 전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독신자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가 되었든 친척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어떤 경우에도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이다.(149~150쪽)
노년의 마지막 과제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심리상담 분야의 전문가로 일해 오며 노년의 삶의 문제에 집중해 왔다. 또한 자신 스스로 나이를 들어가며 갖게 된 개인적 경험들이 있다. 죽음이 무엇이고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학문적으로 이해시켜줘야 할 필요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당연하게 올 일을 언젠가 닥칠 일을 먼저 그 일을 경험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을 통해 성찰하는 시간을 저자는 마련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과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게 되는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마지막과 맞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는 3부에서 가상의 대화를 구성하여 ‘언제나 자신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양로원에서 만난 루이자와 빈다의 세대를 뛰어넘는 대화는 잔잔한 감동과 소박한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다. 저자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이가 쓴 다음의 시구처럼 말이다.
노년에 부탁하고 싶은 것
내 몸도 영혼도 건강하게 머무를 수 있기를.
약간의 노쇠함은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너무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하지는 않기를.
세상과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올 때
그때가 너무 갑작스럽지 않기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으니.
내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기를.
죽음을 향해 ‘그대가 친밀하게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기를!
(271~272쪽)
▣ 작가 소개
저 : 엘리자베트 슐룸프
Elisabeth Schlumpf
1932년에 태어나 취리히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사 자격을 『청소년의 반항』이라는 졸업논문으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부터 취리히에서 부부 및 가족의 상담치료를 위한 독자적인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했으며 1990년 취리히에 개원한 ‘형태와 변화 센터 Das Zentrum fur Form und Wandlung’에서 심리학 박사 이레네 쿰머와 공동원장으로 다년간 신체중심 심리 상담치료 교육자로 일하면서 전문 강사로도 활동해왔다.
하이디 베르너와 함께 쓴 책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상냥하게 거절하는 법』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른 저서로는 『트라우마를 극복한 삶』 『불의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평생의 사랑: 세월이 갈수록 더 좋은 관계 만들기』 『일상의 하이쿠』 『어른들을 위한 아이들의 질문』 『오늘날의 조부모』 등이 있다.
역 : 이용숙
음악평론가 및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에서 강의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음악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연합뉴스 문화부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공연리뷰를 기고하며 무지크바움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오페라 행복한 중독』 『춤의 유혹』『지상에 핀 천상의 음악』 『클래식 튠』(공저) 등을 썼으며 『알리스』『행운아 54』 『섹스북』 등 40여 권을 번역했다. 제6회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언젠가 나이들면
머리말
들어가며
1장 | 노년의 중요한 특성
다채로운 삶의 구성 가능성
내면의 고정관념 마주보기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기
잃어버린 것에 대한 탄식
힘의 원천과 모델 찾기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노년이 주는 선물
2장 | 노년의 핵심 주제
멈출 것인가 계속 성장할 것인가?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가?
변화된 신체와 새롭게 관계 맺기
너와 나: 노년의 관계
임종과정
죽음을 받아들이기
그리고 그 이후?
3장 | 노년을 위한 대화
루이자와 빈다의 대화
나오며
감사의 말
주
당신 스스로가 노년의 삶을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거의 100세가 되신 할머니 한 분은 98세 생신에 이렇게 적으셨다. “나는 방금 자식들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아흔여덟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포도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이 좋았다. 98세 생일은 더 이상 68세 생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99세 생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 나이가 되면 이젠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47~48쪽)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는 ‘꽃할배’ ‘꽃할매’가 대세다. 구닥다리 늙은이 힘 없고 쭈글쭈글한 늙은이 훈계하는 어른 등 기존의 노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는 달리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새로운 것을 즐기고 자기를 관리할 줄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멋진 노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멋지고 활력 있다고 할지라도 청춘의 그것은 아니며 중년의 그것도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년-노년기는 전체 인생의 길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계속 연장되고 있고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들 한다. 인생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게 될 이 장년-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이 앞에 두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구도 나이 들어가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다. 노년에 대한 경제적인 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적절하게 대비를 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선 불안하게 느낀다. 청년기나 중년기와는 삶의 조건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함께 삶을 나누던 반려자들이 먼저 떠나고 홀로 남을 수도 있고 가깝게 교류하던 친구들도 역시 먼저 떠나 홀로 남을 수 있다. 젊었을 때의 아픈 기억들과 상처들이 여전히 노년의 삶도 괴롭힐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방식의 성공적인 노년을 위한 방법론은 애초에 없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반기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으며 물리치려고 애쓰지만 받기 싫은 편지를 끝까지 문틈으로 밀어 넣는 집배원처럼 노쇠와 죽음은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온다.
솔직해지자. 삶의 의미도 관계를 맺을 주변 사람들도 없고 여기저기 아프기만 한 노년은 저주다. 운이 좋다면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인생의 한 단계인 노년이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어떤 암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가 전체 인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데도 노년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년기나 사춘기보다 덜 연구되고 있다. 게다가 규격화된 사회의 사고방식은 노년기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정립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정밀하지 못하고 거칠게 그려진 노년이라는 지도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서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13~14쪽)
누구나 기적처럼 길어진 노년의 삶을 즐기기를 바란다. 하지만 과연 스스로 그것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노년의 풍요로움을 한껏 즐기는 데 있어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26~27쪽). 저자는 심리 상담치료 교육자로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 만난 상담자들의 사례에서 그리고 스스로 나이 들어가면서 느꼈던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만든 그 걸림돌들을 제거하면서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현실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어느 누구도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늙어가는 것 자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늙은이처럼 사는 것’은 어떨까?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라는 말 속에 박혀있는 늙은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캘리포니아의 놀이공원인 ‘패러마운트 그레이트 아메리카’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삶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내가 늙어간다고 생각했을 때’라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자신이 자라오면서 봐왔던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의 모습에서 혐오스러운 노년이라는 이미지를 발견했을 것이기도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연금만 축내며 청년들에게 기대는 늙은이이자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늙은이라는 관념처럼 경쟁사회 성과주의 사회라는 사회구조적인 이유에서 형성된 것일 터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성과주의가 ‘늙어가는 것 =가치 없어지는 것’의 도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스스로의 내면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마주보고 결핍이나 결함의 이미지를 떨쳐 버릴 때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일 때 이미 지나간 것 혹은 잃어버린 것을 받아들일 때 노년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온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는지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이 뭘 하고 싶었는지 잊지 않고 계십니까?
이젠 당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시간입니다.
새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없다. (…) 노년에도 종종 유년기와 같은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 마! 뭔가 분별 있는 일을 하라고!” (…) 자기 리듬 속의 삶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원래 어떤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가? 완벽한 가정주부의 프로그램인가 근심 많은 어머니의 프로그램인가 책임감으로 가득한 직장인의 프로그램인가 늘 호의적인 친구의 프로그램인가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도 기분이 좋은 일 중독자의 프로그램인가 나는 그 프로그램 속에서 내 여생을 보내고 싶은가?’
새장의 감각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위반하면 새장의 창살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요컨대 수다를 위한 시간을 내고 며칠에 걸쳐 업무를 분할하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피곤하면 앉는 것이다.(89~90쪽)
중요한 것은 나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 안에서 모든 가능성은 나온다. 나라는 사람을 제약하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가두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던 새장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만 풍요롭게 열린 노년의 가능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노년의 성장은 크기 길이 넓이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깊이의 증가를 의미한다. 깊이의 증가란 삶이 더 세분화되고 더 정확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향한 성장이며 나만의 것 지극히 개인적인 것 혼동할 수 없는 것의 지속적인 발전이다. (…)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외부와 단절된 방 안에서 지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결국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어왔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내 안에서 누가 더 자라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들은 우리 안에 감추어진 잠재성의 길로 잠자고 있는 가능성의 길로 우리 안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인물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노년에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관계이며 우리가 이미 발전시켜왔고 더욱 발현시키고 싶어하는 부분들과의 더 섬세하고 더 의식적인 관계이다. 이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과의 합일 현재 우리인 것과의 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77~78쪽)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가게 해줬던 삶을 기쁨으로 빛나게 해줬던 자신의 힘의 원천과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힘의 원천은 자신의 보물창고와 같은 것으로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누구의 기준이 아닌 다른 누구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의 열정과 기쁨이 향하는 지점인 그곳에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에게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
놀랍게도 유년시절의 힘의 근원들과 현재의 힘의 근원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년시절로부터 하나의 끈이 뻗어 나와 삶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는 요소들과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설령 삶이 그렇지 않다 해도 그러니까 현재 삶의 근원이 유년시절의 삶의 근원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해도 둘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내 삶의 보물창고에서 여전히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성공적인 노년을 위한 근본적인 전제는 자기만의 힘의 근원들을 깊이 있게 그러면서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연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힘의 근원을 신뢰하게 된다. 그 힘의 근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분명해질수록 그만큼 더 의식적으로 그 근원들과 관계를 맺고 우리 삶을 위해 그것들을 쓸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어느 방송에서 노년의 여성 청취자가 쇼팽의 곡을 듣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67년 전에 쇼팽의 그 즉흥곡을 직접 연주했다고 말했다. “난 이미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지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그 곡을 다시 한번 듣고 싶군요.” 그 말에는 자신이 상실한 능력에 대한 유감은 들어 있지 않았다. 곧 듣게 될 음악에 대한 기쁨만이 배어 있었다. 이는 우리가 나이에서 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년시절의 힘의 근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다.(50~51쪽)
하지만 여전히 삶은 살아온 삶의 기억은 고통스러운 것도 있고 기억하기조차 힘든 상실과 아픔이고 뼈아픈 자책으로 점철된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라고 명제화하면서 과거의 청구서를 지불하되 찢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질질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 과거의 청구서들을 이젠 가볍게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는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오래된 청구서―아직도 청구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삶을 비참하게 보이게 한다―를 지불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삶에서 성공을 이룬 것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삶의 발목을 잡는 모든 실패한 것들과 화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잘한 것을 인정하고 만족스러워하기보다는 실패한 것을 고백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러나 자신의 삶과 화해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둘 다 필요하다.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했던 실수를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했던 모든 일을 받아들이면 된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박함에서가 아니라 인정하고 유감스러워하고 그리고 마침내 놓아버린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받아들이게 되면 질질 끌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워진다. 관계를 부담스럽게 했거나 해묵은 원한 드러나지 않았던 곪은 상처들이 문제가 될 경우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늘이 너무 깊다면 용서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일어난 일을 그대로 그냥 놓아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된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오래된 청구서? 그것은 우리가 유년시절부터 지니고 다닌 우리 행동의 표본으로 굳어져 삶을 제한하는 덮개라고 할 수 있다. 부주의하게 거듭 빠져들어 화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끌려드는 함정이다. 내가 그것을 오래된 청구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인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르는지 그것이 늘 다시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청구서를 찢어서 휴지통에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루기만 한다면 청구서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54~56쪽)
또한 노년이기에 더욱 중요한 ‘관계’의 문제 아니 노년이기에 더욱 힘들어지는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만들어나가야 할지 노년의 관계는 어떻게 다르고 유지될 수 있는지 충실하게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운이 좋다면 배우자와 함께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그냥 안온하고 풍요로운 것이 되지는 않는다. 해묵은 상처들이 언제나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로 경청하고 수용해야 할 사항들을 ‘양쪽의 주어진 한계들’ ‘견디기 어려운 것’ ‘허용할 수 있는 것’ ‘오래된 상처들’의 항목으로 묶어 갈등에 대처하고 노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남아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관계와 소통에의 요구는 간절하다. 그것이 양로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이든 귀여운 손자손녀이든 말이다. 젊었을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타입의 사람과 젊은 세대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 것도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놓는다면 말이다.
나는 노년에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유일하게 행복한 삶의 형태일 거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 나는 전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독신자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가 되었든 친척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어떤 경우에도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이다.(149~150쪽)
노년의 마지막 과제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심리상담 분야의 전문가로 일해 오며 노년의 삶의 문제에 집중해 왔다. 또한 자신 스스로 나이를 들어가며 갖게 된 개인적 경험들이 있다. 죽음이 무엇이고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학문적으로 이해시켜줘야 할 필요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당연하게 올 일을 언젠가 닥칠 일을 먼저 그 일을 경험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을 통해 성찰하는 시간을 저자는 마련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과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게 되는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마지막과 맞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는 3부에서 가상의 대화를 구성하여 ‘언제나 자신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양로원에서 만난 루이자와 빈다의 세대를 뛰어넘는 대화는 잔잔한 감동과 소박한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다. 저자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이가 쓴 다음의 시구처럼 말이다.
노년에 부탁하고 싶은 것
내 몸도 영혼도 건강하게 머무를 수 있기를.
약간의 노쇠함은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너무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하지는 않기를.
세상과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올 때
그때가 너무 갑작스럽지 않기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으니.
내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기를.
죽음을 향해 ‘그대가 친밀하게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기를!
(271~272쪽)
▣ 작가 소개
저 : 엘리자베트 슐룸프
Elisabeth Schlumpf
1932년에 태어나 취리히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사 자격을 『청소년의 반항』이라는 졸업논문으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부터 취리히에서 부부 및 가족의 상담치료를 위한 독자적인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했으며 1990년 취리히에 개원한 ‘형태와 변화 센터 Das Zentrum fur Form und Wandlung’에서 심리학 박사 이레네 쿰머와 공동원장으로 다년간 신체중심 심리 상담치료 교육자로 일하면서 전문 강사로도 활동해왔다.
하이디 베르너와 함께 쓴 책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상냥하게 거절하는 법』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른 저서로는 『트라우마를 극복한 삶』 『불의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평생의 사랑: 세월이 갈수록 더 좋은 관계 만들기』 『일상의 하이쿠』 『어른들을 위한 아이들의 질문』 『오늘날의 조부모』 등이 있다.
역 : 이용숙
음악평론가 및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에서 강의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음악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연합뉴스 문화부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공연리뷰를 기고하며 무지크바움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오페라 행복한 중독』 『춤의 유혹』『지상에 핀 천상의 음악』 『클래식 튠』(공저) 등을 썼으며 『알리스』『행운아 54』 『섹스북』 등 40여 권을 번역했다. 제6회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언젠가 나이들면
머리말
들어가며
1장 | 노년의 중요한 특성
다채로운 삶의 구성 가능성
내면의 고정관념 마주보기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기
잃어버린 것에 대한 탄식
힘의 원천과 모델 찾기
내 삶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노년이 주는 선물
2장 | 노년의 핵심 주제
멈출 것인가 계속 성장할 것인가?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가?
변화된 신체와 새롭게 관계 맺기
너와 나: 노년의 관계
임종과정
죽음을 받아들이기
그리고 그 이후?
3장 | 노년을 위한 대화
루이자와 빈다의 대화
나오며
감사의 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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