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947~1989
“『악마의 시』를 완성한다면 더는 쓸 이야기가 남지 않으리라.”
“이슬람의 적”으로 지목돼 파란을 겪었지만 루슈디는 사실 인도 무슬림 가문 출신이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 이슬람교에 매료된 아버지 덕분에 “공공연한 탐구 분위기”에서 금기 없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회의주의 그리고 종교로부터의 완벽에 가까운 자유”가 그가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영국 유학생활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열대 나라에서 온 어두운 피부의 소년은 바로 십여 년 전까지 식민 모국이었던 나라에 홀로 건너와 추위와 냉대를 버텨야 했다. ‘외국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소외는 훗날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았다. 외로운 사춘기를 지나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은 1960년대 후반 유럽의 들뜬 분위기 속에 보냈다. 역사학도로서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공부하면서 ‘악마의 시 사건’(예언자 무함마드가 사탄을 대천사로 착각해 사탄의 말을 쿠란에 기록했다가 삭제했다는 일화)을 언젠가 꼭 글감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졸업 후 루슈디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작가 지망생으로 계속 글을 쓰다 1975년 문단에 데뷔했고 1981년 서른네 살에 두번째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악마의 시』를 완성할 수만 있다면 나의 ‘첫 과업’ 즉 나 자신의 일부를 설명하는 일이 비로소 끝나리라 예감한다. 그때가 되면 쓸 이야기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인류 전체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있겠지만.” (본문 128쪽)
루슈디가 부커 상 수상 이후 5년 동안 공들여 쓴 세번째 장편소설이 바로 『악마의 시』였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 현대 인도와 영국 대도시의 풍경 이민자들의 비루한 삶을 복잡하게 엮은 작품이었다. 루슈디는 이슬람교의 탄생이 역사시대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종교가 형성될 당시의 여러 사건과 탄압과 사상의 영향을 틀림없이 받았으리라고 보았고 『악마의 시』에도 그런 시각을 담았다.
이 책은 곧 이슬람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슬람교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의 말의 절대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한 대목 때문이었다. 여기에 예언자의 열두 아내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 창부들을 등장시킨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악마의 시』는 1988년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았고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신성모독”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루슈디의 고국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에게도 『악마의 시』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에 좋은 방편이었다. 그리고 1989년 2월 14일 호메이니는 ‘파트와’를 발표했다.
“이슬람교와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의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에 관여한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어디서든 그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처단하기를 모든 무슬림에게 촉구합니다.” (본문 16쪽)
1989~2002
“조지프 앤턴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파트와의 후폭풍은 거셌다. 이란의 ‘15 호르다드 재단’은 루슈디에게 현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다. 전 세계에서 『악마의 시』 반대 시위가 줄을 이었고 책 화형식마저 열렸다. 아랍 세계 전역에서 『악마의 시』는 금서로 지정됐다. 『악마의 시』를 출판한 펭귄 출판사에는 협박 전화가 쏟아졌고 책을 진열한 서점들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졌다. 1991년에는 『악마의 시』 이탈리아어 번역가 에토레 카프리올로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일본어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는 살해당했다. 1993년 노르웨이에서는 『악마의 시』 노르웨이어판을 펴낸 출판사 대표 빌리암 뉘고르가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소설 한 편이 부른 이 참극 앞에서 루슈디는 묻는다. 이야기를 통제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가 생각하는 “유일한 답”은 이렇다. “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 (…) 경건하든 불경스럽든 열광적이든 냉소적이든. 그것은 열린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권리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이야기할 자유’를 되찾기 위해 루슈디는 주저 없이 싸웠고 전 세계에서 감동적인 화답이 이어졌다.
“자유인은 책을 씁니다. 자유인은 책을 펴냅니다. 자유인은 책을 팝니다. 자유인은 책을 삽니다. 자유인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민정신에 입각하여 독자 여러분이 전국 방방곡곡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언제든지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미국출판협회 미국서점협회 미국도서관협회가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미국 출판인들은 1989년 2월 『악마의 시』의 미국판 출간에 맞춰 [뉴욕 타임스]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작가 수천 명이 루슈디를 지지하는 ‘세계작가성명서’에 서명을 했고 사람들은 “내가 살만 루슈디”라는 배지를 만들어 가슴에 달았다. 폭탄 테러를 당한 미국 버클리의 코디 서점은 폭탄에 부서진 선반을 수리하지 않고 서점의 용기를 말해주는 훈장으로 남겨놓았다. 나중에 루슈디가 그 서점을 방문했을 때 서점측은 그 선반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1993년에는 아랍 및 무슬림 문인 백 명이 모여 루슈디를 지지하는 수필집 『루슈디를 위하여Pour Rushdie』를 프랑스어로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평범한 이들의 도움과 연대 덕분에 루슈디는 기나긴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루슈디는 고통스럽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자신을 돕기 위해 창설된 국제 루슈디 수호위원회 활동가들과 함께 영국 정치인들을 비롯해 전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파트와 철회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출판사들이 망설이는 바람에 늦어졌던 『악마의 시』 페이퍼백의 미국판과 영국판 간행도 결국 관철시켰다. 영국에서는 『악마의 시』 페이퍼백이 1998년에야 발행되었다. 하드커버 초판이 나온 지 10년 만이었다. 무엇보다 루슈디는 자신의 작품으로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아들을 위한 동화 『하룬과 이야기 바다』(1990)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1994) 장편소설 『무어의 마지막 한숨』(1995) 등을 발표해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9월 24일 이란 외무장관과 영국 외무장관의 공동선언으로 파트와가 종결됐다. 호메이니가 파트와를 선포한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영국 경찰이 루슈디 경호팀을 완전히 해산하기까지는 4년이 더 걸렸다.
이제 살만 루슈디는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작품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종교적 검열과 협박에 맞서 벌인 치열한 투쟁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소설 같은 자서전
이 뜨거운 투쟁의 기록에서도 루슈디는 화려한 입담을 보여준다. 극적인 전개 루슈디 표 유머와 생동감 있는 묘사가 빛을 발하는 덕분에 한 편의 소설 같은 자서전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몇 가지 독특한 재미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 3인칭 화법: 루슈디는 이 책에서 자서전답지 않은 낯선 화법을 구사한다. 1인칭 ‘나’가 아닌 3인칭 ‘그’ ‘루슈디’ ‘앤턴 씨’ 등으로 자신을 일컫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오류와 실수 망신거리까지 과감하게 털어놓는다. 잠시 자기 신념을 배반하고 무슬림 지도자들과 타협했던 일 은신처에 온 배관공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야 했던 비참한 일상들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외도까지 낱낱이 기록했다.
▷ 루슈디 작품들의 재발견: 루슈디의 주요작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자서전을 통해 루슈디 작품들의 자전적 성격을 짚어볼 수도 있다. 루슈디의 주요 작품에 등장한 인물과 배경 사건들을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이 자서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 현대 문학예술계의 유명 인사들 총집합: 루슈디의 화려한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 절친한 문단 동료와 선후배 루슈디 방어에 힘을 보태는 해외 명사들까지 내로라하는 전 세계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럴드 핀터 크리스토퍼 히친스 에드워드 사이드 수전 손택 나딘 고디머 도리스 레싱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커트 보니것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브루스 채트윈 존 어빙 카를로스 푸엔테스 토머스 핀천 자크 데리다 U2의 보노 등 이름만 들어도 숨가쁜 문학예술계 유명인들이 끝없이 나타나 루슈디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 거장들이 나누는 소박한 우정과 환대를 엿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추천사
솔직하고 가슴 절절한 기록. 그의 작품 세계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거대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이 자서전이 마치 거울처럼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
놀라운 책이다. 오랫동안 내 책상을 스쳐간 자서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워싱턴 포스트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 감동적이다. 루슈디는 영웅적일 정도로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다.
월 스트리트 저널
▣ 작가 소개
저 : 살만 루시디
Salman RushdieAhmed Salman Rushdie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필치와 장중하고 지적인 문체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1947년 인도의 뭄바이(예전의 봄베이)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니게 된 루시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가족은 파키스탄에 정착하였지만 마음은 인도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심리적 무국적 상태를 겪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하였고 대학 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가족들과 지내면서 잠시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였다.
28세 되던 해인 1975년 소설 『그리머스 Grimus』(1975)로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두번째 작품 『한밤의 아이들』(1981)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루슈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그해 부커 상과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프라이즈를 수상하고 1993년에는 지난 25년간 부커 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을 뽑는 부커 오브 부커스에 선정되었다.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을 다룬 『부끄러움 Shame』(1983)을 내놓은 데 이어 선과 악 종교적 신념과 광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소설 『악마의 시 The Satanic Verses』(1988)로 휘트브레드 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을 내놓은 뒤 살만 루시디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다가 마침내 1989년 이란 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줄곧 숨어 지내던 살만 루시디는 1998년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나서야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도피 중에도 살만 루시디의 창작 활동은 계속 이어진다.
온갖 상상력이 가득한 『하룬과 이야기 바다 Haroun and the sea of stories』(1990)로 영국 작가 협회상을 받았으며 향신료 무역업을 하는 인도의 한 집안 이야기 『무어의 마지막 한숨 The Moors Last Sigh』(1995)로 다시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신화의 신비한 세계와 락앤롤의 현실적인 세계를 융합한 『그녀가 딛고 있는 땅 The Ground Beneath Her Feet』(1999)에 이어 『분노』(2001) 『피렌체의 여마법사』(2008) 등을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를 역임했으며 2007년 봄부터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수필가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이자 불합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자이기도 했던 살만 루시디는 자신의 문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문학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도 단연 돋보이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이다. 첫 작품을 발표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동안 받아 보지 않은 상이 없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살만 루시디가 학식이 깊고 대중문화에도 깊은 조예를 보이는 열정적인 작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 : 김진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및 영문과를 거쳐 마이애미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분노]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악마의 시][한밤의 아이들][롤리타][총 균 쇠]등을 번역했다.
역자 : 김한영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영혼의 미술관][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나라 없는 사람][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등이 있다.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 번역상을 수상했다.
1947~1989
“『악마의 시』를 완성한다면 더는 쓸 이야기가 남지 않으리라.”
“이슬람의 적”으로 지목돼 파란을 겪었지만 루슈디는 사실 인도 무슬림 가문 출신이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 이슬람교에 매료된 아버지 덕분에 “공공연한 탐구 분위기”에서 금기 없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회의주의 그리고 종교로부터의 완벽에 가까운 자유”가 그가 부모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영국 유학생활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열대 나라에서 온 어두운 피부의 소년은 바로 십여 년 전까지 식민 모국이었던 나라에 홀로 건너와 추위와 냉대를 버텨야 했다. ‘외국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소외는 훗날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았다. 외로운 사춘기를 지나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은 1960년대 후반 유럽의 들뜬 분위기 속에 보냈다. 역사학도로서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공부하면서 ‘악마의 시 사건’(예언자 무함마드가 사탄을 대천사로 착각해 사탄의 말을 쿠란에 기록했다가 삭제했다는 일화)을 언젠가 꼭 글감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졸업 후 루슈디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작가 지망생으로 계속 글을 쓰다 1975년 문단에 데뷔했고 1981년 서른네 살에 두번째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악마의 시』를 완성할 수만 있다면 나의 ‘첫 과업’ 즉 나 자신의 일부를 설명하는 일이 비로소 끝나리라 예감한다. 그때가 되면 쓸 이야기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인류 전체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있겠지만.” (본문 128쪽)
루슈디가 부커 상 수상 이후 5년 동안 공들여 쓴 세번째 장편소설이 바로 『악마의 시』였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 현대 인도와 영국 대도시의 풍경 이민자들의 비루한 삶을 복잡하게 엮은 작품이었다. 루슈디는 이슬람교의 탄생이 역사시대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종교가 형성될 당시의 여러 사건과 탄압과 사상의 영향을 틀림없이 받았으리라고 보았고 『악마의 시』에도 그런 시각을 담았다.
이 책은 곧 이슬람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슬람교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의 말의 절대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한 대목 때문이었다. 여기에 예언자의 열두 아내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 창부들을 등장시킨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악마의 시』는 1988년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았고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신성모독”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루슈디의 고국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에게도 『악마의 시』는 사람들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에 좋은 방편이었다. 그리고 1989년 2월 14일 호메이니는 ‘파트와’를 발표했다.
“이슬람교와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의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에 관여한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어디서든 그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처단하기를 모든 무슬림에게 촉구합니다.” (본문 16쪽)
1989~2002
“조지프 앤턴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파트와의 후폭풍은 거셌다. 이란의 ‘15 호르다드 재단’은 루슈디에게 현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다. 전 세계에서 『악마의 시』 반대 시위가 줄을 이었고 책 화형식마저 열렸다. 아랍 세계 전역에서 『악마의 시』는 금서로 지정됐다. 『악마의 시』를 출판한 펭귄 출판사에는 협박 전화가 쏟아졌고 책을 진열한 서점들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졌다. 1991년에는 『악마의 시』 이탈리아어 번역가 에토레 카프리올로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일본어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는 살해당했다. 1993년 노르웨이에서는 『악마의 시』 노르웨이어판을 펴낸 출판사 대표 빌리암 뉘고르가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소설 한 편이 부른 이 참극 앞에서 루슈디는 묻는다. 이야기를 통제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가 생각하는 “유일한 답”은 이렇다. “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 (…) 경건하든 불경스럽든 열광적이든 냉소적이든. 그것은 열린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권리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이야기할 자유’를 되찾기 위해 루슈디는 주저 없이 싸웠고 전 세계에서 감동적인 화답이 이어졌다.
“자유인은 책을 씁니다. 자유인은 책을 펴냅니다. 자유인은 책을 팝니다. 자유인은 책을 삽니다. 자유인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민정신에 입각하여 독자 여러분이 전국 방방곡곡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언제든지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미국출판협회 미국서점협회 미국도서관협회가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미국 출판인들은 1989년 2월 『악마의 시』의 미국판 출간에 맞춰 [뉴욕 타임스]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작가 수천 명이 루슈디를 지지하는 ‘세계작가성명서’에 서명을 했고 사람들은 “내가 살만 루슈디”라는 배지를 만들어 가슴에 달았다. 폭탄 테러를 당한 미국 버클리의 코디 서점은 폭탄에 부서진 선반을 수리하지 않고 서점의 용기를 말해주는 훈장으로 남겨놓았다. 나중에 루슈디가 그 서점을 방문했을 때 서점측은 그 선반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1993년에는 아랍 및 무슬림 문인 백 명이 모여 루슈디를 지지하는 수필집 『루슈디를 위하여Pour Rushdie』를 프랑스어로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평범한 이들의 도움과 연대 덕분에 루슈디는 기나긴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루슈디는 고통스럽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자신을 돕기 위해 창설된 국제 루슈디 수호위원회 활동가들과 함께 영국 정치인들을 비롯해 전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파트와 철회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출판사들이 망설이는 바람에 늦어졌던 『악마의 시』 페이퍼백의 미국판과 영국판 간행도 결국 관철시켰다. 영국에서는 『악마의 시』 페이퍼백이 1998년에야 발행되었다. 하드커버 초판이 나온 지 10년 만이었다. 무엇보다 루슈디는 자신의 작품으로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아들을 위한 동화 『하룬과 이야기 바다』(1990)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1994) 장편소설 『무어의 마지막 한숨』(1995) 등을 발표해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9월 24일 이란 외무장관과 영국 외무장관의 공동선언으로 파트와가 종결됐다. 호메이니가 파트와를 선포한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영국 경찰이 루슈디 경호팀을 완전히 해산하기까지는 4년이 더 걸렸다.
이제 살만 루슈디는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작품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종교적 검열과 협박에 맞서 벌인 치열한 투쟁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소설 같은 자서전
이 뜨거운 투쟁의 기록에서도 루슈디는 화려한 입담을 보여준다. 극적인 전개 루슈디 표 유머와 생동감 있는 묘사가 빛을 발하는 덕분에 한 편의 소설 같은 자서전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몇 가지 독특한 재미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 3인칭 화법: 루슈디는 이 책에서 자서전답지 않은 낯선 화법을 구사한다. 1인칭 ‘나’가 아닌 3인칭 ‘그’ ‘루슈디’ ‘앤턴 씨’ 등으로 자신을 일컫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냉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오류와 실수 망신거리까지 과감하게 털어놓는다. 잠시 자기 신념을 배반하고 무슬림 지도자들과 타협했던 일 은신처에 온 배관공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야 했던 비참한 일상들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를 준 외도까지 낱낱이 기록했다.
▷ 루슈디 작품들의 재발견: 루슈디의 주요작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자서전을 통해 루슈디 작품들의 자전적 성격을 짚어볼 수도 있다. 루슈디의 주요 작품에 등장한 인물과 배경 사건들을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이 자서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 현대 문학예술계의 유명 인사들 총집합: 루슈디의 화려한 인맥을 확인할 수 있다. 절친한 문단 동료와 선후배 루슈디 방어에 힘을 보태는 해외 명사들까지 내로라하는 전 세계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럴드 핀터 크리스토퍼 히친스 에드워드 사이드 수전 손택 나딘 고디머 도리스 레싱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커트 보니것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브루스 채트윈 존 어빙 카를로스 푸엔테스 토머스 핀천 자크 데리다 U2의 보노 등 이름만 들어도 숨가쁜 문학예술계 유명인들이 끝없이 나타나 루슈디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 거장들이 나누는 소박한 우정과 환대를 엿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추천사
솔직하고 가슴 절절한 기록. 그의 작품 세계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거대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이 자서전이 마치 거울처럼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
놀라운 책이다. 오랫동안 내 책상을 스쳐간 자서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워싱턴 포스트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 감동적이다. 루슈디는 영웅적일 정도로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다.
월 스트리트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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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살만 루시디
Salman RushdieAhmed Salman Rushdie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필치와 장중하고 지적인 문체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1947년 인도의 뭄바이(예전의 봄베이)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니게 된 루시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가족은 파키스탄에 정착하였지만 마음은 인도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심리적 무국적 상태를 겪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하였고 대학 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가족들과 지내면서 잠시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였다.
28세 되던 해인 1975년 소설 『그리머스 Grimus』(1975)로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두번째 작품 『한밤의 아이들』(1981)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루슈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그해 부커 상과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프라이즈를 수상하고 1993년에는 지난 25년간 부커 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을 뽑는 부커 오브 부커스에 선정되었다.
파키스탄의 정치 상황을 다룬 『부끄러움 Shame』(1983)을 내놓은 데 이어 선과 악 종교적 신념과 광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소설 『악마의 시 The Satanic Verses』(1988)로 휘트브레드 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을 내놓은 뒤 살만 루시디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다가 마침내 1989년 이란 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줄곧 숨어 지내던 살만 루시디는 1998년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나서야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도피 중에도 살만 루시디의 창작 활동은 계속 이어진다.
온갖 상상력이 가득한 『하룬과 이야기 바다 Haroun and the sea of stories』(1990)로 영국 작가 협회상을 받았으며 향신료 무역업을 하는 인도의 한 집안 이야기 『무어의 마지막 한숨 The Moors Last Sigh』(1995)로 다시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신화의 신비한 세계와 락앤롤의 현실적인 세계를 융합한 『그녀가 딛고 있는 땅 The Ground Beneath Her Feet』(1999)에 이어 『분노』(2001) 『피렌체의 여마법사』(2008) 등을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를 역임했으며 2007년 봄부터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수필가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이자 불합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자이기도 했던 살만 루시디는 자신의 문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문학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도 단연 돋보이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이다. 첫 작품을 발표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동안 받아 보지 않은 상이 없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살만 루시디가 학식이 깊고 대중문화에도 깊은 조예를 보이는 열정적인 작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자 : 김진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및 영문과를 거쳐 마이애미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분노]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악마의 시][한밤의 아이들][롤리타][총 균 쇠]등을 번역했다.
역자 : 김한영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영혼의 미술관][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나라 없는 사람][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등이 있다.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 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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