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되살아난 킹 목사 논쟁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은 미국의 국경일이다. 킹 목사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생일을 전국적인 기념일로 기리는 것은 조지 워싱턴과 킹 목사가 유일하다. 킹 목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와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흑인들의 학교이자 거리라는 데 킹의 평가에 대한 한계가 있다.
외신에 따르면 2001년 1월 17일 미국 남부에서는 킹 추모행사와 동시에 추모반대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공공연히 옛 노예제 때를 연상시키는 남부 연방기를 게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흑백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자녀들이 살게 되기를 바랐던 킹의 꿈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킹이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공론일 뿐이라지만 10여 년간의 짧은 활동만으로도 200여 년간 미국 남부를 짓눌러왔던 많은 흑백차별 요소들을 법적 제도적으로 폐지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킹의 공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의 예기치 않았던 죽음은 미국의 다른 촉망받던 지도자들처럼 암살에 의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이른바 ‘거대 음모설’이다. 제임스 얼 레이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킹의 활동을 못마땅히 여겼던 정부조직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FBI 에드가 후버 국장이 킹 목사의 전화를 도청하고 나쁜 가십을 유포하며 킹이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는 자살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4월 6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의 재조사를 지시했고 마침내 작년 12월 8일 테네시 주 멤피스 셀비 카운티 순회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킹 목사가 정부 내 비밀조직과 마피아 등 범죄조직이 연루된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는 평결을 내렸다. 또 배심원단은 그동안 킹 목사의 암살범으로 99년 징역형을 받은 제임스 얼 레이를 단독범으로 기소한 것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킹 목사 가족들이 상징적으로 요청한 100달러의 배상금 지급 결정도 내렸다.
킹 목사의 유가족 측은 FBI을 비롯해 CIA 마피아 군 정보기관 등이 킹 목사 암살과 관련돼 있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자 연방정부 요원들이 마피아와 함께 킹 목사를 살해했으며 사건 당시 살해현장 주변에는 마피아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군대 저격수들까지 배치돼 있었다는 ‘거대 음모론’이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배심원들은 이 사건이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암살로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중앙정보국 군 관련자 등이 모두 관련된 ‘준비된’ 사건”이었음을 인정했다. 한편 2000년 1월 13일자 [보스턴 글러브]지는 미국 카톨릭 교회 주교들이 킹 목사를 카톨릭 순교자로 지명해줄 것을 로마 교황청에 요청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킹 목사는 여전히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킹 목사의 사상과 생애
킹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정의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 그리고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한 세계에 맨손으로 맞선 용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목격하면서 불의의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을 지녔던 소년 킹은 대대로 목사였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이러한 가정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본능적으로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성직으로 인도한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인류에 몸을 바쳐 봉사하겠다는 내적인 충동이었다.”
그는 사회개혁을 열망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꺼려하였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발견한 빛이 바로 인도의 성자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였다. “간디의 사랑과 비폭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 속에서 나는 지금껏 찾아 헤맸던 사회개혁의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서 지적인 만족과 도덕적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킹은 비폭력주의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저항하고 희생당함으로써 탄압하는 측에 도덕적 타격을 안기고 여론의 양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힘없는 흑인사회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 여겼다.
불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경찰에 연행되어 감옥에 갇히고 피부색에 근거한 아무 근거 없는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온갖 협박과 테러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그는 비폭력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날마다 억압당하고 날마다 착취당하고 날마다 유린당하고 있다고 해도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책략에 넘어가지 맙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무기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정해야 합니다.”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흑인민권운동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서른다섯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한시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불의에 대항하며 소수의 약자를 위해 기꺼이 나섰다. 그는 선한 다수의 침묵과 무관심이 인종차별과 전쟁 가난과 같은 인류의 폐해를 유지시켜왔음을 직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만류할 때에도 그는 홀로 베트남전에 반대했으며 모든 이들이 운동의 성과에 자족해할 때 운동은 지금부터라며 빈민운동을 새로이 계획했다. “약한 사람들 의사 표현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 우리나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우리나라가 ‘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인간이 기록한 문서상에는 형제로 언급된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으며 사실 늘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마지막 설교에서 죽은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평가되길 바라는지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바람에 결코 인색할 수 없다.
“저는 (죽는)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인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전쟁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킹 목사는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연사였다. 반복법과 점층법으로 어우러진 그만의 독특한 사자후는 우리의 마음속을 뒤흔들어 잠자던 양심과 도덕심을 일깨운다. 1963년 워싱턴행진에서 행한 그의 기념비적인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는 한 이상주의자의 피에 찬 절규이자 투쟁의 행진가이고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안겨진 숙제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략)……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 작가 소개
편 : 클레이본 카슨
Clayborne Carson
스탠포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 관한 전문가로서『투쟁 속에서 - SNCC와 60년대 흑인들의 각성』『말콤 엑스 - FBI 파일』등 많은 글을 발표해왔다. 킹 목사의 아내 코레타 킹 여사의 부탁을 받고 1985년부터 를 담당해왔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 전집』을 3권까지 출간하였다. 최근작으로는 킹 목사의 설교 모음집인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 』와 『한밤중의 노크소리』가 있다.
역 : 이순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행복의 정복』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러셀 중국에 가다』 『제국의 미래』 『알파독』 『백악관 경제학자』『기후 커넥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 어린 시절(Early Years)().9
2 모어하우스 대학(Morehouse College)().23
3 크로저 신학교(Crozer Seminary)().29
4 보스턴 대학(Boston University)().45
5 내 아내 코레타(Coretta)().51
6 덱스터 애브뉴 침례교회(Dexter Avenue Baptist Church).57
7 몽고메리 운동(Montgomery Movement Begins).69
8 필사적인 저항(The Violence of Desperate Men).85
9 몽고메리의 승리(Desegregation at Last).109
10 확산되는 투쟁(The Expanding Struggle).131
11 새로운 국가의 탄생(Birth of a New Nation).143
12 죽음의 위협(Brush with Death).151
13 비폭력운동의 산실 인도 순례(Pilgrimage to Nonviolence).157
14 연좌운동(The Sit-In Movement).175
15 애틀랜타에서의 체포와 대통령 선거(Atlanta Arrest and Presidential Politics).183
16 올버니 운동(The Albany Movement).195
17 버밍햄 운동(The Birmingham Campaign).219
18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239
19 드디어 자유다!(Freedom now).263
20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279
21 환상의 죽음(Death of Illusion).293
22 세인트 오거스틴(St.Augustine).305
23 미시시피의 도전(The Mississippi Challenge).315
24 노벨평화상(The Nobel Peace Prize).325
25 말콤 엑스(Malcolm X).339
26 셀마 투쟁(Selma).347
27 와츠(Watts).373
28 시카고 운동(Chicago Campaign).383
29 블랙 파워(Black Power).403
30 베트남 전쟁(Beyond Vietnam).427
31 빈민운동(The Poor People’s Campaign).445
32 못 다 이룬 꿈(Unfulfilled Dreams).457
편집자 후기.473
이 책의 편집에 쓰인 자료들.478
되살아난 킹 목사 논쟁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은 미국의 국경일이다. 킹 목사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생일을 전국적인 기념일로 기리는 것은 조지 워싱턴과 킹 목사가 유일하다. 킹 목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와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흑인들의 학교이자 거리라는 데 킹의 평가에 대한 한계가 있다.
외신에 따르면 2001년 1월 17일 미국 남부에서는 킹 추모행사와 동시에 추모반대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공공연히 옛 노예제 때를 연상시키는 남부 연방기를 게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흑백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자녀들이 살게 되기를 바랐던 킹의 꿈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킹이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공론일 뿐이라지만 10여 년간의 짧은 활동만으로도 200여 년간 미국 남부를 짓눌러왔던 많은 흑백차별 요소들을 법적 제도적으로 폐지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킹의 공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의 예기치 않았던 죽음은 미국의 다른 촉망받던 지도자들처럼 암살에 의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이른바 ‘거대 음모설’이다. 제임스 얼 레이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킹의 활동을 못마땅히 여겼던 정부조직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FBI 에드가 후버 국장이 킹 목사의 전화를 도청하고 나쁜 가십을 유포하며 킹이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는 자살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4월 6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의 재조사를 지시했고 마침내 작년 12월 8일 테네시 주 멤피스 셀비 카운티 순회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킹 목사가 정부 내 비밀조직과 마피아 등 범죄조직이 연루된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는 평결을 내렸다. 또 배심원단은 그동안 킹 목사의 암살범으로 99년 징역형을 받은 제임스 얼 레이를 단독범으로 기소한 것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킹 목사 가족들이 상징적으로 요청한 100달러의 배상금 지급 결정도 내렸다.
킹 목사의 유가족 측은 FBI을 비롯해 CIA 마피아 군 정보기관 등이 킹 목사 암살과 관련돼 있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자 연방정부 요원들이 마피아와 함께 킹 목사를 살해했으며 사건 당시 살해현장 주변에는 마피아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군대 저격수들까지 배치돼 있었다는 ‘거대 음모론’이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배심원들은 이 사건이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암살로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중앙정보국 군 관련자 등이 모두 관련된 ‘준비된’ 사건”이었음을 인정했다. 한편 2000년 1월 13일자 [보스턴 글러브]지는 미국 카톨릭 교회 주교들이 킹 목사를 카톨릭 순교자로 지명해줄 것을 로마 교황청에 요청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킹 목사는 여전히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킹 목사의 사상과 생애
킹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정의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 그리고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한 세계에 맨손으로 맞선 용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목격하면서 불의의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을 지녔던 소년 킹은 대대로 목사였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이러한 가정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본능적으로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성직으로 인도한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인류에 몸을 바쳐 봉사하겠다는 내적인 충동이었다.”
그는 사회개혁을 열망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꺼려하였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발견한 빛이 바로 인도의 성자 간디의 비폭력 저항주의였다. “간디의 사랑과 비폭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 속에서 나는 지금껏 찾아 헤맸던 사회개혁의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서 지적인 만족과 도덕적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킹은 비폭력주의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저항하고 희생당함으로써 탄압하는 측에 도덕적 타격을 안기고 여론의 양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힘없는 흑인사회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 여겼다.
불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경찰에 연행되어 감옥에 갇히고 피부색에 근거한 아무 근거 없는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온갖 협박과 테러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그는 비폭력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날마다 억압당하고 날마다 착취당하고 날마다 유린당하고 있다고 해도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책략에 넘어가지 맙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무기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정해야 합니다.”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흑인민권운동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서른다섯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한시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불의에 대항하며 소수의 약자를 위해 기꺼이 나섰다. 그는 선한 다수의 침묵과 무관심이 인종차별과 전쟁 가난과 같은 인류의 폐해를 유지시켜왔음을 직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만류할 때에도 그는 홀로 베트남전에 반대했으며 모든 이들이 운동의 성과에 자족해할 때 운동은 지금부터라며 빈민운동을 새로이 계획했다. “약한 사람들 의사 표현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 우리나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우리나라가 ‘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인간이 기록한 문서상에는 형제로 언급된 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으며 사실 늘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마지막 설교에서 죽은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평가되길 바라는지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바람에 결코 인색할 수 없다.
“저는 (죽는)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인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전쟁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킹 목사는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연사였다. 반복법과 점층법으로 어우러진 그만의 독특한 사자후는 우리의 마음속을 뒤흔들어 잠자던 양심과 도덕심을 일깨운다. 1963년 워싱턴행진에서 행한 그의 기념비적인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는 한 이상주의자의 피에 찬 절규이자 투쟁의 행진가이고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안겨진 숙제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략)……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 작가 소개
편 : 클레이본 카슨
Clayborne Carson
스탠포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 관한 전문가로서『투쟁 속에서 - SNCC와 60년대 흑인들의 각성』『말콤 엑스 - FBI 파일』등 많은 글을 발표해왔다. 킹 목사의 아내 코레타 킹 여사의 부탁을 받고 1985년부터 를 담당해왔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 전집』을 3권까지 출간하였다. 최근작으로는 킹 목사의 설교 모음집인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 』와 『한밤중의 노크소리』가 있다.
역 : 이순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행복의 정복』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러셀 중국에 가다』 『제국의 미래』 『알파독』 『백악관 경제학자』『기후 커넥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 어린 시절(Early Years)().9
2 모어하우스 대학(Morehouse College)().23
3 크로저 신학교(Crozer Seminary)().29
4 보스턴 대학(Boston University)().45
5 내 아내 코레타(Coretta)().51
6 덱스터 애브뉴 침례교회(Dexter Avenue Baptist Church).57
7 몽고메리 운동(Montgomery Movement Begins).69
8 필사적인 저항(The Violence of Desperate Men).85
9 몽고메리의 승리(Desegregation at Last).109
10 확산되는 투쟁(The Expanding Struggle).131
11 새로운 국가의 탄생(Birth of a New Nation).143
12 죽음의 위협(Brush with Death).151
13 비폭력운동의 산실 인도 순례(Pilgrimage to Nonviolence).157
14 연좌운동(The Sit-In Movement).175
15 애틀랜타에서의 체포와 대통령 선거(Atlanta Arrest and Presidential Politics).183
16 올버니 운동(The Albany Movement).195
17 버밍햄 운동(The Birmingham Campaign).219
18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239
19 드디어 자유다!(Freedom now).263
20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279
21 환상의 죽음(Death of Illusion).293
22 세인트 오거스틴(St.Augustine).305
23 미시시피의 도전(The Mississippi Challenge).315
24 노벨평화상(The Nobel Peace Prize).325
25 말콤 엑스(Malcolm X).339
26 셀마 투쟁(Selma).347
27 와츠(Watts).373
28 시카고 운동(Chicago Campaign).383
29 블랙 파워(Black Power).403
30 베트남 전쟁(Beyond Vietnam).427
31 빈민운동(The Poor People’s Campaign).445
32 못 다 이룬 꿈(Unfulfilled Dreams).457
편집자 후기.473
이 책의 편집에 쓰인 자료들.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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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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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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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