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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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장시우
출판사항문학의전당, 발행일:2016/10/25
형태사항p.120p. A5판:21cm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896281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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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소리의 집

우주의 모든 존재에는 소리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을 때로부터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고유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고 존재에 부여한 힘이나 원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존재의 소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시인에겐 그런 귀가 있을 것이다. 가령, 저물녘 저수지의 고요한 수면 위로 사람들이 물수제비를 뜰 때, 돌은 경쾌하게 뛰어가다 가라앉고 물 위엔 긴 파문이 남는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시인은 물속에 잠긴 돌멩이를 향해 비밀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오래전에 잠겨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돌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그 곁에 제 몸을 누이고 묵은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고. 그렇다면 밤새도록 물 위에 이는 파문이란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 소리가 만들어낸 울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두에 놓인 「파문」은 이 시집을 ‘소리의 집’으로 만드는 주춧돌인 셈이다.
가청권 밖의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은 심지어 ‘고요의 비명’까지 듣는다. 화자에게 고요의 공포는 소리의 욕망을 부여하고, 이때 소리는 존재의 안부를 묻는 행위가 된다. 그다음엔 다시 내 몸속에서 고요가 흘러나오고, 화자는 이방인처럼 서성거리다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는다. 이때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요의 틈 속에 배어나온 화자의 깊은 속울음이 아닌가. 고요가 사는 방에서 화자는 외적으로는 세상 모든 존재의 안부를 묻고, 내적으로는 자신으로부터 울려오는 눈물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의 시작(詩作) 행위는 소리에 대한 내밀한 탐구이자 존재성 고구의 한 방법론인 셈이다. “소리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느라 불면의 밤이 이어져/신경쇠약에 걸릴 뻔했지”(「소리들」)라는 진술은 소리를 통한 시작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증거한다.

머릿속을 맴돌던 가락이
휘파람으로 골목을 돌아나가고
문 앞에서 주춤거리던 달빛이 가만히 문을 연다
그 곁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싸르락 나뭇잎이 걸어 다니는 소리들
늦은 밤에도 잠들지 못한 마음은
신발도 신지 않고
골목을 걸어 나가
떠도는 소리를 따라 나선다
오늘밤엔 초승달이 아프게 어둠을 찌르고
한데 나간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깊은 밤의 허기는
찬물에 떠 있는 별빛으로도 채울 수 없으니
자꾸 어둠만 들이킨다
마음은 어디 먼 데로 간 걸까
갈라진 길 끝에 바람이 고인다
「바람이 노래하는 밤」 전문

깊은 밤의 고요가 찾아오면 시인은 비로소 귀를 얻는다. 한낮의 시간은 너무 많은 소음으로 가득 차서 소리를 분별할 수 없으나, 한밤에는 존재들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또렷하게 전해지는 법이다. “문 앞에 주춤거리던 달빛이 가만히 문을 열”자, “싸르락 나뭇잎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어온다. 이때 화자의 스산한 마음은 “신발도 신지 않고/골목을 걸어 나가/떠도는 소리를 따라”나간다. 하늘엔 초승달이 먹빛 어둠을 찌르고, 화자의 마음속에 가득 고인 “깊은 밤의 허기”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길이 없다. 집 나간 마음은 돌아오지 않고, 길 끝에서 바람만이 노래하는 밤! 신발도 신지 않고 골목을 걸어 나간마음이야말로, 우주의 소리를 찾아나서는 시인의 고적한 영혼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노래가 들리지 않았네
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뜻했던 날들이 가고
아무도 울진 않지만 노래하지 않는 날이 왔네
가끔 날 위해 울어주던 새들마저 날아가고
텅 빈 객석만 남기고
쪽창에 걸린 햇살마저
그림자에 가렸으니
쏟아내는 눈물만 만져지는구나
꽃을 꺾으러 간 젊은 혁명가는 돌아오지 않고
어둠을 발밑에 묻고 꽃을 노래하다니
서늘한 눈으로 쓰러진 거인을 노래하다니
자정의 노래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오래 묵은 통증을 건드리네
버려진 것들의 비명만
가슴 언저리를 비벼대는구나
나는 들리지 않는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눈물 기울이며
홀로 낡아가네
「벙어리 여가수」 전문

분명 가수였고 지금도 가수이지만 이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노래조차 들을 수 없는 ‘그녀’를‘벙어리 여가수’라 명명하고 있는데, 이 시의 핵심은 단순하게 속절없이 잊힌 시간의 기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가수의 운명에 시적화자의 상황이 투사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시점의 혼란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분명 의도된 것이다. 한 시절이 저물어 “노래하지 않는 날”이 온 한 여가수의 운명. “가끔 날 위해 울어주던 새들마저 날아가고/텅 빈 객석만 남기고/쪽창에 걸린 햇살마저/그림자에 가렸으니/쏟아내는 눈물만 만져지는구나”에서 발화의 주체는 여가수이고 그 진술 내용은 여가수의 현재적 처지다. 이어, “꽃을 꺾으러 간 젊은 혁명가는 돌아오지 않고/어둠을 발밑에 묻고 꽃을 노래하다니/서늘한 눈으로 쓰러진 거인을 노래하다니”라는 시행의 주체는 화자이고, 그 내용은 그녀의 노래를 듣는 화자의 심리적 정황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노래는 “버려진 것들의 비명”이며 화자는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눈물로 낡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노래하는 자다. 오선지도 없는 백지 위에 언어의 음표를 수놓는 자다. 시인은 오랫동안 벙어리 가수의 처지로 지내온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자신을 위해 울어주지 않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망연자실함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벙어리 여가수의 처지에 자신의 운명을 투사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가수가 되고 관객이 되어 미지의 독자들을 향해 외로운 타전을 보내는, 언젠가 자신도 이렇게 잊힌 가수처럼 천천히 낡아갈 것임을 아는 시인의 “묵은 통증”을 감득하게 된다.
장시우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사운드 콜렉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우주의 기척,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의 미세한 떨림을 건져 올리는 그녀는, 우리 생에 깃들어 있는 고요와 평화, 아픔과 상처들을 신비한 청음력으로 예민하게 포착한다.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찬 아비규환의 시대에 이렇게 맑고 투명한 소리를 지어내다니, 이것이 곧 시와 시인의 위의(威儀)일 것이다. 더욱 웅숭깊어질 그녀의 노래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작가 소개

저자 : 장시우
부산에서 출생하여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대학원에서 문화기획을 전공했다. 200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섬강에서』가 있으며 현재 강원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파문
고요가 사는 방
밤이 다녀간 사이

소리들
젖은 두 손을 펼치고
승천
소리가 고인다
소리에 베이다
봄, 종점
슬픔 없는 장례식
꽃눈을 매달고
꽃잎이 잎을 열다
비는

제2부
너무 늦거나 이른
한밤의 콘서트
손톱을 깎으며
동묘에서
라디오
관계
햇살 한 다발
위로
어떤, 위로
공(空)
자각(自覺)
시 익는 밤
행간을 놓치다
아우라지를 만났다
안목항에서

제3부
달아난 시간
벙어리 여가수
눈부신 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저녁이 돌아오는 시간
홀로인 저녁
슬픈 것일수록 환하다
바람이 노래하는 밤
호접몽
고양이 날다
안개가 다녀갔다
벙어리 달이 얼굴을 매만지네
아리오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걸어가듯, 조용히, 조금 천천히
삼우제
유월

제4부
나뭇가지에 몸을 찢기며 떠오른 달같이
삼월
몇 번의 날갯짓이면
봄은
용서

후기
흔적
어떤 착지
가라, 봄
꽃잎 한 장 지는 일이
저 꽃은 지고
꽃의 이별법
곡자(哭子)에 덧대어
회고록
해설 | 소리의 집
김정남(소설가·문학평론가)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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