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세상이라는 감옥에 핀 꽃
시인은 자서에서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썼다. 이번 시집은 30여년의 정신병원과의 인연, 10여년의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통을 몸으로 견뎌내며 쓴 시이다. 그러나 그 시집이 증오와 분노에 기대어 쓴 시라고 한다면 이번 시집의 시는 완벽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고투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다. 놀라운 점은 시인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이다.
시집 1부에 나오는 무기수와 사형수에 관한 시들은 한 사회의 모순이 어떻게 수인의 모습으로 발현되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죽기 전에 유언처럼 말했다
내가 죽인 사람이 저승에서 기다릴까요
만나면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조각상 같은 표정이 되기까지
악몽과 구토의 나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죄에 갇혔던 혼이 빠져 나가니
얼굴이 해맑아지는구나
연고자 한 명 없이 행해지는 입관식
몸 깨끗이 닦고 수의(壽衣)를 입혔다
40년 동안 입어온 수의(囚衣)
비로소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출소」전문
시인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벽’의 실체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한, 시인 이승하는 한국 시단에서 분명히 이채로운 존재다. 우리가 온갖 종류의 매체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는 대한민국의 끔찍한 사건과 사고의 내면 풍경을 정신병동과 감옥의 일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교도소 시편’들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증오와 분노, 공포와 불안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출소를 꿈꾼다. 그것에 이르는 것은 사랑과 용서다.
시집 2부에서는 시인의 누이를 만나게 된다. 폐쇄된 병동에서 청춘을 다보내고 초로(初老)에 도달한 ‘누이의 초상’은 보는 이를 눈물겹게 한다. 누이의 초상이 눈물겨운 이유는 늙어버린 어린 누이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내 사랑 내 자랑아 돌아가보렴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가였다
재미있는 것뿐인 세상
구름을 보고 있으면 구름처럼 변하는 세상
달을 보고 있으면 달을 따라 흘러가는 세상
세상은 그때,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누이의 초상 2」의 부분
이 시집의 ‘누이 시편’은 고흐의 “귀 없는 자화상”이며 폐쇄병동의 누이에게 바치는 연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시가 인간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고통이 커질수록 시어는 더욱 분명하고 간결해진다. 삶의 고통을 시로 쓰는 일에서 자기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고통의 세계를 온전히 그려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라비가 자주 면회를 오겠다고 거짓말하는 심정은 처절하다.
정신병 앓는 누이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자주 면회 올 거라고 거짓말하는 오빠의 마음
그 마음은 철문 닫히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서리
이런 마음은 길을 못 만들지
내 시는 그 마음 가는 길을 모르지
울고 싶어도 이빨 지그시 깨물고 응시해야 하는
그 마음을
―「마음 가는 길」의 부분
“내 시는 그 마음 가는 길을 모르지”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진정성이야말로 시로 향하는 위태로운 길을 뚫는 힘이다.
시인의 말
30년 동안 신경정신과병원에 면회를 다녔습니다.
허전 시인과 서경숙 박사가 안내해주어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두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흰 벽, 높다란 벽, 쇠창살이 박혀 있는 창문을 보고 와서 시를 썼습니다.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2016년 늦봄
이승하
추천의 글
이승하의 ‘욥’과 그의 ‘전율’, ‘뭉크’와 그의 ‘광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토록 처절한 고통을 토해내고도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을지 묻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병으로 시달리는 영혼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시인이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죽음의 악몽과 질병의 급습에 시달리는 온갖 존재들의 저 치유할 수 없는 벼랑과도 같은 삶에 함께 서서 그는 ‘평범한 악’이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지옥과도 같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과 보려고 하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하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과오들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는 오로지 이러한 방식으로만 이 시대의 끔찍한 폭력과 맞서고 광기의 삶과 그 무의식의 세계와 대면하려 한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며 현기증처럼 나타나 백지 위에서 출렁거리는 시대의 슬픔과 공포가 쏘아 올린 불꽃같은 상처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곰팡이처럼 피어나 아물 줄을 모르는 저 공포 가득한 상처들의 현장을 시인이 참혹한 언어로 기록해내면서 우리들의 영혼을 바이러스처럼 잠식하고 그렇게 감염의 미궁 속으로 우리를 이끌 때, 이 세계에서 자행되는 온갖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가 슬픔의 광시곡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
조재룡(문학 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이승하
YI,SEUNG-HA,李昇夏
1960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김천에서 성장하였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 지훈문학상, 중앙문학상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재직 중이다.
시집 『사랑의 탐구』(1987)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1991)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박수를 찾아서』(1994) 『생명에서 물건으로』(1995) 『뼈아픈 별을 찾아서』(2001)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2005)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2007) 『공포와 전율의 나날』(2009)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2010) 등을 펴냈다.
▣ 주요 목차
제1부
출소 | 벽 | 헤어스타일 | 집 | 벽 앞에서 | 아우슈비츠 행 열차 | 내가 세운 아우슈비츠 | 울부짖다 1 | 울부짖다 2 | 없다 | 먹고 싶은 것들 | 단체행동을 해야 합니다 | 감금과 감시 | 벙어리들 | 탈옥수의 하루 | 독방의 빛 | 1997년 12월 30일 | 1997년 12월 30일의 빛 | 밤의 기도 | 인간의 얼굴 |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사람은 얼마든지 사람을 | 소년원에 가서 시화전을 보다 | 사라지지 않는 빛 | 목숨
제2부
누이의 초상 1 | 누이의 초상 2 | 집 |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병 | 안과 밖 | 슬픔의 실체 | 심해에서 발광하다 | 입원과 퇴원 | 사랑 노래 | 불안과 악몽의 나날 | 얼굴 | 정상인 | 격리된 사람들 | 흔적 지우기 | 환자 차트 | 발작 | 침묵하는 벽 앞에서 | 사이코드라마 시간 | 울지 말아라 내 누이야 | 악몽 | 면벽 | 별유천지비인간 | 금지된 사랑 | 백색의 공포 | 시인을 만나기 위하여 | 그대 왜 아직도 미치지 않고 있느냐 | CCTV 아래에서의 생 | 관계 | 광녀에게 | 마음 가는 길 | 폐쇄병동의 누이 | 그 눈빛 | 광(狂) | 저, 비 | 흉터 | 마지막 시 | 인간에 대한 기억 | 빛의 혼
해설 유희석
시인의 말
세상이라는 감옥에 핀 꽃
시인은 자서에서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썼다. 이번 시집은 30여년의 정신병원과의 인연, 10여년의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통을 몸으로 견뎌내며 쓴 시이다. 그러나 그 시집이 증오와 분노에 기대어 쓴 시라고 한다면 이번 시집의 시는 완벽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고투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다. 놀라운 점은 시인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이다.
시집 1부에 나오는 무기수와 사형수에 관한 시들은 한 사회의 모순이 어떻게 수인의 모습으로 발현되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죽기 전에 유언처럼 말했다
내가 죽인 사람이 저승에서 기다릴까요
만나면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조각상 같은 표정이 되기까지
악몽과 구토의 나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죄에 갇혔던 혼이 빠져 나가니
얼굴이 해맑아지는구나
연고자 한 명 없이 행해지는 입관식
몸 깨끗이 닦고 수의(壽衣)를 입혔다
40년 동안 입어온 수의(囚衣)
비로소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출소」전문
시인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벽’의 실체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한, 시인 이승하는 한국 시단에서 분명히 이채로운 존재다. 우리가 온갖 종류의 매체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는 대한민국의 끔찍한 사건과 사고의 내면 풍경을 정신병동과 감옥의 일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교도소 시편’들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증오와 분노, 공포와 불안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출소를 꿈꾼다. 그것에 이르는 것은 사랑과 용서다.
시집 2부에서는 시인의 누이를 만나게 된다. 폐쇄된 병동에서 청춘을 다보내고 초로(初老)에 도달한 ‘누이의 초상’은 보는 이를 눈물겹게 한다. 누이의 초상이 눈물겨운 이유는 늙어버린 어린 누이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꽃을 발견하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내 사랑 내 자랑아 돌아가보렴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가였다
재미있는 것뿐인 세상
구름을 보고 있으면 구름처럼 변하는 세상
달을 보고 있으면 달을 따라 흘러가는 세상
세상은 그때,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누이의 초상 2」의 부분
이 시집의 ‘누이 시편’은 고흐의 “귀 없는 자화상”이며 폐쇄병동의 누이에게 바치는 연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시가 인간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고통이 커질수록 시어는 더욱 분명하고 간결해진다. 삶의 고통을 시로 쓰는 일에서 자기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고통의 세계를 온전히 그려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라비가 자주 면회를 오겠다고 거짓말하는 심정은 처절하다.
정신병 앓는 누이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자주 면회 올 거라고 거짓말하는 오빠의 마음
그 마음은 철문 닫히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서리
이런 마음은 길을 못 만들지
내 시는 그 마음 가는 길을 모르지
울고 싶어도 이빨 지그시 깨물고 응시해야 하는
그 마음을
―「마음 가는 길」의 부분
“내 시는 그 마음 가는 길을 모르지”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진정성이야말로 시로 향하는 위태로운 길을 뚫는 힘이다.
시인의 말
30년 동안 신경정신과병원에 면회를 다녔습니다.
허전 시인과 서경숙 박사가 안내해주어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두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흰 벽, 높다란 벽, 쇠창살이 박혀 있는 창문을 보고 와서 시를 썼습니다.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2016년 늦봄
이승하
추천의 글
이승하의 ‘욥’과 그의 ‘전율’, ‘뭉크’와 그의 ‘광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토록 처절한 고통을 토해내고도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었을지 묻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병으로 시달리는 영혼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시인이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죽음의 악몽과 질병의 급습에 시달리는 온갖 존재들의 저 치유할 수 없는 벼랑과도 같은 삶에 함께 서서 그는 ‘평범한 악’이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지옥과도 같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과 보려고 하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하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과오들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그는 오로지 이러한 방식으로만 이 시대의 끔찍한 폭력과 맞서고 광기의 삶과 그 무의식의 세계와 대면하려 한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며 현기증처럼 나타나 백지 위에서 출렁거리는 시대의 슬픔과 공포가 쏘아 올린 불꽃같은 상처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곰팡이처럼 피어나 아물 줄을 모르는 저 공포 가득한 상처들의 현장을 시인이 참혹한 언어로 기록해내면서 우리들의 영혼을 바이러스처럼 잠식하고 그렇게 감염의 미궁 속으로 우리를 이끌 때, 이 세계에서 자행되는 온갖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가 슬픔의 광시곡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
조재룡(문학 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이승하
YI,SEUNG-HA,李昇夏
1960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김천에서 성장하였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 지훈문학상, 중앙문학상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재직 중이다.
시집 『사랑의 탐구』(1987)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1991)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박수를 찾아서』(1994) 『생명에서 물건으로』(1995) 『뼈아픈 별을 찾아서』(2001)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2005)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2007) 『공포와 전율의 나날』(2009)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2010) 등을 펴냈다.
▣ 주요 목차
제1부
출소 | 벽 | 헤어스타일 | 집 | 벽 앞에서 | 아우슈비츠 행 열차 | 내가 세운 아우슈비츠 | 울부짖다 1 | 울부짖다 2 | 없다 | 먹고 싶은 것들 | 단체행동을 해야 합니다 | 감금과 감시 | 벙어리들 | 탈옥수의 하루 | 독방의 빛 | 1997년 12월 30일 | 1997년 12월 30일의 빛 | 밤의 기도 | 인간의 얼굴 |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사람은 얼마든지 사람을 | 소년원에 가서 시화전을 보다 | 사라지지 않는 빛 | 목숨
제2부
누이의 초상 1 | 누이의 초상 2 | 집 |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병 | 안과 밖 | 슬픔의 실체 | 심해에서 발광하다 | 입원과 퇴원 | 사랑 노래 | 불안과 악몽의 나날 | 얼굴 | 정상인 | 격리된 사람들 | 흔적 지우기 | 환자 차트 | 발작 | 침묵하는 벽 앞에서 | 사이코드라마 시간 | 울지 말아라 내 누이야 | 악몽 | 면벽 | 별유천지비인간 | 금지된 사랑 | 백색의 공포 | 시인을 만나기 위하여 | 그대 왜 아직도 미치지 않고 있느냐 | CCTV 아래에서의 생 | 관계 | 광녀에게 | 마음 가는 길 | 폐쇄병동의 누이 | 그 눈빛 | 광(狂) | 저, 비 | 흉터 | 마지막 시 | 인간에 대한 기억 | 빛의 혼
해설 유희석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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