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가 못을 그리워할 때

고객평점
저자주강홍
출판사항시인동네, 발행일:2015/11/04
형태사항p.116p. A5판:21CM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896009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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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길어올린 성찰의 언어

<시인동네 시인선> 045.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주제의식이 비교적 명확하다. 시마다 구성력이 뛰어나고 시적 긴장감도 시종일관 잃지 않고 있는 것이 미더움을 갖게 한다.”라는 평을 받으며 등단한 주강홍 시인이 등단 12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생활현장과 인간관계와 종교적 초월까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인생의 단면을 성찰의 언어로 녹여낸다. 자기 체험의 진실성을 마디마디 생생한 시의 언어로 체화하여 대나무처럼 단단하고 곧은 시의 숲을 일구어낸다. 사람 냄새와 왁자지껄한 생활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 숲에 든 사람들은 마치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시심을 활짝 열어젖히게 된다. 나와 다르지 않은 한 시인의 삶을 엿보는 이 산책길은 우리에게 삶의 현장 모서리마다 끼어 있는 신비로움을 전해주며, 우리가 살면서 잊고 살았던 것들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등단한 지 12년 만에야 시집을 내려는 시인이 있다. 참으로 공을 들여, 진중하게 시를 써온 세월이었다고 여겨진다. 등단한 지 2, 3년 만에 시집을 내는 시인들도 많지만 그들에 견주어 이 시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등단 12년 만의 시집 출간이라니 경이로운 마음부터 생긴다. 토목공학과를 나와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일이 바빴던 것일까. 명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녹록지 않은 생활의 현장에서도 시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의 시는 시인이 생활을 어떻게 시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컨테이너 현장 사무실/ 천정을 때리는 장맛비 소리가 따발총보다 더 요란하다/ 어눌한 어둠 속/ 뇌성은 변죽을 울리며 온 동네를 헤맨다// 망치들이 함빡 젖은 옷을 훔치며 일당을 계산하는 사이/ 망치들의 일당을 시간 품셈으로 환산하는 사이// 바람을 타고 찾고 있다/ 세상이 깨어지고 시퍼렇게 찾고 있다/ 순간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가는 사이/ 왠지 나는 마른 오줌을 참아가며/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장마」 전문

여기서 ‘망치들’은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일당을 ‘시간 품셈’으로 환산하는데, 컨테이너 현장 사무실에 떨어지는 장맛비 소리가 따발총 소리보다 더 요란하다는 것은 줄 돈도 받을 돈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비가 오는 날은 공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일당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저녁 찬거리를 살 수 있을까? 식솔들은 무엇으로 끼니를 때울 것인가. “순간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가는 사이/ 왠지 나는 마른 오줌을 참아가며/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는 구절은 이 시의 화자가 망치들이 아님을 알게 한다. 건설회사의 대표라면 망치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없으므로 대단히 난처한 입장이 아닐까. 그래서 이런 구절이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화자의 위치 변동은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80~90년대 민중문학은 대체로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었다.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들의 세계(김신용), 공업단지 노동자들의 애환(박노해), 대규모 조선 사업장에서의 비극(백무산), 그리고 농촌사회를 지키는 농민들의 희생(김용택·고재종)이 큰 주제였다. 그런데 대단히 특이하게도 주강홍의 시는 건설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일하고, 그러면서 온갖 일들을 겪지만 대표(사주)의 입장에서 현장의 노동행위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 예리하게 묘사한다. 같은 현장의 목소리로서 역시 견고한 자기 철학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의 위계가 이전의 시들과는 다른 것이다. 문제는 작품성인데, 여기서만큼은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하나같이 탄탄한 시들로 한 채의 ‘언어의 집’을 잘 만들어놓았다. 현장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의미의 두께가 느껴진다. 21세기형 민중시라고 할까. 주강홍의 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묵은 상처를 지우고/ 저 깊은 속살로 다시 해야지/ 안으로/ 안으로/ 그리고 가볍게 당겨서/ 송진내 상큼한 맨살을 만나야지
―「대패질」 부분

상처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이다/ 감당하지 못하는 뜨거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한쪽을 허물고 다른 한쪽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애써 보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처절한 비명 참아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끊어진 한쪽을 찾아야 할 일이다/ 이질이며/ 동질이다/ 불이(不二)다
―「용접」 전문

건설현장에서는 수많은 작업이 이루어진다. 대패질하는 것의 의미를 송진내 상큼한 맨살을 만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길쭉한 표피들이/ 발목을 휘감던/ 부끄럽던 생채기의 흔적을 깎아내며/ 진작 가벼워서/ 새로운 시작을 칼날 위에 세워두고/ 기억의 저 깊은 껍질들을 벗겨내”는 것으로 상상하고 있으니, 범인의 상식선을 넘어서는 독특하고도 경이로운 표현이다. 용접을 “상처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로 보고 “한쪽을 허물고 다른 한쪽을 받아들여야 할 일”로 본 것도 상식을 넘어서는 신선한 상상력의 결과다. 이런 상상은 예리한 관찰과 함께 행해진 다른 식의 의미부여, 즉 다르게 생각하기와 낯설게 하기의 결과다.

어머니에게서는 3번이었고/ 나에게서는 8번이었습니다/ 항시 1번이었지만/ 언제부터 뒤로 밀려나신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화들짝 놀란 까만 밤에도/ 한 번도 꺼놓지 못한/ 그 많은 새벽도/ 유난히 많이 닳은 3번과 함께 이제 접으려 합니다// 누구를 지우고/ 지워지는 데 익숙해 있지만/ 전리층을 뚫고 화답으로 오실 것 같은/ 달빛 같은 음성이/ 귀밑에 매달려 차마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제 정한수란 사발의 치성을 강물로 모아/ 기억의 가지 하나를 떠내려 보내려 합니다
―「단축 3번」 전문

한편 생활이라면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의 화자는 셋째 아들인가, 어머니의 휴대폰에 단축번호 3번인데 내 휴대폰에서는 8번이 어머니였다고 한다. 항시 1번이었다가 뒤로 밀리고 밀려 8번이 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심적 거리가 그렇게 뒤로 밀려나 있었구나 하고 후회막급이다. 어머니는 나를 수시로 찾았는데 이제는 고통에 시달렸던 나날을 기억에서도 지우고 단축번호에서도 지워야 한다. 하지만 “전리층을 뚫고 화답으로 오실 것 같은/ 달빛 같은 음성이/ 귀밑에 매달려 차마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귀에 맴돌 거란 이야기다. 돌아가신 이의 영상이 내 마음속에 꽉 차 있으면 일상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그래서 “기억의 가지 하나를 떠내려 보내려”고 한다. 화자에게 어머니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지만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안 계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이 시를 통해 해보고 있다.

한 접시 말씀을 담아 물결 위에 놓는다/ 어둠이 출렁이는 사이/ 빛은 강으로 흐르고/ 한 소식 묻는 손짓들은 시리다/ 기착지를 정하지 못한 바람은 등을 밀고/ 한 꺼풀씩 정적을 사루는 수심은/ 깊이를 알려주지 않고 맨살로 일렁댄다/ 초승달이 버드나무에 걸려 뒤척이는 동안// 남강은 몸을 풀고/ 그대의 사랑을 묻는 불심은/ 창호지 안으로 뜨겁다
―「유등」 전문

주강홍 시인은 이런 생활의 시화(詩化)를 통해 무엇을 느꼈고, 또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 겉으로는 참 에로틱한 표현이지만 시인은 이 시에서 우리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왜 살아 있는 동안 더 사랑하지 않았는가, 더 보시하지 않았는가, 더 용서하지 않았는가. 「모기 1」 「모기 2」 같은 시를 보면 남녀상열지사도 할 거면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정신의 사랑, 영혼의 사랑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유등」을 통해 말하고 있다. “한 접시 말씀을 담아 물결 위에 놓는” 부처의 설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으므로. 시인은 「방생」에서 “그날따라 더 시렸다”고 하고 「일주문」에서는 “등줄기가 시리다”고 하고 「문」에서는 “등짝이 시리다”고 한다. 세상인심이 스산할수록 더더욱 불심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유등의 길로 나서자는 다짐이 이런 시에는 담겨 있지나 않은가.
이렇듯 주강홍 시인의 성찰의 언어 속에는 생활현장과 인간관계와 종교적 초월까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인생 단면이 녹아 있다. 시심을 열어둔 사람이라면 나이를 먹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마디마디를 생생한 시의 언어로 체화하며 대나무처럼 단단하고 곧게 성숙해가는 시들이 아름답다. 사람 냄새와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시편들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공학도가 시를 쓴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은데, 삶의 현장 모서리마다 끼어 있는 신비로움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관조하는 시인의 자세가 미덥다.

▣ 작가 소개

주강홍
1953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문학과경계>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진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진주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남일보>경일시단에 평설을 연재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망치 소리 / 못 1 / 나사못 / 철근 / 장마 / 건물 도색 / 철근 토막 / 타워크레인 1 / 대패질 / 용접 / 정(釘) / 못 주머니 / 침수 / 자석 / 장도리

제2부
매듭 / 보도블록 / 크레인 / 타일 벽 / 망치 / 현장소장 / 월급날 / 타워크레인 2 / 초장동 일대는 수도공사 중 / 피뢰침 / 추락 / 레미콘 타설 / 못 2 / 철거 / 새벽

제3부
싸움 / 누수 / 움막 / 벽 / 추 / 종이컵 / 근로감독관 / 도로 포장 / 모기 1 / 모기 2 / 달팽이 / 회전 톱날 / 지리산 / 하동 벚꽃 / 갈증

제4부
문 / 통영 / 세탁 / 하수구 / 병원 / 단축 3번 / 측량 / 성묫길 / 우리 집 / 손해 본 느낌 / 가을 / 일주문 / 점안식 / 방생 / 방수 / 유등

해설 삶의 치열한 현장과 유등의 정신적 길/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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