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헤밍웨이이가 인정한 단 한 명의 문하생이 기록한 작가 수업!
그리고 걸작 『노인과 바다』 창작의 비밀!!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나기 전의 헤밍웨이는 이미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크게 성공을 거둔 대작가였다. 1926년에 출간된 『태양은 다시 뜬다』는 전후 젊은이들의 방황과 환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시에 ‘잃어버린 세대’의 바이블이 되었으며, 1929년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1932년에는 투우를 소재로 한 『오후의 죽음』을, 1933년에는 『승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라』를 출간한 뒤 두 달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두 번째 아내인 폴린과 키웨스트로 막 내려와 있던 것이 1934년 봄이었다. 이 1934년에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아프리카에서의 사냥, 문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었고, 낚싯배 ‘필라’호를 구입하여 본격적인 새치 낚시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1934년은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쿠두영양 사냥을 묘사하고, 필라호를 구입하고, 북대서양 새치의 재분류 작업에 일조하고, 향유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졌던 흥미진진하지만 널리 기록되지 않은 (…) 일들이 벌어진 해였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1912년 노스다코타에서 노르웨이에서 이주해온 밀 재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증 수수료 5달러를 내고 싶지 않아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대공황 시절 대학을 나온 청년 새뮤얼슨은 1932년 길에서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면서 이발을 해주는 대가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급조된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다. 일요판 트리뷴에 ‘방랑자’라는 제목의 연재물을 기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중 『코즈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그를 만나기 위해 부랑자 행색으로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일이 잘 풀리면 그가 몇 분만이라도 틈을 내어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그런 새뮤얼슨을 처음 보고 헤밍웨이는 자신의 집에 눌러붙으러 온 식객으로 잠시 오해하지만 새뮤얼슨이 작가지망생이고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에 환대하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날 빌린 책을 돌려주러 집에 들른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가 뉴욕에서 선적되어 몇 일내로 올 것이라면서 배에서 잠을 자면서 돌보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필라호에서 아널드 새뮤얼슨은 그후 1년 동안 헤밍웨이와 그의 선원들, 친구들과 교유하며 새치 낚시를 하면서 헤밍웨이로부터 작가 수업을 받게 된다. “그 1년은 그 둘이 한 모든 일이 어떻게든 글쓰기와 연관된 시절이었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헤밍웨이가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 되었”고 헤밍웨이는 새뮤얼슨에게 닮고 싶은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1년 동안 함께 생활한 후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향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가는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보다 더 잘 쓴 순 없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보내지 말게. 근사한 걸 썼다 싶으면 원고를 갖고 이리 내려와. 언제라도 기꺼이 살펴보고 조언해줄 테니. 그게 지금부터 6개월 후든, 1년 후든, 2년 후든 오기만 하면 잠잘 곳은 우리가 꼭 마련해주겠네.
아무튼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
새뮤얼슨이 키웨스트를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관계를 지속했다. 새뮤얼슨의 첫 소설 「뜨내기를 위한 멕시코」(1937년)와 「하나도 너무 많아」(1955년)가 『에스콰이어』지에 실렸고,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은 축하 전보를 보냈다. “에스콰이어 건 최고의 기쁨. 아주 자랑스러움. 자네의 단편이 편지만큼 훌륭하다면 다른 것도 팔 수 있을 거라 확신함. 행운을 빎.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지에 젊은 새뮤얼슨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소품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를 썼고, 헤밍웨이가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고혈압, 편집증에 시달리다 케첨의 자택에서 자살한 1961년 10월에 『에스콰이어』지에는 다음과 같은 아널드 새뮤얼슨의 발언이 들어간 ‘E. H.: 마에스트로에게서 온 코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어니스트는 안간힘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가 택한 최후의 행동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말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한 것입니다.”
이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은 새뮤얼슨과 헤밍웨이와 필라호에서 함께한 1년의 기록이다. 키웨스트와 쿠바의 아바나, 멕시코만류가 흐르는 바다 위 거친 바다낚시 현장에서 대작가 헤밍웨이에게 작가 수업을 들으며 그를 추종했던 작가지망생 아널드 새뮤얼슨의 글을 통해,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영혼이 자유롭게 펄떡이는 헤밍웨이의 육성과 대작가다운 거침없고 독보적인 작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새치 낚시 경험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는 걸작 『노인과 바다』가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그 비밀을 엿보게 한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 새뮤얼슨이 묘사한 바다 위 스포츠낚시가 펼쳐지는 필라호에 동승하여, 새치와 고래, 만새기, 상어를 잡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동시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혹은 E. H.라는 작가가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어떻게 대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다와 헤밍웨이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아널드 새뮤얼슨을 헤밍웨이가 문하생으로 인정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아널드 새뮤얼슨
1912년 노스다코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학위증 수수료 5달러를 내고 싶지 않아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했다. 『코즈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를 만나기 위해 키웨스트로 간다. 1년 동안 헤밍웨이와 함께 생활한 후 새뮤얼슨은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미니애폴리스로 되돌아온다. 첫 소설 「뜨내기를 위한 멕시코」(1937년)와 「하나도 너무 많아」(1955년)가 『에스콰이어』지에 실렸고,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은 축하 전보를 보냈다. “에스콰이어 건 최고의 기쁨. 아주 자랑스러움. 자네의 단편이 편지만큼 훌륭하다면 다른 것도 팔 수 있을 거라 확신함. 행운을 빎.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지에 젊은 새뮤얼슨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소품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를 썼다.
역자 : 백정국
매곡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데이비스)에서 학교교육을 마쳤다. 경기도 북부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대학에서 르네상스영문학, 셰익스피어, 문학비평을 가르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학생들과 더불어 ‘호박흔들기’란 독서토론 모임을 해오고 있다. 「용병 이야기로서의 『오셀로』」 「“하얀 바퀴벌레”: 어두운 크리올의 그림자」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르네상스 영시의 세계』 『질문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콘서트』를 다른 학자들과 함께 썼으며, 『햄릿』 『톨스토이가 싫어한 셰익스피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다이앤 다비의 서문
헤밍웨이
수업
사제와 돛새치
괜찮은 작품을 어떻게 쓰나
낚시꾼 방문
도움의 문제
전보
세상에 못해먹을 짓
아바나
아내를 위한 청새치
진저 로저스와 결혼하고픈 사나이
로페스와 저녁식사
쇠돌고래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호전적인 청새치
알폰소
사이비 낚시꾼
카바냐스에 들어서다
범비와 이야기꾼
과학자들을 위한 물고기
아구하 그란데!
생애 최고의 짜릿함
허리케인
카를로스와 후안
뱀상어
고래
트로카데로 거리에서
아바나와의 작별
소박한 말이 최선
E. H.: 마에스트로에게서 온 코다
옮긴이의 말
인명 사전
헤밍웨이이가 인정한 단 한 명의 문하생이 기록한 작가 수업!
그리고 걸작 『노인과 바다』 창작의 비밀!!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나기 전의 헤밍웨이는 이미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크게 성공을 거둔 대작가였다. 1926년에 출간된 『태양은 다시 뜬다』는 전후 젊은이들의 방황과 환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시에 ‘잃어버린 세대’의 바이블이 되었으며, 1929년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1932년에는 투우를 소재로 한 『오후의 죽음』을, 1933년에는 『승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라』를 출간한 뒤 두 달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두 번째 아내인 폴린과 키웨스트로 막 내려와 있던 것이 1934년 봄이었다. 이 1934년에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아프리카에서의 사냥, 문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었고, 낚싯배 ‘필라’호를 구입하여 본격적인 새치 낚시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1934년은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쿠두영양 사냥을 묘사하고, 필라호를 구입하고, 북대서양 새치의 재분류 작업에 일조하고, 향유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졌던 흥미진진하지만 널리 기록되지 않은 (…) 일들이 벌어진 해였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1912년 노스다코타에서 노르웨이에서 이주해온 밀 재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증 수수료 5달러를 내고 싶지 않아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대공황 시절 대학을 나온 청년 새뮤얼슨은 1932년 길에서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면서 이발을 해주는 대가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급조된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다. 일요판 트리뷴에 ‘방랑자’라는 제목의 연재물을 기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중 『코즈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그를 만나기 위해 부랑자 행색으로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일이 잘 풀리면 그가 몇 분만이라도 틈을 내어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그런 새뮤얼슨을 처음 보고 헤밍웨이는 자신의 집에 눌러붙으러 온 식객으로 잠시 오해하지만 새뮤얼슨이 작가지망생이고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에 환대하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날 빌린 책을 돌려주러 집에 들른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가 뉴욕에서 선적되어 몇 일내로 올 것이라면서 배에서 잠을 자면서 돌보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필라호에서 아널드 새뮤얼슨은 그후 1년 동안 헤밍웨이와 그의 선원들, 친구들과 교유하며 새치 낚시를 하면서 헤밍웨이로부터 작가 수업을 받게 된다. “그 1년은 그 둘이 한 모든 일이 어떻게든 글쓰기와 연관된 시절이었다.” 아널드 새뮤얼슨은 헤밍웨이가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 되었”고 헤밍웨이는 새뮤얼슨에게 닮고 싶은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1년 동안 함께 생활한 후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향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가는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보다 더 잘 쓴 순 없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보내지 말게. 근사한 걸 썼다 싶으면 원고를 갖고 이리 내려와. 언제라도 기꺼이 살펴보고 조언해줄 테니. 그게 지금부터 6개월 후든, 1년 후든, 2년 후든 오기만 하면 잠잘 곳은 우리가 꼭 마련해주겠네.
아무튼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 글에 대해 절대 걱정하지 말게. 그러면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져. 운동을 많이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게. 그게 제일 중요해.”
새뮤얼슨이 키웨스트를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관계를 지속했다. 새뮤얼슨의 첫 소설 「뜨내기를 위한 멕시코」(1937년)와 「하나도 너무 많아」(1955년)가 『에스콰이어』지에 실렸고,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은 축하 전보를 보냈다. “에스콰이어 건 최고의 기쁨. 아주 자랑스러움. 자네의 단편이 편지만큼 훌륭하다면 다른 것도 팔 수 있을 거라 확신함. 행운을 빎.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지에 젊은 새뮤얼슨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소품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를 썼고, 헤밍웨이가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고혈압, 편집증에 시달리다 케첨의 자택에서 자살한 1961년 10월에 『에스콰이어』지에는 다음과 같은 아널드 새뮤얼슨의 발언이 들어간 ‘E. H.: 마에스트로에게서 온 코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어니스트는 안간힘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가 택한 최후의 행동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말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한 것입니다.”
이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은 새뮤얼슨과 헤밍웨이와 필라호에서 함께한 1년의 기록이다. 키웨스트와 쿠바의 아바나, 멕시코만류가 흐르는 바다 위 거친 바다낚시 현장에서 대작가 헤밍웨이에게 작가 수업을 들으며 그를 추종했던 작가지망생 아널드 새뮤얼슨의 글을 통해,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영혼이 자유롭게 펄떡이는 헤밍웨이의 육성과 대작가다운 거침없고 독보적인 작가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새치 낚시 경험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는 걸작 『노인과 바다』가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그 비밀을 엿보게 한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 새뮤얼슨이 묘사한 바다 위 스포츠낚시가 펼쳐지는 필라호에 동승하여, 새치와 고래, 만새기, 상어를 잡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동시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혹은 E. H.라는 작가가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어떻게 대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다와 헤밍웨이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아널드 새뮤얼슨을 헤밍웨이가 문하생으로 인정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아널드 새뮤얼슨
1912년 노스다코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학위증 수수료 5달러를 내고 싶지 않아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못했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했다. 『코즈모폴리턴』지에 실린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그를 만나기 위해 키웨스트로 간다. 1년 동안 헤밍웨이와 함께 생활한 후 새뮤얼슨은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미니애폴리스로 되돌아온다. 첫 소설 「뜨내기를 위한 멕시코」(1937년)와 「하나도 너무 많아」(1955년)가 『에스콰이어』지에 실렸고,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은 축하 전보를 보냈다. “에스콰이어 건 최고의 기쁨. 아주 자랑스러움. 자네의 단편이 편지만큼 훌륭하다면 다른 것도 팔 수 있을 거라 확신함. 행운을 빎.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지에 젊은 새뮤얼슨과 함께한 시간을 담은 소품 「마에스트로를 위한 모놀로그」를 썼다.
역자 : 백정국
매곡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데이비스)에서 학교교육을 마쳤다. 경기도 북부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대학에서 르네상스영문학, 셰익스피어, 문학비평을 가르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학생들과 더불어 ‘호박흔들기’란 독서토론 모임을 해오고 있다. 「용병 이야기로서의 『오셀로』」 「“하얀 바퀴벌레”: 어두운 크리올의 그림자」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르네상스 영시의 세계』 『질문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콘서트』를 다른 학자들과 함께 썼으며, 『햄릿』 『톨스토이가 싫어한 셰익스피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다이앤 다비의 서문
헤밍웨이
수업
사제와 돛새치
괜찮은 작품을 어떻게 쓰나
낚시꾼 방문
도움의 문제
전보
세상에 못해먹을 짓
아바나
아내를 위한 청새치
진저 로저스와 결혼하고픈 사나이
로페스와 저녁식사
쇠돌고래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호전적인 청새치
알폰소
사이비 낚시꾼
카바냐스에 들어서다
범비와 이야기꾼
과학자들을 위한 물고기
아구하 그란데!
생애 최고의 짜릿함
허리케인
카를로스와 후안
뱀상어
고래
트로카데로 거리에서
아바나와의 작별
소박한 말이 최선
E. H.: 마에스트로에게서 온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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