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절명의 순간까지 아픈 못이 되어 꾹꾹 눌러 쓴 꿈과 고통의 시편들
지상에 마지막 피워 올리는 저녁놀처럼 적막속에 빛나는 유고시집
‘못의 사제’가 집전하는 시의 영성체
지난 7월 5일 향년 67세로 타계한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종철 시인의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이 출간되었다. 김종철 시인은 지난해 7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올 3월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했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시인협회장으로 “한 줄의 시가 세상을 살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시의 달’ 제정, 시인의 마을 조성, 남북시인대회, 시문학 전문지 부활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갑작스럽게 재발.악화된 병세로 영면하였다.
이번 유고시집에는 김종철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인 6월 22일 저녁 연세 암병동에서 마지막까지 다듬었던 유고시 「절두산 부활의 집」을 비롯하여 처음 선보이는 미발표 유고시 37편과 그간 문학지 등에 발표했지만 시집으로 묶지 못한 시편들 등 총 8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은 작고하기 두 주 전까지 둘째딸의 힘을 빌려 미발표작을 포함한 시 한 편 한 편을 정리하였다. 그렇게 정리된 시편들을 시인은 직접 구분하여 5부로 나누어 묶었다. 1부에는 암선고를 받은 이후부터 임종 직전까지 투병중의 심정을 담은 시편들이 모아져 있다. 2부는 『못의 사회학』(2013) 출간 후 “2년 내에 일본군 위안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못 박힌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시집을 낼 생각이다”라고 신문사 인터뷰 중에 밝혔던 내용의 시편들이다. 그 시편들은 시인이 ‘못의 시학’을 완성해 가는 마지막 도정에서 ‘못의 사제’가 되어 써 내려간 못의 고백록 또는 생의 참회록에 해당한다. 김종철 시인과 가장 가까웠던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시집의 해설에서, 이번 유고시집이 ‘못’ 시학의 한 정점이자 완결판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3부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짚어 낸 시인의 부드럽지만 강직한 시선의 에스프리들이 담겨졌다. 4부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지순례나 해외여행 중에 포착해낸 마음의 풍경과 종교적 심상들이, 5부에는 그간의 삶 속에 떠오른 그리움의 편린들과 사람살이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담았다.
김종철 시인은 생전에 출판사 ‘문학수첩’ 발행인.주간으로 출판문화 발전에도 힘썼으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출간, 1천만 부 이상 판매하는 성공을 거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못의 유서遺書
『절두산 부활의 집』에는 암 투병중의 참담한 고통과 순천명의 비극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나는 기도한다」(본문 p.32)에서 보듯, “매일 아침/ 기도가 머리에서 한 움큼씩” 빠져 나가고, “마른 장작처럼 서서히 굳어 가는 몸/ 한 방울씩 스며든 항암주사액에/ 생의 마지막 잎새까지 말라 버렸다”라는 구절 속에는 한계 상황에 처한 시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파돼 있다. “청명에 죽느냐, 한식에 죽느냐”라는 시구 속에는 이처럼 다해 가는 목숨, 꺼져 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뼈저린 절망과 회한이 담겨 있다. 특히 “나는 기도한다/ 나를 살려 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라는 시구 속에는 탄식을 넘어 절망에 이른 운명 향해 던지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만큼 시인이 마주하는 암과의 고독한 싸움은 고통과 절망의 과정이며, 동시에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죽음에 이르러 ‘용서’와 ‘기도’가 마지막 운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통해 속죄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유작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밤새 고치고 다듬는다
실컷 피를 빤 아침 하나가
냉담한 하느님과 광고를 믿지 않은
자들만 분리 수거해 갔다
아침마다 뽀로로를 즐겨 보던
네 살배기 손주도 변했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
또봇에 정신이 팔린 것은
우리가 관棺과 수의壽衣에 관심을 가질 때였다
나를 태울 장의차가 손주의 로봇으로 합체될 때
실컷 젖을 빤 아침이 와도 나는 깨지 않겠다
이제 어디에서나 이름이 빠진
내가 차례를 기다린다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이
먼저 걸리는 생의 고랑대
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다가
무릎 꿇는 또봇의 새아침
쩍 벌어진 애도의 쓰레기통이나 뒤져
악담 퍼부은 유작들만 분리 수거되는 날이다
─「유작遺作으로 남다」
끝없는 암투병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새삼 생명의 임종,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근심과 걱정, 고뇌와 번민이 솟아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의 분노와 절망을 넘어 죽음과의 타협, 즉 순천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세상과의 작별 준비 속에서 끊임없이 엄습하는 공포와 절망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생명을 빠져 나가는 절대 고독과 절대 허무로서 ‘무無의 통과 과정’을 그의 유작을 통해 처연하게 보여준다.
①
부끄러운 내 욕망과 남루한 생의 옷가지
일생의 마운드에서
결코 교체되지 말아야 할 나는 패전 투수
─「버킷리스트」부분
②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 따라
죽음의 순례를 시작한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고통은
옷 껴입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암 병동에서」부분
③
소문만으로도 더 빨리 중환자가 되었다
나는 종목도 없는 운동선수로 기재되었다
이길 수 없는 경기에만 나오는 선수다
그 중 가장 살맛나게 하는 소문은
이제 끝났어, 살아오면 내 손에 장 지지지
오랜만에 듣는 행복한 저주였다
─「오늘의 조선간장」부분
④
내가 병을 얻자
멀쩡한 아내가 따라서 투병을 한다
늦도록 엔도 슈사쿠를 읽던 아내는
독한 항암제에 취한 나의 기도에
매일 밤 창을 열고
하느님을 직접 찾아나섰다
─「언제 울어야 하나」부분
이러한 일련의 투병 연작시에는 육신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아니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병고 체험과 함께 그에 따른 순천명으로서 운명 의식이 구체적으로 표출돼 있어 시인의 고통과 슬픔이 생생히 전해진다.
시 ①에서는 비극적 운명 의식이 노출됨으로써 ‘패전 투수’로서의 절망감과 그에 따른 허망감이 나타난다. 시 ②에서의 ‘항암제’, ‘죽음의 순례’, ‘고통’, ‘알몸’과 같은 시어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시 ③에서는 투병 과정에서 겪는 부정과 자학, 저주, 번민과 절망의 되풀이가 제시돼 있다. 죽음을 앞둔 임종의 상황에서 겪는 고통과 절망, 온갖 번뇌와 망상은 얼마나 격심할 것이며 또한 그 공포는 시인과 가족들을 얼마나 두렵게 만들 것인가. 죽음의 상황에 처한 시인은 새삼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영면의 길이며, 또 어떻게 종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한국현대시사 속에 영원히 남을 ‘못의 사제’답게 이 지상에서 마지막 못 하나를 얻어 천상의 집을 짓는다.
절두산은 성지순례로 가족과 들렀던 곳
낮은 나에게도 지상의 집을 사랑으로 주셨다
머리가 없는
목 잘린 순교의 산
오, 나도 드디어 못 하나를 얻었다
무두정無頭釘
부활의 집 지하 3층에서
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
─「절두산 부활의 집」부분
김종철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연대 세브란스 암병동에서 생의 마지막 시를 남겼다. 시인의 바람대로 그의 유품과 유골은 합정동에 자리한 ‘절두산 부활의 집’에 안치되었다.
김종철 시인을 생각하며
김종철 시인의 형인 김종해(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인은 8월 《문학사상》에 기고한 추모의 글을 통해 김종철 시인을 추억하였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김종철은 부산시 초장동 3가 75번지 산동네에서 아버지 김재덕님과 어머니 최이쁜님 사이에서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다. 부두 노역자였던 아버지가 파상풍으로 젊은 나이에 일찍 별세하자 젊은 어머니 혼자서 식솔들을 먹여 살린다. 우리들은 충무동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나누어 일을 도왔다.
물을 길어오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절구통의 떡을 치고, 맷돌을 돌리고, 찐 고두밥을 부채로 식히고, 시루떡과 찰떡을 시장으로 나르는 일 등의 수많은 일들 가운데, 아우 김종철이 맡아서 하는 일은 콩나물 시루에 물 주는 일, 부채로 고두밥 식히기, 잔심부름 등이었다. 김종철 시인은 이 무렵의 유년의 기억을 시로 썼는데, 그가 지난해 마지막으로 펴낸 시집『못의 사회학』에 들어있는 「콩나물」이라는 시다. ‘어린 내가 일손 돕기 위해/ 매일 물 주고 기른/ 한 입 젓가락에 집힌 콩나물 사이/ 흰 천을 다독다독 머리 인/ 가족 같은 콩나물시루 사이’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 천주교 성당이 있었는데, 당시 중년 나이의 박데레사 수녀님이 그곳에 계셨다. 나는 박데레사 수녀님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천주교 교리 공부를 끝내고, 영세를 받아야 하는데 스무살의 나는 왠지 슬펐고, 정신적인 방황을 끝낼 수 없었다. 그 성당에 중학생 아우 김종철을 데리고 갔다. 김종철은 신심이 깊고 독실했다. 교리 공부를 끝낸 아우는 곧 영세를 받고 천주교 교우가 되었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이후 김종철 아우구스티노는 죽을 때까지 한평생 독실한 천주교 교우로서 신앙을 실천했고,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떠난 지금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의 절두산 순교성지 부활의 집에 봉안되어 있다.
김종철 아우구스티노는 살아생전에 평생토록 내 곁에서 틈만 나면 형의 천주교 세례받기를 희망했다. 내 사무실이 있는 마포 인근에 영생과 복락의 새집을 마련한 그가 이젠 나를 교회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이번 시집이 준비되는 중에 생전 시단에서 친분이 두터웠던 문정희 시인과 정호승 시인은 김종철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 대한 슬프고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못은 탐구의 정점에서 홀연히 사라지며 비로소 하나의 건축이 된다.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절명의 순간까지 아픈 못이 되어 꾹꾹 눌러 쓴 꿈과 고통의 시편들이 십자가처럼 처연하다.
온몸으로 뚫는 생에 대한 성찰, 치열하게 질문하는 죄와 눈물이 알알이 빛을 발한다. 시시각각 다가드는 절망과 공포의 순간에도 잃지 않는 번뜩이는 비유와 유머, 무엇보다 인간을 향한 깊은 사랑과 생에 대한 고뇌가 읽는 이의 심장을 아프게 파고든다.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 털옷을 입고 미래의 낱말들이 부활하는 겨울 직조의 방을 노래했던 시인! 일찍이 예사롭지 않은 시의 광맥을 품고 있던 천부의 시인이 지상에 마지막 피워 올리는 저녁놀처럼 뜨겁고 빛나는 시집이다.
─ 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종철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을 읽는 내내 나는 ‘못의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 초대받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거룩한 미사를 드린 듯하다. 이 시집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하고 ‘시의 사제’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하늘을 우러러 받아 먹는 시의 영성체다. 그는 못의 이미지를 통해 시의 영성체를 함께 나누어 먹게 함으로써 너와 나, 어둠과 빛,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하나의 동일한 세계로 만들어 주었다. 김종철 시인의 시의 ‘못’을 관통하는 시 정신은 결국 사랑이다. 그의 못은 사랑의 못이자 모성의 못이며 성모聖母의 못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사랑은 고통과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 정호승(시인)
▣ 작가 소개
김종철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197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시전문지 『시인수첩』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제13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편운문학상· 제6회 윤동주문학상· 제4회 남명문학상,·제12회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4년 7월 5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시집으로 『서울의 유서』 『오이도』 『오늘이 그날이다』 『못에 관한 명상』 『등신불 시편』 『못의 귀향』 『못의 사회학』과 『어머니, 우리 어머니』(형제시집)가 있고, 영문시집 『The Floating Island』(Edition Peperkorn), 시선집 『못과 삶과 꿈』이 있다.
▣ 주요 목차
1
유작으로 남다
언제 울어야 하나
암 병동에서
펑펑 울다
산행
버킷리스트
오늘의 조선간장
안녕
제가 곧 나으리다
산춘 기도문
나는 기도한다
큰 산 하나 삼키고
치바의 첫 밤
풍수지리
둘레길에서
절두산 부활의 집
엄마, 어머니, 어머님
2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 몸의 전사편찬사
튀어나온 못이 가장 먼저 망치질 당한다
- 위안부라는 이름의 검은 기차
첫 번째 못이 박히기 전에 두 번째 못을 박지 말라
- 현병숙이라 쓰고, 스즈코라 부른다
어두운 데서 못 박으려다 입만 다친다
- 제국의 위안부
못은 자루를 뚫고 나온다
- 조센삐
못은 머리부터 내리쳐라
- 아베 마리아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대가리로 보인다
- 위안부냐, 홀로코스트냐
좋은 철로 못을 만들거나 좋은 사람을 군인으로 만들지 말라
- 돌격 1호
망치에 대하여
3
애월
재의 수요일
택배의 노래
The End
이렇게 썼다
평생 너로 살다가
숨바꼭질
내가 수상하다
달리는 희망버스
총각김치
불조심
개망초를 꺾다
늙은 소처럼
태산에 대하여
날개 없는 짝퉁
겨울 수박
4
다시 카프카 읽다
피렌체 출장 길에서
로마의 휴일
우리의 피사를 찾아서
두오모 성당에서
신곡을 찾아서
스톤 헨지에서
어린 양
성탄 선물
파티마 가는 길
파티마 성모님
파티마를 찬양하며
처음 온 파티마
파티마 기도
시의 순례
가위눌림
해바라기 기도
하느님의 종
아빌라를 떠나며
십자가의 성 요한
올리브 방앗간에서
겟세마니에 와 보니
사해를 바라보며
당신을 위하여
부활 축일
5
목마름에 대하여
나는 �굅≥낮� 발목 잡힌 야망
이런 날은
못난 놈
못 쓰는 시인
남부민 초등학교
책상 모퉁이 기도
부러진 티펙
다시 티샷을 하며
해슬리 나인브릿지
DMZ 철책선의 봄
김수환
작품 해설 / 김재홍
못의 유서 - 못.시학.별사
절명의 순간까지 아픈 못이 되어 꾹꾹 눌러 쓴 꿈과 고통의 시편들
지상에 마지막 피워 올리는 저녁놀처럼 적막속에 빛나는 유고시집
‘못의 사제’가 집전하는 시의 영성체
지난 7월 5일 향년 67세로 타계한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종철 시인의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이 출간되었다. 김종철 시인은 지난해 7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올 3월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했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시인협회장으로 “한 줄의 시가 세상을 살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시의 달’ 제정, 시인의 마을 조성, 남북시인대회, 시문학 전문지 부활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갑작스럽게 재발.악화된 병세로 영면하였다.
이번 유고시집에는 김종철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인 6월 22일 저녁 연세 암병동에서 마지막까지 다듬었던 유고시 「절두산 부활의 집」을 비롯하여 처음 선보이는 미발표 유고시 37편과 그간 문학지 등에 발표했지만 시집으로 묶지 못한 시편들 등 총 8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은 작고하기 두 주 전까지 둘째딸의 힘을 빌려 미발표작을 포함한 시 한 편 한 편을 정리하였다. 그렇게 정리된 시편들을 시인은 직접 구분하여 5부로 나누어 묶었다. 1부에는 암선고를 받은 이후부터 임종 직전까지 투병중의 심정을 담은 시편들이 모아져 있다. 2부는 『못의 사회학』(2013) 출간 후 “2년 내에 일본군 위안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못 박힌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시집을 낼 생각이다”라고 신문사 인터뷰 중에 밝혔던 내용의 시편들이다. 그 시편들은 시인이 ‘못의 시학’을 완성해 가는 마지막 도정에서 ‘못의 사제’가 되어 써 내려간 못의 고백록 또는 생의 참회록에 해당한다. 김종철 시인과 가장 가까웠던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시집의 해설에서, 이번 유고시집이 ‘못’ 시학의 한 정점이자 완결판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3부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짚어 낸 시인의 부드럽지만 강직한 시선의 에스프리들이 담겨졌다. 4부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지순례나 해외여행 중에 포착해낸 마음의 풍경과 종교적 심상들이, 5부에는 그간의 삶 속에 떠오른 그리움의 편린들과 사람살이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담았다.
김종철 시인은 생전에 출판사 ‘문학수첩’ 발행인.주간으로 출판문화 발전에도 힘썼으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출간, 1천만 부 이상 판매하는 성공을 거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못의 유서遺書
『절두산 부활의 집』에는 암 투병중의 참담한 고통과 순천명의 비극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나는 기도한다」(본문 p.32)에서 보듯, “매일 아침/ 기도가 머리에서 한 움큼씩” 빠져 나가고, “마른 장작처럼 서서히 굳어 가는 몸/ 한 방울씩 스며든 항암주사액에/ 생의 마지막 잎새까지 말라 버렸다”라는 구절 속에는 한계 상황에 처한 시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파돼 있다. “청명에 죽느냐, 한식에 죽느냐”라는 시구 속에는 이처럼 다해 가는 목숨, 꺼져 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뼈저린 절망과 회한이 담겨 있다. 특히 “나는 기도한다/ 나를 살려 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라는 시구 속에는 탄식을 넘어 절망에 이른 운명 향해 던지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만큼 시인이 마주하는 암과의 고독한 싸움은 고통과 절망의 과정이며, 동시에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죽음에 이르러 ‘용서’와 ‘기도’가 마지막 운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통해 속죄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유작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밤새 고치고 다듬는다
실컷 피를 빤 아침 하나가
냉담한 하느님과 광고를 믿지 않은
자들만 분리 수거해 갔다
아침마다 뽀로로를 즐겨 보던
네 살배기 손주도 변했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
또봇에 정신이 팔린 것은
우리가 관棺과 수의壽衣에 관심을 가질 때였다
나를 태울 장의차가 손주의 로봇으로 합체될 때
실컷 젖을 빤 아침이 와도 나는 깨지 않겠다
이제 어디에서나 이름이 빠진
내가 차례를 기다린다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이
먼저 걸리는 생의 고랑대
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다가
무릎 꿇는 또봇의 새아침
쩍 벌어진 애도의 쓰레기통이나 뒤져
악담 퍼부은 유작들만 분리 수거되는 날이다
─「유작遺作으로 남다」
끝없는 암투병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새삼 생명의 임종,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근심과 걱정, 고뇌와 번민이 솟아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의 분노와 절망을 넘어 죽음과의 타협, 즉 순천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세상과의 작별 준비 속에서 끊임없이 엄습하는 공포와 절망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생명을 빠져 나가는 절대 고독과 절대 허무로서 ‘무無의 통과 과정’을 그의 유작을 통해 처연하게 보여준다.
①
부끄러운 내 욕망과 남루한 생의 옷가지
일생의 마운드에서
결코 교체되지 말아야 할 나는 패전 투수
─「버킷리스트」부분
②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 따라
죽음의 순례를 시작한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고통은
옷 껴입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암 병동에서」부분
③
소문만으로도 더 빨리 중환자가 되었다
나는 종목도 없는 운동선수로 기재되었다
이길 수 없는 경기에만 나오는 선수다
그 중 가장 살맛나게 하는 소문은
이제 끝났어, 살아오면 내 손에 장 지지지
오랜만에 듣는 행복한 저주였다
─「오늘의 조선간장」부분
④
내가 병을 얻자
멀쩡한 아내가 따라서 투병을 한다
늦도록 엔도 슈사쿠를 읽던 아내는
독한 항암제에 취한 나의 기도에
매일 밤 창을 열고
하느님을 직접 찾아나섰다
─「언제 울어야 하나」부분
이러한 일련의 투병 연작시에는 육신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아니 겪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병고 체험과 함께 그에 따른 순천명으로서 운명 의식이 구체적으로 표출돼 있어 시인의 고통과 슬픔이 생생히 전해진다.
시 ①에서는 비극적 운명 의식이 노출됨으로써 ‘패전 투수’로서의 절망감과 그에 따른 허망감이 나타난다. 시 ②에서의 ‘항암제’, ‘죽음의 순례’, ‘고통’, ‘알몸’과 같은 시어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시 ③에서는 투병 과정에서 겪는 부정과 자학, 저주, 번민과 절망의 되풀이가 제시돼 있다. 죽음을 앞둔 임종의 상황에서 겪는 고통과 절망, 온갖 번뇌와 망상은 얼마나 격심할 것이며 또한 그 공포는 시인과 가족들을 얼마나 두렵게 만들 것인가. 죽음의 상황에 처한 시인은 새삼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영면의 길이며, 또 어떻게 종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한국현대시사 속에 영원히 남을 ‘못의 사제’답게 이 지상에서 마지막 못 하나를 얻어 천상의 집을 짓는다.
절두산은 성지순례로 가족과 들렀던 곳
낮은 나에게도 지상의 집을 사랑으로 주셨다
머리가 없는
목 잘린 순교의 산
오, 나도 드디어 못 하나를 얻었다
무두정無頭釘
부활의 집 지하 3층에서
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
─「절두산 부활의 집」부분
김종철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연대 세브란스 암병동에서 생의 마지막 시를 남겼다. 시인의 바람대로 그의 유품과 유골은 합정동에 자리한 ‘절두산 부활의 집’에 안치되었다.
김종철 시인을 생각하며
김종철 시인의 형인 김종해(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인은 8월 《문학사상》에 기고한 추모의 글을 통해 김종철 시인을 추억하였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김종철은 부산시 초장동 3가 75번지 산동네에서 아버지 김재덕님과 어머니 최이쁜님 사이에서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다. 부두 노역자였던 아버지가 파상풍으로 젊은 나이에 일찍 별세하자 젊은 어머니 혼자서 식솔들을 먹여 살린다. 우리들은 충무동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나누어 일을 도왔다.
물을 길어오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절구통의 떡을 치고, 맷돌을 돌리고, 찐 고두밥을 부채로 식히고, 시루떡과 찰떡을 시장으로 나르는 일 등의 수많은 일들 가운데, 아우 김종철이 맡아서 하는 일은 콩나물 시루에 물 주는 일, 부채로 고두밥 식히기, 잔심부름 등이었다. 김종철 시인은 이 무렵의 유년의 기억을 시로 썼는데, 그가 지난해 마지막으로 펴낸 시집『못의 사회학』에 들어있는 「콩나물」이라는 시다. ‘어린 내가 일손 돕기 위해/ 매일 물 주고 기른/ 한 입 젓가락에 집힌 콩나물 사이/ 흰 천을 다독다독 머리 인/ 가족 같은 콩나물시루 사이’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 천주교 성당이 있었는데, 당시 중년 나이의 박데레사 수녀님이 그곳에 계셨다. 나는 박데레사 수녀님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천주교 교리 공부를 끝내고, 영세를 받아야 하는데 스무살의 나는 왠지 슬펐고, 정신적인 방황을 끝낼 수 없었다. 그 성당에 중학생 아우 김종철을 데리고 갔다. 김종철은 신심이 깊고 독실했다. 교리 공부를 끝낸 아우는 곧 영세를 받고 천주교 교우가 되었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이후 김종철 아우구스티노는 죽을 때까지 한평생 독실한 천주교 교우로서 신앙을 실천했고,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떠난 지금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의 절두산 순교성지 부활의 집에 봉안되어 있다.
김종철 아우구스티노는 살아생전에 평생토록 내 곁에서 틈만 나면 형의 천주교 세례받기를 희망했다. 내 사무실이 있는 마포 인근에 영생과 복락의 새집을 마련한 그가 이젠 나를 교회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이번 시집이 준비되는 중에 생전 시단에서 친분이 두터웠던 문정희 시인과 정호승 시인은 김종철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 대한 슬프고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못은 탐구의 정점에서 홀연히 사라지며 비로소 하나의 건축이 된다.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절명의 순간까지 아픈 못이 되어 꾹꾹 눌러 쓴 꿈과 고통의 시편들이 십자가처럼 처연하다.
온몸으로 뚫는 생에 대한 성찰, 치열하게 질문하는 죄와 눈물이 알알이 빛을 발한다. 시시각각 다가드는 절망과 공포의 순간에도 잃지 않는 번뜩이는 비유와 유머, 무엇보다 인간을 향한 깊은 사랑과 생에 대한 고뇌가 읽는 이의 심장을 아프게 파고든다.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 털옷을 입고 미래의 낱말들이 부활하는 겨울 직조의 방을 노래했던 시인! 일찍이 예사롭지 않은 시의 광맥을 품고 있던 천부의 시인이 지상에 마지막 피워 올리는 저녁놀처럼 뜨겁고 빛나는 시집이다.
─ 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종철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을 읽는 내내 나는 ‘못의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 초대받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거룩한 미사를 드린 듯하다. 이 시집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하고 ‘시의 사제’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하늘을 우러러 받아 먹는 시의 영성체다. 그는 못의 이미지를 통해 시의 영성체를 함께 나누어 먹게 함으로써 너와 나, 어둠과 빛,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하나의 동일한 세계로 만들어 주었다. 김종철 시인의 시의 ‘못’을 관통하는 시 정신은 결국 사랑이다. 그의 못은 사랑의 못이자 모성의 못이며 성모聖母의 못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사랑은 고통과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 정호승(시인)
▣ 작가 소개
김종철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197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시전문지 『시인수첩』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제13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편운문학상· 제6회 윤동주문학상· 제4회 남명문학상,·제12회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4년 7월 5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시집으로 『서울의 유서』 『오이도』 『오늘이 그날이다』 『못에 관한 명상』 『등신불 시편』 『못의 귀향』 『못의 사회학』과 『어머니, 우리 어머니』(형제시집)가 있고, 영문시집 『The Floating Island』(Edition Peperkorn), 시선집 『못과 삶과 꿈』이 있다.
▣ 주요 목차
1
유작으로 남다
언제 울어야 하나
암 병동에서
펑펑 울다
산행
버킷리스트
오늘의 조선간장
안녕
제가 곧 나으리다
산춘 기도문
나는 기도한다
큰 산 하나 삼키고
치바의 첫 밤
풍수지리
둘레길에서
절두산 부활의 집
엄마, 어머니, 어머님
2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 몸의 전사편찬사
튀어나온 못이 가장 먼저 망치질 당한다
- 위안부라는 이름의 검은 기차
첫 번째 못이 박히기 전에 두 번째 못을 박지 말라
- 현병숙이라 쓰고, 스즈코라 부른다
어두운 데서 못 박으려다 입만 다친다
- 제국의 위안부
못은 자루를 뚫고 나온다
- 조센삐
못은 머리부터 내리쳐라
- 아베 마리아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대가리로 보인다
- 위안부냐, 홀로코스트냐
좋은 철로 못을 만들거나 좋은 사람을 군인으로 만들지 말라
- 돌격 1호
망치에 대하여
3
애월
재의 수요일
택배의 노래
The End
이렇게 썼다
평생 너로 살다가
숨바꼭질
내가 수상하다
달리는 희망버스
총각김치
불조심
개망초를 꺾다
늙은 소처럼
태산에 대하여
날개 없는 짝퉁
겨울 수박
4
다시 카프카 읽다
피렌체 출장 길에서
로마의 휴일
우리의 피사를 찾아서
두오모 성당에서
신곡을 찾아서
스톤 헨지에서
어린 양
성탄 선물
파티마 가는 길
파티마 성모님
파티마를 찬양하며
처음 온 파티마
파티마 기도
시의 순례
가위눌림
해바라기 기도
하느님의 종
아빌라를 떠나며
십자가의 성 요한
올리브 방앗간에서
겟세마니에 와 보니
사해를 바라보며
당신을 위하여
부활 축일
5
목마름에 대하여
나는 �굅≥낮� 발목 잡힌 야망
이런 날은
못난 놈
못 쓰는 시인
남부민 초등학교
책상 모퉁이 기도
부러진 티펙
다시 티샷을 하며
해슬리 나인브릿지
DMZ 철책선의 봄
김수환
작품 해설 / 김재홍
못의 유서 - 못.시학.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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