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유연과 단호, 그런데의 세계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므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 시「아라비안나이트」 부분
둥글어서 슬픈 세계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인 ‘그런데’. 시인이 말하듯 ‘그런데’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이야기해오던 것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한 번에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고, 한 번에 뒤집어버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이 ‘그런데’라는 말에 있다. 누군가는 불리한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데……”라고 말을 돌리고, 또 누군가는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런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때로는 “그런데 말이야” 하고 팍팍한 삶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숨구멍을 뚫어놓는다.
이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영광 시인은 ‘그런데의 세계’를 목격한 바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는 인생의 뭇 시름들 속을 유연하게 몸 바꾸며 흘러간다. ‘그러므로’처럼 명확하지 않고 ‘그러나’처럼 단호하지 않지만, 쉽게 끝내지도 성마르게 대립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은 우리 삶의 결여와 비뚤어짐과 어긋남을 쉼 없이 들추어낸다. (……) 말문이 막히고 더 나아갈 곳이 보이지 않는 데서 우리는 늘 이렇게 입을 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라는 말은 매우 유연하게 빠져 나가면서도 뒤따라올 말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시인이 말하듯 저 유명한 『아라비안나이트』도 결국 ‘그런데의 세계’다.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은 “그런데”라고 말하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페이소스 담긴 웃음을 통해 세상을 겨누다
(……)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시 「이른 아침」 부분
시집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여러 번 웃게 되는데 그중 한 장면이다. 시 「이른 아침」에서 시인은 슬픈 눈망울이 있다면 아침부터 배추가 끓는 물에 데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가정하며, 일찍 데쳐지지 않기 위해서 슬픈 눈망울을 짓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시인은 저 옛날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을 위해 천삼백 원을 내고 국가가 보조해주는 복장을 구입해 소년체전 기념 “마스게임”을 준비하면서부터(「마스게임」), 최근에 이르러서는 회사 사장에게 “말대답도 안 하고 불쌍한 척” 가만히 있는 것에서(「멧새 소리」) 본능적으로 “슬픈 눈망울”을 가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웃음보다는 눈물을, 기쁨보다는 슬픔을, 자유보다는 엄숙을 강요당할까? 웃음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라도 있을까? 우리가 가지지 말아야 할 어떤 힘이라도 있을까?
지나가다 어떤 강아지에서 체념의 표정을 읽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명랑하지만 간혹 시무룩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불쌍한 척 슬픈 척 연기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말을 아는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체념의 표정이었다 나도 체념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이 상황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낙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산낙지로 연포탕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것 그것이 체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시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전문
시인은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연포탕에 든 낙지와 목줄에 묶인 강아지를 통해 읽는다. 그들의 단념을, 그 처참한 기분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풍경을 통해 스리슬쩍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목소리에서 투사의 결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지만, 대신 투창보다 예리하게 연마된 눈빛이 서려 있다. 그 눈빛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단호함이 있다.
일상의 좌절을 유쾌하게 이겨내는 한 방법
시인은 재밌는 상상력으로 비천해 보이는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 모습은 웃음을 주는 동시에 슬픔을 형상화한다. 그런 사물들 중에는 “불 밝히는 일 딱 한 가지 일만 하다가 끊어지면 끊어져서 덜렁거리면 유리와 함께 버려지는”(「필라멘트」) 필라멘트, “아무것도 아니니까 (……) 뻥뻥 걷어찰 수 있는”(「축구공」) 축구공이 있다. 시인은 이처럼 사소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들, 아무것도 아니니까 걷어찰 수 있는 것들의 고귀한 의미를 되새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담긴 왁자한 웃음을 통해 이 세상을 한번 실컷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그가 세상을 들었다 놓는 팔뚝에는 두꺼운 근육 대신 유쾌한 웃음이 묻어 있다. 그 웃음소리는 ‘그러니까’에 길들여지지 않는, ‘그러므로’에 순응하지 않는, ‘그러나’에 따귀 맞지 않는, ‘그리고’에 목 눌리지 않는 신비스런 힘이 있다. 시인은 그 비밀을 들려주기 위해 조용히 속삭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 편집자가 꼽은 박순원의 시
아라비안나이트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그런데 그런데야말로 정겹고 반갑다 누가 손가락으로 나를 딱 짚으며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너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야 나야 물론 그런데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므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천 개가 넘는 그런데를 본 적이 있다 안 가본 데가 없고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는 아주 짧게 짜증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른 아침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지나가다 어떤 강아지에서 체념의 표정을 읽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명랑하지만 간혹 시무룩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불쌍한 척 슬픈 척 연기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말을 아는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체념의 표정이었다 나도 체념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이 상황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낙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산낙지로 연포탕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것 그것이 체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나는 반서정적이다 나는 꼭 무슨무슨적이 되고 싶었다 그중 반서정적이 되었다 경제적 미적 호전적 가족적 구체적 낭만적 종교적 비종교적 정치적 심리적 다 그저 그렇고 반서정적이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서정적의 여집합 이 세상의 서정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나는 라면을 고르듯이 칫솔을 고르듯이 반서정적을 골랐다
나는 단지 반서정적일 뿐 세계적 국제적 국수적 법적 도덕적 애상적 심미적 골계적 정서적 애국적 산문적 음악적 육체적 강제적 성적 여성적으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전근대적 수학적 동물적 육감적 대륙적 미시적 거시적 중도우파적 고전적 사교적 환상적 몽환적 시대착오적이 즐비한 진열대에서 나는 흥얼흥얼 라면처럼 칫솔처럼
그리고 제목의 점 두 개는 각각 ‘반서’ ‘정적’이다
게임의 규칙
우리는 약장사의 거짓말에
익숙하지 효능 효과 성분 부작용
주의사항 그리고 신문 방송 정부의
발표 연극 영화 소설 수필 시 그리고
또 모델하우스 말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거짓말을 하지 나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아내에게 스스럼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연극 영화 소설
수필 시 또는 모델하우스
꿈을 보여주지 강아지도
거짓말을 하지 내가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척 연기를 하면 총 맞아 죽는
척 가련한 척 불쌍한 척 말을
못 해도 거짓말을 하지 구름도 양 떼가
되었다가 깃털이 되었다가
점 점 점 흩어져
무슨 표시 흔적이
되었다가 곧
말을 바꾸지
▣ 작가 소개
저자 : 박순원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주먹이 운다』가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아라비안나이트
나는 한때
낙엽
패키지여행
질량보존의 법칙
마흔넷
꿈이 사라지다
이른 아침
나는 어부지리로 살고자 하였으나
돼지 껍데기
마산에서
마스게임
홋카이도
결혼식
캥거루의 두 발 점프
제2부
아! 사루비아 꽃을 든 남자
물
에쿠스 지나간다
적(敵)
오렌지 기하학
츄리닝
은유, 신기한 농담
흘러가는 하얀 구름
벚꽃이 지던 날
구강의 날
연말정산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교대역에서
적재적소
풀
제3부
필라멘트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눈먼 거지
크리스마스트리
오코
서주아이스주
짜증
샴푸나이트
내 사랑 숯불 닭발
피는 못 속여
피는 물보다 진하다
멧새 소리
용각산
윤사월
..
제4부
까마귀 검다 하고
내 시는 약점이 없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까막눈
마이동풍
발톱
서울 탱고
축구공
폭포
소
기계, 기계들
암컷 수컷 잡아서 기름이 둥둥 뜨는데
친구들
배우 또는 배우자가 문제다
게임의 규칙
해설 김종훈
시인의 말
유연과 단호, 그런데의 세계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므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 시「아라비안나이트」 부분
둥글어서 슬픈 세계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인 ‘그런데’. 시인이 말하듯 ‘그런데’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이야기해오던 것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한 번에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고, 한 번에 뒤집어버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이 ‘그런데’라는 말에 있다. 누군가는 불리한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데……”라고 말을 돌리고, 또 누군가는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런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때로는 “그런데 말이야” 하고 팍팍한 삶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숨구멍을 뚫어놓는다.
이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영광 시인은 ‘그런데의 세계’를 목격한 바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는 인생의 뭇 시름들 속을 유연하게 몸 바꾸며 흘러간다. ‘그러므로’처럼 명확하지 않고 ‘그러나’처럼 단호하지 않지만, 쉽게 끝내지도 성마르게 대립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은 우리 삶의 결여와 비뚤어짐과 어긋남을 쉼 없이 들추어낸다. (……) 말문이 막히고 더 나아갈 곳이 보이지 않는 데서 우리는 늘 이렇게 입을 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라는 말은 매우 유연하게 빠져 나가면서도 뒤따라올 말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시인이 말하듯 저 유명한 『아라비안나이트』도 결국 ‘그런데의 세계’다.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은 “그런데”라고 말하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페이소스 담긴 웃음을 통해 세상을 겨누다
(……)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시 「이른 아침」 부분
시집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여러 번 웃게 되는데 그중 한 장면이다. 시 「이른 아침」에서 시인은 슬픈 눈망울이 있다면 아침부터 배추가 끓는 물에 데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가정하며, 일찍 데쳐지지 않기 위해서 슬픈 눈망울을 짓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시인은 저 옛날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을 위해 천삼백 원을 내고 국가가 보조해주는 복장을 구입해 소년체전 기념 “마스게임”을 준비하면서부터(「마스게임」), 최근에 이르러서는 회사 사장에게 “말대답도 안 하고 불쌍한 척” 가만히 있는 것에서(「멧새 소리」) 본능적으로 “슬픈 눈망울”을 가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웃음보다는 눈물을, 기쁨보다는 슬픔을, 자유보다는 엄숙을 강요당할까? 웃음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라도 있을까? 우리가 가지지 말아야 할 어떤 힘이라도 있을까?
지나가다 어떤 강아지에서 체념의 표정을 읽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명랑하지만 간혹 시무룩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불쌍한 척 슬픈 척 연기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말을 아는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체념의 표정이었다 나도 체념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이 상황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낙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산낙지로 연포탕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것 그것이 체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시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전문
시인은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연포탕에 든 낙지와 목줄에 묶인 강아지를 통해 읽는다. 그들의 단념을, 그 처참한 기분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풍경을 통해 스리슬쩍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목소리에서 투사의 결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지만, 대신 투창보다 예리하게 연마된 눈빛이 서려 있다. 그 눈빛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는 단호함이 있다.
일상의 좌절을 유쾌하게 이겨내는 한 방법
시인은 재밌는 상상력으로 비천해 보이는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 모습은 웃음을 주는 동시에 슬픔을 형상화한다. 그런 사물들 중에는 “불 밝히는 일 딱 한 가지 일만 하다가 끊어지면 끊어져서 덜렁거리면 유리와 함께 버려지는”(「필라멘트」) 필라멘트, “아무것도 아니니까 (……) 뻥뻥 걷어찰 수 있는”(「축구공」) 축구공이 있다. 시인은 이처럼 사소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들, 아무것도 아니니까 걷어찰 수 있는 것들의 고귀한 의미를 되새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담긴 왁자한 웃음을 통해 이 세상을 한번 실컷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그가 세상을 들었다 놓는 팔뚝에는 두꺼운 근육 대신 유쾌한 웃음이 묻어 있다. 그 웃음소리는 ‘그러니까’에 길들여지지 않는, ‘그러므로’에 순응하지 않는, ‘그러나’에 따귀 맞지 않는, ‘그리고’에 목 눌리지 않는 신비스런 힘이 있다. 시인은 그 비밀을 들려주기 위해 조용히 속삭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 편집자가 꼽은 박순원의 시
아라비안나이트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그런데 그런데야말로 정겹고 반갑다 누가 손가락으로 나를 딱 짚으며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너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야 나야 물론 그런데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므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천 개가 넘는 그런데를 본 적이 있다 안 가본 데가 없고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는 아주 짧게 짜증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른 아침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지나가다 어떤 강아지에서 체념의 표정을 읽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명랑하지만 간혹 시무룩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불쌍한 척 슬픈 척 연기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말을 아는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체념의 표정이었다 나도 체념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이 상황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낙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산낙지로 연포탕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것 그것이 체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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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서정적이다 나는 꼭 무슨무슨적이 되고 싶었다 그중 반서정적이 되었다 경제적 미적 호전적 가족적 구체적 낭만적 종교적 비종교적 정치적 심리적 다 그저 그렇고 반서정적이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서정적의 여집합 이 세상의 서정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나는 라면을 고르듯이 칫솔을 고르듯이 반서정적을 골랐다
나는 단지 반서정적일 뿐 세계적 국제적 국수적 법적 도덕적 애상적 심미적 골계적 정서적 애국적 산문적 음악적 육체적 강제적 성적 여성적으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전근대적 수학적 동물적 육감적 대륙적 미시적 거시적 중도우파적 고전적 사교적 환상적 몽환적 시대착오적이 즐비한 진열대에서 나는 흥얼흥얼 라면처럼 칫솔처럼
그리고 제목의 점 두 개는 각각 ‘반서’ ‘정적’이다
게임의 규칙
우리는 약장사의 거짓말에
익숙하지 효능 효과 성분 부작용
주의사항 그리고 신문 방송 정부의
발표 연극 영화 소설 수필 시 그리고
또 모델하우스 말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거짓말을 하지 나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아내에게 스스럼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연극 영화 소설
수필 시 또는 모델하우스
꿈을 보여주지 강아지도
거짓말을 하지 내가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척 연기를 하면 총 맞아 죽는
척 가련한 척 불쌍한 척 말을
못 해도 거짓말을 하지 구름도 양 떼가
되었다가 깃털이 되었다가
점 점 점 흩어져
무슨 표시 흔적이
되었다가 곧
말을 바꾸지
▣ 작가 소개
저자 : 박순원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주먹이 운다』가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아라비안나이트
나는 한때
낙엽
패키지여행
질량보존의 법칙
마흔넷
꿈이 사라지다
이른 아침
나는 어부지리로 살고자 하였으나
돼지 껍데기
마산에서
마스게임
홋카이도
결혼식
캥거루의 두 발 점프
제2부
아! 사루비아 꽃을 든 남자
물
에쿠스 지나간다
적(敵)
오렌지 기하학
츄리닝
은유, 신기한 농담
흘러가는 하얀 구름
벚꽃이 지던 날
구강의 날
연말정산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교대역에서
적재적소
풀
제3부
필라멘트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눈먼 거지
크리스마스트리
오코
서주아이스주
짜증
샴푸나이트
내 사랑 숯불 닭발
피는 못 속여
피는 물보다 진하다
멧새 소리
용각산
윤사월
..
제4부
까마귀 검다 하고
내 시는 약점이 없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까막눈
마이동풍
발톱
서울 탱고
축구공
폭포
소
기계, 기계들
암컷 수컷 잡아서 기름이 둥둥 뜨는데
친구들
배우 또는 배우자가 문제다
게임의 규칙
해설 김종훈
시인의 말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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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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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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