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말한다
한 마리 개미의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철학적 우화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작고 힘없는 한 마리 개미가 세상에 나와 벌이는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우화다. 개미는 정오의 환한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이 세상에 나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양한 생명을 만나며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배워간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크다.
2007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 2008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심플한 그림, 파격적인 디자인, 함축적인 글이 일체를 이룬 그림 에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은 독자를 명상과 사색으로 이끈다. 중국의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주잉춘이 그림과 디자인을 맡았고, 난징 사범대학 교수인 저우쭝웨이가 글을 썼다.
중국판 ‘88만원 세대’를 뜻하는 말, ‘개미족’의 탄생에 영감을 주다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출간되고 2년이 지난 2009년 또 한 차례 중국 독서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도시 변두리에서 저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고학력 젊은이들이 ‘개미족’이라 명명되며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이 책의 주인공과 매우 유사해, 공식 학술용어 대신 널리 쓰이게 되었다.
중국 출판산업의 눈부신 발전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책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여전히 조악한 출판물만 나오는 곳으로 오해받고 있는 중국 출판산업의 현재가 어떤지, 우리의 편견을 확실히 뒤엎는 책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책’은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 힘들게 마련인데, 2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이 책에 열렬한 애정과 지지를 보여줬다는 점은 중국 독자들의 안목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고 보잘것없는 한 마리 개미의 좌충우돌 고군분투기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작고 힘없는 한 마리 개미가 세상에 나와 벌이는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우화다.
개미는 오랜 옛날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개미군중’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들은 대체로 단독으로 취급되지 않고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개미는 “나는 한 마리 개미”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오로지 혼자서 모험을 감행한다.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그가 놓인 곳은 사방으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다. 드넓은 흰 종이 위의 까만 점처럼 보이는 개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사로운 축복이 아니라 숨이 멎을 만큼 뜨겁고 온몸을 속속들이 비추어 까발리는 조명등처럼 보인다.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나를 맞아 준 것은 정오의 햇살이다. 햇살은 땅 위의 모든 것을 끝 간 데 없이 비추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외롭고 조금은 두려웠다.” (본문 12쪽)
이렇게 시작된 그의 모험은 로드무비처럼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환한 햇살이 무서워 그림자와 집을 갈망한다. 그렇지만 안락한 자기만의 집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모험을 계속 한다. 그러다가 동료 개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진딧물을 ‘노예’로 키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힘없는 자들이 힘센 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확대경에 비친 우람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실제로도 힘이 세다는 착각에 빠져 세상을 휘어잡는 영웅이 되겠다는 욕망을 품는다. 그는 동료들을 이간질해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져 그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문득 불어온 찬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곁엔 죽어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체뿐이다. 다시 혼자가 된 개미. 마음을 닫고 또다시 세상을 편력하며 숨어 사는 비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여전히 허전하다. 다행히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와도 같은 지기(知己)를 만난다. 친구와의 생활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마냥 마음 편하고 즐겁다. 그러나 시련은 그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친구를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보지만 친구와의 작별은 결국 다가오고 만다. 그러나 개미는 담담하게 말한다.
겨울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생명이 스러져 갔다. 한때 힘을 뽐내던 덩치들도, 가녀리고 힘 못 쓰던 이들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모두 똑같이 평등하고 똑같이 조용하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죽음 앞에서 자연은 가장 공평하며, 그런 만큼 생명을 거둬 가는 자연의 힘에는 감히 맞설 수 없다는 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면 안 된다고 붙들 게 아니라, 아직 숨어 붙어 있는 동안을 소중히 여겨야지……. (본문 98쪽)
독백 형식을 띤 개미의 회상은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낮은 웅얼거림 혹은 잠꼬대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마음므 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과 개미,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중국의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주잉춘이 기획하고 그리고 디자인하다
2007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유네스코) 수상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심플한 그림, 파격적인 디자인, 함축적인 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구성된 그림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글이 완성된 뒤에 그림과 디자인 작업이 뒤따르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북디자이너인 주잉춘의 아이디어가 글과 그림, 디자인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선 표지부터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책제목이나 지은이 이름도 보이지 않고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개미 다섯 마리가 사뿐히 올라가 있을 뿐이다. 뒷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좁은 책등을 세워서 보아야 비로소 제목과 지은이 이름, 출판사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주잉춘은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일하다 말고 휴식 삼아 교정을 산책했다. 한참을 걷다가 좀 쉴까 하고 돌의자에 앉았는데, 고개를 수그리고 봤더니, 발밑에 개미들이 엄청 많은 것 아닌가. 이사를 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싸우는 녀석들, 양식을 옮기고 있는 녀석들……. 나는 문득, ‘나도 저들과 똑 같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개미에 대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의 입을 빌려 내 생각을 풀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나는 개미 관련 사진을 수천 장 찍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사람이 만약 아무도 없다면 내 돈을 털어서라도 꼭 책을 내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정말 흰 종이와 검은 개미를 통하여 내 마음속의 어떤 느낌을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표지 구상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는 여느 책의 표지처럼 디자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궁리 끝에 개미 다섯 마리를 골라 배치하고, 글자는 올리지 않았다. 이렇게 표지를 만들어놓고 나자,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표지만 있는 가짜 책을 들고 서점에 가 매대에 올려놓고, 짐짓 독자인 양 곁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여성이 그 가짜 책을 보고는, “이것 좀 봐, 책 위에 개미가 있네!”라고 말하더니 입으로 훅 불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잠자코 보고 있던 나는, 이거 진짜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표지는 이렇게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 《신경보(新京報)》, 연재물 ‘개인사’ 중 주잉춘 편에서, 2009년 3월 12일자
그런데 책이 출간된 후 중국 ‘신문출판국’에서 책표지에는 꼭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경고장을 보내와, 나중에 제목을 넣은 띠지를 두르게 되었다고 한다.
표지를 본 뒤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을 읽으려 할 때 독자는 다시금 당황하게 된다. 본문의 글자들은 모두 왼쪽 페이지 맨 아래쪽에 아주 작은 크기로 얌전히 누워 있고, 이 책의 주인공 개미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걸핏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곤 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드넓게 안배된 여백, 분량이 얼마 안 되는 글에 비해 비싼 책값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을 불만으로 끓어오르게 했고 ‘물 먹인 소’에 빗댄 ‘물 먹인 책’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달리 보는 독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고 이 책이 출간된 그해(2007년)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던 여백을, 디자이너라면 어떻게 볼까? 몇 년 전부터 주잉춘의 책을 접했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북디자이너 정병규는 이 책의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보고 나서 우리에게 남는 인상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일 것이다. 이 책의 여백들이 가볍지 않고 깊이 있게 살아나는 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주는 사실성과의 대조를 통하여 얻어진 것임은 물론이다. 이 여백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이 여백들이 배경을 지우고 나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흰 여백으로 표현되기 이전 배경들은, 사실은 우리 인간들의 세계다. 개미가 본다면 한없이 크고 넓기만 한 인간의 세상이다. 총천연색의 세속적인 인간 세상. 그런데 그것은 표백되어 여백으로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의 여백의 의미는 이 표백 작용을 통하여 발생하고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나는 한 마리 개미》에서 느끼는 명상적 의미는 이 책의 표백된 여백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명상적 의미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이리라. (본문 6~7쪽)
지은이는 이 책의 여백에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메모해보라고 권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책 말미에 엽서처럼 오려낼 수 있는, 그야말로 텅 빈 페이지를 네 쪽 할애하여 거기에 직접 개미 ‘작품’을 그려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비닐 코팅이 되지 않은 책의 흰 표지에 손때가 새카맣게 묻어나도록 자주 들춰 보며 생각에 잠길지, 여백에 메모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지, 아니면 엽서에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게 부칠지는 독자들 마음에 달렸을 것이다. 책을 읽는 방법, 책과 소통하는 방법은 독자들의 수만큼 다양할 테니까.
중국판 ‘88만원 세대’를 뜻하는 말, ‘개미족’의 탄생에 영감을 준 바로 그 책!
몇 해 전부터 중국에서 큰 이슈로 부각되면서 최근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개미족(蟻族)’이다. 개미족이란 개혁개방이 추진된 1980년대에 태어나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자라난 세대인 ‘바링허우(八零後)’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저소득으로 대도시 변두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2009년 당시 베이징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에 있던 롄쓰(廉思)가 엮은, 일종의 사회실태 보고서인 《개미족(蟻族)》이란 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롄쓰에 따르면 개미족의 정확한 학술용어는 “대학 졸업생 저소득 공동 거주 집단”인데, 학력은 높지만 경제력이 없어 공동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한 마리 개미》의 주인공 개미와 유사해서 ‘개미족’이라는 단순명쾌한 별칭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준비도 없이 사회에 덩그러니 나오게 되는 대학생, 아니 ‘개미족’은, 별을 봐도 가야 할 길을 짐작할 수 없는 시대, 아니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달리는 고도성장 시대의 그늘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 그들이 겨우 숨을 돌리는 둥지는 어둡고, 그들의 앞길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공백으로 놓여 있다. 여기 이 개미의 세계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사람과 개미는 원래 같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그 생명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 조건의 변화까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게 됐다. (본문 115쪽, 옮긴이)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엄청난 빚을 지면서까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이 되지 않아 ‘알바’를 전전하며 옥탑방이나 반지하,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계의 최강자로 부상한 중국의 경제발전이 드리운 명암은 우리의 그것보다 더욱 도드라져, 그곳의 어둠에 잠긴 이들이 더욱 캄캄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지은이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려 한 의도와 달리, 중국의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찬란한 성장의 빛 속에 내동댕이쳐진 젊은이들의 얼굴을 읽었다. 이 책이 여러 가지 해석을 품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개미를 무엇으로 호명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 작가 소개
저자 : 주잉춘
중국의 저명한 북디자이너. ‘책의 옷을 짓는 공방’이라는 뜻을 지닌 ‘수이팡(書衣坊)’의 ‘주인’ 혹은 디자인 총감독이다. 난징사범대학에서 중국화를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 10년간 출판사에서 장정을 담당했다.
2004년 수이팡 스튜디오를 설립, 독자적인 서적 디자인 작업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잇달아 선정되었으며, 중국 내 각종 도서 디자인 관련 상을 휩쓸었다. 특히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재단하지 않은 책》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이듬해엔 《나는 한 마리 개미》로 유네스코와 독일도서기금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을 받았다.
현재 난징사범대학출판사 예술총감독, 난징사범대학 편집출판전공과정 겸임교수, 장쑤 성 출판협회 장정예술위원회 주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저자 : 저우쭝웨이
난징사범대학 교육과학학원 부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교육사회학 및 문화사회학이며, 교육학, 사회학, 문학 등 여구》 등의 연구서를 발표했으며, 장쑤 성 철학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술상을 수상했다. 주잉러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연구를 추구하고 있다. 《고귀함과 비천함―학교 문화의 사회학적 연춘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이 책 외에도 《쥐―눈이 많던 겨울》이 있다.
역자 : 장영권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광운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강의했다. 현재 베이지에 거주하며 좋은 책을 골라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의 두 얼굴―영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펜타그램)가 있다.
▣ 주요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나는 한 마리 개미에 대하여》_정병규
프롤로그
나는 한 마리 개미
에필로그
책을 옮기고 나서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말한다
한 마리 개미의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철학적 우화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작고 힘없는 한 마리 개미가 세상에 나와 벌이는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우화다. 개미는 정오의 환한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이 세상에 나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양한 생명을 만나며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배워간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크다.
2007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 2008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심플한 그림, 파격적인 디자인, 함축적인 글이 일체를 이룬 그림 에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은 독자를 명상과 사색으로 이끈다. 중국의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주잉춘이 그림과 디자인을 맡았고, 난징 사범대학 교수인 저우쭝웨이가 글을 썼다.
중국판 ‘88만원 세대’를 뜻하는 말, ‘개미족’의 탄생에 영감을 주다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출간되고 2년이 지난 2009년 또 한 차례 중국 독서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도시 변두리에서 저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고학력 젊은이들이 ‘개미족’이라 명명되며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이 책의 주인공과 매우 유사해, 공식 학술용어 대신 널리 쓰이게 되었다.
중국 출판산업의 눈부신 발전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책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여전히 조악한 출판물만 나오는 곳으로 오해받고 있는 중국 출판산업의 현재가 어떤지, 우리의 편견을 확실히 뒤엎는 책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책’은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 힘들게 마련인데, 2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이 책에 열렬한 애정과 지지를 보여줬다는 점은 중국 독자들의 안목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고 보잘것없는 한 마리 개미의 좌충우돌 고군분투기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작고 힘없는 한 마리 개미가 세상에 나와 벌이는 좌충우돌 고군분투를 담은 한 편의 우화다.
개미는 오랜 옛날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개미군중’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들은 대체로 단독으로 취급되지 않고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개미는 “나는 한 마리 개미”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오로지 혼자서 모험을 감행한다.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그가 놓인 곳은 사방으로 내리쬐는 햇살 아래다. 드넓은 흰 종이 위의 까만 점처럼 보이는 개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사로운 축복이 아니라 숨이 멎을 만큼 뜨겁고 온몸을 속속들이 비추어 까발리는 조명등처럼 보인다.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나를 맞아 준 것은 정오의 햇살이다. 햇살은 땅 위의 모든 것을 끝 간 데 없이 비추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외롭고 조금은 두려웠다.” (본문 12쪽)
이렇게 시작된 그의 모험은 로드무비처럼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환한 햇살이 무서워 그림자와 집을 갈망한다. 그렇지만 안락한 자기만의 집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모험을 계속 한다. 그러다가 동료 개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진딧물을 ‘노예’로 키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힘없는 자들이 힘센 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확대경에 비친 우람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실제로도 힘이 세다는 착각에 빠져 세상을 휘어잡는 영웅이 되겠다는 욕망을 품는다. 그는 동료들을 이간질해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져 그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문득 불어온 찬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곁엔 죽어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체뿐이다. 다시 혼자가 된 개미. 마음을 닫고 또다시 세상을 편력하며 숨어 사는 비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여전히 허전하다. 다행히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와도 같은 지기(知己)를 만난다. 친구와의 생활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마냥 마음 편하고 즐겁다. 그러나 시련은 그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친구를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보지만 친구와의 작별은 결국 다가오고 만다. 그러나 개미는 담담하게 말한다.
겨울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생명이 스러져 갔다. 한때 힘을 뽐내던 덩치들도, 가녀리고 힘 못 쓰던 이들도, 지금 이 시간만큼은 모두 똑같이 평등하고 똑같이 조용하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죽음 앞에서 자연은 가장 공평하며, 그런 만큼 생명을 거둬 가는 자연의 힘에는 감히 맞설 수 없다는 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면 안 된다고 붙들 게 아니라, 아직 숨어 붙어 있는 동안을 소중히 여겨야지……. (본문 98쪽)
독백 형식을 띤 개미의 회상은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낮은 웅얼거림 혹은 잠꼬대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마음므 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과 개미,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중국의 세계적인 북디자이너 주잉춘이 기획하고 그리고 디자인하다
2007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유네스코) 수상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심플한 그림, 파격적인 디자인, 함축적인 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구성된 그림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글이 완성된 뒤에 그림과 디자인 작업이 뒤따르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북디자이너인 주잉춘의 아이디어가 글과 그림, 디자인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선 표지부터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책제목이나 지은이 이름도 보이지 않고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개미 다섯 마리가 사뿐히 올라가 있을 뿐이다. 뒷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좁은 책등을 세워서 보아야 비로소 제목과 지은이 이름, 출판사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주잉춘은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일하다 말고 휴식 삼아 교정을 산책했다. 한참을 걷다가 좀 쉴까 하고 돌의자에 앉았는데, 고개를 수그리고 봤더니, 발밑에 개미들이 엄청 많은 것 아닌가. 이사를 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싸우는 녀석들, 양식을 옮기고 있는 녀석들……. 나는 문득, ‘나도 저들과 똑 같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개미에 대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의 입을 빌려 내 생각을 풀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나는 개미 관련 사진을 수천 장 찍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사람이 만약 아무도 없다면 내 돈을 털어서라도 꼭 책을 내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정말 흰 종이와 검은 개미를 통하여 내 마음속의 어떤 느낌을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표지 구상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는 여느 책의 표지처럼 디자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궁리 끝에 개미 다섯 마리를 골라 배치하고, 글자는 올리지 않았다. 이렇게 표지를 만들어놓고 나자,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한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표지만 있는 가짜 책을 들고 서점에 가 매대에 올려놓고, 짐짓 독자인 양 곁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여성이 그 가짜 책을 보고는, “이것 좀 봐, 책 위에 개미가 있네!”라고 말하더니 입으로 훅 불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잠자코 보고 있던 나는, 이거 진짜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고는 표지는 이렇게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 《신경보(新京報)》, 연재물 ‘개인사’ 중 주잉춘 편에서, 2009년 3월 12일자
그런데 책이 출간된 후 중국 ‘신문출판국’에서 책표지에는 꼭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경고장을 보내와, 나중에 제목을 넣은 띠지를 두르게 되었다고 한다.
표지를 본 뒤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을 읽으려 할 때 독자는 다시금 당황하게 된다. 본문의 글자들은 모두 왼쪽 페이지 맨 아래쪽에 아주 작은 크기로 얌전히 누워 있고, 이 책의 주인공 개미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걸핏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곤 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드넓게 안배된 여백, 분량이 얼마 안 되는 글에 비해 비싼 책값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을 불만으로 끓어오르게 했고 ‘물 먹인 소’에 빗댄 ‘물 먹인 책’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달리 보는 독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고 이 책이 출간된 그해(2007년)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던 여백을, 디자이너라면 어떻게 볼까? 몇 년 전부터 주잉춘의 책을 접했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북디자이너 정병규는 이 책의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보고 나서 우리에게 남는 인상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여백일 것이다. 이 책의 여백들이 가볍지 않고 깊이 있게 살아나는 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주는 사실성과의 대조를 통하여 얻어진 것임은 물론이다. 이 여백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이 여백들이 배경을 지우고 나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흰 여백으로 표현되기 이전 배경들은, 사실은 우리 인간들의 세계다. 개미가 본다면 한없이 크고 넓기만 한 인간의 세상이다. 총천연색의 세속적인 인간 세상. 그런데 그것은 표백되어 여백으로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의 여백의 의미는 이 표백 작용을 통하여 발생하고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나는 한 마리 개미》에서 느끼는 명상적 의미는 이 책의 표백된 여백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명상적 의미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이리라. (본문 6~7쪽)
지은이는 이 책의 여백에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을 메모해보라고 권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책 말미에 엽서처럼 오려낼 수 있는, 그야말로 텅 빈 페이지를 네 쪽 할애하여 거기에 직접 개미 ‘작품’을 그려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비닐 코팅이 되지 않은 책의 흰 표지에 손때가 새카맣게 묻어나도록 자주 들춰 보며 생각에 잠길지, 여백에 메모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지, 아니면 엽서에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게 부칠지는 독자들 마음에 달렸을 것이다. 책을 읽는 방법, 책과 소통하는 방법은 독자들의 수만큼 다양할 테니까.
중국판 ‘88만원 세대’를 뜻하는 말, ‘개미족’의 탄생에 영감을 준 바로 그 책!
몇 해 전부터 중국에서 큰 이슈로 부각되면서 최근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개미족(蟻族)’이다. 개미족이란 개혁개방이 추진된 1980년대에 태어나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자라난 세대인 ‘바링허우(八零後)’ 가운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저소득으로 대도시 변두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2009년 당시 베이징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에 있던 롄쓰(廉思)가 엮은, 일종의 사회실태 보고서인 《개미족(蟻族)》이란 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롄쓰에 따르면 개미족의 정확한 학술용어는 “대학 졸업생 저소득 공동 거주 집단”인데, 학력은 높지만 경제력이 없어 공동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한 마리 개미》의 주인공 개미와 유사해서 ‘개미족’이라는 단순명쾌한 별칭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준비도 없이 사회에 덩그러니 나오게 되는 대학생, 아니 ‘개미족’은, 별을 봐도 가야 할 길을 짐작할 수 없는 시대, 아니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달리는 고도성장 시대의 그늘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 그들이 겨우 숨을 돌리는 둥지는 어둡고, 그들의 앞길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공백으로 놓여 있다. 여기 이 개미의 세계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사람과 개미는 원래 같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그 생명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 조건의 변화까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게 됐다. (본문 115쪽, 옮긴이)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엄청난 빚을 지면서까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이 되지 않아 ‘알바’를 전전하며 옥탑방이나 반지하,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계의 최강자로 부상한 중국의 경제발전이 드리운 명암은 우리의 그것보다 더욱 도드라져, 그곳의 어둠에 잠긴 이들이 더욱 캄캄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지은이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려 한 의도와 달리, 중국의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찬란한 성장의 빛 속에 내동댕이쳐진 젊은이들의 얼굴을 읽었다. 이 책이 여러 가지 해석을 품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개미를 무엇으로 호명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 작가 소개
저자 : 주잉춘
중국의 저명한 북디자이너. ‘책의 옷을 짓는 공방’이라는 뜻을 지닌 ‘수이팡(書衣坊)’의 ‘주인’ 혹은 디자인 총감독이다. 난징사범대학에서 중국화를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 10년간 출판사에서 장정을 담당했다.
2004년 수이팡 스튜디오를 설립, 독자적인 서적 디자인 작업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잇달아 선정되었으며, 중국 내 각종 도서 디자인 관련 상을 휩쓸었다. 특히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재단하지 않은 책》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이듬해엔 《나는 한 마리 개미》로 유네스코와 독일도서기금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특별상을 받았다.
현재 난징사범대학출판사 예술총감독, 난징사범대학 편집출판전공과정 겸임교수, 장쑤 성 출판협회 장정예술위원회 주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저자 : 저우쭝웨이
난징사범대학 교육과학학원 부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교육사회학 및 문화사회학이며, 교육학, 사회학, 문학 등 여구》 등의 연구서를 발표했으며, 장쑤 성 철학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술상을 수상했다. 주잉러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연구를 추구하고 있다. 《고귀함과 비천함―학교 문화의 사회학적 연춘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이 책 외에도 《쥐―눈이 많던 겨울》이 있다.
역자 : 장영권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광운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강의했다. 현재 베이지에 거주하며 좋은 책을 골라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의 두 얼굴―영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펜타그램)가 있다.
▣ 주요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나는 한 마리 개미에 대하여》_정병규
프롤로그
나는 한 마리 개미
에필로그
책을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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