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이 산문집은 이를테면 내 문학에 있어서 오독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화법으로 드러낸 고백록…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이에게는 오독할 권리가 있다.”
한 문학평론가가 풀어 놓는 문학과 비평 사이의 의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말씀의 서두에서 (한승원) 선생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일은 우주 읽기의 오독誤讀”이라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내놓았다. (…) 일찍이 김동리가 서정주에게 시 한 구절을 들려주기를,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 그 구절이었는데, 서정주는 여기에서 ‘꼬집히면’을 ‘꽃이 피면’으로 듣고 무릎을 치며 절창이라 상찬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를 ‘아름다운 오독’이라 호명하고 “모든 사람은 오독할 권리가 있다.”고 단정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이 “우주에 대한 오독”이라고 덧붙였다. (…)
_「‘신화적 상상력’을 소설의 텃밭에 일군 작가 한승원」, 111쪽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비평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라고도 한다.”(8쪽) 이 책에서 저자 김종회는 서구의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오독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을 키웠다고 하면서 ‘오독’, 역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읽어야 정확하게 읽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평론은 작품에 대한 오독일 수 있는 까닭에서이다. 비단 《존재와 시간》의 예뿐만 아니라 하나의 글이 비평을 통해 더욱 각광받게 되거나 비평으로 인해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는 문학사를 통틀어 비일비재해 왔다.
김종회는 이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 ‘오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오독을 단순히 텍스트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평면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의語義를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사유의 광맥을 찾아낼 때 새로운 창의력이 발양될 수 있다. ‘창조적 오독’이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말한다.”(8∼9쪽) 우리 모두는 오독할 권리가 있고, 그것으로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길어 올린 자신만의 이야기를 빚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 《오독》은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해 온 20여 년을 관통하는 김종회 문학과 삶에 대한 오독이며, 그 오독으로써 빚어낸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이다. “이 산문집은 이를테면 내 문학에 있어서 오독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화법으로 드러낸 고백록이다.”(9∼10쪽)
저자는 문학에서 오독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꽃이 꽃으로만 있다면, 자연경관의 수려함으로만 그칠 게 아닌가. 꽃을 사랑하고 꽃 속에서 또 그 꽃을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천국을 찾아내는 눈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새롭게 세계를 인식하는 보배로운 기회가 되겠는가.”(36쪽) “우리 스스로의 가슴을 열어 보면, 거기 벌레 우는 가을이나 눈 덮인 달밤으로 가는 골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림이 있는 이는 어떤 환경에 던져지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가슴속의 골목을 살리는 일은, 곧 우리의 추억을 살리는 일이요 정신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61쪽)
2.
황순원과 조병화부터 이병주, 한승원… 그리고 신덕룡과 문학의 벗들까지
비평가의 서재 뒤편에서 찾아낸 한국문학의 아름다운 인연들과 그리운 얼굴들
이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이름이 바뀐 한국문예진흥원 강당에서 같이 학과에 계시던 황순원 선생님께서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으셨을 때의 일이다. 동료 교수로서 시상식에 참석하셨던 편운 선생님은 그때 대학원 학생이던 우리 일행에게, 선뜻 “마치고 내가 술 한잔 사 줄까?”라고 말씀하셨다. 참 멋있으셨다. 계단을 막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해맑은 얼굴과 음성으로 건네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남아 있는 듯하고, 선생님의 캐주얼 스타일 양복의 윗주머니에 살짝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보라색 행커치프가 여전히 눈가에 살아 있는 듯하다.
_「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 86쪽
선생이 타계하기 수년 전, 그러니까 필자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던 1980년대 말의 일이다. 어느 오후 선생께서 늘 나와 계시던 K 호텔 커피숍에서, 필자는 매우 무모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역사가 무엇이냐라니! 도대체 이따위 대책 없는 선문답류의 질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학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특히 역사소설의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끌어안고 선생을 만난 필자로서는 꼭 내놓아야 할 질문이었다. 선생의 답변은 의외로 짧았고, 역시 선문답적인 것이었다.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이라니! 당시는 ‘운동 개념으로서의 문학’이 한 시대를 풍미하여 민족, 조국, 역사 등등의 언?가 그 이름만으로도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어조는 단호하고 명쾌했으며, 필자는 거기에다 감히 추가의 질문을 덧붙이지 못했다.
_「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 89∼90쪽
1982년 선생님은 늦깎이 학생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셨고, 저는 선생님과 입학 동기생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경희문학의 역사상 그때와 같은 문학의 르네상스요, 경향으로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다시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 대단한 상황이 벌어졌었지요. 신봉승, 전상국, 조태일, 조세희, 정호승, 박남철, 신덕룡, 박덕규, 하응백, 서하진 등의 문인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황순원 선생님의 강의가 끝난 날이면 밤이 늦도록 회기동 바닥의 주점을 휩쓸며 호연지기와 고성방가를 함께 자랑했었지요.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대책 없는 겉멋에 길들여지고 있을 때에도 선생님은 성실하고 관록 있는 학생으로서 모범이 되셨습니다.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없이 충실한 발표와 리포트 제출로 후배 학생들에게는 원망의 표적標的이 되신 것을 아셨는지요? (…)
_「김용성 선생님, 세월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105∼106쪽
「한국문학의 순수성을 지킨 큰 나무, 황순원」에서 김종회는 “필자가 ‘황순원’이란 이름 석 자와 마주 선 것은 중학교 때의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의 지은이로서였다. 어린 소견에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정갈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지, 그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아득한 먼 거리에 있는 창대한 사람인지, 그러한 분과 접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없겠다는 상념이 분분했었다.”(78쪽)라 고백한다. 바로 그 중학생이 성장해 후일 스승으로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직접 마주한 황순원 선생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에서 저자는 “봄빛이 살아나는 혜화동 거리를 지나갈 때면 선생님을 모시고 갔던 식당과 찻집이 눈에 들어와 가슴 한쪽이 쓰라리고, 가을이 깃드는 안성 편운재를 떠올릴 때면 선생님의 숨결과 손길이 마음속에 되살아나 문득 처연한 회상에 잠긴다.”(87쪽)며 조병화 선생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로한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엄청 좋아하는 것 아시죠?”(87쪽)
황순원 선생과 조병화 선생 외에도 이 책은 저자 김종회가 맺은 여러 문학적 인연으로 안내한다. 경제와 문학을 통합하려 애쓴 팔순의 노작가 김준성 선생, 시에 필생의 꿈과 정열을 바친 순시殉詩의 평론가 김재홍 선생을 비롯하여 이병주 박경리 전상국 김용성 한승원 신덕룡 선생 등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얼굴들의 미처 알지 못했던 표정과 저자가 겪은 흥미로운 일화들이 선연선과善緣善果(좋은 인연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옛말에 기대어 정겹게 펼쳐진다. 김종회만이 읽어 낼 수 있는, 글 그 너머에 자리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3.
문학에 기대어 읽은 세상과 삶의 의미.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문학비평가의 시도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언어의 길이 막히면 마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言語道斷 心行處), 인륜도 규범도 통하지 않고 성실도 정성도 돌보지 않는 이 봄날의 잔혹한 현실 앞에 효력 있는 정신적 탈출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노래가 어찌 그냥 노래이겠는가. 노랫말 가운데 잠복해 있는 위안과 재생의 메시지가 새로운 기력의 섭생하는 그 인간사의 문법을 말하는 것이다.
_「봄날은 간다」, 57쪽
그런데 이런 책이나 행사의 이름과 같이 외양이 그럴듯해 보이는 일이란, 대체로 그 내면의 순수성과 열정, 이를 구체화할 방법론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일 따름이다. 일이 넘쳐서 힘들어지거나 그 일이 본래의 목표를 희석시킬 때,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이 명제를 제기한다. 올해로부터 꼭 20년 전 백두산으로 가는 비포장도로의 길 위에서, 길 양편으로 백양나무 숲이 울울하던 그 시골 마을에서, 내가 만난 촌부들의 주름진 얼굴에 담겼던 해맑은 미소와 수줍음과 고마움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아직까지는 때가 덜 타서인지, 이 처방은 문득 나를 고요히 침잠케 하는 효력을 불러오곤 한다.
_「먼 나라, 가까운 마음의 문학」, 133쪽
북한 핵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시비 등이 우리 역사의 실체적 진실 위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임은 불을 보듯 밝은 일이다. 이 현실 인식의 올곧은 근본주의를 훼파할 수 있는 자격이나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한 레토릭을 빌려,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올바른 국가관을 갖고 후세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라.”고 해야 할 판이다.
_「국적 있는 역사교육」, 174쪽
“문학은 봄날처럼 젊은 날의 꿈이기보다는, 쓸쓸한 가을빛의 조명 아래 더욱 그 열매가 잘 영그는 운명적 룁재 양식에 입각해 있다. 그렇게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그러나 끝까지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은 소망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이 곧 문학의 다른 이름이겠다.”(16쪽)라 고백하는 문학비평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은 어떠한 풍경으로 나타날까?
그가 문학을 바탕으로 읽어 낸 삶은 “사람을 아끼지 않고서 어떻게 선할 수 있을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소중히 하지 않고서 어떻게 문학이 가능할 것이냐?”(25∼26쪽)라는 반문에서 비롯된 자신의 문학적 뿌리와 고향에 대한 애달픈 기억은 물론이고 문학의 숲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 열악하지만 꿋꿋하게 자라난 해외동포문학, 문학 행사와 문화 칼럼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때로 어머니를 향하듯 애끓는 토로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동체와 역사, 교육 및 문화 정책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엄정한 비판이 이어지기도 한다.
산문집 《오독》은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쳐 온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종회가 처음으로 펴낸, 비평가로서 읽어 낸 스스로의 문학과 삶에 대한 오독이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려 한 시도이다.
▣ 작가 소개
저 : 김종회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왔다.
김환태평론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경희문학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평론집으로 『위기의 시대와 문학』(세계사, 1996), 『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민음사, 1997), 『문학의 숲과 나무』(민음사, 2002), 『문화 통합의 시대와 문학』(문학수첩, 2004), 『문학과 예술혼』(문학의숲, 2007)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맡고 있는 경력과 관련하여 북한문학과 해외 동포문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으며 그 결과로 『북한문학의 이해』 1?4권 및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 1?2권을 엮은 바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문학, 내 오독의 역사
1. 나의 삶, 나의 문학
영혼의 숨은 보화
북창北窓에 깃든 동도同道의 벗
가슴에 숨긴 작은 행복, 고향 생각
나의 문학, 나의 어머니
직업 정체성의 고비에 서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다운 축제
동문수학의 길벗
2. 글쓰기의 내면 풍경
이독치열以讀治熱
상아탑의 심장, 도서관
엽편소설이란 새로운 이름
봄날은 간다
추억의 골목을 가진 삶은 아름답다
운명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장애인문학의 새 지표
온전한 사람, 온전한 문학
3. 문학의 숲과 사람
한국문학의 순수성을 지킨 큰 나무, 황순원
‘소나기마을’의 말없는 가르침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
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
박경리, 큰 나무의 그늘
김준성, 경제와 문학의 변증법적 통합
날 선 시각과 부드러운 손길의 작가, 전상국
김용성 선생님, 세월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신화적 상상력’을 소설의 텃밭에 일군 작가 한승원
김재홍, 시에 바친 필생의 꿈과 정열
신덕룡, 우리 시대의 청청한 선비정신
4. 경계를 넘는 길목
먼 나라, 가까운 마음의 문학
선연선과善緣善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학의 길 따라 대륙, 호수, 초원으로
이성과 감성의 조화, 또는 전인全人 지향성
초록빛 생명의 길, ‘숲’으로 본 인류 역사와 문화사
5. 시대와 역사의 들창
채장보단採長補短의 지도력
국적 있는 역사교육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
지식인들이여, 절필하라
문화예술에 무관심한 정부
‘문화 서울’의 현주소를 바꾸자
성삼문의 ‘시인’과 ‘투사’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6. 내가 배운 문학론
6·25와 전쟁문학
최근 북한문학의 변화와 분단사적 의미
이념의 강압에 대한 북한문학의 반응 양상
북한 대표 소설의 계급적 관점과 탈계급적 관점
글로벌 시대, 한민족 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한·중·일 3국의문학 교류와 그 전망
우리 문학의 대중성과 경박성
인터넷문학의 새 길
1.
“이 산문집은 이를테면 내 문학에 있어서 오독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화법으로 드러낸 고백록…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이에게는 오독할 권리가 있다.”
한 문학평론가가 풀어 놓는 문학과 비평 사이의 의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말씀의 서두에서 (한승원) 선생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일은 우주 읽기의 오독誤讀”이라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내놓았다. (…) 일찍이 김동리가 서정주에게 시 한 구절을 들려주기를,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 그 구절이었는데, 서정주는 여기에서 ‘꼬집히면’을 ‘꽃이 피면’으로 듣고 무릎을 치며 절창이라 상찬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를 ‘아름다운 오독’이라 호명하고 “모든 사람은 오독할 권리가 있다.”고 단정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이 “우주에 대한 오독”이라고 덧붙였다. (…)
_「‘신화적 상상력’을 소설의 텃밭에 일군 작가 한승원」, 111쪽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비평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라고도 한다.”(8쪽) 이 책에서 저자 김종회는 서구의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오독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을 키웠다고 하면서 ‘오독’, 역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읽어야 정확하게 읽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평론은 작품에 대한 오독일 수 있는 까닭에서이다. 비단 《존재와 시간》의 예뿐만 아니라 하나의 글이 비평을 통해 더욱 각광받게 되거나 비평으로 인해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는 문학사를 통틀어 비일비재해 왔다.
김종회는 이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 ‘오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오독을 단순히 텍스트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평면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의語義를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사유의 광맥을 찾아낼 때 새로운 창의력이 발양될 수 있다. ‘창조적 오독’이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말한다.”(8∼9쪽) 우리 모두는 오독할 권리가 있고, 그것으로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길어 올린 자신만의 이야기를 빚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 《오독》은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해 온 20여 년을 관통하는 김종회 문학과 삶에 대한 오독이며, 그 오독으로써 빚어낸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이다. “이 산문집은 이를테면 내 문학에 있어서 오독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화법으로 드러낸 고백록이다.”(9∼10쪽)
저자는 문학에서 오독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꽃이 꽃으로만 있다면, 자연경관의 수려함으로만 그칠 게 아닌가. 꽃을 사랑하고 꽃 속에서 또 그 꽃을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천국을 찾아내는 눈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새롭게 세계를 인식하는 보배로운 기회가 되겠는가.”(36쪽) “우리 스스로의 가슴을 열어 보면, 거기 벌레 우는 가을이나 눈 덮인 달밤으로 가는 골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림이 있는 이는 어떤 환경에 던져지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가슴속의 골목을 살리는 일은, 곧 우리의 추억을 살리는 일이요 정신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61쪽)
2.
황순원과 조병화부터 이병주, 한승원… 그리고 신덕룡과 문학의 벗들까지
비평가의 서재 뒤편에서 찾아낸 한국문학의 아름다운 인연들과 그리운 얼굴들
이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이름이 바뀐 한국문예진흥원 강당에서 같이 학과에 계시던 황순원 선생님께서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으셨을 때의 일이다. 동료 교수로서 시상식에 참석하셨던 편운 선생님은 그때 대학원 학생이던 우리 일행에게, 선뜻 “마치고 내가 술 한잔 사 줄까?”라고 말씀하셨다. 참 멋있으셨다. 계단을 막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해맑은 얼굴과 음성으로 건네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남아 있는 듯하고, 선생님의 캐주얼 스타일 양복의 윗주머니에 살짝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보라색 행커치프가 여전히 눈가에 살아 있는 듯하다.
_「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 86쪽
선생이 타계하기 수년 전, 그러니까 필자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던 1980년대 말의 일이다. 어느 오후 선생께서 늘 나와 계시던 K 호텔 커피숍에서, 필자는 매우 무모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역사가 무엇이냐라니! 도대체 이따위 대책 없는 선문답류의 질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학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특히 역사소설의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끌어안고 선생을 만난 필자로서는 꼭 내놓아야 할 질문이었다. 선생의 답변은 의외로 짧았고, 역시 선문답적인 것이었다.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이라니! 당시는 ‘운동 개념으로서의 문학’이 한 시대를 풍미하여 민족, 조국, 역사 등등의 언?가 그 이름만으로도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어조는 단호하고 명쾌했으며, 필자는 거기에다 감히 추가의 질문을 덧붙이지 못했다.
_「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 89∼90쪽
1982년 선생님은 늦깎이 학생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셨고, 저는 선생님과 입학 동기생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경희문학의 역사상 그때와 같은 문학의 르네상스요, 경향으로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다시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 대단한 상황이 벌어졌었지요. 신봉승, 전상국, 조태일, 조세희, 정호승, 박남철, 신덕룡, 박덕규, 하응백, 서하진 등의 문인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황순원 선생님의 강의가 끝난 날이면 밤이 늦도록 회기동 바닥의 주점을 휩쓸며 호연지기와 고성방가를 함께 자랑했었지요.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대책 없는 겉멋에 길들여지고 있을 때에도 선생님은 성실하고 관록 있는 학생으로서 모범이 되셨습니다.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없이 충실한 발표와 리포트 제출로 후배 학생들에게는 원망의 표적標的이 되신 것을 아셨는지요? (…)
_「김용성 선생님, 세월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105∼106쪽
「한국문학의 순수성을 지킨 큰 나무, 황순원」에서 김종회는 “필자가 ‘황순원’이란 이름 석 자와 마주 선 것은 중학교 때의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의 지은이로서였다. 어린 소견에도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정갈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지, 그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아득한 먼 거리에 있는 창대한 사람인지, 그러한 분과 접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없겠다는 상념이 분분했었다.”(78쪽)라 고백한다. 바로 그 중학생이 성장해 후일 스승으로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직접 마주한 황순원 선생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에서 저자는 “봄빛이 살아나는 혜화동 거리를 지나갈 때면 선생님을 모시고 갔던 식당과 찻집이 눈에 들어와 가슴 한쪽이 쓰라리고, 가을이 깃드는 안성 편운재를 떠올릴 때면 선생님의 숨결과 손길이 마음속에 되살아나 문득 처연한 회상에 잠긴다.”(87쪽)며 조병화 선생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로한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엄청 좋아하는 것 아시죠?”(87쪽)
황순원 선생과 조병화 선생 외에도 이 책은 저자 김종회가 맺은 여러 문학적 인연으로 안내한다. 경제와 문학을 통합하려 애쓴 팔순의 노작가 김준성 선생, 시에 필생의 꿈과 정열을 바친 순시殉詩의 평론가 김재홍 선생을 비롯하여 이병주 박경리 전상국 김용성 한승원 신덕룡 선생 등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얼굴들의 미처 알지 못했던 표정과 저자가 겪은 흥미로운 일화들이 선연선과善緣善果(좋은 인연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옛말에 기대어 정겹게 펼쳐진다. 김종회만이 읽어 낼 수 있는, 글 그 너머에 자리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3.
문학에 기대어 읽은 세상과 삶의 의미.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문학비평가의 시도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언어의 길이 막히면 마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言語道斷 心行處), 인륜도 규범도 통하지 않고 성실도 정성도 돌보지 않는 이 봄날의 잔혹한 현실 앞에 효력 있는 정신적 탈출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노래가 어찌 그냥 노래이겠는가. 노랫말 가운데 잠복해 있는 위안과 재생의 메시지가 새로운 기력의 섭생하는 그 인간사의 문법을 말하는 것이다.
_「봄날은 간다」, 57쪽
그런데 이런 책이나 행사의 이름과 같이 외양이 그럴듯해 보이는 일이란, 대체로 그 내면의 순수성과 열정, 이를 구체화할 방법론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일 따름이다. 일이 넘쳐서 힘들어지거나 그 일이 본래의 목표를 희석시킬 때,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이 명제를 제기한다. 올해로부터 꼭 20년 전 백두산으로 가는 비포장도로의 길 위에서, 길 양편으로 백양나무 숲이 울울하던 그 시골 마을에서, 내가 만난 촌부들의 주름진 얼굴에 담겼던 해맑은 미소와 수줍음과 고마움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아직까지는 때가 덜 타서인지, 이 처방은 문득 나를 고요히 침잠케 하는 효력을 불러오곤 한다.
_「먼 나라, 가까운 마음의 문학」, 133쪽
북한 핵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시비 등이 우리 역사의 실체적 진실 위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임은 불을 보듯 밝은 일이다. 이 현실 인식의 올곧은 근본주의를 훼파할 수 있는 자격이나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한 레토릭을 빌려,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올바른 국가관을 갖고 후세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라.”고 해야 할 판이다.
_「국적 있는 역사교육」, 174쪽
“문학은 봄날처럼 젊은 날의 꿈이기보다는, 쓸쓸한 가을빛의 조명 아래 더욱 그 열매가 잘 영그는 운명적 룁재 양식에 입각해 있다. 그렇게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그러나 끝까지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은 소망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이 곧 문학의 다른 이름이겠다.”(16쪽)라 고백하는 문학비평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은 어떠한 풍경으로 나타날까?
그가 문학을 바탕으로 읽어 낸 삶은 “사람을 아끼지 않고서 어떻게 선할 수 있을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소중히 하지 않고서 어떻게 문학이 가능할 것이냐?”(25∼26쪽)라는 반문에서 비롯된 자신의 문학적 뿌리와 고향에 대한 애달픈 기억은 물론이고 문학의 숲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 열악하지만 꿋꿋하게 자라난 해외동포문학, 문학 행사와 문화 칼럼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때로 어머니를 향하듯 애끓는 토로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동체와 역사, 교육 및 문화 정책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엄정한 비판이 이어지기도 한다.
산문집 《오독》은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쳐 온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종회가 처음으로 펴낸, 비평가로서 읽어 낸 스스로의 문학과 삶에 대한 오독이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려 한 시도이다.
▣ 작가 소개
저 : 김종회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왔다.
김환태평론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경희문학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평론집으로 『위기의 시대와 문학』(세계사, 1996), 『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민음사, 1997), 『문학의 숲과 나무』(민음사, 2002), 『문화 통합의 시대와 문학』(문학수첩, 2004), 『문학과 예술혼』(문학의숲, 2007)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맡고 있는 경력과 관련하여 북한문학과 해외 동포문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으며 그 결과로 『북한문학의 이해』 1?4권 및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 1?2권을 엮은 바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문학, 내 오독의 역사
1. 나의 삶, 나의 문학
영혼의 숨은 보화
북창北窓에 깃든 동도同道의 벗
가슴에 숨긴 작은 행복, 고향 생각
나의 문학, 나의 어머니
직업 정체성의 고비에 서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다운 축제
동문수학의 길벗
2. 글쓰기의 내면 풍경
이독치열以讀治熱
상아탑의 심장, 도서관
엽편소설이란 새로운 이름
봄날은 간다
추억의 골목을 가진 삶은 아름답다
운명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장애인문학의 새 지표
온전한 사람, 온전한 문학
3. 문학의 숲과 사람
한국문학의 순수성을 지킨 큰 나무, 황순원
‘소나기마을’의 말없는 가르침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편운 선생님
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
박경리, 큰 나무의 그늘
김준성, 경제와 문학의 변증법적 통합
날 선 시각과 부드러운 손길의 작가, 전상국
김용성 선생님, 세월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신화적 상상력’을 소설의 텃밭에 일군 작가 한승원
김재홍, 시에 바친 필생의 꿈과 정열
신덕룡, 우리 시대의 청청한 선비정신
4. 경계를 넘는 길목
먼 나라, 가까운 마음의 문학
선연선과善緣善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학의 길 따라 대륙, 호수, 초원으로
이성과 감성의 조화, 또는 전인全人 지향성
초록빛 생명의 길, ‘숲’으로 본 인류 역사와 문화사
5. 시대와 역사의 들창
채장보단採長補短의 지도력
국적 있는 역사교육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
지식인들이여, 절필하라
문화예술에 무관심한 정부
‘문화 서울’의 현주소를 바꾸자
성삼문의 ‘시인’과 ‘투사’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6. 내가 배운 문학론
6·25와 전쟁문학
최근 북한문학의 변화와 분단사적 의미
이념의 강압에 대한 북한문학의 반응 양상
북한 대표 소설의 계급적 관점과 탈계급적 관점
글로벌 시대, 한민족 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한·중·일 3국의문학 교류와 그 전망
우리 문학의 대중성과 경박성
인터넷문학의 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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