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문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드문 감동의 기록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시인이 된 소년, 부드러우면서 곧은 시인, 따뜻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해직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교육운동가 도종환의 신작 에세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 한 편의 시를 통해 그의 인생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때론 절절하게 담고 있다. 자신의 삶 이야기가 들어 있는 시들을 골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시를 들려주는 이 책은,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그림과 함께해 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충북 보은의 황톳집에서 자신의 삶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되짚으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세세히 펼쳐낸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한 문학,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삶의 이야기를, 그것으로 인해 시인이 되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살아온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를 통해, 삶과 시가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를, 그의 문학을, 그의 삶을 기대해본다.
내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
도종환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 충청도 소읍, 산직말의 오막살이집에서 태어났다. 증평에서 살던 행복했던 10여 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1년에 두 번 방학 때만 볼 수 있었던 그때, 부모님이 계신 원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때 그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크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해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나 어른들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갈 때는 미대에 갈 수 없었다. 미대가 아니라 대학 자체를 갈 형편이 되지 못해서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고, 학과도 돈이 적게 들어 보이는 과를 골랐다. 화가가 되는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좌절이 그를 술 마시게 했다.
빙하기로부터 시작한 내 어린 날의 결빙이 언제 풀릴지 그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월세 이천 원짜리 쪽방에 기거하는 동안 연탄불이 자주 꺼졌다 손도끼로 침엽수 도막을 잘게 부수어 십구공탄에 불을 붙이는 동안 삶은 매캐했고 문짝도 없는 부엌부터 일찍 어두워졌다 내가 눕는 윗목에는 그릇의 물이 바로바로 얼었고 내 몸도 밤새 달그락거렸다 -「빙하기」 중에서(52p)
사범대학을 졸업하자 그해 3월,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문학청년인 그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 노릇을 시작한 것이다. 박 신부님을 만난 것이 문제가 되어 좌천당하고 쫓겨난 생활은 27년간 교직에 있는 동안 이동희망내신서를 써보지 못한 채 떠돌고 쫓겨나게 되는 일의 시작이었다. 제대 후 1980년대 전반기, 정기간행물이 다 폐간되어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었던 시절에, 헤맴, 절망, 방황을 보내고 친구들과 함께 ‘분단 시대’라는 모임을 만든다. 동인지 창간호에 「고두미 마을에서」, 「울타리꽃」, 「진눈깨비」, 「분꽃」, 「삼대」(연작시) 등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았던 작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연락이 와서 첫 시집을 낸다.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 오동나무 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오던 /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 … /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 / 눈녹이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 / 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 /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 고우나 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 /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은 내리는데. -「고두미 마을에서」 중에서(102~103p)
아내가 토혈을 한 것은 첫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 봄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이상이 있다면서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서른 두 살이었던 그때, 젊디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몸에 성한 곳이 있으면 주고 가자고 했던 그녀. 아내는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고 하고는 낳은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끼리 만나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때. 나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돌처럼 자리 잡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 뿌듯이 주고 갑시다 /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119p)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그해 겨울에 동인지 분단시대 판화 시집에 「접시꽃 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당신의 무덤가에」 5편의 시를 실었다. 그런데 판화 시집 자체가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고 동이중학교로 좌천 발령을 받았고, 문제교사로 찍혀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받았다. 유배지에서 시를 쓰며 지내던 어느 날, 김사인 시인이 시집을 내자고 했다. 12월 초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시집 이야기가 실리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매스컴의 떠들썩함과 독자들의 반응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웠고, 또한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으로 평가절하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 그댈 보내며 /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 별들의 긴 눈물 /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중에서 (142~144p)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주로 발령받아 올라온 저자는 두 가지 일을 시작한다. 교육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과 문화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 충북교사협의회를 만들고 얼마 안 있어 형사들에게 잡혀 간다. 잘못된 교육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 법으로 보장된 교사들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고, 비민주적인 교육 구조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길이었으나, 그 이유로 감옥에 간다. 교도소에서 시를 쓸 곳이 없어 비누에 싼 속포장지에, 화장지 겉을 싼 종이 안쪽에, 책 맨 뒷장 백지에 깨알같이 시를 써야만 했던 그의 죄는, 벌금 30만 원 정도의 죄였는데, 그로 인해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오는 날, 그는 어떤 일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 되는지 바라봐야 했다. 딸에게 미안하고, 어머니께 죄스럽고, 스스로가 미웠고, 이런 시대가 미웠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비 갠 일요일 아침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 엄마 없고 아빠마저 빼앗긴 저의 두 아이들 / 주님, 당신께서 돌보아 주십사 하고 기도드립니다 / 밤비에 젖은 얼굴을 털며 일어서는 무궁화꽃처럼 / 저의 아이들이 자라게 해 주십시오 / 구름 걷힌 하늘의 작은 햇볕에도 들풀이 자라듯 / 아이들이 당신 사랑으로 자라게 해 주십시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중에서(186p)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담쟁이처럼 살고 싶다!
해직된 교사들끼리 사무실에 모여서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고 같이 밥도 해 먹으며 지냈다. 해직교사들은 집회도 하고, 항의 방문도 하고, 행정소송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고 해서 수없이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면서 날들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중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담쟁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담쟁이처럼 살기로 한다. 나 혼자 살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어려운 벽을 헤쳐 나가자고 마음먹는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담쟁이처럼 벽을 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넘쳐 싸운 게 아니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먹고살 만큼 넉넉해서 싸운 게 아니었다. 그런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살았고, 해직 생활의 뒤에는 울면서 조시를 써야 하는 날들이 찾아왔다.
저것은 벽 / 어��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208p)
해직된 이듬해 겨울,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별 후 6년째 되던 해 늦가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문과 잡지를 통해 소식이 멀리 퍼지면서 시집이 헌책방으로 쏟아져나왔고, 온갖 실망과 말과 비난과 욕을 다 들었고 그것을 감수해야 했다. 해직 다섯 해째 교육부와 전교조가 복직 문제에 일부 합의하면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남아서 여러 가지 직책과 직함을 떠맡아야 했고, 엄혹했던 시절에 매일 거리로 나가 투쟁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245p)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의 삶, 나의 시를
해직 1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열렸을 때, 저자는 그 지역의 문예창작학교 겸임 교수가 아니라 시골 학교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학교는 10년 전의 그 학교가 아니었다. 복직 후에는 아이들과 전쟁을 하다시피 했고, 10년간 창의적인 수업 방식을 연구했지만 수업도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겉돌고 있었다. 복직하고 덕산중학교로 갔을 때, 몸에 이상이 왔다. 결국 학교를 휴직하고, 또 휴직을 거듭하다 퇴직했다. 27년간 교직에 있었으나 퇴직할 때는 연금 없이 퇴직금 1,860만원을 받았다. 해직기간이 10년이라 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프고 나서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가난, 외로움, 죄절, 절망, 방황, 해직, 투옥, 시련, 고난, 질병, 이 모든 것이 고마운 것이구나 생각하기로 힌다. 그런 시간이 작가에게 오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갔을 것이고,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이 산에 들어올 땐 /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러나 내가 흔들릴 때 / 같이 흔들리며 안타까워하는 나무들을 보며 / 혼자 있다는 말 하지 않기로 했다 / 아침저녁으로 맑은 숨결을 길어 올려 끼얹어주고 / 조릿대 참대소리로 마음을 정결하게 / 빗질해주는 이는 누구일까 / 숲과 나무가 내 폐의 바깥인 걸 알았다 / 더러운 내 몸과 탄식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걸 보며 / 숲도 날 제 식구처럼 여기는 걸 알았다 / 나리꽃 보리수 오리나무와 같이 있는 거지 / 혼자 있는 게 아니다 / 내가 숲의 뱃속에 있고 / 숲이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들어오고 / 그렇게 함께 숨 쉬며 살아 있는 것이다 -「숲의 식구」 중에서(312~313p)
그리고 지금 작가는 자신 인생의 시계가 오후 3시를 지나 5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12시 전후의 시간은 치열했고, 저무는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 오기 전 찬란한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황홀한 시간이 한 번쯤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엄혹한 시기의 시절을 지나온 그. 이제 다시 어둠이 오기 전에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시,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는 시,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진정성이 살아 있되 너무 거창하거나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354p)를 쓰겠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350~352p)
▣ 작가 소개
저 : 도종환
도종환,都鍾煥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느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을 일치시키는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주성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른바 동인지 문단시대로 불리던 1980년대 초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오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1998년 해직 십 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다 건강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 두고 보은군 내북면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며 2006년 5월부터 2007년 4월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배원''을 맡아 매주 시 한 편씩을 독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제 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 7회 민족예술상, 제 2회 KBS 바른 언어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현대 충북 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의 시에는 찢긴 역사 속의 이웃의 삶을 아프게 공감하며 민족적 양심을 찾아나가는 시인의 의지와 진정한 우리의 정서를 담고자 한다.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맑은 감수성을 보여주어 마음의 등불을 켜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그의 시와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며, 진주가 아름다운 것, 모과가 향기로운 것은 그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고요히 어머니처럼 말하고 있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교육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이 있고, 어른을 위한 동화 『바다유리』가 있다.
그림 : 이철수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가의 언어방식을 끌어온 촌철살인의 화제들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이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깊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 대표 판화가.
1954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독서에 심취한 문학소년이었으나, 군 제대 후 홀로 그림을 공부하여 화가가 되었다. 오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로 처음 미술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전국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의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탁월한 민중판화가로 평가받았던 이철수는 1990년 무렵부터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 영역을 확대해 간 그는 그 후 사람살이 속에 깃들인 선과 불교에 주된 관심을 쏟아 심오한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절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살다보면 편지 쓰고 싶은 날이 있기 마련이고, 그도 그랬다. “편지 쓰고 싶은 날이 많아서, 편지 받고 싶은 날이 많아서” 어느날 저녁 문득 직접 손글씨로 받는 이가 따로 없는 엽서를 썼다. 그저 마음 한 조각을 담은 짧은 편지였다. 마음 ‘안에 있는 그리움’이 그를 부추겼던 모양이다. 쓰기는 했지만 붙일 곳 없어 흐르는 물결에 던졌다던 피천득 시인처럼, 그도 엽서를 물결에 둥실 띄워 보냈다. 강물 대신 인터넷이란 물결 위에 실어서. 그냥 한 번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인데, 그 뒤로도 엽서를 쓰게 됐다. 일 마친 저녁, 짬을 내 엽서를 쓰고 자신의 인터넷집(mokpan.com) 손님들에게 부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리고 엽서에는 ‘나뭇잎 편지’란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띄엄띄엄 보내기 시작한 엽서가 차츰 그에게 일기 같은 것이 됐다. 꾸밀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쓸 뿐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래서 더 열광했다. 이 엽서들이 모여서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라는 책이 되었다. 엽서의 그림과 글은 그의 판화 그대로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가볍고 살갑다. 전시를 위해 공들인 무게감은 없을지 몰라도 힘 빼고 그린 그림과 편하게 쓴 글씨의 매력이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쌓인 엽서들을 또 한 번 묶었다. 그래서 출간된 책이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과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이다. 2008년 겨울에 출간된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에서는 일 년 열두 달, 그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소식, 집 안팎에서 만난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을 보며 느낀 단상들,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세상의 진창길과 그 길에 희망이 되는 징검다리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는 바를 드로잉과 판화 그림 여백에 적었다. “궂은 날에도 죽기 살기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꽃”처럼, “거칠 것 없는 푸름 한 장인 하늘”처럼, 존재 자체로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는 것들에 시선을 두면서 그 마음 닮아 가자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 그리면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거라고 믿으며 같이 힘내 살자고 어깨를 다독인다.
단아한 그림과 글에 선적인 시정과 삶의 긍정을 담아내는 이철수의 판화들은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평판과 함께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소리 하나』,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 등 판화 산문집, 『이철수의 작은 선물』, 『생명의 노래』 등 판화집과 엽서 모음집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을 출간하였다.
현재 충북 제천의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 주요 목차
1 내 시의 꽃밭
내 시의 꽃밭 | 두 번의 전쟁 | 까마득하던 날의 수제비 | 원주는 추운 곳이다 | 화가가 되고 싶던 열망과 플랜더스의 개 | 내 어린 날의 빙하기 | 미운 오리 새끼 | 한 마리 외로운 짐승 같던 시절 그리고 고은
2 접시꽃 당신
시인은 헤매는 양인가 | 광주라는 내 인생의 갈림길 |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인가 | 동인지 문단 시대와 분단시대 | 첫 시집을 내던 무렵 |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 접시꽃 당신
3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시를 쓰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 유배지에서 쓴 시 | 슬픔을 파는 시인이란 비판 | 선생님 사랑했어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 알몸으로 달려가던 교도소의 긴 복도 | 감옥 밖으로 나간 한 편의 시 |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내가 지은 죄 | 딸아이 손을 잡고
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담쟁이처럼 살자 |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 | 울면서 조시를 쓰던 날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 시인과 투사 | 부드러운 직선
5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부족한 나무 | 무너지는 학교, 무너지는 가슴 | 교육은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올리는 일 |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 낮에는 외롭고 밤에는 무서운 숲 속 생활 | 내게 오는 건 고통도 아픔도 다 축복이다 | 동시가 찾아오던 날 | 치유의 힘을 가진 숲 | 평화롭게 살기 |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문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드문 감동의 기록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시인이 된 소년, 부드러우면서 곧은 시인, 따뜻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해직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교육운동가 도종환의 신작 에세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 한 편의 시를 통해 그의 인생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때론 절절하게 담고 있다. 자신의 삶 이야기가 들어 있는 시들을 골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고 시를 들려주는 이 책은,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그림과 함께해 책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충북 보은의 황톳집에서 자신의 삶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되짚으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세세히 펼쳐낸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한 문학,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삶의 이야기를, 그것으로 인해 시인이 되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살아온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를 통해, 삶과 시가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를, 그의 문학을, 그의 삶을 기대해본다.
내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
도종환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 충청도 소읍, 산직말의 오막살이집에서 태어났다. 증평에서 살던 행복했던 10여 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1년에 두 번 방학 때만 볼 수 있었던 그때, 부모님이 계신 원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때 그를 키운 건 팔 할이 가난함과 외로움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크면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해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나 어른들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갈 때는 미대에 갈 수 없었다. 미대가 아니라 대학 자체를 갈 형편이 되지 못해서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고, 학과도 돈이 적게 들어 보이는 과를 골랐다. 화가가 되는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좌절이 그를 술 마시게 했다.
빙하기로부터 시작한 내 어린 날의 결빙이 언제 풀릴지 그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월세 이천 원짜리 쪽방에 기거하는 동안 연탄불이 자주 꺼졌다 손도끼로 침엽수 도막을 잘게 부수어 십구공탄에 불을 붙이는 동안 삶은 매캐했고 문짝도 없는 부엌부터 일찍 어두워졌다 내가 눕는 윗목에는 그릇의 물이 바로바로 얼었고 내 몸도 밤새 달그락거렸다 -「빙하기」 중에서(52p)
사범대학을 졸업하자 그해 3월, 옥천군 청산면 청산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문학청년인 그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 노릇을 시작한 것이다. 박 신부님을 만난 것이 문제가 되어 좌천당하고 쫓겨난 생활은 27년간 교직에 있는 동안 이동희망내신서를 써보지 못한 채 떠돌고 쫓겨나게 되는 일의 시작이었다. 제대 후 1980년대 전반기, 정기간행물이 다 폐간되어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었던 시절에, 헤맴, 절망, 방황을 보내고 친구들과 함께 ‘분단 시대’라는 모임을 만든다. 동인지 창간호에 「고두미 마을에서」, 「울타리꽃」, 「진눈깨비」, 「분꽃」, 「삼대」(연작시) 등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았던 작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연락이 와서 첫 시집을 낸다.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이 내린다. / 오동나무 함에 들려 국경선을 넘어오던 / 한줌의 유골 같은 푸스스한 눈발이 / 동력골을 넘어 이곳에 내려온다. / 꽃뫼 마을 고령 신씨도 이제는 아니 오고 / 금초하던 사당지기 귀래리 나무꾼 / 고무신 자국 한 줄 눈발에 지워진다. / … /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 / 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 / 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 / 눈녹이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 / 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 / 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 / 고우나 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 / 이 땅의 삼월 고두미 마을에 눈은 내리는데. -「고두미 마을에서」 중에서(102~103p)
아내가 토혈을 한 것은 첫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 봄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이상이 있다면서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서른 두 살이었던 그때, 젊디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몸에 성한 곳이 있으면 주고 가자고 했던 그녀. 아내는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고 하고는 낳은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끼리 만나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때. 나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돌처럼 자리 잡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 뿌듯이 주고 갑시다 /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119p)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그해 겨울에 동인지 분단시대 판화 시집에 「접시꽃 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당신의 무덤가에」 5편의 시를 실었다. 그런데 판화 시집 자체가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고 동이중학교로 좌천 발령을 받았고, 문제교사로 찍혀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받았다. 유배지에서 시를 쓰며 지내던 어느 날, 김사인 시인이 시집을 내자고 했다. 12월 초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시집 이야기가 실리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매스컴의 떠들썩함과 독자들의 반응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웠고, 또한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으로 평가절하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 그댈 보내며 /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 별들의 긴 눈물 /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중에서 (142~144p)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주로 발령받아 올라온 저자는 두 가지 일을 시작한다. 교육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과 문화운동 단체를 만드는 일. 충북교사협의회를 만들고 얼마 안 있어 형사들에게 잡혀 간다. 잘못된 교육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 법으로 보장된 교사들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고, 비민주적인 교육 구조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길이었으나, 그 이유로 감옥에 간다. 교도소에서 시를 쓸 곳이 없어 비누에 싼 속포장지에, 화장지 겉을 싼 종이 안쪽에, 책 맨 뒷장 백지에 깨알같이 시를 써야만 했던 그의 죄는, 벌금 30만 원 정도의 죄였는데, 그로 인해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감옥살이를 끝내고 나오는 날, 그는 어떤 일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 되는지 바라봐야 했다. 딸에게 미안하고, 어머니께 죄스럽고, 스스로가 미웠고, 이런 시대가 미웠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비 갠 일요일 아침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 엄마 없고 아빠마저 빼앗긴 저의 두 아이들 / 주님, 당신께서 돌보아 주십사 하고 기도드립니다 / 밤비에 젖은 얼굴을 털며 일어서는 무궁화꽃처럼 / 저의 아이들이 자라게 해 주십시오 / 구름 걷힌 하늘의 작은 햇볕에도 들풀이 자라듯 / 아이들이 당신 사랑으로 자라게 해 주십시오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중에서(186p)
포기하지 않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담쟁이처럼 살고 싶다!
해직된 교사들끼리 사무실에 모여서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고 같이 밥도 해 먹으며 지냈다. 해직교사들은 집회도 하고, 항의 방문도 하고, 행정소송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고 해서 수없이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면서 날들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중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담쟁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담쟁이처럼 살기로 한다. 나 혼자 살길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함께 손잡고 어려운 벽을 헤쳐 나가자고 마음먹는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담쟁이처럼 벽을 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넘쳐 싸운 게 아니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먹고살 만큼 넉넉해서 싸운 게 아니었다. 그런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살았고, 해직 생활의 뒤에는 울면서 조시를 써야 하는 날들이 찾아왔다.
저것은 벽 / 어��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208p)
해직된 이듬해 겨울,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별 후 6년째 되던 해 늦가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문과 잡지를 통해 소식이 멀리 퍼지면서 시집이 헌책방으로 쏟아져나왔고, 온갖 실망과 말과 비난과 욕을 다 들었고 그것을 감수해야 했다. 해직 다섯 해째 교육부와 전교조가 복직 문제에 일부 합의하면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남아서 여러 가지 직책과 직함을 떠맡아야 했고, 엄혹했던 시절에 매일 거리로 나가 투쟁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245p)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의 삶, 나의 시를
해직 1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열렸을 때, 저자는 그 지역의 문예창작학교 겸임 교수가 아니라 시골 학교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학교는 10년 전의 그 학교가 아니었다. 복직 후에는 아이들과 전쟁을 하다시피 했고, 10년간 창의적인 수업 방식을 연구했지만 수업도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겉돌고 있었다. 복직하고 덕산중학교로 갔을 때, 몸에 이상이 왔다. 결국 학교를 휴직하고, 또 휴직을 거듭하다 퇴직했다. 27년간 교직에 있었으나 퇴직할 때는 연금 없이 퇴직금 1,860만원을 받았다. 해직기간이 10년이라 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프고 나서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가난, 외로움, 죄절, 절망, 방황, 해직, 투옥, 시련, 고난, 질병, 이 모든 것이 고마운 것이구나 생각하기로 힌다. 그런 시간이 작가에게 오지 않았다면 다른 길을 갔을 것이고,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이 산에 들어올 땐 /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러나 내가 흔들릴 때 / 같이 흔들리며 안타까워하는 나무들을 보며 / 혼자 있다는 말 하지 않기로 했다 / 아침저녁으로 맑은 숨결을 길어 올려 끼얹어주고 / 조릿대 참대소리로 마음을 정결하게 / 빗질해주는 이는 누구일까 / 숲과 나무가 내 폐의 바깥인 걸 알았다 / 더러운 내 몸과 탄식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걸 보며 / 숲도 날 제 식구처럼 여기는 걸 알았다 / 나리꽃 보리수 오리나무와 같이 있는 거지 / 혼자 있는 게 아니다 / 내가 숲의 뱃속에 있고 / 숲이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들어오고 / 그렇게 함께 숨 쉬며 살아 있는 것이다 -「숲의 식구」 중에서(312~313p)
그리고 지금 작가는 자신 인생의 시계가 오후 3시를 지나 5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12시 전후의 시간은 치열했고, 저무는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 오기 전 찬란한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황홀한 시간이 한 번쯤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엄혹한 시기의 시절을 지나온 그. 이제 다시 어둠이 오기 전에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시,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는 시,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진정성이 살아 있되 너무 거창하거나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354p)를 쓰겠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350~352p)
▣ 작가 소개
저 : 도종환
도종환,都鍾煥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느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을 일치시키는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주성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른바 동인지 문단시대로 불리던 1980년대 초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오던 시인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1998년 해직 십 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다 건강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 두고 보은군 내북면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며 2006년 5월부터 2007년 4월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배원''을 맡아 매주 시 한 편씩을 독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제 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 7회 민족예술상, 제 2회 KBS 바른 언어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현대 충북 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의 시에는 찢긴 역사 속의 이웃의 삶을 아프게 공감하며 민족적 양심을 찾아나가는 시인의 의지와 진정한 우리의 정서를 담고자 한다.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맑은 감수성을 보여주어 마음의 등불을 켜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그의 시와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며, 진주가 아름다운 것, 모과가 향기로운 것은 그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고요히 어머니처럼 말하고 있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교육에세이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이 있고, 어른을 위한 동화 『바다유리』가 있다.
그림 : 이철수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가의 언어방식을 끌어온 촌철살인의 화제들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이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깊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 대표 판화가.
1954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독서에 심취한 문학소년이었으나, 군 제대 후 홀로 그림을 공부하여 화가가 되었다. 오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로 처음 미술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전국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의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탁월한 민중판화가로 평가받았던 이철수는 1990년 무렵부터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 영역을 확대해 간 그는 그 후 사람살이 속에 깃들인 선과 불교에 주된 관심을 쏟아 심오한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절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살다보면 편지 쓰고 싶은 날이 있기 마련이고, 그도 그랬다. “편지 쓰고 싶은 날이 많아서, 편지 받고 싶은 날이 많아서” 어느날 저녁 문득 직접 손글씨로 받는 이가 따로 없는 엽서를 썼다. 그저 마음 한 조각을 담은 짧은 편지였다. 마음 ‘안에 있는 그리움’이 그를 부추겼던 모양이다. 쓰기는 했지만 붙일 곳 없어 흐르는 물결에 던졌다던 피천득 시인처럼, 그도 엽서를 물결에 둥실 띄워 보냈다. 강물 대신 인터넷이란 물결 위에 실어서. 그냥 한 번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인데, 그 뒤로도 엽서를 쓰게 됐다. 일 마친 저녁, 짬을 내 엽서를 쓰고 자신의 인터넷집(mokpan.com) 손님들에게 부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리고 엽서에는 ‘나뭇잎 편지’란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띄엄띄엄 보내기 시작한 엽서가 차츰 그에게 일기 같은 것이 됐다. 꾸밀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쓸 뿐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래서 더 열광했다. 이 엽서들이 모여서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이라는 책이 되었다. 엽서의 그림과 글은 그의 판화 그대로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가볍고 살갑다. 전시를 위해 공들인 무게감은 없을지 몰라도 힘 빼고 그린 그림과 편하게 쓴 글씨의 매력이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쌓인 엽서들을 또 한 번 묶었다. 그래서 출간된 책이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과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이다. 2008년 겨울에 출간된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에서는 일 년 열두 달, 그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소식, 집 안팎에서 만난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을 보며 느낀 단상들,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세상의 진창길과 그 길에 희망이 되는 징검다리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는 바를 드로잉과 판화 그림 여백에 적었다. “궂은 날에도 죽기 살기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꽃”처럼, “거칠 것 없는 푸름 한 장인 하늘”처럼, 존재 자체로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는 것들에 시선을 두면서 그 마음 닮아 가자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 그리면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거라고 믿으며 같이 힘내 살자고 어깨를 다독인다.
단아한 그림과 글에 선적인 시정과 삶의 긍정을 담아내는 이철수의 판화들은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평판과 함께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소리 하나』, 『배꽃 하얗게 지던 밤에』 등 판화 산문집, 『이철수의 작은 선물』, 『생명의 노래』 등 판화집과 엽서 모음집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을 출간하였다.
현재 충북 제천의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 주요 목차
1 내 시의 꽃밭
내 시의 꽃밭 | 두 번의 전쟁 | 까마득하던 날의 수제비 | 원주는 추운 곳이다 | 화가가 되고 싶던 열망과 플랜더스의 개 | 내 어린 날의 빙하기 | 미운 오리 새끼 | 한 마리 외로운 짐승 같던 시절 그리고 고은
2 접시꽃 당신
시인은 헤매는 양인가 | 광주라는 내 인생의 갈림길 |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인가 | 동인지 문단 시대와 분단시대 | 첫 시집을 내던 무렵 |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 접시꽃 당신
3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시를 쓰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 유배지에서 쓴 시 | 슬픔을 파는 시인이란 비판 | 선생님 사랑했어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 알몸으로 달려가던 교도소의 긴 복도 | 감옥 밖으로 나간 한 편의 시 |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내가 지은 죄 | 딸아이 손을 잡고
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담쟁이처럼 살자 |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 | 울면서 조시를 쓰던 날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 시인과 투사 | 부드러운 직선
5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부족한 나무 | 무너지는 학교, 무너지는 가슴 | 교육은 떨어지는 바위를 끝없이 밀어올리는 일 |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 낮에는 외롭고 밤에는 무서운 숲 속 생활 | 내게 오는 건 고통도 아픔도 다 축복이다 | 동시가 찾아오던 날 | 치유의 힘을 가진 숲 | 평화롭게 살기 |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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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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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