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소설을 쓰겠다”
요네하라 마리, 히로히토 일왕,
이노우에 야스시 등 유명인들의 투병기
노벨문학상에 자주 거론됐던 《빙벽》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암 진단을 받고 의연하게 말했다.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소설을 쓰겠다”
실제로 그는 투병 중에 장편소설 대작 《공자》의 집필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또 “인간은 어떻게든 그럭저럭 다 살아가는 법”이라며 도리어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는 구태여 ‘암’이라는 질병에 ‘비극’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강단 있는 글맛으로 한국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 또한 난소암에 걸렸다. 그녀는 암 환자를 유혹하는 민간요법 치료제의 상술에 흔들리는 자신에 대해서, 또 그 고투의 나날에 대해 ‘암 치료책을 내 몸으로 검증’이란 제목의 글로 죽기 직전까지 《주간문춘》 잡지에 연재했다.
정규 의료에 대한 반어로 대체 의료라 불리는 이런 종류의 상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병자의 나약한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범죄적인 가격에 또 한 번 놀랐다. 배알이 뒤틀리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히로히토 일왕은 암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왕비에게 어떻게 말할지 막막해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던 혼잣말은 기록으로 남았다.
“나가미야(왕비)에겐 뭐라고 하지”
일본 사회에서는 추앙받는 존재였던 그도 불치의 병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었다. 걸출한 현대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는 날마다 긍정적인 일기를 쓰며 투병 생활을 견뎠다.
“약과 싸운다. / 이미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암과 함께 지내는 날이 시작되었다.”
작가 고쿠분 이치타로는 위의 대부분을 잘라 낸 뒤에도 일본 정부의 사상 탄압에 맞섰고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투포환 선수 모리 지나쓰는 곤두박질치는 기록에도 복귀를 희망했다. 천재 장기 기사 무라야마 사토시는 건강한 동료를 질투하며 주먹을 날리고 길거리에서 지폐 다발을 찢었다.
책에 등장하는 50여 명의 암 환자들은 일본 당대의 유명 인사이다. 고등학생 이상의 일본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문학 · 음악 · 학술 · 영화 · 재계 등 각 분야에서 이름난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암에 걸렸고, 그 불치의 병과 함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 말로를 보냈다.
노장의 르포라이터가
30년에 걸쳐 취재한 암 환자들, 그 집념의 기록
저자 야나기다 구니오는 일본의 저명한 기록문학 작가이다. 그는 1974년 NHK 기자를 그만두고 KAL기 폭발사고, 원전 등 사회성 짙은 주제를 자율적으로 취재하며 80여 권의 책을 냈다. ‘암을 앓는 사람들’ 또한 그의 주요 글감이었다. 1989년, 일본의 잡지 《문예춘추》에 ‘암을 앓는 사람들’에 대해 연재했었고 이를 엮어 책으로 냈었다. 약 30년이 지난 뒤 《문예춘추》는 그에게 같은 주제의 연재를 제안한다. “또 한 번 ‘암을 앓는 유명 인사’들을 취재하고 기록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 책은 30년 만의 후속작으로 그렇게 탄생했다.
그동안 야나기다 구니오는 각종 논픽션 문학상을 휩쓸었고 일본에 ‘기록문학’ 장르가 자리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걸출한 기록문학 작가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우는 것(본문 463쪽)”이라는 신념으로 흔쾌히 두 번째 취재를 수락했다. 기록문학이 발달한 일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암을 앓았던 일본 당대의 유명인들의 투병기를 샅샅이 읽고 발췌문을 메모했으며 미망인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데즈카 오사무의 부인은 남편에게 암 진단 사실을 속인 걸 후회했고, 히로히토를 보필했던 주치의는 들개처럼 달려드는 언론에 대해 회고했다. 요네하라 마리의 동생 요네하라 유리는 늘 당돌했던 언니가 병마 앞에서 나약해졌던 모습을 떠올렸다.
저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둘째 아들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털어놓으며 등장인물들의 사정에 깊이 통감한다. 또 죽음에 관한 철학, 학문인 사생학(혹은 죽음학)의 창시자 알폰소 데켄의 이론을 소개하고 등장인물들이 당대에 미친 사회·문화적 영향력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 덕분에 암 앞에 선 개인들의 이야기는 단순 부고 기록을 넘어 저자의 개인사와 당대의 시대적 공기까지 어우르는 어떤 보편성을 띠게 되었다.
《암, 50인의 용기》는 《문예춘추》 2007년 1월 호부터 10월 호까지 10차례에 걸쳐 연재된 글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약 30년간 암을 앓는 각계각층 사람들을 꾸준히 지켜보며 그들이 암을 마주하는 자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주시했다. 여기엔 ‘죽음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암과 함께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절망, 희망 그리고 다채로운 생의 사유
일본 만화계의 아버지, [우주소년 아톰]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마지막 작가 혼을 불태우는 만화를 구상했고, 《하치 이야기》의 원저자이자 진보적 영화감독 신도 가네토는 자신의 페르소나 오토와 노부코을 돌보면서 끝까지 함께 영화를 찍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끝까지 배우로 살았다. NHK 아나운서 출신의 에몬 유코는 자신을 그저 ‘아픈 사람’ ‘우울할 수밖에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속을 태우다가 “꾹 참고 지내셨군요.” 라고 말하는 동갑내기 의사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암을 앓았던 이들이 겪은 병고의 현장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있었다.
야마모토쇼텐 출판사 대표이자 한국에도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이란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췌장암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고통을 덜어 줄 모르핀과 ‘경막 외 볼록요법’을 요청했지만 의사는 그의 고통 완화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날 그의 일기에는 먹먹한 한 문장이 적힌다.
“인간이란 동물이 남의 ‘아픔’에 얼마나 무덤덤한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환자의 숙변을 직접 빼내주는 헌신적인 의료진도 있었다. 저자는 환자의 숙변을 다루는 방식 하나만을 보더라도 의료진이 얼마나 인간적인 의술을 베풀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과학주의로 치닫는 현대 의학의 의료 현장을 비판하며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우는 것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웰-다잉)
책에 자주 등장하는 수사는 “자연스럽게”이다. 그리고 이것은 “죽음”을 수식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저자의 의지이다. 표지에 분홍 글씨로 새겨져 있는 문장은 책에 소개된 레이첼 카슨의 어록이다.
누구나 마지막 날을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언제 일생이 끝날지라도 그건 자연스런 것이며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찬란한 빛을 뿌리며 날갯짓하는 나비들, 그 작은 생명이 오늘 아침 제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저자는 이 ‘생사관’, ‘생명관’에 깊이 심호흡을 할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암이 육신을 괴롭혀도 확고한 신념으로 환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레이첼 카슨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책은 ‘죽음’ 자체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저자는 죽음학, 사생학이란 학문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화 케어’나 재가 호스피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일본존엄사협회에 가입한 부부가 존엄사를 희망하는 유언장 ‘리빙 윌’을 작성하는 대목과, 죽기 며칠 전 분홍색 정장을 사 입고 노래방과 초밥집을 찾으며 생의 마지막을 즐겼던 말기 암 호스피스 환자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저자의 어린 시절,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집안 거실에서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이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트라우마가 아닌 ‘소중한 기억’, ‘좋은 유산’이 되어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또 죽기 전 서랍 속에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넣어 놨던 어머니를 따라 아내에게 편지를 남긴 그림책 작가 초 신타이 또한 죽음이 그저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비극이 아닌 그 이상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전에 어머니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옷장 속에 남겨 두셨는데, 나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후미 씨, 고생만 시켜서 미안합니다. 지금 내 일생을 돌아보니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암이라는 병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상을 선사한다. 암을 앓는 사람들은 그저 소멸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또 다음 날 하루는 사소한 행복에 전율했다. 생과 사에 동요하는 하루하루. 불치의 병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들이 번뇌했던 삶의 끝자락을 함께 걷다 보면 우리의 실존적 운명을 숙고하게 된다. 그것은 절망 일색이 아닌 다채로운 사유의 시작이다. 불치의 병과 죽음은 생물학적, 의학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병을 계기로 주변인과의 관계가 새로 정립되기도 하고, 죽음을 계기로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의 영적인 유산을 나눠 갖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한 포럼이 내걸었던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라는 표어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이 지속적인 화제를 낳는 것처럼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책에 그려진 암 환자들의 세밀한 일상 또한 이의 연장선에 있다. 이들이 보여 주는 진리는, ‘살아 있음’과 ‘죽어 간다’는 엄밀한 의미에서 동의어일 수도 있다는 것. 반드시 죽는 존재로서, 그런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적 운명을 직시하자는 제안일지도 모른다. 불치의 병과 죽음은 이러한 생의 자명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 작가 소개
저자 : 야나기다 구니오
일본의 저명한 기록문학 작가.
1974년 NHK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의 KAL기 폭발 사고, 일본의 원전 사고, 신칸센 사고 등 사회성 짙은 문제를 취재하며 일본에 기록문학이라는 장르를 확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80여 권의 단행본을 집필하며 오야소이치 논픽션상, 고단샤 논픽션상, 기쿠치칸상, 문예춘추 독자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1989년, ‘암을 앓았던 사람들’을 기록한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약 30년 만의 그 후속작이다. 암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50여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이 살아 낸 일상의 단면들이 야나기다의 묵직한 문장으로 적혔다. 스러질 것 같은 몸이지만 그저 슬픈 나날은 없었다. 담담하고 의연한 일상이 있었다. 저자는 암과 죽음, 그리고 암과 삶 앞에 섰던 이들을 묵묵히 좇았다.
역자 : 김성연
일본어 전문 번역가. 영화 [철도원] [박치기], 드라마 [인간의 증명] [고쿠센], 애니메이션 [도전자 허리케인] [요리왕 비룡], 다큐멘터리 [세계문화유산] [가이아의 새벽], 뮤지컬 [알라딘] [오즈의 마법사]등 주로 영상·공연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는 《우에무라 나오미의 모험학교》 《그래도 우리 젊은날》 《청춘을 산에 걸고》가 있다.
▣ 주요 목차
이 책에 대하여
1장 의미 있는 우연
다케미쓰 도루
2장 시련에 감사
야마모토 시치헤이
3장 인생의 미학
이노우에 야스시 _ 야마구치 히토미 _ 시부사와 다쓰히코 _
시라이시 이치로 _ 데즈카 오사무
4장 쇼와시대 일왕의 최후
히로히토
5장 자신의 죽음을 공부하라
마루야마 마사오 _ 나카가와 요네조
6장 여자들의 황혼
지바 아쓰코 _ 미야자키 야스코 _ 모리 요코 _
시게카네 요시코 _ 나가오 요리코
7장 쓰는 것이 사는 것
요네하라 마리 _ 에몬 유코 _ 야마모토 나쓰히코 _
고사카 마사타카_ 요네야마 도시나오 _ 야나이하라 이사쿠
8장 표현자들의 방식
노마 히로시 _ 우에노 에이신 _ 고쿠분 이치타로 _
구로다 기요시 _ 구사카 유이치 _ 고미 야스스케 _ 이시이 마키_ 아오키 아메히코_ 조 다쓰야
9장 엄숙한 죽음은 최대의 유산
다카다 신카이 _ 다카다 고인
10장 경영과 투병에의 의지
가와베 류이치 _ 가와케 지로 _ 오카와 이사오 _
미카와 에이지 _ 모리 다케시
11장 막이 내리지 않은 인생
오토와 노부코 _ 스기무라 하루코 _ 혼다 미나코
12장 마지막 스테이지
하나 하지메 _ 아시다 신스케 _ 고시지 후부키 _
요도 가오루 _ 고즈키 노보루 _ 이카리야 조스케 _ 미키 노리헤이
13장 청춘의 한복판에서
무라야마 사토시 _ 모리 지나쓰 _ 구로누마 가쓰시
14장 붓을 놓지 못한 손
초 신타이 _ 다니오카 야스지 _ 바바 노보루 _
아오키 유지 _ 마나베 히로시
15장 생명의 대물림
옮긴이의 말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소설을 쓰겠다”
요네하라 마리, 히로히토 일왕,
이노우에 야스시 등 유명인들의 투병기
노벨문학상에 자주 거론됐던 《빙벽》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암 진단을 받고 의연하게 말했다.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소설을 쓰겠다”
실제로 그는 투병 중에 장편소설 대작 《공자》의 집필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또 “인간은 어떻게든 그럭저럭 다 살아가는 법”이라며 도리어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는 구태여 ‘암’이라는 질병에 ‘비극’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강단 있는 글맛으로 한국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 또한 난소암에 걸렸다. 그녀는 암 환자를 유혹하는 민간요법 치료제의 상술에 흔들리는 자신에 대해서, 또 그 고투의 나날에 대해 ‘암 치료책을 내 몸으로 검증’이란 제목의 글로 죽기 직전까지 《주간문춘》 잡지에 연재했다.
정규 의료에 대한 반어로 대체 의료라 불리는 이런 종류의 상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병자의 나약한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범죄적인 가격에 또 한 번 놀랐다. 배알이 뒤틀리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히로히토 일왕은 암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왕비에게 어떻게 말할지 막막해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던 혼잣말은 기록으로 남았다.
“나가미야(왕비)에겐 뭐라고 하지”
일본 사회에서는 추앙받는 존재였던 그도 불치의 병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었다. 걸출한 현대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는 날마다 긍정적인 일기를 쓰며 투병 생활을 견뎠다.
“약과 싸운다. / 이미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암과 함께 지내는 날이 시작되었다.”
작가 고쿠분 이치타로는 위의 대부분을 잘라 낸 뒤에도 일본 정부의 사상 탄압에 맞섰고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투포환 선수 모리 지나쓰는 곤두박질치는 기록에도 복귀를 희망했다. 천재 장기 기사 무라야마 사토시는 건강한 동료를 질투하며 주먹을 날리고 길거리에서 지폐 다발을 찢었다.
책에 등장하는 50여 명의 암 환자들은 일본 당대의 유명 인사이다. 고등학생 이상의 일본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문학 · 음악 · 학술 · 영화 · 재계 등 각 분야에서 이름난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암에 걸렸고, 그 불치의 병과 함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 말로를 보냈다.
노장의 르포라이터가
30년에 걸쳐 취재한 암 환자들, 그 집념의 기록
저자 야나기다 구니오는 일본의 저명한 기록문학 작가이다. 그는 1974년 NHK 기자를 그만두고 KAL기 폭발사고, 원전 등 사회성 짙은 주제를 자율적으로 취재하며 80여 권의 책을 냈다. ‘암을 앓는 사람들’ 또한 그의 주요 글감이었다. 1989년, 일본의 잡지 《문예춘추》에 ‘암을 앓는 사람들’에 대해 연재했었고 이를 엮어 책으로 냈었다. 약 30년이 지난 뒤 《문예춘추》는 그에게 같은 주제의 연재를 제안한다. “또 한 번 ‘암을 앓는 유명 인사’들을 취재하고 기록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 책은 30년 만의 후속작으로 그렇게 탄생했다.
그동안 야나기다 구니오는 각종 논픽션 문학상을 휩쓸었고 일본에 ‘기록문학’ 장르가 자리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걸출한 기록문학 작가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우는 것(본문 463쪽)”이라는 신념으로 흔쾌히 두 번째 취재를 수락했다. 기록문학이 발달한 일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암을 앓았던 일본 당대의 유명인들의 투병기를 샅샅이 읽고 발췌문을 메모했으며 미망인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데즈카 오사무의 부인은 남편에게 암 진단 사실을 속인 걸 후회했고, 히로히토를 보필했던 주치의는 들개처럼 달려드는 언론에 대해 회고했다. 요네하라 마리의 동생 요네하라 유리는 늘 당돌했던 언니가 병마 앞에서 나약해졌던 모습을 떠올렸다.
저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둘째 아들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털어놓으며 등장인물들의 사정에 깊이 통감한다. 또 죽음에 관한 철학, 학문인 사생학(혹은 죽음학)의 창시자 알폰소 데켄의 이론을 소개하고 등장인물들이 당대에 미친 사회·문화적 영향력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 덕분에 암 앞에 선 개인들의 이야기는 단순 부고 기록을 넘어 저자의 개인사와 당대의 시대적 공기까지 어우르는 어떤 보편성을 띠게 되었다.
《암, 50인의 용기》는 《문예춘추》 2007년 1월 호부터 10월 호까지 10차례에 걸쳐 연재된 글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약 30년간 암을 앓는 각계각층 사람들을 꾸준히 지켜보며 그들이 암을 마주하는 자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주시했다. 여기엔 ‘죽음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암과 함께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절망, 희망 그리고 다채로운 생의 사유
일본 만화계의 아버지, [우주소년 아톰]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마지막 작가 혼을 불태우는 만화를 구상했고, 《하치 이야기》의 원저자이자 진보적 영화감독 신도 가네토는 자신의 페르소나 오토와 노부코을 돌보면서 끝까지 함께 영화를 찍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끝까지 배우로 살았다. NHK 아나운서 출신의 에몬 유코는 자신을 그저 ‘아픈 사람’ ‘우울할 수밖에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속을 태우다가 “꾹 참고 지내셨군요.” 라고 말하는 동갑내기 의사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암을 앓았던 이들이 겪은 병고의 현장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있었다.
야마모토쇼텐 출판사 대표이자 한국에도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이란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췌장암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고통을 덜어 줄 모르핀과 ‘경막 외 볼록요법’을 요청했지만 의사는 그의 고통 완화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날 그의 일기에는 먹먹한 한 문장이 적힌다.
“인간이란 동물이 남의 ‘아픔’에 얼마나 무덤덤한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환자의 숙변을 직접 빼내주는 헌신적인 의료진도 있었다. 저자는 환자의 숙변을 다루는 방식 하나만을 보더라도 의료진이 얼마나 인간적인 의술을 베풀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과학주의로 치닫는 현대 의학의 의료 현장을 비판하며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우는 것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웰-다잉)
책에 자주 등장하는 수사는 “자연스럽게”이다. 그리고 이것은 “죽음”을 수식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저자의 의지이다. 표지에 분홍 글씨로 새겨져 있는 문장은 책에 소개된 레이첼 카슨의 어록이다.
누구나 마지막 날을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언제 일생이 끝날지라도 그건 자연스런 것이며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찬란한 빛을 뿌리며 날갯짓하는 나비들, 그 작은 생명이 오늘 아침 제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저자는 이 ‘생사관’, ‘생명관’에 깊이 심호흡을 할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암이 육신을 괴롭혀도 확고한 신념으로 환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레이첼 카슨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책은 ‘죽음’ 자체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저자는 죽음학, 사생학이란 학문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화 케어’나 재가 호스피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일본존엄사협회에 가입한 부부가 존엄사를 희망하는 유언장 ‘리빙 윌’을 작성하는 대목과, 죽기 며칠 전 분홍색 정장을 사 입고 노래방과 초밥집을 찾으며 생의 마지막을 즐겼던 말기 암 호스피스 환자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저자의 어린 시절,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집안 거실에서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이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트라우마가 아닌 ‘소중한 기억’, ‘좋은 유산’이 되어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또 죽기 전 서랍 속에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넣어 놨던 어머니를 따라 아내에게 편지를 남긴 그림책 작가 초 신타이 또한 죽음이 그저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비극이 아닌 그 이상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전에 어머니도 이렇게 글을 써서 옷장 속에 남겨 두셨는데, 나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후미 씨, 고생만 시켜서 미안합니다. 지금 내 일생을 돌아보니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암이라는 병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상을 선사한다. 암을 앓는 사람들은 그저 소멸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또 다음 날 하루는 사소한 행복에 전율했다. 생과 사에 동요하는 하루하루. 불치의 병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들이 번뇌했던 삶의 끝자락을 함께 걷다 보면 우리의 실존적 운명을 숙고하게 된다. 그것은 절망 일색이 아닌 다채로운 사유의 시작이다. 불치의 병과 죽음은 생물학적, 의학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병을 계기로 주변인과의 관계가 새로 정립되기도 하고, 죽음을 계기로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의 영적인 유산을 나눠 갖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한 포럼이 내걸었던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라는 표어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이 지속적인 화제를 낳는 것처럼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책에 그려진 암 환자들의 세밀한 일상 또한 이의 연장선에 있다. 이들이 보여 주는 진리는, ‘살아 있음’과 ‘죽어 간다’는 엄밀한 의미에서 동의어일 수도 있다는 것. 반드시 죽는 존재로서, 그런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적 운명을 직시하자는 제안일지도 모른다. 불치의 병과 죽음은 이러한 생의 자명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 작가 소개
저자 : 야나기다 구니오
일본의 저명한 기록문학 작가.
1974년 NHK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의 KAL기 폭발 사고, 일본의 원전 사고, 신칸센 사고 등 사회성 짙은 문제를 취재하며 일본에 기록문학이라는 장르를 확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80여 권의 단행본을 집필하며 오야소이치 논픽션상, 고단샤 논픽션상, 기쿠치칸상, 문예춘추 독자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1989년, ‘암을 앓았던 사람들’을 기록한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약 30년 만의 그 후속작이다. 암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50여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이 살아 낸 일상의 단면들이 야나기다의 묵직한 문장으로 적혔다. 스러질 것 같은 몸이지만 그저 슬픈 나날은 없었다. 담담하고 의연한 일상이 있었다. 저자는 암과 죽음, 그리고 암과 삶 앞에 섰던 이들을 묵묵히 좇았다.
역자 : 김성연
일본어 전문 번역가. 영화 [철도원] [박치기], 드라마 [인간의 증명] [고쿠센], 애니메이션 [도전자 허리케인] [요리왕 비룡], 다큐멘터리 [세계문화유산] [가이아의 새벽], 뮤지컬 [알라딘] [오즈의 마법사]등 주로 영상·공연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는 《우에무라 나오미의 모험학교》 《그래도 우리 젊은날》 《청춘을 산에 걸고》가 있다.
▣ 주요 목차
이 책에 대하여
1장 의미 있는 우연
다케미쓰 도루
2장 시련에 감사
야마모토 시치헤이
3장 인생의 미학
이노우에 야스시 _ 야마구치 히토미 _ 시부사와 다쓰히코 _
시라이시 이치로 _ 데즈카 오사무
4장 쇼와시대 일왕의 최후
히로히토
5장 자신의 죽음을 공부하라
마루야마 마사오 _ 나카가와 요네조
6장 여자들의 황혼
지바 아쓰코 _ 미야자키 야스코 _ 모리 요코 _
시게카네 요시코 _ 나가오 요리코
7장 쓰는 것이 사는 것
요네하라 마리 _ 에몬 유코 _ 야마모토 나쓰히코 _
고사카 마사타카_ 요네야마 도시나오 _ 야나이하라 이사쿠
8장 표현자들의 방식
노마 히로시 _ 우에노 에이신 _ 고쿠분 이치타로 _
구로다 기요시 _ 구사카 유이치 _ 고미 야스스케 _ 이시이 마키_ 아오키 아메히코_ 조 다쓰야
9장 엄숙한 죽음은 최대의 유산
다카다 신카이 _ 다카다 고인
10장 경영과 투병에의 의지
가와베 류이치 _ 가와케 지로 _ 오카와 이사오 _
미카와 에이지 _ 모리 다케시
11장 막이 내리지 않은 인생
오토와 노부코 _ 스기무라 하루코 _ 혼다 미나코
12장 마지막 스테이지
하나 하지메 _ 아시다 신스케 _ 고시지 후부키 _
요도 가오루 _ 고즈키 노보루 _ 이카리야 조스케 _ 미키 노리헤이
13장 청춘의 한복판에서
무라야마 사토시 _ 모리 지나쓰 _ 구로누마 가쓰시
14장 붓을 놓지 못한 손
초 신타이 _ 다니오카 야스지 _ 바바 노보루 _
아오키 유지 _ 마나베 히로시
15장 생명의 대물림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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