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받침 하나 없이 쉽게 발음되는 해녀, 그 해녀가 누구인지 누가 모를까 싶은데 막상 해녀에 대해 누가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 입을 다물 것만 같은 막막함이 다분해 이를 벗겨보자 할 작심에 쓰인 이 시집은 총 2부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1부에서는 목숨 건 고문을 겪으면서도 일제강점기를 강한 생명력으로 이겨낸, 또 제주 4?3을 피눈물로 살아낸 해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주는 것으로 우리 역사 속 해녀들의 존재를 힘을 다한 어조로 바로세워주고 있다. 2부에서는 해녀라는 업의 정신에 집중하여 매일같이 ‘바다’라는 죽음의 일렁임을 향해 자발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여성이자 모성의 상징으로서의 해녀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집을 보다 빈틈없이 읽어낼 수 있는 팁이라면 말미에 자리한 시인의 산문「그들은 물에서 시를 쓴다」를 먼저 읽어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바다에 뛰어드는 건 사랑이 시키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 그 사랑의 근원이 말로 다할 수는 없음이라 할 때 이는 ‘시’의 그러함과 똑 닮아 있는 듯도 해서다. 특히 2부의 제목들을 보자면 시의 정의로 치환되는 대목이 여럿이다. ‘우린 몸을 산처럼 했네’, ‘우리는 우주의 분홍 젖꼭지들’, ‘한순간의 결행을 위해 나는 살았죠’, ‘파도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랴’, ‘모든 시작은 해 진 뒤에 있다’, '울고 싶을 땐 물에서 울어라’, ‘해녀는 묵은 것들의 힘을 믿는다’ 등등에서 느껴지는 시라는 정신의 등뼈.
그리하여 나는『해녀들』을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로 읽는다. “어떤 절박함 없이 어떤 극한을 견디겠는가.” 삶이 무엇인가를 말없는 물노동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참으로 귀한 시집,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바닷물이 섞여 덤덤한 듯 일렁이고 있는 시집『해녀들』이다.
작가 소개
저 : 허영선
1957년 제주도에서 출생했으며시인이다. 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제주 4·3평화재단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제주 4·3연구소 이사·제주대 강사로 있다. 제주대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석사,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석사논문 「제주 4·3시기 아동학살 연구」가 있으며, 저서로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뿌리의 노래』, 문화 칼럼집 『섬, 기억의 바람』, 역사서 『제주 4·3』, 4·3구술집(구술 정리) 『빌레못굴,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 『그늘속의 4·3』 (공저), 그림책 『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 『워낭소리』 등을 펴냈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해녀전
- 울 틈 물 틈 없어야 한다
해녀들
해녀 김옥련 1
해녀 김옥련 2
해녀 고차동
해녀 정병춘
해녀 덕화
해녀 권연
해녀 양금녀
해녀 양의헌 1
해녀 양의헌 2
해녀 홍석낭 1
해녀 홍석낭 2
해녀 문경수
해녀 강안자
해녀 김순덕
해녀 현덕선
해녀 말선이
해녀 박옥랑
해녀 고인오
해녀 김태매
해녀 고태연
해녀 매옥이
해녀 장분다
해녀 김승자
해녀 오순아
2부 제주 해녀들
-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우린 몸을 산처럼 했네
몸국 한 사발
북촌 해녀사
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
우리는 우주의 분홍 젖꼭지들
한순간의 결행을 위해 나는 살았죠
파도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랴
다려도엔 해녀콩들 모여 삽니다
바닷속 호흡은 무엇을 붙잡는가
먹물 튕겨 달아나는 문어처럼
잠든 파도까지 쳐라!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얼마나 깊이 내려가야 만날 수 있나
우리가 걷는 바당올레는
물질만 물질만 하였지
혹여 제주섬을 아시는가
심장을 드러낸 저 붉은 칸나
테왁이 말하기를
모든 시작은 해 진 뒤에 있다
내 먹은 힘으로 사랑을 낳았던가
울고 싶을 땐 물에서 울어라
단 한 홉으로 날려라
딸아, 너는 물의 딸이거늘
해녀는 묵은 것들의 힘을 믿는다
어머니, 당신은 아직도 푸른 상군이어요
산문|그들은 물에서 시를 쓴다
추천의 글|고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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