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단재 신채호의 사상적 궤적은 한 가지로 명명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다. 그는 식민지 시기 주체적 민족관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의식의 정립을 강조한 역사학자이면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 잡지 등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정론을 펼친 언론인이고, 「꿈하늘」, 「용과 용의 대격전」 등의 작품을 쓴 문인이기도 했다. 또한 신민회, 상해 임시 정부 등을 통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면서, ‘무정부주의 동방 연맹’의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나키스트이기도 했다. 이처럼 신채호의 삶과 사상적 흐름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은 채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민족 주체의 정립을 위한 시대와 역사의 소명에 따르는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 결과 그의 말과 글은 언제나 주저 없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의 저술은 여느 지식인들의 탁상공론과는 다르게 과감한 실천을 요구하는 촌철살인의 언어로 빛을 발했다. 따라서 신채호의 사상과 글쓰기를 ‘수필’이라는 장르적 범주 안에 국한해서 논의를 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부터 무리가 따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저술 가운데 역사와 전기를 다룬 글을 제외하고라도 신문, 잡지에 발표된 논설 등은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역사적 안목과 비판적 세계 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식으로 정의되는 수필의 세계를 뛰어넘어 모순된 역사에 맞서는 저항적 지식인의 정론이라는 점에서 엄숙하고 강한 어조로 일관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글쓰기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민족 구성원들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깨우치는 것에서부터 한글, 소설, 종교 등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세계를 보여 주고 있어서 그의 산문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을 구체화한 글쓰기의 양상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면, 애국 계몽주의자로서 자주적 근대화론에 입각한 글, 민족주의자로서의 민족 해방 운동을 천명한 글, 그리고 말년에 이르러 아나키스트로서의 활동과 관련한 글이다. 그는 계몽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그리고 다시 아나키스트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와 시대를 정확하게 읽어 내고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고자 했던 지사적 결기에서 비롯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역사와 이념이 고루한 지식의 영역에 갇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탁상공론식 실력 양성을 주장하는 현실 타협론자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대해서도 무엇보다도 단호했다. 이 때문에 그가 참여했던 여러 단체나 조직에서 중심에 있지 못하고 늘 비판적 아웃사이더로 살아야만 했다. 그에게 실천이 결여된 이념은 한낱 관념일 뿐이었고, 직접적 독립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 실력 양성은 허울 좋은 이상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세상 어느 한 곳에 절대 머무르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이러한 자유는 일신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유를 위한 희생이었으며, 민족정신을 올곧게 세우려는 의지적 선택이었다. 그의 글쓰기가 애국 계몽에서 민족주의로 그리고 아나키즘으로 진화해 간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상적 궤적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작가 소개
저 : 신채호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1908년 신채호는 여성 계몽 잡지 『가정잡지』의 발행인이 됐고,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에 5월부터 8월까지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한다. 5월에는 『을지문덕』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했고 다음해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출간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신채호는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사상의 전파를 위해 『해조신문』를 발간한다. 1914년에 『조선사』의 저술을 시작한 신채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개토왕 왕릉 등 고구려 고적을 답사한다. 다음해 북경 도서관에서 『조선상고사』의 집필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또 박은식(朴殷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박달학원을 설립한다. 1919년 신채호는 임시정부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추대된다. 같은 해 『신대한』의 주필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글을 썼고 대한 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의 부단주가 된다. 다음해, 보합단(普合團)의 내임장으로 추대된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북경에서 김정묵(金正默), 박봉래(朴鳳來)등과 통일책진회(統一策進會)를 만들어 『통일책진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한다. 다음해 북경에서 조선 역사를 연구해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한다. 그리고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만들었고, 국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임시정부의 창조파로 활약한다. 다음해 관음사(觀音寺)에서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1925년에는 1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에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미발표 작품인 『전후 삼한고』를 쓴다. 1928년 대만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된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아 뤼순 감옥에서 복역한다. 다음해 『조선사연구초』가 동지들에 의해 서울에서 출판된다. 1931년에 그는 『조선일보』에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사』를 연재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한다. 1936년 2월, 신채호의 나이 57세,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한다. 1945년에는 신채호학사가 설립되었고, 다음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조선사』의 서문을 『조선사론』으로 표제하여 광한서림에서 출판한다. 1948년 『조선상고사』를 종로서원에서 발행했고, 1955년 단재유고출판회에서 『을지문덕』을 순 한글로 번역 출판한다. 1962년 신채호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7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단재 신채호 전집』이 발행되었다.
편 : 하상일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오늘의 문예비평』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2002), 『주변인의 삶과 시』(2005), 『전망과 성찰』(2005),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2008), 『생산과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2009), 『리얼리즘‘들’의 혼란을 넘어서』(2011)가 있고, 연구서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과 매체의 비평전략』(2008), 『한국문학과 역사의 그늘』(2009),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2011)가 있으며, 인문여행서로 『상하이 노스탤지어』(2016)가 있다. 공저로는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한국문학권력의 계보』, 『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강경애, 시대와 문학』,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김현 신화 다시 읽기』 등이 있고, 편저로 『고석규 시선』, 『최일수 평론선집』, 『조동일 평론선집』, 공동편저로 『고석규 문학의 재조명』, 『소설 이천년대』,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체험』, 『영구혁명의 문학‘들’』 등이 있다.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작가와 사회』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2014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국 상하이 상해상학원 한국어학과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동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고석규비평문학상(2003), 애지문학상(2007), 설송문학상(2014)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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