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04년 『포엠토피아』로 등단한 후 2007년 시집 『눈썹 끝의 별』을 출간했던 문근식 시인이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물끄러미』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082번으로 출간했다.
문근식 시인의 시집 제목인 “물끄러미”는 암시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물끄러미’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한 주체가 어떠한 대상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인 의지나 관심과 간섭이 배어들어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시집의 시들과 연관지어 부연하자면, 이 ‘물끄러미’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 하나가 더 들어 있다. 공간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거리감’이 그것이다. 이 ‘거리감’은 ‘나’와 ‘너’의 상대적인 거리이지만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너와의 거리와, 네가 느끼는 나와의 거리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별들과의 거리만큼 먼 것일 수도 있고, 어깨 부딪힐 만큼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심리적인 거리는 상대적인 동시에 절대적인 거리인 것이다.
또 하나, 문근식 시인의 시집은 ‘너’, ‘그’, ‘그녀’ 또는 ‘당신’으로 지칭되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나에 대한 확인인 동시에 타자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이 아니라 나와 타자로 지칭되는 ‘무수한 당신’이라 말해야 할까? 사물이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탐구는 대상과의 거리 인식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거리감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대상에의 관심과 궁금증들은 결국에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간속의 나, 혹은 지금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집요한 질문은 결국, 존재에 대한, 삶에 대한 시인의 탐구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특징은 ‘알 수 없음’이다. 기약할 수 없는 생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그리고 당신과 내가 살아 있기에 말할 수 없는 ‘그리움’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내성적인 시인은 마음으로만 당신과, 세상과 교감한다. 그의 시는 그래서 늘 공간으로 비어 있고, 거리감으로 당신을 초청한다. 멀지만 가까운 당신,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확인한다. 사랑과 그리움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알 수 없음’이다. 다시 처음으로, 시간의 지층으로 쌓여 있는 ‘그리움’으로 돌아간다. 나 없으면 세상도 없겠지. 그리고 당신도 언젠가는 내게서 사라지는 존재이겠지. 시인의 시집은 그러나, 삶이 허망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역설로 보여준다.
작가 소개
저 : 문근식
충북 단양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부터 현재까지 공무원으로 일해왔고, 2017년 말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2004년 『포엠토피아』로 등단해, 2007년 시집 『눈썹 끝의 별』을, 2010년 산문집 『길에서 그리운 이름을 부르다』를 출간했다.
목 차
제1부
채석강·13
늦은 바다에서·14
태반크림·16
십일 월의 여섯 시·17
마음의 행방·18
내 안의 허공·19
참 긴 말·20
액정 속으로·21
풍경 밖의 여자·22
무릎 세우고·24
바위·25
그녀를 복사하다·26
수화로 말하다·27
달맞이꽃에 대한 반론·28
흐린 날·29
그에게서 전화가 오고·30
망상, 혹은 추억·32
동태·33
페루의 눈물·34
오후 두 시·36
제2부
카톡·39
오로라가 없는 밤·40
새가·42
손주름·43
그렇게·44
바다의 그늘·46
솔개·47
비는·48
오래된 웃음·50
해변에서·51
비 맞은 강아지처럼·52
소나기·53
디스크 수술을 하다·54
그리움을 바라보다·56
딱정이를 뜯다·57
아버지의 나이테·58
그녀·60
거울효과·61
별을 두고 오다·62
바람의 무덤·64
제3부
고백·67
잠 속의 골목·68
외로움 혹은·70
군간나루·71
반사 유리 너머·72
아버지·73
아버지의 계절·74
낡은 구두·75
분재·76
역진화론·77
두 개의 거울·78
길의 눈·79
비밀의 방·80
칼국수와 클래식·81
달맞이꽃·82
불면증·83
공무원·84
건강검진·85
다섯 시 삼십 분·86
언저리에서·87
제4부
암호를 풀다·91
아침이 지워졌다·92
동태탕·93
갈대가 우울할 때·94
그래서 또 한 잔·95
거울에 기대어·96
약국에서·97
왜 꽃은 피어·98
가을느티·99
종댕이 길에서·100
저녁 무렵·101
목련을 지우다·102
문득, 그리움이 켜지다·103
그리움에 대한 예의·104
사무실에서·106
길·107
돌아앉기·108
경계에서·109
마지막 월세·110
아프다·112
해설 동시성으로 살아가는 동시대 삶의 내면들/ 최준·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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