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모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새로움을 찾아나선 자의
1년간의 변신일기
그의 일기에는 그가 창작자로서 느끼는 고뇌와 열망, 새로운 정착지에서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이자 가장으로서의 고통이 교차한다. 지금까지 그가 산책자로서 파리 골목마다 숨은 아름다움과 역사를 발굴해냈다면, 이번 책에서는 파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적응하고 책임져야 하는 이의 무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새로운 것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투지가 느껴진다. 걷고 사색하고 매일 쓰면서 그는 때로 오해받고 때로 불화했던 한국에서의 삶을 넘어 이곳에서 ‘변신’하고자 한다.
2011년 말 파리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서울에서 취직도 안 되고 집안에 돈은 있어서, 파리에 가서 널널하게 지내다 온 사람’이라고 써놓은 것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알았다. 나 스스로는 파리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타인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파리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한 이 일기가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바깥에서 나를 보는 시선 사이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_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영감을 얻기 위한 파리 예술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파리에서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 지식인들의 대담을 듣고 더 명료한 프랑스어를 단련하기 위해 공부하고 파리를 넘어 아를과 오베르쉬르우아즈 등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정수복의 여정과 활동은, 파리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새로운 모색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보석 같은 힌트들로 가득차 있다.
붙박이나 토박이가 아닌 파리와 서울 두 도시를 걸쳐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더 많은 것으로부터 자극받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정신적 망명객의 삶. 서울에 지쳐 파리로 넘어갔던 정수복은 그렇게 파리에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글쓰기 형식인 일기를 매일 써나가며 파리의 순간들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에서 나 자신의 삶의 증인이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의 망명 생활은 변혁운동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의 망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 나는 파리에서 ‘정신적’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나의 망명 생활은 정치적 박해를 받아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망명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의 불화 때문에 스스로 택한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망명 생활이다. 지금 나는 ‘방법론적 단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끊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순화시킨 상태에서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나의 자발적 망명 생활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활동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참여하는 시민적 지식인 모델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지식인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나는 망명중이다. 나는 수련중이고 모색중이다. 과거를 다시 해석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다. 결코 편안하지 않은 경계선 위에 서서 나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지금 이곳 생활의 목표다.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변신 그것이 나의 자발적 망명 생활의 화두다. _본문에서
작가 소개
저 : 정수복
스스로를 학문적, 지리적, 사회적 차원에서 고정된 경계선을 넘나드는 ‘탈(脫)경계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1960년대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1970년대에도 여전히 서울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대학시절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도 문학,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과 문화예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0년대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활동하였고, 2002년 삶의 거처를 다시 파리로 옮겨 10년 가까이 체류하다 2011년 말 귀국했다. 파리에서 ‘걷는 사람’으로 변신한 그는 파리의 모든 길을 아무 목적 없이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은 그러한 걷기의 산물이다. 햇살 가득한 프랑스 남부를 사랑하는 그는 그곳에서 쓴 여름 일기를 묶어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펴내기도 했다.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 구성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유럽의 새로운 사회운동과 한국의 시민운동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환경운동과 생태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현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인식하고 문명전환의 가능성을 탐색했으며, 한국인의 일상문화를 연구하면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속도지상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느림의 가치를 새롭게 제시하기도 했다.
사회학 저서로서는 『의미세계와 사회운동』 『녹색 대안을 찾는 생태학적 상상력』 『시민의식과 시민참여-문명전환을 꿈꾸는 새로운 시민운동』 등이 있고, 2007년에 출간된 그의 인문학적 사회학 저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는 그해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둥지 철학자 박이문의 삶과 앎의 세계를 다룬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둥지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다』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일상은 오전에는 ‘쓰고 싶은 책’을 쓰고, 오후에는 ‘읽어야 할 책’을 읽고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저녁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일로 짜여 있다. 세상의 길과 책 속으로 난 길을 걸으며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한 것들을 책으로 쓰는 일이 그의 삶인 셈이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넘어 시집과 소설책, 철학 서적과 역사책, 전기와 자서전, 여행 서적과 명상 서적, 교육과 심리, 예술과 종교 분야의 책을 두루 즐겨 읽는 그는 ‘책에 대한 책’ 연작을 시작하여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에 앞서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펴낸 바 있다.
목 차
1월 25일 파리의 이방인 _14
1월 26일 어두운 마을에서 _17
1월 27일 나는 갈 길 모르니 _21
4월 5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 _23
4월 8일 적응과 소명 _27
5월 16일 나무가 주는 위안 _34
5월 17일 유배와 유보의 시기 _38
6월 13일 무위의 예술 _42
6월 14일 내 방에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 _46
6월 20일 자유를 얻은 대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_53
6월 22일 파리에서 민족주의를 생각하다 _56
8월 18일 깨진 꿈의 잔해 속에서 살아가기 _60
8월 19일 노르망디 노동자의 딸과 대인의 향수병 _69
8월 31일 전원 생활에 대한 그리움 _76
9월 1일 이름 속에 숨은 뜻 _85
9월 2일 정신병과 창조성 _96
9월 5일 은둔과 망명 _98
9월 6일 우연과 인연 _103
9월 16일 만성피로와 악몽 _107
9월 17일 “타인은 지옥이다” _113
9월 24일 감정 폭발의 심리학 _119
10월 2일 내면의 요새 _123
10월 7일 자유롭게 부유하는 지식인 _127
10월 10일 인문사회과학의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_131
10월 12일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영구혁명의 삶 _139
10월 16일 삶을 변화시키는 경청의 시간 _149
10월 21일 아버지의 권위와 새로운 인본주의 _155
10월 24일 망명객과 유목민 _160
10월 25일 지식인, 세속의 사제들이 사는 법 _163
10월 26일 망명 지식인과 페미니스트 지식인 _172
10월 28일 자기 안으로의 망명 _183
10월 31일 여성과 계급 _187
11월 5일 쓰레기통을 뒤지는 파리의 철학자 _194
11월 13일 파리 속의 아시아 _200
11월 16일 살롱 뒤 리브르 _205
11월 22일 아름다운 외국인들의 축제와 인도 문학의 밤 _209
11월 24일 파리를 걸으며 부분과 전체를 생각한다 _211
11월 27일 잃어버린 세대와 대안적 삶의 모델 _217
11월 28일 파리의 작은 토론회와 한국 영화제 _219
12월 16일 발과 버스로 파리 산책하기 _222
12월 23일 파리에서 한국 문화 알리기 _227
12월 24일 파리 생활의 회의와 짜증을 넘어서 _231
1월 2일 말하는 사람은 많고, 경청하는 사람은 없다 _235
1월 3일 감정은 전염된다 _239
1월 7일 파리의 동네 이발사 _246
1월 17일 증오에 대하여 _253
1월 18일 테크노피아 비판 _261
1월 20일 여성의 글쓰기와 성 해방 _264
1월 24일 지금 나는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_270
1월 27일 특이하고 이상적인 삶 _277
1월 28일 패션과 광고를 바라보는 사회학자의 시선 _282
1월 30일 침묵과 단절 _294
1월 31일 세상의 소란을 피해 글쓰기에 몰두하다 _299
일기장을 닫으며 _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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