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의 지도

김희숙의 언어는 전통적인 은유와 구별된다. 그는 사물들을 즉각적으로 연결시키지 않으며, 한 사물의 의미가 다른 사물의 의미로 천천히 ‘번지게’ 놔둔다.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로 천천히 번질 때, 두 기표들이 가지고 있는 기의들은 더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말하자면 이 느린 ‘의미화과정signification’의 기록이 그의 은유인 것이다.
「발묵潑墨」 시는 김희숙의 언어가 배열되는 원리를 고스란히 요약하고 있다. 이 시에서 “밀밭”과 “노을”은 즉각적인 결합이 아니라 더딘 속도의 번짐을 통해 만나고 있다. 밀밭과 노을을 결합시키는 것은 더딘 시간이다. 밀밭의 의미소들이 바람을 타고 서서히 노을의 의미소로 번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의미의 씨앗들이 쏟아진다.
- 오민석(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해설 부분

 

저 : 김희숙
1958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고 전남여중, 고등학교, 간호대를 졸업했다. 2011년 월간 <시와표현> 신인상으로 등단해서 2012년~2016년까지 월간 <시와표현> 편집장을 역임했다.  

 

1 곡물의 지도

곡물의 지도 12
밝은 뼈 14
첼로 16
진창의 누각樓閣 18
따뜻한 평등 20
시에스타 22
인상을 쓰다 24
햇살대출 26
문을 긁다 28
발목 30
공차는 남자들 32
닳지 않는 반지34
퍼즐 36
캡슐이 녹는 시간 38
사투死鬪 40

2 매화에게 묻다

매화에게 묻다 44
남해파도의 입술 46
속도는 둥글다 48
빈 집 50
손톱 아트 52
이사移徙 54
낡은 골무 56
실뜨기 58
데칼코마니 60
새들은 떨어지는 속도로 날아오른다 62
바람이 흘러넘친 자국 64
바람의 잔상 66
안녕, 슬픈 데시벨 68
물의 똬리 70
지렁이 장마 72

3 환승하는 나무들

발묵潑墨 74
환승하는 나무들 76
소금자루 78
빛으로의 여행 80
무서운 간격 82
은행나무 84
푸른 혓바닥 86
뒤로 던진 꽃 88
빗방울 구두 90
가시덤불 92
굴러가는 것들은 둥글다 94
풍등風燈 96
휘리릭~ 98
갱년기 100
어린 양 102

4 물의 뼈

물의 뼈 106
달 바퀴 108
두근두근, 둥근달 110
구름 낚시법 112
동그라미 일곱 개 114
철거민 116
누에다리 118
휴대폰 120

|해설|
번짐의 언어
오민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