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 이상! 아, 김유정!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1937년 4월 17일. 한 젊은이가 일본 도쿄에서 돌연 사망한다. 그에 앞서, 20여 일 전에도 스물아홉의 젊은이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이자 단짝이었다. 연이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의 가족과 벗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이에 얼마 후 합동 추도식을 올리며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상과 김유정.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가난과 고독과 싸우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935년 봄,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유정이 낯을 심하게 가린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면,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요, 투사와도 같았다. 그러니 성격적으로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우정 역시 남달랐다.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등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연대순으로 엄선,
신산했던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해학과 풍자로 대변되는 김유정의 글과 허무와 초현실주의로 대변되는 이상의 글을 생각하면 얼핏 두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매우 컸고, 때로는 작품 속에 서로의 삶을 투영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상이 소설체로 쓴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보면 김유정의 모습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삶을 살다간 그들의 삶에 관한 안타까운 반추이리라.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는 이상, 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순간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작품을 연대순으로 실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살렸다. 또한, 두 사람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그들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담아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감동과 가슴 먹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 김유정 문학의 에스프리!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일찍 떠나야만 했을까. 또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던 시는, 소설은 어찌 잊고 갔을까.
김기림과 채만식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과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먼저 간 벗에 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끄집어낸다. 짐짓, 태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 (중략) …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백 자 한 장에 대돈 50전야라를 받는 원고료를 바라고, 그는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면서도 소설을, 수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쓴 원고의 원고료를 받아서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버젓하게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지.
- 채만식, 「밥이 사람을 먹다 ─ 유정의 굳김을 놓고」 중에서
모든 죽음은 큰 슬픔을 머금고 있다. ‘그’라는 존재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이 마음을 쑤셔놓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은 “이상이 없는 서울은 너무도 쓸쓸하다”고 했으며, 채만식 역시 김유정의 죽음을 두고 “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가슴 아팠을 그들의 절절한 슬픔과 외로움이 두 사람의 굴곡진 삶과 함께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작가 소개
저 : 김유정
KIM, YOO-JUNG,金裕貞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으며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
저 : 이상
李箱, 본명 : 김해경(金海卿)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애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목 차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에필로그 - 희유의 투사,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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