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고객평점
저자조광희
출판사항강, 발행일:2018/04/30
형태사항p.274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8218229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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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소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에 이런 표현이 있다. “It’s only movies, but movies it is!” “그래봐야 영화, 그래도 영화!” 정도로 번역해볼 수 있는 이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영화’라는 단어를 다른 어떤 장르로, 아니 인간이 욕망하는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해도 뜻이 생겨난다.
“그래봐야 소설, 그래도 소설!” “그래봐야 인간, 그래도 인간!”……
나는 이 문장을 ‘영화는 삶에 우선하지 못하지만, 삶의 불완전성을 채워줌으로써 삶을 완전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라는 의미로 읽는다. 장미는 자기가 장미인 줄도 모르기에 스스로 또 다른 장미를 꿈꾸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매우 성숙한 인간은 그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장엄한 것인가를 터득하기도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미처 살아내지 못한 다른 삶들을 생각하며 잠을 뒤척인다. 영화는 자연의 장미에 인공적으로 파란색을 입힌 ‘파란 장미’이고, 삶이라는 재료에 빛을 입힌 셀룰로이드다. 영화는, ‘이야기’는, 그리고 예술은 파편화된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이고, 잃어버린 삶의 조각을 찾아 삶을 완전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파란 장미’가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 그것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의미 있는 작업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무기로 도저한 현실의 중력에 저항할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못하겠다.

민주주의나 정치에 관한 관심과 견해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슴 속에 외로운 소년의 정체성을 간직한 저자가 풀어내는 사려 깊고 서정적인 문장들이다.

가랑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버님이 내게 준 도시의 삶에 대하여 생각한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도시의 메트로놈. 이글거리는 욕망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순간들. 쉬기 위해 숨어들어가는 찻집, 술집, 노래방 따위가 주는 공허한 만족. 그가 그것들의 실상을 알았더라면 과연 내게 그러한 삶을 주고 싶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는 도시에 남은 아들의 몫이다. 아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 몇 년 전 집에 놀러 온 후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서가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어떤 책이죠?” 나는 니체라거나 라캉이라거나 파스칼이라거나 하는 거창한 사람들이 쓴 책들을 떠올렸지만 결국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또는 우리 강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 소년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사랑해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자기 앞의 생』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한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정복자 펠레」, 「허공에의 질주」이며, 하나같이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나는 술에 취한 이 새벽에 서재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오르고 싶었던 그 모든 절벽, 얻고 싶었던 그 모든 지혜, 버리고 싶었던 그 모든 욕망, 낙오하지 않으려는 그 모든 몸짓은 ‘혼자 버스를 타고 이 종점에서 저 종점까지 다녀오는 것을 낙으로 삼아야 했던 어느 소년’의 것이었다는 것을. 번듯한 직업을 가지게 되고, 무언가 이룬 듯 행세를 하고, 짐짓 거만하게 철학과 정치를 논하고 있는 이 속된 자의 가슴 한편에는 땅에서 뿌리 뽑힌 채 돌아갈 고향을 가지지 못한 아스팔트의 소년이 있다는 것을. 그 소년은 내 안에 유폐된 채 끊임없이 독백을 한다. ‘이 사막 같은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람들은 번듯하게 살기 위해 도시에 몰려든다. 켜켜이 쌓인 그들의 욕망은 도시라는 거대한 성채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의 주인이라기보다는 ‘도시의 내장을 기어다니는 벌레’일지도 모른다. 도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하수구에 던져지고, 이긴 자들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시달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삶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바로잡을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응하거나 낙오하거나 도망하는 것만이 허용되어 있다. 모르겠다. 괜찮다던 그의 삶보다 내 삶이 더 괜찮은지. 언젠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성모병원에서 아니면 그 어떤 요양원에서 내 삶을 마감할 때, 개울도 아니고 개천도 아니고 병원에서 태어난 딸에게 “내 인생은 괜찮았어”라고 나도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말했던 아버님은 진심이었을까. 아버님이 시골을 떠난 것과 같은 결단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 가공할 속도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온 나에게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아버님의 결단이 고향을 떠나는 것이었다면 나의 결단은 세상 어딘가에서 고향을 찾아내는 것일까.

마침내 비가 멎었다. 아내는 여전히 잠들어 있고, 모모는 내가 서재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딸이 그리워 전화를 하려다 딸이 의아하게 생각할까 봐 그만둔다. 대신 나는 고향에 묻힌 아버님에게 전화한다. “당신의 인생은 정말 괜찮았나요? 이젠 솔직히 말해주세요. 제 인생도 괜찮을까요? 아니,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나는 서재에서 나와 내 안의 소년에게 멜라토닌 한 알을 준다. 눈을 뜨면 문득 아침이다.

작가의 말

지난 몇 년간 쓴 글들을 작년 여름 무렵에 잠깐 정리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잊어버렸는데, 평론가이자 도서출판 강의 대표인 정홍수 선생님이 책으로 묶어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어줍은 글들을 모아보자는 제안에 감사할 따름이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간신문, 주간지, 월간지 그리고 계간지에 기고한 산문들을 모아보니 60편가량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매체에 기고를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퇴행하기 시작한 2008년 여름이었다. 그때부터 지난해 장미대선 직전까지 기고했으니 대체로 구 년 동안의 글이다.
솔직히 말해서, 견고한 지적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닌 내 글들을, 게다가 일관된 주제 의식으로 쓴 것도 아닌 산문들을, 굳이 모아서 출판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그래서 사실은 혼자서 새로운 책을 쓰고 있던 중이기는 했다). 다만 정 선생님의 안목을 믿고 격려에 힘입어 용기를 내게 되었다. 기고한 매체들의 성격상 시류와 함께 흘러가는 글들이 많지만, 소심한 성격 덕인지 아주 틀린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뒤늦게라도 밝혀진 경우는 다행히 없었다.
행복한 제안을 해주신 정홍수 선생님과 발문을 써주신 강금실 변호사님, 그리고 편집에 애써주신 이진선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글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지나간 시절에 내가 마음을 깊이 쏟았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자각하게 되었다. 첫째 살아간다는 것, 둘째 민주주의, 셋째 영화였다. 그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앞으로 내 마음의 비중이 어찌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 소개

저 : 조광희

1966년 서울 출생으로 198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현직 변호사인 작가는 법조계만이 아니라 영화계 및 문학판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다수의 영화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주요 문예 잡지 및 언론에 활발히 기고해왔다.
데뷔작인 장편소설『리셋』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와 법조계 속에 스며들어 있는 부정과 비리를 정면으로 다루는 동시에 인간의 혼탁하고 악한 마음의 심층에 내재하는 순수하고 선한 능력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허프포스트코리아]와 [문학뉴스]를 통해 동시에 연재되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목 차

책머리에
들어가며 당신의 인생은 정말 괜찮았나요?

1부 잠들기 전에

142번 버스의 추억
삼십 년 후
무정형의 세계와 지연된 행복
Wi-Fi 미니멀리즘
바벨의 도서관
산스크리스트어 수업
잠들기 전에
어떤 투병

2부 법을 믿습니까?

한명숙 재판 또는 5만 달러라는 맥거핀
박원순, 조국의 명예를 짓밟은 자?
‘사법플레이’의 시대
법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법’이라는 판타지
법을 믿습니까?

3부 한국은 내전 중

붉은 여왕의 민주주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강의석의 경우
빌 게이츠가 술집에 들어왔다
이 나라의 장래는 밝기만 하다
누구를 위한 역사 교육인가
한예종을 지켜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
그녀는 무엇을 했는가
‘진영의 논리’와 ‘논리의 진영’
그들이 부결시킨 것은 자신들이다
‘소명’ 또는 ‘욕망’으로서의 정치
부산의 어느 유세장에서
‘인류 원리’와 ‘유권자 원리’
의지로 낙관하라
우리는 지금 안드로메다로 간다
‘구국의 혁명’이라는 망상
지젝, 수면제인가 아니면 각성제인가
한가한 역사 논쟁이 아니다
정치는 ‘진실한 유혹’이어야 한다
오류의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
‘역사로부터 배우거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애도의 정치, 그 이후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국은 내전 중
장미전쟁

4부 그래봐야 영화, 그래도 영화!

그래봐야 영화, 그래도 영화!
정복자 펠레 정복자 펠레
렛미인·트와일라잇 「렛미인」이냐 「트와일라잇」이냐
데블즈 애드버킷 데블즈 애드버킷
체인질링 「체인질링」을 보고 든 몇 가지 생각
블러드 다이아몬드 장자연 또는 핏빛 다이아몬드
만추 늦가을 또는 오지 않는 사람
울지 마 톤즈 재능을 쓰는 다른 방법
부당거래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
아이 엠 러브 사랑과 감각을 찾아서 떠난 이후
블랙 스완 온전함을 위한 가혹한 도정
무산일기 ‘가진 것 없는 생명’의 나날들
불의 절벽2 지금도 계속되는 ‘불의 절벽’
변호인 어떤 변호사의 불타는 통과의례
이야기꾼의 위기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와 죽여달라는 남자
챈스 정원사 챈스의 외출
너의 이름은 얼어붙은 시간

발문1 강금실 “내 인생은 괜찮았어.”
발문2 임범 누가 순한 조광희를 화나게 했나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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