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04년 [대구매일신문]과 2008년 [부산일보]로 등단한 이동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착상의 기발함과 재미있는 전개가 돋보이며 다양한 주제를 잘 내면화해 시적 긴장을 살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왔던 이동호 시인은 2007년 첫 시집 『조용한 가족』이후 10여 년만에 출간한 이번 시집에서도 태작이 거의 없는 정밀한 시세계로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유독 같은 제목의 시가 많다. ‘조용한 가족’ ‘과녁’ ‘내셔널지오그래픽’ ‘폐가’ 시리즈 등이다. 가족사적 주제나 일상의 주제가 많은데 현란한 수사 없이 자신만의 사유로 천착하고 변주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시 전개가 돋보인다. “나는 누군가 쓰다버린 탄피였다/ 나는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라는 고백이나 “얼마나 많은 실패들이 절망을 표적으로 날아가 박혔던가/ 눈물이 된 것들을 위해/ 가슴은 또 기꺼이 슬픔의 중심을 내어준다/ 죽음은 늘 백발백중이다”(??과녁?) 등 삶과 죽음, 결핍과 충만 사이에서, 그는 망설이고 저항하며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통찰한다.
그리하여 “너는 자신을 모래알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말하지만/ 한 알 모래가 된다는 것은 퇴보가 아니다/ 세상의 끄트머리까지 밀려 한 줌 모래로 쌓였을 때,/ 날아온 꽃씨 하나를 내치지 않고 온몸으로 품어주었기에/ 꽃씨는 구석진 곳을 환하게 밝히는 전구가 되었다”(?모래톱 이야기?) 라는 시선으로 나아간다. 우리 삶의 비극의 각성은 때로는 날카로운 야성으로 드러나고 때로는 이웃들의 삶을 따스하게 비추는 온기로 작동하며 궁극적으로 세계의 물상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음을 증언한다.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이동호 시의 매력은 디스토피아에 근접한 세속도시의 출구 없는 삶과 황폐한 느낌을 특유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는 데 있다.”고. 정익진 시인은 “드라이한 묘사가 압권이지만 그 속엔 서러움이 소용돌이치고 연민의 시선 가득하다.”고. 김재근 시인은 “조용한 가족의 가장이 총을 꺼냈다. 그가 겨눈 곳이 비록 화장실 변기통이거나 텔레비전 속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표적은 삶의 무기력에 저항하는 자신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죽음과 아픔을 소재로 한 시를 쓰면 시인도 아프다. 내 시가 이 시대를 밝히는 촛불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시의 심지를 돋우겠다. 그러므로 이제 누가 내게 라이터를 켜다오. 나는 그에게로 가서 꺼지지 않는?시가 되겠다.”
교단문예상 수상 소감에서 밝힌 시인의 말이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학생들의 선생님으로, 시인으로, 온몸을 달구며 이 시대의 사막을 걸어가는 이동호 시인. 지금도 앞으로도 한결같이 시의 불꽃, 심지를 돋우리라 의심치 않는다.
시인의 말
여물지 않은 몸으로 고추밭을 지나가기가 부끄럽다
고추는 저리 자연스럽게 붉은데
나는 아직 파랗다
나는 언제쯤 저 고추처럼 붉게 잘 익어
풍성하게 수확될까
새 한 마리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노동요를 뚝 꺾어 바닥에 던지고는 날아간다
여자들은 쪼그려 앉아 산의 사타구니 아래
천연히 손을 집어넣고 여전히 바쁜 손놀림이다
나는 머리끝까지 노을을 뒤집어쓰고는
얼른 밭두렁을 지나간다
내놓고 다녀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내 청춘이 너무 부끄럽다
2018년 여름
이동호
작가 소개
저 : 이동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대구매일신문]과 2008년 [부산일보]에 시와 동시가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첫시집 『조용한 가족』을 출간하여 부산작가상 받은 바 있으며, 2008년 대산창작지원금을 받고, 같은 해 교단문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재 부산 신라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목 차
제1부
사물함/ 총잡이/ 과녁 -러시안룰렛/ 우물/ 과녁/ 함경도/ 편도선/ Mr. 밥/ 모래톱이야기/ 싱크홀/ 조용한 가족/ 리모트 컨트롤/ 선풍기/ 酒기도문/ 정사情事/ 환승/ 빚/ 레미콘 트럭
제2부
팅커벨/ 풍선/ 우체국, 간다/ 옆집 그 아가씨/ 선물상자/ 옷들/ 해망동/ 다리미/ 전봇대와 개/ 내셔널지오그래픽/ 13분에서 14분 사이의 권태/ 내셔널지오그래픽/ 쥐/ 폐가/ 폐가/ 폐가/ 독서/ 거미줄
제3부
하얄리아/ 무화과/ 꽃/ 드라마/ 플러그 인/ 환절기/ 노인과 계단/ 소화되다/ 나사렛/ 모퉁이 고물상/ 재래시장/ 단풍나무/ 브런치/ 일요일/ 가을/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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