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강달수의 시는 유독 자연을 제재로 한 세계를 두드러지게 형상화한다. 자연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하늘을 수놓은 별과 내리는 눈과 비 등 그의 시에는 온통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단순한 관찰자의 태도에 머무르거나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연의 내부에 숨겨진 본질적 의미를 통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현실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문제적 시선을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자연의 파괴라는 문명의 위험성은 지나친 인간 중심주의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이러한 인간적 가치의 폭력성과 위계적 시선을 경계하는 성찰적 태도를 문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낙타라고 목마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래폭풍이 부는 사하라 사막
노을이 내 등위로 물 드는 사막길을
몇 백리 달려 도착한 오아시스
가죽에 물을 채운 후 또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면 인간들은
내 등에 갈무리된 물을 마시려고 혹을 베어낸다
평생 그들을 위해 걷고
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지만
인간들은 우리에게 단백질과 수분 섭취를 위해
수시로 혹과 몸통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사막도 죽음도
내가 낙타인 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두 개의 혹으로
기꺼이 홀로 사막을 밤새 걸어간다
모두 다 깊은 잠에 빠진 밤
차디찬 사막에 내리는 별빛을 밟으며,
잘근 잘근 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쓰디쓴 관절의 고통을 곱씹으며,
황량한 바람 부는 좁은 우리 속에서
못난 에미를 기다릴 어린 눈망울을 생각하며
아프고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 「쌍봉낙타」 전문
낙타와 인간의 대비를 통해 인간중심적 세계의 파괴성과 위험성을 부각하는 시이다. “낙타라고 목마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목마름을 채우려는 욕망으로 낙타를 대상화할 뿐이다.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면 인간들은/내 등에 갈무리된 물을 마시려고 혹을 베어”내는 악행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것이다. “평생 그들을 위해 걷고/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지만”, 이러한 낙타의 수고로움을 대하는 인간의 시선은 “단백질과 수분 섭취를 위해/수시로 혹과 몸통을 요구하”는 냉혹한 태도를 서슴지 않을 따름이다. 생명체로서의 동일한 시선은 처음부터 찾을 수 없고, 낙타를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조차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생존 본능으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식만이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이기적인 인간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는, 그래서 냉혹한 자연의 질서조차 순응하며 받아들이려는 생명의 가치와 지향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쓰디쓴 관절의 고통” 속에서도 오직 “못난 에미를 기다릴 어릴 눈망울”을 떠올리는 모성성이라는 본연적 생명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질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려는 낙타의 모습에서, 철저하게 인간중심적으로 변질된 반생명의 현실과 파괴와 죽임을 통해 구축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시는 자본과 문명의 무한 속도 경쟁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문제적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강달수의 시는 자연을 대상화하는 인간적 태도의 모순을 비판하는 일관된 시선을 갖기를 소망한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근본적 인식은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는 부정적 현실 너머의 근원적 통합의 세계를 지향하는 서정의 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의 시가 꽃과 나무와 같은 자연의 대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라는 정서적 일체감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는 “사람도 나무가 될 수 있다면/누구나 한번 쯤 되어 보고 싶은 나무”(「자작나무의 눈」)라고도 하고, “얼마나 서럽게 그리우면/붉은 눈물이 되었을까”(「진달래꽃」)라고 하면서 자연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내면화하기도 하며, “평생/이지러지지 않는 달이 되고/영원히 지지 않는 별이 되어라”(「타지마할, 그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라고 낯선 이방의 땅에서 자신의 운명을 소망하기도 한다. 그에게 자연은 더 이상 추상적 대상이거나 인간과 구분되는 관념적 사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과 하나로 통합되는 유기적 생명체로서의 모습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ojection)라는 서정시의 동일화 원리를 일관된 창작 방법론으로 삼고 있다. 즉 의식적으로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이끌고 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세계의 자아화와, 자신의 내면을 대상이나 세계에 상상적으로 투사함으로써 주체와 세계의 일체감을 이루는 감정이입의 방식을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시집의 표제시 「달 항아리의 푸른 눈동자」는 이러한 그의 창작 전략을 가장 상징적으로 그러내고 있어 특별히 주목된다.
목련꽃이 정물처럼 그려진 봄 밤
칠흙 같은 세상, 환하고 훈훈하게 살고
모나고 비뚤어진 세상
둥글고 부드럽게 살아가라고
산과 들 위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
생명을 불어 넣은 백토 한 덩어리
달밤에 활활, 장작불 가마솥에 구워
봄이 무르익는 지상에 하사한
하느님의 선물
달 항아리의 푸른 눈동자
- 「달 항아리의 푸른 눈동자」 전문
화자는 “달 항아리”라는 구체적 정물을 바라본다. 그 세계는 “목련꽃”이 “그려진 봄 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항아리라는 정물의 세계 안에서 자연의 모습을 발견한 화자는, 그 밝고 환함과 대비되는 “칠흙 같은 세상”을 생각하고, 달처럼 둥근 항아리와는 달리 “모나고 비뚤어진 세상”을 안타깝게 떠올린다. 즉 대립과 갈등이 난무하는 사각형과 같은 각진 세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환하고 훈훈하게 살” 수 있고 “둥글고 부드럽게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말 없는 정물과 그 속의 풍경화 같은 자연에 “생명을 불어 넣”고자 한다. “달밤에 활활, 장작불 가마솥에 구워”지는 아름다운 인고(忍苦)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봄이 무르익는” “하느님의 선물” 같은 세상이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달 항아리의 푸른 눈동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사물과 자연과 인간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과정은, 모순된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그래서 자연과의 합일과 세계와의 조화를 지향하는 시인의 의식을 온전히 상징화하고 있다. “내 가슴에 푸른 잉크처럼 번지고 간/파랑 나비와의 운명적인 사랑”(「달개비꽃」)도 그러하고, “바람만 불어도/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녀의/여리고 붉은/초경 같은 꽃”(「오동도 동백꽃」)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그에게 자연은 자본과 문명을 추구해온 세속화된 인간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장소이고, 결코 타협하지 않고 순응해야 할 운명적인 세계이며, 지금은 사라지고 잊혀진, 그래서 끝끝내 되찾아야 할 삶의 이정표임에 틀림없다. 그의 시가 오로지 서정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추구하려는 일관된 시 정신의 결과이다. 아마도 그의 시가 현재를 말하되 앞을 바라보기 보다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시선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듯하다. 서정의 시선은 이러한 기억 속의 세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 또 다른 본질적 지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과 세계가 어떠한 대립과 갈등도 없이 온전히 하나로 통합되었던 총체성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 그의 시는 이러한 시적 세계관에 근본적 바탕을 두고 기억을 서사화하는 현재적 시간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달수
경남 남해에서 출생하여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덕명정보여고(현 부산마케팅고) 교사와 (사)한국여성 인적자원개발원 강사, 부산예총 기업체파견 문학 강사, 영호남문인협회 시창작지도 강사와 가야문학회장, 화전문학회장, 국제펜클럽 부산지역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현, (사)부산광역시인협회 부이사장과 김민부문학제 운영위원장, 사하문화연구소장, 을숙도문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7년『심상』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꽃문학상(우수상)과 영호남문학상(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라스팔마스의 푸른 태양』『몰디브로 간 푸른 낙타』와 금번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달항아리의 푸른 눈동자』가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5
1부 사막도 죽음도 다 운명이다
쌍봉낙타 12
마두금 산조 13
대설 14
괘종시계 16
자갈치 아지매 17
노량진 수산시장 18
공중전화의 독백 19
보물섬, 미조 아리랑 21
새와 곤충에게서 배운다 22
국제시장 지게꾼 24
압력밥솥과 가마솥 25
염부 26
인생이라는 그림 27
황혼 28
2부 그리움으로 흐르는 눈동자
만파식적 30
봄날 31
타지마할, 그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32
내 어렸을 적에 ─다천리 34
폐교 35
여름, 김민부전망대 36
동백꽃 시인 김민부 37
김민부와 별 38
화가 이중섭 39
다꼬 시인, 임수생
─고 松人 임수생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40
이인영 시인을 추모하며 42
을숙도 대교 43
에밀레종 44
광안리 풍경 45
가을 상주해수욕장, 한 곡의 노래가 되다 46
3부 첫사랑, 신앙이 되다
첫눈 48
진달래꽃 49
오동도 동백꽃 50
봄, 송정역 51
자작나무의 눈 52
달개비꽃 53
눈 내리는 밤에, 혼자 54
화엄사 홍매화 1 55
화엄사 홍매화 2 56
화엄사 홍매화 3 57
첫사랑 58
4부 하얀 눈과 별의 발자국
달항아리의 푸른 눈동자 60
봄 비 61
피아골 단풍 62
바다 1 ─화가 전미경 63
바다 2 64
파도 65
보름달 66
아랑 아랑 아랑아리랑 67
함박눈 68
겨울이 떠난 자리 69
청도 운문사 70
장방폭포 71
붉은 포도밭 ─고흐 72
쪽 73
5부 낙동강물은 죽어서 파도가 되고
어촌다방 76
가난, 감천 문화마을 계단에 쓰다 77
감천 문화마을 1 78
감천 문화마을 2 79
감천 문화마을 3 81
겨울 을숙도 83
낙동강 애가 84
하단오일장 뻥튀기 아저씨 86
오! 낙동강아 87
겨울 다대포해변, 그리움 1 88
겨울 다대포해변, 그리움 2 90
낙동강물의 속살 91
여름 다대포 93
해설 서정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하상일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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