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채광석 시인이 첫 시집 발간 후 그동안 응축한 시어들을 모아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시단을 떠나 있던 그동안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3.8.6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안, 죄책감, 체념 그리고 새롭게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까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전적 시들이 가득하다.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까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인간적 갈등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50대에 들어선 상처투성이 386세대의 자화상
이 시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나와 우리 세대의 그림자에게 바친다.
-「시인의 말」 중에서
채광석 시인이 첫 시집 발간 후 그동안 응축한 시어들을 모아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시단을 떠나 있던 그동안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3.8.6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안, 죄책감, 체념 그리고 새롭게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까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전적 시들이 가득하다.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까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인간적 갈등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젊은 작가, 시단을 떠나다
채광석 시인의 시는 1990년 <사상문예운동>으로 등단하기 전 이미 대학가에서 벽보나 팸플릿에 익명으로 발표돼 당대 청년들에게 열독되곤 했다. 첫 번째 시집『친구여 찬비 내리는 초겨울 새벽은 슬프다』는 등단 직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노동문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당대 변혁적 현실주의/진보적 리얼리즘을 보여준 시집이었다. 그 시집은 1992년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올해의 좋은 책 20선>, <1992년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읽는 시집 3선 김남주 채광석, 신동호 시집>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귀정 열사 공동창작 추모시집 『누가 내 누이의 이름을 묻거든』을 대표 집필했으며 공동시선집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4년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회를 신동호(위원장)와 함께 맡아 문학운동을 전개하다 1995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에 13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것이 채광석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이력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시인은 절필을 선언한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개인의 삶이 또 하나의 역사로 자리한다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에는 30대 40대를 지나 50대에 들어설 때까지 시인의 삶이 현실적이면서 서정적인 언어로 담겨 있다. 시인은 결혼을 했고 자녀 둘을 키웠으며, 학원 이사장이 되었고 10년 만에 그 일을 그만두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IMF 광풍이 몰아닥쳤고 정부가 바뀌었으며 세월호 사태가 벌어졌고, 남북한 지도자가 만났다. 시인의 삶과 성찰이 나이대 별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당시의 나라 상황이 그 삶에 투영되어 있다.
[제1부 90 그리고 서른]은 20대 후반과 30대의 삶을 담았는데 당시의 막막했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젊은 날의 철학과 사상을 헌 종이상자에 담아/지하 창고 깊숙한 곳에 부려버린 까닭은/절망 속으로 들어간 절망이/끝내 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1995 길을 잃고」 “둘째가 태어났고/때마침 한 출판사로부터/끝내 출간되지 못한/시집 원고도 되돌아왔다/이유가 두 가지나 늘었다/돈을 벌기로.”「1997 절필」
이상을 실천하려던 삶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나섰던 시인은 가족을 부양하고 동료들을 지원하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만 끝내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만다. “화려한 차를 몰았고/화려한 호텔에서 밥을 먹었으며/화려한 침대에서 자기도 했다/이제는 시인이라 기억해주는/사람들도 거의 없었다”「서른4 화려한 불안」 그러다가 그동안의 사업을 접고 산중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깃발을 접었는데도/불혹의 문 앞에서/첫걸음도 못 뗀 불혹이 통째로 흔들려오자/난 귀향하지 않고/곧장 불암산으로 갔다.”「서른10 불혹 앞에서」
[제2부 마흔, 무늬 몇 개]에 실린 40대의 삶은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나는 슬픔이 말라버린 것일까/누군가에게 슬픔을 적출당한 것일까”「무늬5 나도 좀 울고 싶다」 문인 동료는 20년째 전화를 받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후배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으며 아내는 나이 들어 버렸다. “애를 둘이나 낳아준 여자가/마지막 생리를 끝냈다고 고백했을 때/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줬다”「무늬7 여자의 생리가 끝났을 때」 그럼에도 그 사이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모든 혁명론과 국가론을 일거에 전복하는/저 수천만 개 개인 혁명의 촛불들을 보라/…/개인으로 쏟아져 나와 각자의 불을 켠 저 초는/어제의 그 불이 아니다”「무늬21 촛불, 광화문」
[제3부 쉰 즈음]에 실린 시에서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스스로 선(善)이 되지 못한 동료들과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식은땀이 난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청년기가 소환되고/시대의 중앙선으로부터 비껴선/중년기도 소환된다/내 안의 내가 나를 사찰한다”「괴물의 시간」 “세상의 개벽인 것처럼 포장하면서/거기에 빨대 하나 꽂으려 했던/우리들의 여름에서도/자꾸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여름 이야기」 냉철한 반성이 있은 후에 마주하는 세상 속에서 시인은 다시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아 염병할, 오늘은/은행 알 똥 폭탄에 맞아 죽어도 좋을/너무나 샛노란 은행 알들 같은 날!”「오늘 같은 날」 “새도 때론 걷는다/왜 난다, 고만 생각했을까/나이 쉰/무어 그리 놀라운 발견이라고/아파트 앞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는데/이 심장 뛰는 것 좀 보소”「유레카」
[제4부 역사의 바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담았다. 한용운의 아내 전정숙, 기미년의 기녀들, 중국과 러시아 등 이국 땅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옛일을 복기하거나/지금 세상에도 똑같이 일어나는/저 숱한 윤회의 자국들을 살필 때/그대, 늘 조심하고 또 경계하여라/모든 빛 뒤엔 항상 무거운 빚이 있으니/빚을 갚지도 않고 빛나는 모든 것들은/믿을 것이 못 되거니와/이제라도 네 빛을 되돌려주어라/해마다 술 한잔 올려주어라”「역사의 바깥14 빛은 높고 빚은 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한 개개인의 삶 또한 역사임을 증명하고 있다.
방민호(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386세대 문학인으로서의 “특별한 경험”을 “특권화하지” 않았을 때 “그것을 되돌아보는 태도와 시각의 깊이, 넓이에 의해서 문학다운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채광석 시인의 시집은 “내가 걸어온 모든 것을, 상처와 고통과 죄책감과 새롭게 일어나는 꿈까지도 이 시집은 함께 나누어 갖도록 한다. 이 새로운 시적 자서전이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 깊이 도사린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타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이끌어줄 것이다.”고 평가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채광석
1948년 충남 태안군 안면읍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평론가를, 2학년 때는 언론인을 희망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문필가의 꿈을 키웠다. 게다가 중학 시절 역사 공부를 특히 좋아했는데, 이처럼 글쓰기 자질을 갖추고 역사 공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후 1980년대 민중민족문학 진영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로서 기초 소양을 튼실히 다졌다. 그는 대전고 재학 시절 정부의 대일 굴욕 외교로 빚어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바, 관념으로서 역사가 아닌 실천으로서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처럼 청소년 시절에 튼실히 배양된 역사의식은 그가 1968년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한 이후 ‘독서회 사건’과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을 목도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반민주적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가지도록 했다. 이 무렵 그는 신동엽 시인을 민족의 역사 인식을 깨닫게 해 준 민족시인으로서 각별히 존경한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애송했다. 1960년대 후반 채광석의 대학 시절은 박정희 정권의 반민주적·반민족적 3선 개헌으로 들끓었고, 그는 학내의 이념 서클 활동과 야학 지도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무엇보다 1970년 김지하의 담시 <오적> 필화 사건과 전태일 노동자의 분신을 보고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체제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국가의 대학생 병영화를 위한 교련에 대한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가 체포되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었다.
군 제대 후 박정희 정권의 초헌법적 긴급 조치 시대 속에서 ‘김상진 열사 추모 시위’ 계획을 후배 및 동료와 함께 세우고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캠퍼스 안에서 반독재 민주주의를 향한 추모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오둘둘 사건’으로 채광석은 실형을 선고받고 2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출소 후 1978년 신용협동조합에 입사하였고, 대학 시절 ‘반달’ 모임에서 만난 강정숙과 결혼하였다. 신용협동조합 시절 ≪창작과 비평≫의 독자 투고에서 “한 편의 시마다에 민중의 삶을 드러내며 민중의 시대를 당겨오는 거점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시인의 민중 의식이란 일종의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고 하여, 이미 민중민족문학 계열의 문학평론가로서 전문가적 견해를 보였다.
1980년 5·17 쿠데타에 앞서 주도면밀하게 세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긴급체포되었다. 석방 이후 무크지 ≪시와 경제≫ 활동에 동참했다. 1982년 ≪시와 경제≫ 2집 때부터 활동에 가담하면서 문학을 통해 시대의 역사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그리하여 1983년 2월에는 김정환의 장편 연작시 ≪황색 예수전≫ 1권에 해설을, 3월에는 ≪한국문학의 현 단계 II≫에 평론 <부끄러움과 힘의 부재>를, 5월에 창간된 무크지 ≪시인≫에 시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 외 네 편을 발표하였다. 이 문학 활동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시와 경제≫ 2집에 노동자 박노해의 <시다의 꿈> 외 다섯 편의 시를 소개한 것이다. 이후 채광석은 진보적 출판사인 풀빛출판사의 풀빛 판화시선을 기획하여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출간했다. 이 외에도 혁명 전사 김남주의 시집 ≪진혼가≫(1984)를 청사민중시선으로 출간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1984년 신용협동조합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 문학운동에 출사표를 던졌다. 무엇보다 1984년 민족문화운동협의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필두로, 진보적 동료·후배 문인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에 설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1980년대의 시대정신에 걸맞은 대중적 문인 조직으로 재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창립된 지 10주년이 되는 1984년에 그가 직접 작성한 <84 문학인 선언>이 채택되었고, 그를 총무 간사로 한 자유실천문인협회의회가 재창립되었다. 이후 그는 재창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활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특유의 활력으로 1985년에 시집 ≪밧줄을 타며≫(풀빛), 사회평론집 ≪물길처럼 불길처럼≫(청년사)을 출간하는 등 대학교의 시국 및 문학 강연을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문학 활동을 계속했다.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화예술분과 위원장을 맡으면서 전국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문학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지역의 문학 현장을 직접 호흡하면서 지역문학운동의 중요성을 지역 문인들과 함께 고민하였고, 각 지역의 구체적 현실에 걸맞은 지역문학운동을 활발히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힘을 보태었다. 그는 가히 ‘민중적 민족문학의 독전관(督戰官)’(황지우)이며, “‘한국민족문학사’의 뚝심 건장한 농부”(김준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격정 속에서 7월 11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여성단체연합회가 주최한 ‘민주 시민 대동제’에 참석하여 ‘민문연’ 노래패 후배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토론을 벌인 후 이튿날 새벽 두 시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실 앞 아현동 대로상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88년 7월 그의 문학평론집 ≪민족문학의 흐름≫(한마당)이 출간되었고, 그의 1주기에 ≪채광석 전집≫(풀빛) 1권(시)과 2권(산문)을, 2주기에 3권(서한집), 4권(문학평론집), 5권(사회·문화평론집) 등 전 5권의 간행을 완료하였다. 2000년 7월 시인 채광석을 기리는 시비(詩碑)가 그의 고향 안면도 송림공원에 건립되었다.
목 차
■ 시인의 말
제1부 90 그리고 서른
1991 친구여 찬비 내리는 초겨울 새벽은 슬프다
1992 입영통지서
1993 면회가 끝나고
1994 전역 후
1995 길을 잃고
1996 중경삼림
1997 잔치를 끝냈다
1997 절필
1998 돌 반지
1999 정동진
서른1 독립선언
서른2 상해탄
서른3 평양을 가다
서른4 화려한 불안
서른5 어떤 강의료
서른6 코피
서른7 악마가 자취를 감춘 사연
서른8 생애 첫 기권
서른9 예쁜 바람
서른10 불혹 앞에서
제2부 마흔, 무늬 몇 개
무늬1 꽃도 사람처럼
무늬2 불암 산정엔
무늬3 김남주 묘소 앞에서
무늬4 냄새
무늬5 나도 좀 울고 싶다
무늬6 벚꽃 지고
무늬7 여자의 생리가 끝났을 때
무늬8 심리상담
무늬9 늦봄에
무늬10 돌아오지 못한 시
무늬11 동강별곡
무늬12 대설
무늬13 한 형의 안부를 묻는다
무늬14 디오게네스처럼
무늬15 물푸레나무
무늬16 묵자처럼
무늬17 재회
무늬18 까치 소리에
무늬19 장관
무늬20 윤정모 선생님과 솔지
무늬21 촛불, 광화문
제3부 쉰 즈음
쉰
가을밤
여자의 방석
여의도 공원에서
자장면 두 개
평양 소식
배신
나의 통일론
찬바람이 불어서
라면을 먹다가
화섭 형
여름 이야기
고양이
괴물의 시간
아들은 나를 닮지 않았다
산초 냄새
오늘 같은 날
유레카
시마(詩魔)
내일은 눈이 왔으면 좋겠다
쉰 살에 부치는 노래
제4부 역사의 바깥
역사의 바깥1 전정숙
역사의 바깥2 전협 부부
역사의 바깥3 윤치호에게 쫓겨난 소녀
역사의 바깥4 김립
역사의 바깥5 마자르와 오토바이
역사의 바깥6 피리와 낚싯대
역사의 바깥7 화탄계 정정화
역사의 바깥8 기미년 기녀
역사의 바깥9 안동 양반
역사의 바깥10 마적 형제
역사의 바깥11 김규식과 신채호의 과외 이야기
역사의 바깥12 밀양 아리랑
역사의 바깥13 사람 이소사
역사의 바깥14 빛은 높고 빚은 깊고
역사의 바깥15 왕의 도장
역사의 바깥16 하느님
역사의 바깥17 어떤 청춘
역사의 바깥18 생민(生民)
역사의 바깥19 조명희
역사의 바깥20 천교도
역사의 바깥21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서
역사의 바깥22 자유시, 스보보드니
역사의 바깥23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에서
역사의 바깥24 우수리스크 라즈돌노예 역에서
역사의 바깥25 우수리스크 최씨 수난기
역사의 바깥26 발해 성터에서
역사의 바깥27 신한촌 세울스카야 2A에서
역사의 바깥28 늦가을, 경운궁 앞에서
역사의 바깥29 봄, 서대문 감옥에선
역사의 바깥30 여호와 아부지
역사의 바깥31 할머니 셋
역사의 바깥32 과꽃
■ 해설 Ⅰ 시적 자서전의 깊이와 감동 ·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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